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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헌금의 원리 (고후 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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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의 원리 (고후 9:6-8)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 그 내용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그 이유는 당시 예루살렘교회에는, 궁핍한 성도들이 많았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함으로, 신약시대 최초의 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졌다. 

절기 오순절을 맞아,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왔다. 이들 중에 상당수가,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 교회를 이루었다. 오순절이 끝난 후에도,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며, 사도의 가르침을 계속 받고, 성도들과 믿음의 교제를 나누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날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예루살렘 교회가 유일했기에, 시간이 가면서 각자의 수중에 있던 돈은, 바닥이 날 수밖에 없었다. 친척집에 머무르고 있던 사람들은, 그들과 신앙이 달라서, 그 집을 떠나야했다. 자연히 예루살렘 교회에는,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점차로 늘어나게 되었다. 

(행2:41下)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이처럼 오순절 날, 삼천 명이 예루살렘 교회에 늘었고, 그 수는 얼마가지 않아, 남자만 오천 명으로 늘었다. 

(행4:32-35)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줌이라." 이처럼 예루살렘 교회는, 어려운 성도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교회가 커지면서, 궁핍한 성도들도 점점 많아졌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힘만으로는, 이들을 돕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바울을 택하여,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삼았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며, 여러 곳에 교회를 세웠다. 고린도 교회도 그렇게 세워졌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을 때, 이런 요청을 받았다. (갈2:10上)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에게 요청에 따라,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잊지 않았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에, 동참해줄 것을 권면했던 내용의 일부분이다. 바울은 본문에서, 헌금의 원리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1. 복 받는 법칙이다(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헌금은 복의 씨앗이다. 다시 말해서 헌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거두기 위해서 심는 씨앗이다. 

하나님께 헌금으로 심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거두게 하신다. 바울은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자연의 법칙을 예로 들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이것은 자연의 자명한 법칙이기에, 따로 설명하거나,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 

자연법칙이 있기에, 농부는 씨를 심는다. 자연의 법칙이 있기에, 농부는 심는 씨를 낭비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은 속이지 않는다. 먼저 씨를 심으면, 꼭 곡식을 거둔다. 역으로 말하면 나중에 거두기 위해서는, 앞서 심어야 한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둔다. 

따라서 많이 거두려면, 그만큼 많이 심어야만 한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을, 자연법칙에 적용했다. 여기서 심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다. 또 거두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다. 헌금에도 자연법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적게 심으면, 하나님의 복을 그만큼 적게 거두게 된다. 

반대로 많이 심으면, 하나님의 복을 그만큼 많이 거두게 된다. 그러기에 헌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복 받는 비결이 된다. (고후8:1-4)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여기서 마게도냐 교회들은, 빌립보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그리고 베뢰아 교회를 지칭한다. 

마게도냐 성도들은, 유대인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 결과 생활이 극히 궁핍했지만, 풍성한 헌금을 드렸다. 힘에 지나도록 헌금을 드렸다. 헌금하는 일에, 최고 정성을 다했다. 자원해서 헌금을 바쳤다. 헌금을 드리기를, 진정으로 기뻐했다. 또한 헌금을 드리는 일을, 간절히 구했다고 했다. 

그들은 강요에 의해, 헌금을 드리지 않았다. 헌금을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바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했다. 그 이유는 헌금이 복의 씨앗이요, 헌금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비결임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한 가운데, 헌금하기를 간절히 구했다. 

우리도 마게도냐 성도들처럼, 헌금이 복의 씨를 심는 일임을 분명히 깨닫기 바란다. 그래서 많이 심어서, 풍성히 거두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물질로 하나님을 공경함이요, 하나님의 복 받는 비결이다. 성경은 이 사실을 누누이 강조한다. 

(잠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눅6:38上)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러한 말씀들은, 심으면 심을 수록, 더 많은 물질을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실제로 많이 심어, 풍성한 복을 거둔 사례들을 살펴보자. (대상29:9)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다윗 시대의 백성들은, 성전을 짓기 위해, 성심으로 많은 예물을 드렸다. 

그 결과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크게 부강했다. 또 (대하31:10)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만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 히스기야 시대의 백성들도, 하나님께 많은 예물을 드렸다. 그러자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 그 결과 모두가 족하게 먹고도, 남은 것이 많이 쌓였다고 하였다. 

(왕상17:15-16)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사르밧 여인은 자기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먼저 대접했다. 사르밧의 여인은, 자기가 가진 것 전부를 바쳤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최대한 심었다. 그 결과 그 여인의 집에 있는,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았다. 병의 기름도 없어지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이 채워주셨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르밧의 여인도, 많이 심어서 많이 거두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이다. 사르밧 여인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통에도, 가루가 가득하도록 채워주신다. 우리의 병에도, 기름이 넘치도록 채워주신다. 

우리 모두 많이 심어서, 많이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의 창고에는, 늘 새 곡식이 가득하고, 우리의 포도주 틀에, 항상 새 포도즙이 넘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복을 크게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복을 받는 대상(7).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사랑에는 2가지가 있다. 일반적인 사랑과 특별한 사랑이다. 

일반적인 사랑은, 해와 달, 바람, 물…을 주심을 말한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셨다. 모든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며 광범위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는 사람들이 있다.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 시간적으로는 끝까지, 사랑의 질로는 최고로, 사랑의 양에서는 최대로 사랑하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특별하게 받는 사람이 있다. 본문 (고후9:7下)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즐겨 내는 자다. 

성경에서 어떤 행동의 결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씀은, 이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요, 모든 부귀가 다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만 하면, 모든 복을 풍성히 누릴 수 있다. 사랑하면 주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아도 줄 수는 있지만, 주지는 않으면서,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독생자를 주셨다. 이처럼 사랑하면 반드시 준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 즐겨 드린다. 반대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면, 즐겨 복을 주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풍성한 복의 대상이 된다. 

하나님께 즐겨 드리자. 그리하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즐겨드림은, 어떻게 드림을 말하는가? 7절은 즐겨 드리는 자세를, 3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1)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해야 한다. 

헌금은 각자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모두 다 똑같은 금액을 정해서, 일률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각자에게 주신 복을 따라서, 개인적으로 힘써 하나님에게 바쳐야 한다. 

헌금은 '그 마음에 정한대로'해야 한다. 이는 드릴 헌금을, 미리 마음에 정하며 준비하라는 뜻이다. 그래야 헌금에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는, 정성을 다해서, 미리 마음에 준비해야 한다. 전혀 준비가 없이 와서, 헌금 시간이 되면,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남들이 감사의 예물을 드리니까, 멋 적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은, 각각 그 마음에 미리 준비하며, 정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드리는 예물에, 정성이 들어갈 수 있다. 그래야 예물을 드릴 때, 진정으로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릴 수 있다. 

(2) 인색함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헌금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나서, 잃어버리거나 손해봤다고 생각하지 말라. 헌금은 복을 거두기 위해, 씨를 심는 일이다. 

그러므로 인색하게, 적게 심지말고, 많이 심어서, 많은 복을 거두시기 바란다. (요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베다니의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해 자기 옥합을 아낌없이 깨뜨렸다. 그것은 지극히 비싼 향유였다. 그 향유는 나드로, 멀리 히말라야에서 수입해 온, 진귀한 향유였다. 그것도 순전한 나드였다. 양도 한 근이나 되었다. 굉장히 많은 양이었다. 모든 것의 주인은 예수님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드리지 못하겠는가? 그러기에 마리아는, 이것저것 따지면서 계산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감사를 드리며 최고의 사랑을 표했다. 그리하여 베다니의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다. 

예수님은 그의 헌신을 인정하시며, 그를 칭찬하셨다. (마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그 결과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다니 마리아가 행한 일은, 그의 이름과 함께 세세토록 기념되고 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요12:4-5)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가룟 유다는 계산적이었다. 예수님께 드리는 일에, 인색한 마음을 가졌기에, 마리아의 행동에 대해서, 독을 내뿜는 말을 했다. 

예수님께서 (마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결국 가룟 유다는 불행한 사람,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인색함으로 하지 말라. 하나님께 인색하게 드리면서,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이는 하나님을 경멸하는 행동이다. 하나님은 인색하게 내는 자에게, 풍성한 사랑을 하실 수 없다. 

(3)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인색함이 내적 요인이라면, 억지로는 외적 요인이다. 주변에서 쳐다보는 눈들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드리면 억지로다. 이만하면 체면치레는 된다고 생각하면서, 헌금을 드리면 억지다. 

(행5:1-2)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땅을 팔아서, 하나님에게 바쳤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자기들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 

억지로 드렸다. (행5: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속인 죄로, 복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큰 벌을 받았다. 

(고후8: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마음을 보신다. 그러기에 억지로 헌금을 드리면, 하나님의 복을 상실하고 만다. 할 마음만 있으면,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려라. 하나님은 두 '렙돈'도 기쁘게 받으신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와 복을 생각하면서, 감사의 예물을 드리자, 인색하거나 억지로 드리지 말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출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을 받으신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즐겨 내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복을, 더욱 풍성하게 누리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헌금의 목적이다(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 '모든'이라는 단어가, 4번 사용되었다. '항상'이라는 단어가 한번 사용되었다. '항상'은 '모든' 때를 의미한다. 결국 8절 안에 '모든'이라는 단어가, 무려 5번이나 사용된 셈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복이, 그만큼 풍성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즐겨내는 자를 사랑해서, 그에게 풍성한 복을 내리는가? 안일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인가? 큰집에서 살고, 돈을 물 쓰듯 팡팡 쓰면서, 육신의 안일을 즐기라는 이유인가? 아니다. 복을 주시는 목적은 따로 있다. 

(8下)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착한 일을 넘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돈이 있다면, 어려운 자들에게 베풀라. 아낌없이 써서, 사람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써라.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들의, 착한 마음을 아신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올바른 곳에 쓰는 자들이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로 모든 일에 넉넉하게 만들어,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도록, 물질의 복을 풍성하게 내리신다. 

그 동안 물질의 복을 받지 못했나요?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고, 늘 쪼들리면서 살았나요? 이유는 2가지 중에 하나다. 하나님께 즐겨 드리지 못했거나,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맡기신 물질로, 하나님을 공경하며, 영광을 위하여, 더욱 착한 일에 힘쓰기 바란다. 


말씀을 맺겠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헌금의 원리를 살펴보았다. 헌금은 복 받는 비결이다. 헌금은 복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그러기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둘 것이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하시기 바란다. 

미리 정성껏 준비하라는 말씀이다. 또한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마시기 바란다. 이러한 마음이 있었다면, 즉시 마음자세를 바꾸시기 바란다. 또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기를 위하여 물질을 쌓아두지 말라.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서, 착한 일을 넘치게 하라.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복을 내리시며, 모든 물질을 맡기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깊이 생각해보자. 그리고 헌금의 원리에 따라서, 정성껏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자.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치자. 그래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복을 크게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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