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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의 자유함 (창 3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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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자유함 (창 39:1-10)


지난 백 년 동안의 역사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유를 향해 달리는 고속열차와 같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집니다. 하도 빨리 달리다보니까 이제는 멈출 수 있을지 염려가 되고 이것이 대형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은 엄청난 자유를 확보했습니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자유를 구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첫째는 정치적인 발전입니다.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 여성의 권익, 어린이의 권익 이런 것의 결과입니다. 두말할 나위가 없지요. 

두 번째는 경제의 발전입니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발전해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자유할 수 없는데 경제적으로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서 이제는 여가라는 것이 가능해지고 여행을 하고 직업을 선택하고 신분의 상승을 누릴 수가 있고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의 옵션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세 번째는 사상적인 발전입니다. 인간의 생각, 가치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해서 내외를 철저히 했는데 여자는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되고 임금님이 지나가시면 얼굴을 들 수도 없었지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규제하는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백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면서 그 규제가 하나씩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를 규제하는 가치관이 남아있기는 한가 생각이 될 정도로 인류는 삶의 선택에 대해서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유를 향하여 달리는 고속열차에 대해서 위험을 제기하고 빨간 신호등을 켜는 유일한 것이 종교의 역할입니다. 이것은 기독교뿐만이 아니고 모든 종교가 거의 비슷한데 이슬람교의 경우에는 그 반발이 더 극단적이어서 이슬람 근본주의는 아예 서구문명을, 미국의 문명을 사탄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불교와 힌두교도 물질문명에 대해서 강하게 반발을 제기하고 있고 기독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람을 예수님께 인도한다는 말은 그의 삶속에 예수님의 영역을 넓힌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자유와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하고자 하는 것과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이 부딪히게 됩니다. 여러분도 그 사실을 다 아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모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믿는 것 뿐만이 아니고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의 자리에서 내가 비켜나고 예수님이 그 자리에 앉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자유의 정체는 무엇이냐. 자유. 자유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느냐.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말장난이 아니냐. 언어유희가 아니냐. 자유라는 것이 어떻게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것과 공존할 수 있느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들을 신앙으로 끌기 위해서 하나의 상술을 부리는 게 아니냐. 여러분이 만일 이 질문을 하시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아직 복음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이 질문이 나와야 됩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라면서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도대체 무엇이냐. 여러분에게 이것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목사가 있는 게 다행이에요. 이것은 말장난이 아니고 언어유희가 아니고 상술이 아닙니다. 자유함이란 복음의 핵심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또 믿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굳이 자유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수도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나는 굳이 자유함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수도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자유함은 영혼의 자유함입니다. 영혼의 자유함. 

압솔롬 탈출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94년에 미국에서 제작한 영화인데 중죄수들을 무인도에 떨어뜨려서 살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교도소대신 무인도에 중죄수들을 떨어뜨려서 그 섬이 교도소입니다. 죽기 전에는 그 섬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섬에 떨어진 죄수들이 결국은 두 개의 커뮤니티를 형성합니다. 하나는 폭력이 다스리는 무서운 사회입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누구를 해쳐야 됩니다. 두려움과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매일 누군가가 죽습니다. 정글이에요. 

또 하나의 커뮤니티는 힘 대신 법이 다스리고 폭력대신 합의에 의해서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엄격한 규칙이 있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회입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죄인들은 무인도에 격리된 죄수들입니다. 무인도에서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해야 됩니다. 생존해야 된다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짐승처럼 살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합니다. 법은 없습니다. 힘이 법입니다. 내가 살려면 누군가를 해쳐야 됩니다. 그 유혹이 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는 영혼의 자유함입니다. 남들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든 간에 나의 이 영혼의 자유를 빼앗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나는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고 나에게는 양심이 있고 나는 양심대로 살 자유가 있는데 세상이 아무리 악할지라도, 세상에 아무리 유혹이 있을지라도 이 자유만큼은 빼앗기지 않겠다! 이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굳이 무인도에 갇혀있지 않더라도 세상에도 똑같은 시험이 존재합니다. 제가 대학교 일학년 때 기숙사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여자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 친구들이 자기의 경험담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저에게 물어보더라구요. 너는 어떤 경험이 있느냐. 그래서 제가 나는 결혼할 때까지는 기다리려고 한다, 이렇게 대답하는데 대답을 하면서도 얼마나 창피한지…. 그건 저의 소신이에요. 사실은 창피하면 안 되고 자랑스러워야 되는 것인데 세상은 자기 소신대로 사는 사람을 창피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대학교 일학년밖에 안된 조그만 녀석들이 교만하게, 그러나 세상은 자기 소신대로 사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그 소신을 포기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소신을 포기하게 되면 그것은 자기의 영혼에 상처를 입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것은 내 생각인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그것은 내 생각이나 마찬가지에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을 구별하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이고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고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는 것을 내가 옳게 여기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나도 좋아하고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도 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에요. 왜 우리는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을 구별하고 내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을 차별해서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저래라 한다, 저렇게 해라 한다, 쫓아가는 것처럼 굳이 따라가야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정말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법을 우리의 마음 판에 새기셔서 우리가 그것을 원하게 만들고 믿는 것 뿐만이 아니고 그것이 내 삶의 목적이 되고 내가 그것을 기뻐하고 좋아하고 동의하고 찬성하고 심지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손해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게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나의 믿음을 말하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이 될 수도 있고 또 그것이 불편하게 생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시험할 때 그렇게 만듭니다. 너는 광신도다, 너는 손해 보며 살고 있다, 세상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누가 옳은지는 두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요셉이 누구입니까. 요셉은 노예입니다. 종이라는 말은 그 어감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습니다. 인신매매에 의해서 노예로 잡혀온 사람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가족들로부터 멀리 떠나있습니다. 간섭하는 사람 없고 잔소리 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를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눈치 볼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에게 유혹이 다가옵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11절 말씀을 보면 ‘그러할 때에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은 하나도 거기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집에 아무도 없어요. 눈치 볼 일 없어요. 하여가 노래가 들리는 듯 합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why not? 어떠냐? why not? 세상이 하는 말이 어떠냐? 어떠하리? 

이런 상황에서 요셉이 어찌할 바를 알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것은 그의 마음속에 계신 하나님의 존재에요. 그래서 그가 대답하는 것입니다. 9절에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이것이 믿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실 외적으로 보면 그가 이 유혹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여자가 먼저 접근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없고 그는 노예이고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그의 팔자가 달라질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그러나 비록 그를 지켜보는 사람은 없지만 요셉의 마음속에 계신 하나님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영혼의 자유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간섭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고 오히려 그게 부자유함이 아니냐, 하나님만 없다면 자기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냐, 부자유함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닙니다. 

내가 비록 종이고 사람들이 나에게서 이런 저런 것을 다 뺏어 가더라도 이 영혼의 자유함만큼은 빼앗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 영혼의 자유함. 내가 양심대로 행할 수 있는 자유, 내 믿음대로 행할 수 있는 자유, 내 양심에 그른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겁니다. 비록 내가 종이지만 이 자유를 부정하게 되면 그건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위대한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의 자유함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보다는 자기가 믿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이 욕심대로 사는 것은 능력이 필요 없습니다. 용기가 필요 없습니다. 그냥 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소신대로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결단, 때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되고 때로는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배짱 있는 사람입니다. 멋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머리 좋은 사람들 많고 성공한 사람들 많아요. 돈 많은 사람들 많아요. 인기 있는 사람들 많아요.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보고 싶은 사람은 멋진 사람입니다. 자기의 소신대로 사는 사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나는 비록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아 저사람 참 용감하다 이런 사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비록 노예이지만 그의 영혼은 자유합니다. 반대로 세상에는 자유함을 누리면서도 영혼이 매여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요한복음 8장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어요. 또 베드로후서에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고 했어요. 무서운 말씀이지요. 우리는 이기고 있습니까, 지고 있습니까. ‘누구든지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이십세기 역사는 자유를 향해 달려가는 고속열차와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속도가 점점 빨라집니다.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 열차를 누가 몰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이냐. 이건 고장 난 것입니다. 이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멈출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자유한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브레이크를 걸 줄 아는 사람, 이제 족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나는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이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더 가질 수 있지만 더 갖지 않는 사람, 그리고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것을 남에게 줄 수 있는 사람, 인내할 수 있는 사람, 기다릴 수 있는 사람, 참을 수 있는 사람,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요, 이런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자유한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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