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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백성을 보내라 (출 4: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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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을 보내라 (출애굽기 4:19-23)


전교인 성경일독 제3주를 지나며 출애굽기 전반부를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맺은 언약이라는 렌즈로 말씀을 들여다 보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일관적인 뜻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맺은 언약, 홍수 심판 후 노아와 맺은 언약, 그리고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져 내려옵니다.    

지난 주간 우리는 창세기의 중심 주제를 이루었던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이야기가 출애굽기에서 어떻게 발전되고 있는가 읽고 있는 중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맺은 언약이 어떤 방식으로 발전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 출애굽기입니다.

야곱이 아들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으로 내려갈 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내려가겠고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라’ 하셨습니다(창46:3,4). 세월이 흘러 야곱이 죽고 요셉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애굽 땅에는 정치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조가 들어선 후 바로는 그동안 이스라엘의 후손 히브리인들이 누렸던 특혜를 다 빼앗고 노예로 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인구가 빠른 속도로 불어나자 바로는 히브리인들을 경계하였습니다.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적들과 연합하여 애굽과 싸우고 그 땅을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히브리인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였습니다.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면 아이를 덜 낳으리라는 생각으로 산아억제 정책을 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인들은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여 바로의 근심이 되었습니다.   생각 끝에 바로는 히브리인 집에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버려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려 히브리인들이 더 이상 번성하지 못하도록 억압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모세는 바로 이런 시기에 레위 지파의 가문에서 태어난 사내 아이였습니다.   바로의 학대는 더욱 심해졌고 하나님은 이방 땅에서 고난 당하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나일강 물에서 모세를 건져낸 하나님은 애굽에서 40년 그리고 광야 40년의 훈련기간을 거친 후 모세에게 히브리인들을 구하는 사명을 주십니다.    미디안 광야 호렙산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던 모세는 타오르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천사를 만났습니다.  천사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바로의 손으로부터 건져내라는 사명을 주었고 모세는 애굽을 도망온지 40년 만에 다시 애굽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두려워 거절하고 사양할 때 손에 든 지팡이가 뱀이 되는 표적과 품 안에 넣은 손이 문둥병이 다시 회복되는 표적을 보여주셨고 또 강물이 피로 변하는 이적을 보이시며 확신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입이 둔하여 말을 잘 못한다고 할 때는 말 잘하는 형님 아론을 대변자로 세우시겠다 하셨고, 네 손에 든 지팡이로 이적을 행하도록 하겠다 약속하실 때 모세는 그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지팡이를 손에 잡고 애굽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 작별 이사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 ‘내 백성을 보내라’이것이 오늘 드리는 말씀의 중심 메시지입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줄 때까지 하나님은 모세의 입을 통해 바로에게 명령하십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하나님은 바로의 학대 아래 신음하는 비천한 히브리 백성들을 가리켜 내 백성이라 부르십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칭호가 야곱이라는 한 개인에서 민족으로 확대됩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내 아들 내 장자라 부르신다(출4:22).  영광스럽고 놀라운 호칭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지금 바로의 잔악한 통치 아래 비참한 모습으로 고통을 당하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들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약속한 기간이 찼을 때 한 사람 모세를 심부름꾼으로 보내어 자기 백성을 구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려보내십니다.    요셉을 준비시켜 애굽의 대기근을 대비하고 가족들을 애굽으로 초청하게 하신 하나님은 한 사람 모세를 준비시켜 자기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건져내게 하십니다.   

출애굽기 6:2-8을 보면, ‘나는 여호와라’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땅을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어 살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억하고 계셨고 이제 이루십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을 때까지 모세의 입을 빌려 명령하시고 또 명령하시는 말씀입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는 말씀은 세상의 어떤 임금이나 강력한 나라가 거역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가 이 명령을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아시고 모세에게 진작부터 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바로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모세는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너의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바로의 손으로부터 건지기 위하여 하나님은 바로의 큰 아들을 희생제물로 받으실 것입니다.     

내 백성을 보내지 않으면 너의 큰아들이 죽을 것이라는 명령을 바로 앞에 당당하게 전하는 모세의 용기가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전해야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명령을 몇 번이나 사양하고 거절하였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홀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바로 앞에서 모세를 신이 되게 하셨으니 모세가 바로를 만나 히브리인들을 석방하라는 요구를 할 때 바로가 모세를 감히 해치지 못할 위엄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2. 애굽은 세상을, 바로는 세상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약속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과 억압의 땅 애굽에서 나온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라는 죄악의 도성으로부터 건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바로는 신과 같은 권세를 가지고 힘 없는 히브리 백성들을 억압하며 착취하고 그들의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바로보다 더 능하시고 강하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불쌍히 여겨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잊지 아니하시고 때가 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4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야곱의 자녀들은 번성하였고 한 나라를 세울 수 있는 민족으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가 가나안이 아닌 대제국 애굽에서 성장하도록 기다리셨다.  좁은 땅, 전쟁이 끝없이 일어나는 가나안이 아니라 드넓은 땅 대제국 애굽에서 400년 동안 당신의 백성을 양육하셨습니다.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가나안으로 올려가실 계획을 시행하셨습니다.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이로운 곰팡이를 배양하여 질병 치료와 식품 발효에 사용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할 한 민족을 애굽 땅에 심고 기르고 훈련시키셨습니다.   처음에는 미미했던 야곱의 후손을 땅의 티끌처럼 번창하게 하셨고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의 백성으로 기르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예고하셨고 바로에게 선언하신 것처럼 바로는 쉽게 허락하지 않고 더욱 마음이 강팍해졌습니다.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출5:2)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마음을 더욱 완악해진 바로 앞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손에 든 지팡이를 잡고 신의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아홉 가지 재앙이 하나씩 차례대로 애굽에 내릴 때 바로를 비롯하여 애굽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놓아주지 않은 댓가를 고통스럽게 당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바로는 자연 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고통을 당하며 모세를 붙들고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애걸해야 하는 존재임을 알리셨습니다.    나일강의 신, 풍요의 신, 땅의 신, 대기의 신, 태양신 등 애굽의 신들을 하나씩 제압하심으로 그들이 신으로 섬기는 나일강이나 개구리나 땅과 대기와 태양은 창조주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피조물에 불과하며 참 신은 오직 여호와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온 애굽과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가 알게 하셨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고센 땅에 살고 있는 히브리인들을 구별하여 그들이 사는 땅에는 재앙이 임하지 않게 보호하셨습니다.    빛과 어두움을 구별하고 선과 악을 구별하듯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의 백성을 구별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하신 하나님은 누가 나의 백성인가 바로와 애굽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자기 백성과  애굽 사람을 구별하여 그 백성을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엊그제 21일, 우리나라 해군 특수부대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된 선원들을 구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해군 특수부대를 파견하여 21명의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대신 사람 목숨을 담보로 돈을 요구하며 무리하게 인질을 붙들고 있던 해적들이 사살되거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번 소말리아 해적을 진압하고 선원들을 구출한 일에 대하여 연일 신문 방송마다 신바람이 난 듯 성공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사건으로 체면을 구긴 한국정부가 이번에는 신속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그간 침체된 국가 위상을 만회하였다는 차원에서 국민들은 당분간 이 분위기로 위로를 삼을 듯 합니다.  

신문기사를 읽으며  ‘내 백성을 보내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을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너희가 억류하고 있는 우리 국민을 보내라’는 한국 정부의 경고 메시지는 이 사람들 뒤에 대한민국이 있으며 우리 국민을 보내지 않으면 범죄의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특수부대가 해적을 진압하는 순간 ‘엎드려라’는 한국말 경고방송으로 해적들과 선원들을 구별하였다고 합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한국어 방송이 암호처럼 해석이 불가능하여 알아듣지 못하고 허둥댈 때 한국 선원들은 구조가 시작된 줄 알고 위험을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애굽에 재앙이 내릴 때 고센 지역의 히브리인들과 애굽인들을 구별하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만천하에 보여주셨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할 때마다 갈수록 더 어렵고 고통스런 댓가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숨을 쉴만 하고 견딜만 하면 금방 마음을 바꾸고 거짓말 하는 바로에게 하나님은 더 강력한 징계를 내리심으로 고통을 더하셨습니다.   재앙으로 고통을 당할 때는 모세를 불러 너희를 보내겠다고 했지만 재앙이 그치면 금방 마음을 바꿔 거짓말을 반복하였습니다.   ‘보내기는 하겠지만 너무 멀리 가지 말라’(8:28), ‘남자들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10:11), ‘양과 소는 여기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데리고 가라’(10:24) 하며 어떻게 해서든 히브리인들을 놓아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거짓말장이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사단의 본질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호락호락 넘겨주지 않고 거절하며 거짓으로 협상하고 끝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집니다.  언제까지?   홍해에 빠져 죽을 때까지 따라오며 위협하고 공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에 붙들려 세상을 섬기고 세상의 종노릇하며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때는 그렇게 지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세상의 손아귀로부터 놓아주셨으니 더 이상 세상을 부러워하거나 세상에 붙들려 종노릇하지 않아야 합니다.   

떠나온 세상이 그립고 아쉽고 아깝습니까?   광야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훈련이 힘들다고 애굽의 종살이를 그리워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바로를 위하여 성을 쌓고 있을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거룩한 집을 지을 제사장 나라의 백성입니다.   애굽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위한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들어가야 할 땅은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이었습니다.   애굽이 잠시 머물던 세상이라면 가나안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거룩한 자리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처음 예정하신대로 마지막 장자 죽음을 통해 자기 백성을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온 애굽의 장자들이 죽는 밤에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죽음에서 벗어났습니다.  집집마다 그 밤에 희생된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와 안방에 발라졌고 어린양은 이스라엘 장자들의 죽음을 대신하였습니다.   장자들이 죽는 그 밤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면하는 기준이 무엇이었습니까?     어린 양의 피였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그 피를 보고 그 집을 넘어갔습니다.   그 피가 없는 집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시작하여 바로의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인의 장자들과 가축의 첫 새끼들이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로는 비로소 하나님이 두려워 그 밤에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너희 말대로 떠나 너희 하나님을 섬리라 하고 놓아주었습니다.   

    
4. 노아의 홍수가 일어났을 때 방주 안에 들어있는 사람은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들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 안에 있을 때 죽음으로부터 건짐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린 양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그 믿음 안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사랑을 입고 애굽을 나온 백성들은 홍해를 앞에 두고 두려워 부르짖으며 이 광야에서 죽느니 차라리 애굽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낫다 하며 원망하였습니다.    이런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를 뒤따르던 애굽의 마병군대를 영원히 다시 보지 못하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싸울 것이니 너희는 가만히 있어 오늘 너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2-14)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널 때 그들의 옛 삶을 바다에 수장시키고 나온 백성입니다.    홍해는 이스라엘이 애굽에 종살이 하던 과거를 장사지낸 무덤이고, 이스라엘을 끝까지 추격하던 바로와 마병군대의 매장지였습니다.    동일한 바다에서 전혀 다른 경험이 있습니다.   한쪽은 구원이며 다른 한쪽은 심판입니다.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이스라엘은 거기서 세례를 받았고 광야 반석에서 솟아나는 신령한 음료와 하늘로부터 내리는 신령한 떡 만나를 먹으며 성찬식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40년 광야의 삶을 가리켜 광야교회라 하였습니다(행7:38).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죄가 다스리는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나그네들입니다.  나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례를 받은 성도들은 주님께 가는 그날까지 주님이 제정하신 성찬식에 참여하여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나의 과거는 그 십자가에 못 박았고 이제는 예수 안에서 새 사람으로 살아감을 감사찬송합니다.   꼭 기억하며 살아갑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통과할 때 앞장 선 구름과 불기둥을 따라 가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불평하고 원망하듯 우리도 광야생활이 조금 어려워지면 금방 불평을 털어놓고 과거를 그리워하고 심지어 옛날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를 따라 나서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순종과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한 집에 모여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를 문에 바르라 하면 그대로 해야 했습니다.   홍해를 건너라 하면 건너고 광야로 들어가라 하면 가는 사람들입니다.  광야 길이 험하고 위험하지만 불과 구름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백성입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은 나에게 예배할 사람들이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이라는 애굽의 발 아래 눌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심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셨습니다.    내가 보호하고 내가 복을 주며 내가 낳고 기른 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열심을 보십시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이사야 43:1-7,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라’하신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갑시다.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하였으며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는지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나에게 속하였으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나라 중에서 나의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나에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4-6)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입고 구원받은 주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 언약을 잘 듣고 지키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며 세상을 향한 제사장의 사명을 가진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한 주간 내내 능력있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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