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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것이 되었습니다 (고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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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것이 되었습니다 (고후 5:17) 
 
 
❚새 것은 좋습니다

늘 낡은 것을 쓰다가 새 것을 사서 쓰게 되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있고 옛 것에 대한 추억이나 향수도 좋지만 누가 뭐래도 새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제게도 그런 좋은 기억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형 셋에게서 대를 이어 물려받은 책가방이 낡아서 떨어지고 구멍이 날 무렵 부모님이 사주신 새 가방은 정말 오랫동안 저를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양복이 없어 아버님의 양복을 물려받아 입었는데 그 낡은 양복은 바지가 꽤 짧았습니다. 저도 숏 다리지만 저의 아버님은 저보다 더 다리가 짧으시거든요. 그래서 늘 구두보다 한참 위로 올라온 바지를 입고 다니다가 교육전도사를 나가게 되었을 때 부모님이 기념으로 사주신 새 양복은 비록 싸구려였지만 참 좋았습니다. 그 양복을 입고 교회에 첫 출근을 하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요.

이렇게 가방 하나, 양복 한 벌을 새로 사 입어도 기분이 좋고 행복한데 오늘 우리는 새로 지은 성전에 이사 와서 첫 예배를 드리게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모든 것이 새 것입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오늘은 새 성전에서의 첫 예배를 기념해 오늘 본문에 나온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인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물건도 좋고 새 양복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a new creation)이 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갑니다. 

옛 사람은 죽고, 옛 습관도 죽고, 옛날 예수 믿기 전의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새 것이 됩니다. 완전히 새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셨는데 이것은 다 옛 창조요 옛 사람이고 이제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새사람이 되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우리는 어떻게 변화될까요? 세 가지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새로운 생명, 새로운 목적

첫째,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새 생명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영생(永生)을 뜻합니다. 전에 우리가 얻은 생명은 육신의 생명일 뿐입니다. 그래서 의복이 낡으면 헤지고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 몸도 늙고 낡으면 언젠가 죽고 마는 것이지요. 유한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면 이 육신의 생명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새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을 제2의 생명이라고 하고, 우리가 세례를 받는 날을 제2의 생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날은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는 날일뿐 아니라 우리가 죄의 자녀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다 예수 믿어 구원 받게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다 예수님 안에 거해서 영생을 얻고 새 생명 얻게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서 새로운 생명을 누리는 성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우리는 새로운 인생의 목적을 찾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어느 날 갑자기 “아빠, 아빠는 왜 살아? 엄마, 엄마는 인생의 목적이 뭐야?” 혹시 “공부나 하지 뭔 쓸데없는 소리냐?”며 핀잔주지는 않나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이 평생 예수 안 믿다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교회에 오셨어요. 하도 궁금해서 물으니까 이분이 대답하기를 “어느 날 갑자기 제 중학생 아들 녀석이 저보고 아빠는 인생의 목적이 뭐냐고 묻더군요. 

뭐 책을 보다가 그런 내용을 읽은 모양이지요.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뒤통수가 띵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난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에요. 그저 돈 벌어 가족 먹여 살리고 애들 공부 시키고 회사에서 안 짤리고 잘 버티는 것, 고작 그게 제 인생의 목표하는 생각을 하니 너무 허탈해서 이렇게 교회 스스로 찾아온 겁니다” 하시는 가에요. 저도 느낀 바가 참 많았습니다. 

전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고작 “잘 살자, 출세하자, 성공하자, 내 가족 잘 살고 자식 공부 잘 시키자”가 전부였다면 예수님을 만난 후 내 삶의 목적은 송두리째 바뀌게 됩니다. 왜냐? 내 삶의 주인이 그리스도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나 자신이 내 삶의 주인이었기에 오직 나와 내 가족, 내 자녀가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기에 내 인생의 목적은 오직 주님을 위한 것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인 사도 바울도 로마서 14:8에서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우리들 개인에게만 아니라 우리 회에도 참 중요한 사실입니다. 전에 우리가 오직 우리 교회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서만 존재했다면, 그리고 우리 성도들만 잘되기 위해 존재했다면 이제는 우리 목적이 새로워지고 더 원대해져야 합니다. 이 지역을 품고 이 도시, 포항을 품고 대한민국을 품어야 합니다. 이 지역과 도시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품는 위대한 교회가 되는 목적을 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새 성전에 입주해 감격적인 첫 예배를 드리면서 새 건물만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라 이제 새 시대에 걸맞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더 원대한 꿈과 비전을 품고 더 큰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과 사명을 능히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습관

마지막 세 번째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우리가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스코틀랜드의 정치개혁가이자 의사인 새무얼 스마일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습관이 달라지고, 습관을 바꾸면 성격이 달라지고, 성격을 바꾸면 운명이 달라진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진정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서 새 생명을 얻고 새로운 인생의 목적을 찾게 되면 우리 생각이 바뀌고 습관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기 전의 우리 모습은 어땠습니까? 늘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나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온통 안 되는 이유만 찾으며 살았던 것입니다. 마치 광야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늘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산 것처럼 말입니다. 부정적인 생각만 늘 하고 사니 인생이 부정적이 될 수밖에요. 안 되는 이유만 찾으니 정말 안 되는 거지요. 불평불만만 하며 사니 내 인생이 불만스러운 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나 자신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지만 남에 대해서는 더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저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이 사람은 이래서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늘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며 살지요. 남을 칭찬하고 인정해 주기보다 늘 손가락질 하며 부족한 것만 지적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인간관계인들 온전할 리 있겠습니까? 상처는 나하고 먼 사람이나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별로 안 받습니다. 가까운 사람, 잘 아는 사람이 상처도 많이 주고받는 법입니다. 

왜요? 가깝다고 편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고 쉽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부나 부모자식 사이가 더 상처가 많고, 교회에서도 성도들끼리 상처가 많은 것입니다. 저도 집에만 들어서면 온갖 지적과 잔소리를 아내와 아이들에게 늘어놓곤 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아픈 기억이 되는 줄도 모르고요. 그래서 지난번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을 살펴볼 때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예수 믿고 교회 다닌 후에도 여전히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을 학대하고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우리 생각과 사고방식이 확 바뀌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교회 다니면서 정말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새 것답게, 새로운 피조물답게 우리 생각이 확 바뀌어야 합니다. 더불어 우리 습관도 바뀌어야 합니다. 모든 습관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습관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 중심적인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기왕이면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안 되는 이유를 찾지 말고 되는 이유, 가능한 이유를 찾으십시오. 나쁜 점, 부족한 점을 먼저 보지 말고 좋은 점과 장점을 먼저 보십시오. 불평불만보다는 감사의 말을 하십시오. 비판과 지적보다 격려와 용기를 주십시오. 그러면 나도 바뀝니다. 그리고 상대방도 바뀝니다. 앞서 소개한 새무얼 스마일스라는 사람의 말에 “생각을 바꾸면 습관이 달라지고, 습관을 바꾸면 성격이 달라지고, 성격을 바꾸면 운명이 달라진다”고 했는데 우리가 진정 예수님 만나 운명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지기 원한다면 당장 생각도 바꾸고 습관도 바꾸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어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에 변화가 없다면 진정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교회가 안 되는 이유가 뭡니까? 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건물이 좁고 낡았다.” 이제 새 성전 지어 널찍한 건물로 왔습니다. 이제 뭐가 문제입니까? 다른 문제가 또 있습니까? 그런데 어제 그제 이사하고 청소하다 보니까 아주 재미난 현상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현상이 우리의 습관과 관련이 있어 말씀드립니다.

첫째, 새로 지어진 건물과 시설을 보고 두 가지 반응이 있더군요. 우선 “야, 너무 좋다. 너무 신난다.” 하는 반응입니다. 모든 성도가 이런 생각을 했겠지만 정말 누구보다 기뻐하며 기대감을 표현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면 이런 반응도 있더군요. “에이, 이게 뭐야, 이래서 마음에 안 들고 저래서 마음에 안 들어.” 물론 이 건물, 완전하지 않습니다. 아직 공사도 채 다 끝나지 않았고 실제로 부족한 점,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습관인 것입니다. 새 성전을 보고 감사하고 기쁜 마음보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먼저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담임목사 입장에서 볼 때 마음에 안 들고 아쉬운 것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아쉬움과 문제점도 새 성전의 모습을 보고 여기서 예배한다 생각하니 그 감격에 다 묻혀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일단은 기쁘고 감사할 뿐입니다.

여러분, 이제 새 성전에 들어와 첫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건물만 새 것이 아니라 생각과 습관도 새로운 피조물답게 새로워져야 합니다. 부족한 부분부터 보지 말고 감사한 일부터 찾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하며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찾는 습관이 있었다면 이제 “우리 교회는 이래서 잘 되고 저래서 잘 된다”며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내야 합니다.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모든 여건이 갖추어지고 모든 환경이 무르익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뜻을 우리는 이루어내야 합니다.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잘 될 겁니다.

둘째, 이번에 새 성전 이사를 하고 청소를 하면서 새가족들이 참 많이들 오셨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 오래 다닌 분들이 더 많이 오셨지만 우리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된 분들이 참 많이 오셨어요.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요. 그런데 그분들 얼굴이 좀 낯설잖아요? 아직 얼굴 잘 모르는 분이 많잖아요? 그런데 그런 좀 낯선 분들을 보는 여러분의 표정을 제가 가만히 관찰해 보았더니 대부분이 이런 표정입니다(무표정하게 고개 갸우뚱). 말은 안 하지만 그 표정 속에는 이런 말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 누구지? 처음 보네?” 바로 이 표정이 문제입니다. 절대 그런 표정 지으면 안 됩니다. 그런 표정을 보면 그 새가족이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섭섭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모르니까 당연하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섭섭합니다. 환영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내가 괜히 왔나 싶습니다. 심지어 어제 청소할 때 제 큰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일을 시켰는데 우리 아이 얼굴 모르는 분도 많지요. 그런데 이 애를 보면서도 딱 그 표정이에요. 섭섭하다니까요? 당황스럽다니까요?

제가 다른 교회 가끔 가보면 ‘되는 교회, 잘 나가는 교회’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저를 처음 보는데도 성도들이 얼마나 상냥하게 인사하는지 몰라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래야 기분도 좋고 환영받는 느낌이 들지요. 새가족부원들만 살살 웃으며 맞이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표정관리 해야 합니다. 표정만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생각과 습관 문제입니다. 우리 교회 참 좋아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표정에 묻어나는 우리 생각과 습관은 새가족들을 낯설게 대합니다. 

부자연스러워요. 우리는 못 느끼는지 모르지만 밖에서 보는 우리교회는 여전히 배타적이고 적응하기 힘든 교회입니다. 이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예 올해 초쯤 예절교육 강사를 한 번 불러 전교인 교육을 좀 시킬까 싶어요. 표정도 배우고, 웃음도 배우고, 남을 대하는 매너, 환영하는 방법도 배우고 겉으로 나타나는 표현뿐 아니라 아예 우리 교회가 새로운 교회답게 온 성도의 생각과 습관이 타인 중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가능성이 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새 성전에 이사 왔습니다. 이 새 성전에 걸맞은 새 교회가 됩시다. 새로운 성도가 됩시다. 그러면 우리 교회 됩니다. 잘 될 것입니다. 정말 잘 나갈 것입니다. 미래가 밝을 것입니다. 포항과 대한민국과 세계를 품는 큰 교회, 위대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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