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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을 통촉하시는 하나님 (시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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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통촉하시는 하나님 (시 5:1-2)

 
“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시편 5:1~2) 

I. 본문해설 

본문은 시인 다윗이 악인들에게 에워 쌓여 고통 받는 가운데 하나님께 토로하는 탄원 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인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는 간구의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들이 인생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또 어떠한 자세로 고난과 시련을 이겨야 되는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II. 환경을 통해 마음을 보이심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잘 모릅니다. 하나님만이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마음을 우리 자신에게 알리게 하시기 위하여 환경을 종종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것이 형통하고 평안할 때에 몰랐던 우리의 마음의 정체를 시련과 역경 속에서 발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A. 하나님이 멀리 계실 때 

우리는 종종 역경과 시련을 당하는데도 하나님이 우리로부터 멀리 떠나셔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곳에 계신 거리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신 적도 없고, 가까이 오신 적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친근해 하고 순종할 때에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가까이 계신 효과를 나타내 보여주시고, 우리가 주님을 멀리 떠나고 계명을 버리고 불순종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멀리 계신 효과를 나타내심으로서 우리는 주님이 가까이 계시다 멀리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도덕적인 삶에 있어서 우리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게 되고, 또 고난 속에서도 위로를 경험하는가 하면 평탄함 속에서도 경고를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B. 마음을 통촉하시는 하나님 

시인이 하나님 앞에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내 심사를 통촉해 달라’ 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께 자신의 마음을 통촉해 달라고 마음을 통촉하시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멀리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님을 멀리 떠났을 때 주님이 멀리 계신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간절한 기도는 사실은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1. 하나님이 보시도록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마음이 우리의 육신보고 명령을 하면 말을 잘 듣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마음에게 명령을 하면 마음은 잘 순종하지 않습니다. 좋고 올바른 명령을 마음이 순종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아니라 둘로 찢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의 궤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그려온 발자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악한 사람은 많은 부귀와 영화, 권력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사용하여 악의 궤적을 그을 것이고, 선한 사람은 또 그것들을 사용하여 선의 궤적을 그을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삶의 다양한 양상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천지 창조의 목적에 맞게끔 선한 궤적을 그리며 이웃과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2. 자신이 볼 수 있도록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자기의 마음을 통촉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히브리말로 ‘빈'(ןיב)이라고 하는 이 동사는 약간 어려운 단어인데 직관하다, 통찰하다, 알다 분별하다, 대부분 판단력과 관련된 지성의 작용을 가르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하나님 앞에 자기의 마음을 통촉해 달라고 할 때, 하나님이 모르시기 때문에 자기가 가르쳐 자기 마음을 학습하라고 부르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느낌을 벗어나서 하나님이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자기의 마음을 직관하고 계신 효과를, 자비의 효과를 자신에게 나타내 보여 달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사물과 이 모든 세계에 대한 상들이 육체의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올 때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마음속에서 다양한 작용들을 만들어 냅니다. 히브리말로 ‘하기그’(גיגה)라고 되어 있는 이 심사라고 하는 말은 번역하기가 좀 어려운 단어입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란 뜻이죠. 그래서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 이것을 ‘한숨’으로 번역했습니다. ‘나의 마음의 한숨을 통촉하시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저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눈 여겨 보시옵소서. 제 마음에 아주 떨림, 많은 출렁거림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혼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외부의 환경을 통해서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심사를 통촉해 달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이 모든 고통스런 환경에서 자기를 건져 달라고 하는 경건한 시인의 절실한 탄원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렇게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각자 다 자기가 걸어가는 인생이 옳은 줄 알지만 하나님의 판단과 사람의 생각은 같지 않을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제일 먼저 우리가 하나님과 똑같은 마음을 품고 무슨 길을 걸어가야 되는지를 1년 동안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판단을 위해서는 주님의 시각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것을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은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한 해의 목표를 정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으면서 올바르게 자신의 길을 주님의 마음이 반영된 목표를 세울 때, 그때에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의 책 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새롭고 진귀한 것을 보기 위해서 멀리 여행을 떠나지만 우리가 정말 하여야 할 여행은 우리의 마음속을 여행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우리가 누구인지 자신도 너무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그래서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때로는 우리가 찾고 싶었던 것들도 보여주지만 때로는 직면하기 싫었던 우리 자신을 보여 줍니다. 

두 번째는 그 말씀으로 우리를 비추어서 과연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그 길을 갈만한 자동차의 성능인지 점검을 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삶의 궤적은 아름다운 마음이 그리는 것이고 선한 삶의 발자취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리는 발자취입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빛을 받아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리고 만약에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시면 그 비춰주신 마음의 빛을 보면서 그 결과대로 우리의 마음을 고치겠다고 생각을 해야합니다. 마음을 고칠 때 아픈 건 당연합니다. 주님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고침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즐겁게 우리의 마음을 고쳐주십니다. 아픔이 있지만 고쳐진 후에는 하나님 앞에 정말 아름다운 그런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III. 마음을 쏟아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의 궤적이 우리의 삶을 그려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진단하면 하나님이 은혜로 여러분들의 마음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뭐냐 하면 평생 동안을 자신의 마음을 고쳐보려고 애를 써도 잘 안 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한 번 확 만지고 지나가면 하나님이 그 마음을 고쳐주십니다. 정말 놀랍게 고쳐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필요한 것은 이 시인처럼 마음을 쏟아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원래 기도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한 마디를 하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진액이 묻어나도록 언어를 끌어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달라는 이 기도, 히브리말로 ‘카라’(ארק)인데 멀리 떨어진 사람을 자기를 주목하며 볼 수 있도록 알리려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카라’라고 합니다. 그 단어가 여기에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래 본 적이 얼마입니까? 솟구치는 기도의 언어를 느끼면서 마음이 복받쳐 주님께 울부짖는 적이 언제입니까? 간절히 목이 쉬도록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목 놓아 기도해 본적이 언제이지요? 은근한 영혼의 실증과 육체의 게으름 속에 함몰된 채, 기도할 때도 안하는 것처럼, 안할 때도 기도하는 것처럼 그렇게 외식과 경건과 삶 사이에 그런 식으로 방황하면서 산 적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런 식의 삶으로써는 우리가 승리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두루 살피시고 그들이 당신께 돌아와 당신의 도움과 은혜를 간절히 찾으며 자기의 마음을 통촉해 달라고 주님을 부르짖을 때까지 거기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렇게 부르짖는 사람들 가장 가까이 오셔서 용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용서의 은혜를, 지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혜의 은혜를, 인내가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참고 견딜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를 벌판에 홀로 선 것처럼 버려두실 때가 있습니다. 당신께 가까이 오게 하시기 위하여 잠시 떼어놓으신 적이 있고, 당신의 사랑의 품 안에서 그 사랑의 참 맛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먼저 쓴 맛을 보게 하시기도 하십니다. 


IV. 결론 

그러므로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한 해를 주님과 함께 동행 하시겠습니까? 실패한 그 길로 홀로 떠나시겠습니까? 오늘 마음속에 손을 얹고 결단을 해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주님 없이 홀로 떠나는 길을 택한다면 나도 여러분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지난 한 해 동안의 실패를 거울삼아서 주님과 함께 동행 하려고 한다면 주님은 여러분들의 손을 잡아 드릴 것입니다. 

마음에 뜻을 또렷이 세워야 합니다. 새벽에 간절히 주님을 찾고 주님을 정말 깊이 만나고 여러분들이 꿈꾸지 못했던 주님이 주신 길을 발견하고 고쳐져서 그래서 세월이 많이 흘러가도 2011년도 그 사경회에 부어주신 새해말씀 때문에 내가 여기에 서 있게 되었노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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