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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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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세아 6장 1-3절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4장 14절에『깨닫지 못하는 백성을 패망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반대로 하면『깨닫는 백성은 흥하리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하여 계시하고 계십니다. 
계시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자연계시 (일반계시)입니다.

1) 우주만물 곧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계시했습니다.

저 하늘을 보십시오. 밤하늘에 촘촘히 별들을 달아 두었습니다. 그별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이것은 유치원생들이 더 잘 압니다. 들에 피어 있는 한 송이 꽃을 보세요. 거기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습니다. 방긋 웃는 어린아이의 웃음 속에서 천사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폭풍과 천둥 속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봅니다. 인간의 출생과 임종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어디 하나, 어느 한 곳,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있습니까? 구석구석마다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2) 역사의 문맥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역사의 주인이 아닙니다. 히틀러가 역사의 주인이 아닙니다. 나폴레옹이 역사의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섭리자시요. 역사의 주관자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의 주관자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의 승자와 패자를 결정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한 장 한 장을 넘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계시하고 계십니다.

3)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양심이 주어졌습니다. 그 양심은 죄를 지으면 나를 고발합니다. 그 양심은 선을 행하면 나를 지원합니다. 양심이 있다는 것은 그 양심을 창조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양심은 마음의 율법이요, 불문화된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1) 자연을 통해서. 2) 역사를 통해서. 3)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계시했습니다. 이것을 자연계시 또는 일반계시라고 합니다.


2. 특별계시 입니다.

1) 특별계시의 방편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 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성경은 만 가지로 기록되었다고 했습니다.

호세아서 8장 12절에『내가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었다』고 했습니다. 율법 곧 성경이 만 가지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이 성경을 읽으면 깨달을 수 있게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린아이들도 보고 은혜받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학자도 은혜받을 수 있게 기록했습니다. 누구든지 성경이란 우물에서 생수를 길어 먹도록 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읽지 않는 사람들이 성경이 어렵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누구나 은혜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모습이 계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 자신이 특별계시의 방편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하는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는『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연계시와 특별계시를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옥 문 앞에 가서『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못 믿었습니다』그렇게 변명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패망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으면 흥합니다. 역사적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던 시대는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개인의 삶이 영적으로 충만해졌습니다. 나라와 민족이 강성해졌습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세상 향락으로 기울어지고 세상을 연애하는 마음이 그 속에 있어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음란한 거리의 여인 고멜은 이스라엘이 아닌 이스르엘을 출산한 저주의 여인입니다. 루하마가 아닌 로루하마를 출산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받을 수 없는 여인입니다. 암미가 아닌 로암미를 출산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여인입니다. 그러나 호세아로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은 호세아 선지자가 자녀로 축복할 수 없는 아들을 축복하고, 사랑과 긍휼을 베풀수 없는 딸을 사랑해 주고, 자신의 아들로 등제할 수 없는 아들을 아들로 인정하여 주었듯이 유다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의 두목을 세워 이스르엘의 날을 크게하고, 로암미를 암미라, 로루하마를 루하마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마치 가출한 딸을 찾아온 아버지가 지난날의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 없던 것으로 여길테니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아버지와 함께 살자고 타이르는 것과 같은 뉘앙스를 느끼게 합니다.
또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집 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말씀 같기도 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호세아는 고멜에게 이제 얼굴에 음란을 제하고 유방 사이에 음행을 제하고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히 여김을 받으며 살자고 합니다, 그러나 고멜은 남편을 버리고, 자녀들을 버리고, 가정을 뛰쳐나갔습니다. 남편 볼 면목이 없어서 나간 것이 아닙니다. 다른 남자의 연애를 받아 그를 따라 나간 것입니다. 미혹하는 자의 유혹에 빠져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녀는 돈도 빼앗기고, 몸도 다 버리고 결국 인신매매 되어 노예로 팔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불렀습니다.
『호세아야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또 가서』라는 말은 결혼 한 것으로 끝내지 말고 행실이 좋지 못한 네 아내를 또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집을 나가 인신매매 자들에 의해 노예가 된 고멜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때 호세아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호세아는 하나님께 뭐라고 했겠습니까? 하나님 해도 너무합니다. 하나님은 너무 잔인하십니다. 

『하나님 ! 고멜이 제 발로 집을 나갔습니다.  하나님 ! 앓던 이가 빠졌습니다. 차라리 죽어 없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또 가서 값을 지불하고 사와서 사랑하라고요?』

우리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호세아라면 고멜과 같은 아내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호세아는 항의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 저 여자를 또 어떻게 사랑합니까? 차라리 죽어 없어지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내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났습니다. 제 스스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를 또 데리고 와서 사랑하라고요? 하나님 ! 도대체 저의 아픈 마음을 아시는 것입니까, 모르시는 것입니까?』

그때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알겠다 네 마음이 내 마음이다. 네가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네 아내 사랑하기가 이렇게 힘들지.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기가 이렇게 힘들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창조했고, 내 영광을 위해서 창조했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버렸다. 내게 등을 돌렸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은 알지 못한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가 이렇게 힘들다.』

하나님께서 죄인된 나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가 이렇게 힘듭니다. 여기 호세아는 하나님께 대한 그림자요, 고멜은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호세아가 고멜을 사랑 할 수 있는 방법은 그의 몸값을 주고 사오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고멜에게 가서 아무리 입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해도 이제 고멜은 호세아에게 돌아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기서 비참한 종살이를 계속해야 합니다. 
호세아는『은 열 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샀다』고 했습니다. 고멜의 몸값으로 은 열 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값을 지불하고 고멜을 사왔습니다. 은 열 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은 은 삼십 개의 값입니다. 은 삼십 개는 당시의 노예 한 사람의 몸값입니다. 

나를 위하여 저를 샀다고 했습니다. 호세아는 자신을 위하여 고멜을 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고멜을 사서 다른데에 팔려고 산 것이 아닙니다. 자기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샀습니다. 이제 고멜은 호세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멜의 의사와 상관없이 고멜은 호세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실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때립니다. 때릴 적에는 밉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그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때리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못되어서 그 자식이 타락하거나 병들면 부모에게 유익될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궁극적 소원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되기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을 목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도록 소원을 두신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원이 있습니다.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소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사에게 위대한 소원을 두고 계십니다. 목사가 좋은 목사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목사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목사가 되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목사가 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내가 망하면 하나님도 손해입니다. 내가 망신을 당하면 하나님도 같이 망신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소원을 두고 계십니다. 그 소원은 여러분이 잘되기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앞날이 번창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부요하기를 소원합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은 변함없는 반석과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서 갈대와 같습니다. 변덕장이였습니다. 그래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나를 샀기 때문입니다』나와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대신 값을 지불하고 샀습니다. 내 대신 죄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속가(贖價)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죄에서 용서받고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속가의 사랑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은 그 아들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받은 은혜는 고멜을 위한 호세아의 고통이 있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을 통하여 얻은 은혜입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호와께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셨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14장 6절에『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여호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 되셨습니다. 유일한 진리의 길이 되셨습니다. 생명의 길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에, 죄인 되었을 때에, 원수 되었을 때에 속가의 재물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호와께 돌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는 말은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죄를 버리라는 말입니다. 악한 죄악된 습관을 버리고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살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데까지 자라 가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로 돌아갑시다.  여호와께로 돌아가면 치료해 주십니다. 싸매어 주십니다. 속히 회복시켜 주십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 천부여 의지 없어서 - (찬송가 338장)
1.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2. 전부터 계신 주께서 영 죽을 영혼을 보혈로 구해 주시니 그 사랑 한없네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3. 나 예수 의지하므로 큰 권능 받아서 주 앞에 구한 모든 것 늘 얻겠습니다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 아  멘 -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장 9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 11: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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