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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이 무엇이기에 (시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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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무엇이기에 (시 8:1-9)


I.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여러분, 힘드시죠? 속상한 일이 참 많으시죠? 하나님 앞에 쏟아 놓고 싶은 기도의 제목들이 많으시죠? 여러분, 저도 그래요. 속상한 일도 많구요. 서 있기 조차 어려울만큼 힘든 일도 많습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적 거장 다윗도 그랬던가 봅니다. 시편의 문이 열려지자마자 연속해서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간구시를 읊어댑니다. 그러다가 문득 간구 기도를 멈추고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8편은 시편에 처음 등장하는 찬양시입니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 이렇게 표제가 되어 있습니다. 어떤 성경(BHS)에는 이 말이 표제가 아니라 1절로 되어 있습니다. 예배인도자, 찬양지휘자의 인도를 따라 불리워진 예배음악입니다. 

깃딧이란 고대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던 악기의 이름인 것 같습니다. “깃딧”이란 말이 헬라어로 “키타라” 영어로는 “키타”가 되었다고 합니다. 

소년 다윗이 나름 힘든 일이 많아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다 말고 별이 빛나는 어느날 밤 하늘을 우르러 봅니다. 거기서 문득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래서 키타를 꺼내 퉁기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편은 첫 절과 끝 절이 꼭 같은 말로 시작하고 같은 말로 맺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머리와 꼬리가 같다고 하여 히브리 문학에서는 inclusio 수미 쌍관법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주의 이름이 온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온 세상이 아름답다고 감탄합니다. 여러분 눈에도 세상이 아름답습니까? 아니면 세상이 추하고 더럽게 보입니까? 에이 “더러운 세상” 욕이라도 하고 싶습니까? 

하나님은 천지를 보시고 “보기에 참 좋다”고 친히 감탄하셨습니다. 때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아이의 눈에는 엄마 아빠도 아름답고, 교회도 아름답기만 합니다. 

어린아이의 눈은 맑고 깨끗합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어서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봅니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보고 형제자매에게서도 하나님을 보고 하늘에서도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봅니다. 

그러나 때묻는 어른들의 눈을 보십시요.

눈은 혈관으로 충혈되어 있습니다. 화내고 상처받고 미워하고 욕심부리고... 온갖 욕망으로 이글거립니다. 그 눈으로 세상을 봐도 하늘을 보고 땅을 봐도, 사람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만사가 아름답게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비뚫어져 보이고 잘못된 것만 보입니다.

특별히 다윗처럼 땅에 새겨진 주의 이름을 보고 하늘에서 주의 영광을 보는 눈은 복 받은 눈입니다. 
한 승려는 산은 산으로 보고 물은 물로 보라고 했습니다. 
돈으로 보고 투기 대상으로 보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자연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온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편 8:1)


II. 광대한 우주

본문 3절에서 양치기 소년 다윗이 벌판에 누워 하늘을 본 그 별들이 얼마나 될까요?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이” 얼마나 될까요?

은하계 별무리만 하더라도 프랑스의 마르셀 테루스의 발견에 의하면 2,000억 개의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2,000억 개로 구성된 은하계가 우주 안에는 1,000억 개가 넘다고 합니다. 이 속에는 태양보다 1,000배, 지구보다 10만 배 이상 더 큰 베델규스, 안타레스 같은 별들이 무수히 널려져 있습니다. 

우리의 태양을 오렌지 크기의 황색 왜성으로 생각한다면, 안타레스는 2.1M 짜리 오렌지가 되고, 베텔레우스는 2.8M 짜리 오렌지가 됩니다.  거대한 별일 경우  210.0M 가 넘는 오렌지가 됩니다. 우리 우주 안에 있는 별의 수는 쉽게 말해 전 세계에 있는 해변 모래사장의 모래알 수보다 10배쯤 많다고 합니다. 이 모래알 중의 하나가 지구와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태양이고 보면 우리 우주의 거대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아십니까? 빛은 진공 속에서 초당 약 30만Km를 달리고 있습니다. 빛이 일초 동안 달리는 거리를 일광초라고 하는데, 지구를 7바퀴 돌고 또 반 바퀴를 더 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에서는 그런 빛의 속도로 빛이 일 년동안에 갈 수 있는 거리를 일 광년이라고 합니다. 우주가 얼마나 넓으냐 하면 빛이 1년 동안에 가는 속도로 가는데, 무려 320억 광년이 넘는다고 합니다. 상상이 불가능합니다. 

우주는 너무 광대하니까 태양계만 보십시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것이 수성, 금성 그리고 지구입니다. 그 다음이 화성이고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입니다. 태양에서 가까울수록 천천히 돌고 먼 것일수록 빨리 돌아갑니다. 태양에서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수성은 43일만에 한바퀴 돕니다. 그러니까 21일이 낮이고 21일이 밤입니다. 21일동안 잠자고 21일동안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낮에는 뜨거워서 다 타 죽을 것이고 밤에는 추워서 다 얼어 죽고 말 것입니다. 지구보다 태양에서 갑절 먼 거리에 있는 목성은 열시간 반에 한바퀴 돕니다. 낮이 다섯 시간, 밤이 다섯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안녕히 주무십시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하다가 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지구는 어떻습니까? 한번 자전하는데 24시간 걸립니다. 태양을 한 바퀴 도는데 365일이 걸립니다. 그런데 그것도 똑바로 서서 도는 것이 아니고 23도 5부의 경사를 가지고 돌기 때문에 절기가 바뀝니다. 1년이 사계절로 나뉘어서 얼마나 변화가 있고 사는 맛이 있습니까?

지구가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증발된 수증기는 전부 남쪽과 북쪽으로 이동하여 온 대륙은 얼음덩어리로 가득차고 말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토록 어마 어마한 우주를 만드셨습니다.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III. 자연을 다스려라

본문 6절에 보면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셨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잘못 다스려 자연이 점점 더렵혀지고 오염되고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삶의 터전인 지구, 하나밖에 없는 이 지구가 점점 오염되고 더렵혀지고 있습니다. 자연이 오염되고 더렵혀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죽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말세가 왔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신학자들 입에서 보다도 오히려 과학자들 입에서 더 심각하게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1. 대기 오염입니다. 

해마다 약 200억톤의 탄산가스가 공기중에 발산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공기가 오염되고 있습니다. 대기층에 점점 온실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최근엔 역으로 지구촌에 혹한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이상적으로 더웠다 추웠다 하며 지구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런 현상이 계속되어서 지구의 평균 온도가 2도만 상승해도 북극과 남극에 있는 빙하가 녹아 내립니다. 그렇게 되면 육지의 거의 절반이 물에 잠기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어디에 가서 살겠습니까? 

아마 언제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때가 바로 지구 종말의 때가 아닌가 염려됩니다. 그만큼 대기오염 문제는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2. 수질오염입니다.

대도시나 공장지대의 강물이 이미 죽어가고 있습니다. 천만의 식수원이 되고 있는 한강도 그렇습니다. 생활폐수, 각종 공장의 폐수, 합성세제 등에 의해서 이미 오염될대로 오염되었습니다. 천호대교에서 김포까지 이르는 그 강변에서 잡히는 고기들은 먹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저 멀리 팔당에 있는 물을 끌어다가 수돗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팔당물도 오염되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합니다. 한강뿐만 아니라 어느 곳이든지 대도시에 있는 강들은 다 오염되고, 오염된 물을 사람들이 마시고 있습니다. 한적한 산계곡을 가도 오물이 쌓여 있고 농약병, 깡통과 비닐 조각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들이 인간에 의해서 병들어 갈 때 병든 자연은 결국 인간의 생명을 노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병들게 만들면 결국 자연이 인간을 병들게 만듭니다. 

3. 핵오염입니다. 

지금까지 주 에너지로 사용되던 석탄이나 석유도 이제 고갈될 날이 다가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석탄과 석유의 대체연료로써 사용되는 원자력 발전소가 이곳 저곳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지구촌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400만 KW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원자력 발전단지가 세계적으로 최소한 3,000곳, 그리고 원자로만 해도 24,000개 정도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필요한 핵원료가 해마다 1,500만 KW정도 된다고 합니다. 1,500백만KW면 어느 정도의 양이겠습니까?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의 핵 원료가 4.5kg입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의 핵 원료 4,5kg 보다 약 300만 배가 많은 양이 해마다 필요합니다. 이 원료를 생산하고 운반하고 또 나중에 폐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염, 공해라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여기에 군사적으로 만들어진 핵무기까지 포함하면 아마 21세기 최대의 적은 핵오염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대기가 오염되고 물이 오염되고 여기에 핵오염까지 겹치게 되면, 땅은 점점 황폐화되고 산성화되어 갑니다. 얼마 전에는 지구 표면의 약 25%가 산림이었지만 오늘날에 와서 20%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곧 지구의 산림지대는 지구의 14%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그때는 산소결핍현상이 생길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자연이 파괴되어질 때 파괴된 자연은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의 생명까지도 파괴할 것입니다. 

기독교가 자연파괴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생명을 보전하고 생명을 지키고 생명을 구원하는 종교입니다. 따라서 생명을 파괴하는 자연현상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그 자연을 잘 지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IV. 사람이 무엇이기에

언젠가 설악산 깊은 계곡에 들어가 자리를 펴 놓고 기도의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있습니다. 돗자리에 무릎을 꿇고 위로 쳐다 보는데 웅대한 산자락은 끝이 보이질 않았고 바위와 오색 단풍은 저절로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들었습니다. 

♪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 참 아름 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찬송이 절로 터져 나왔고 벅찬 가슴에 눈물이 절로 쏟아졌습니다. 

4절 “사람이 무엇이기에”여기 사람은 “에노쉬”란 히브리어로 깨지기 쉽고 병들고 부패하고 낡기 쉬운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자가 무엇이기에” 여기 인자는 “엔아담 즉 흙의 아들”로서 한줌 흙으로 만들어져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우주에 속한 한줌 흙과 같은 그 인간을 

5절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피조물 가운데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고 노래합니다. 개역번역에서는 감히 “하나님”이라고 번역하기가 두려워서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라고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그 광활하고 웅대하고 끝이 없는 우주의 먼지 한톨같은 나를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도대체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은 그 어마 어마한 별들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은하계에 널려있는 크고 아름다운 별들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은 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이 우주 속에서 지구 하나가 없어진다고 우주가 혼란에 빠지는 것입니까? 당신과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그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야 될 무슨 의무라도 있다는 얘기입니까?

이 우주 속에서 그토록 보잘 것 없는 지구 안에도 60억이 넘는 인간들이 지금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지구는 이제 인간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무가치한 인간, 그를 왜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내가 하나님에게 도대체 어떤 가치가 있기에, 하나님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당신이 하나님 나라에 어떤 가치가 있기에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래서 성경은 티끌같은 나를 사랑했다고 말합니다.

지구상에는 지금 10초안에 45명이 태어나고 17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일년이면 1억 4천만명이 새롭게 태어나고 5천만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뇌혈관 질환 하나만으로도 440만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하나만으로도 150만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이 일년이면 3천만명이 넘습니다. 북한과 후진국 도처에서 굶어죽고 얼어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수히 널려져 있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별가치도 없이 죽어가는 당신을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왜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까? 나를 바라볼 때마다 귀하다 존귀하다 사랑스럽다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이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 이게 기적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에 이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격려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저는 한 공동체 - 한소망교회의 리더로서 늘 사람들을 격려해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거운 짐이 있어도 혼자 지고 울어야지 누군가와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실 항상 외롭고 항상 고독 합니다. 유일한 친구는 예수님이요 유일한 상담자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런데 얼마전 우리 교역자들로부터 격려를 받고 감동한 적이 있습니다. 
돈을 들여 큰 선물을 한 것도 아닌데 깜짝쇼 하나가 나의 피곤을 풀어주고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침 교역자 회의 시간에 나를 위로 하느라 깜짝쇼를 하고 나를 웃게 하더니 마지막에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란 노래를 불러 주었고 이어 편지 한통을 읽어 주었습니다. 

♪ 당신은 소중한 사람 당신은 존귀한 사람
   이세상에 하나뿐인 당신은 (내겐)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
   그런 당신을 사랑해요 그런 당신을 축복해요
   사랑받기에 합당한 당신을 주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그들이 읽어준 편지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걸었습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이라서 뒤 따라가 가는 사람은 조금은 쉬웠습니다.
앞서서 가는 사람의 아픔을 헤아릴 겨를도 없이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걸었습니다. 불평도 했었습니다.  
앞선 사람이 더 잘 만들어야 한다며 투덜대곤 했었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던 어느 날 뒤따라가던 우리는 보았습니다.
앞선 사람 어깨위에 지어진 커다란 십자가를...
그 누구도 흉내 낼 수도 없는... 놀라운 정신력과....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무게를 감당하고 있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뒤따라오는 후배들을 위해. 뒤따라오는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서. 
한소망교인들을 위해서. 숱한 비바람과 눈보라를 맨몸으로 맞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교인들 앞에서 아프다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뒤따라가는 후배들은 앞서서 걸어가는 선배의 위대한 사랑과 헌신을
바로 바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그래서 오늘 고백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위대한 영적거장을 앞에서 보고 섬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희들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함께 한소망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왔습니다.
사랑하는 담임목사님의 가르치심을 받고자 왔습니다.
최선을 다해 섬기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기도하며 받들겠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힘내십시오.
사랑하는 목사님!!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소중하다 귀하다 말씀해 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온 우주의 주인이시오 우리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격려와 위로도 큰 힘이 되는데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얼마나 큰 힘이 됩니까? 그래서 다윗은 감격하여 노래합니다. 그 감격과 노래가 우리의 노래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1절)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3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4절)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5절)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6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9절)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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