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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치기, 행진하기 (민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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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치기, 행진하기 (민 2:1-9)


새해를 앞두고 지난 10월, 사실은 ‘은혜’라는 단어를 표어로 뽑았습니다. 그리고선 부교역자들에게 은혜가 들어가는 말씀을 표어로 만들어보라고 과제를 주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판에 ‘정직’이란 단어를 붙잡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은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 않은 자가 있을까요?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9). 어떤 자에게 은혜가 나타날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습니다. 홍해를 건넌 저들은 시내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산위로 부르시고 저들이 지켜야 할 율법을 주셨습니다. 또 하나,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단지 명령한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지어야 할 것인지를 지시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성막을 완성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습니다(출 40:34-38). 

그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과 성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민 2:2). 

이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각 자기의 진을 쳤습니다. 핵심은 성막 중심으로 진을 쳤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있어 행진하되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각 사람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들의 기를 따라 앞으로 행진할지니라”(민 2:17). 이 말씀은 저들이 광야에서 행군할 때에 어떤 대형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지시하신 내용입니다. 

이 말씀에 저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여 각기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르며 자기들의 기를 따라 진 치기도 하며 행진하기도 하였더라”(민 2:34). 

성막을 중심으로 진칠 때에 동쪽에 3지파, 서쪽에 3지파, 남쪽에 3지파, 그리고 북쪽에 3지파였습니다. 그러다가 행진할 때에는 성막 앞에 3지파씩 2줄, 그리고 성막, 그 뒤에 역시 3지파씩 2줄이 성막을 따라가도록 하셨습니다.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는 저들에게 ‘성막’이 저들 삶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막이 없이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매일 성막을 바라보며, 성막 중심의 생활을 했을 때 그들의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들이 그렇게도 소원하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안전하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여기에 등장하는 광야는 도대체 무엇을 상징합니까? 인생입니다. 우리입니다. 여기의 광야는 바로 우리 삶의 현장입니다. 

우리는 지금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처음 길입니다. 마지막 길입니다.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막입니다. 이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성막을 바라보며 행진할 때 그 걸음이 안전하고, 복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성막중심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합니까? 

첫째,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출 40:34-35). 그러면 하나님 중심의 생활이란 도대체 어떤 생활일까요? 그 무엇보다 먼저 예배중심을 의미합니다. 성막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유일한 장소로 성별된 곳입니다. 성막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제사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내용은 31절 뿐이지만, 성막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는 무려 총 243절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며,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둘째, 교회를 의미합니다. 성막만큼 교회의 완벽한 모형이 있을까요? 성막을 교회라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은 이 성막을 중심으로 모인 회중을 광야교회라 불렀습니다(행 7:38). 성막에 있는 모든 재료, 기구들은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교회에 자주자주 들러서 기도하는 시간,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분명 그 걸음을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교회중심이란 또 어떤 것일까요?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6).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서로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의미합니다. 성막은 크게 셋으로 구분됩니다. 뜰과 성소와 지성소입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곳은 지성소입니다. 그리고 그 지성소 안에 놓여있는 언약궤입니다. 이 언약궤에는 세 가지 중요한 것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입니다(히 9:4).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들입니다. 십계명을 확대하면 모세오경, 즉 율법이요,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중심의 삶이 중요합니다. 계속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사람들을 따라나서지 말아야 합니다. 뒷북치다가 혼쭐납니다. 

금년 한해, 누구를 좇아갈 것입니까? 어디를 향해 갈 것입니까? 무엇을 할 것입니까? 정말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성막중심의 생활을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중심, 교회중심, 말씀중심의 태도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이런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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