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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함을 실천하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 합시다 (고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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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을 실천하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 합시다 (고전 1:2)


(고전 1: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교회는 거룩한 곳입니다. 교회의 거룩성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온전한 거룩을 향하여 나아가는 성화를 말합니다. 

‘거룩’이란 단어는 ‘잘라서 떼어놓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베어내다’라는 의미를 가진 고대어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표준적인 것들로부터 따로 떨어져 구별되는 것이며, 탁월하고 비범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어려움을 당합니다. 세상들이 가는 길과는 반대로 가야 합니다.

거룩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다 지키시므로 이루신 그리스도의 중보적 의를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가 시켜 주시는 일로 이것을 객관적 의미의 거룩이라고 합니다.
이는 성부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선포해 주시는 의롭다 하시는 일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를 덧 입음으로 성도라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롬 8:33-34)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벧후 1:1)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신분상 의인입니다.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젊었을 때, 시베리아 유배 기간에 쓴 편지의 일부라 합니다.  "나는 이 시대의 자식, 즉 불 신앙과 회의주의의 자식인데 아마도 내 인생 끝까지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내게 완전한 평화의 순간을 주신다. 그 순간에 나는 사랑하고 사랑 받는다는 것을 믿는다. 그 순간에 나는 내 신조를 만들었다. 그 신조는 아주 순결하고 거룩하며 매우 단순하다. 

그 신조는 이렇다. '나는 구세주보다 더 고상하고 깊고 동정적이며 이성적이고 인간적이고 완전한 분을 없다고 믿는다. 나는 배타적인 사랑을 갖고 그와 같은 사람은 없을 뿐만 아니라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을 1854년 에 쓰여졌다 합니다.

그리고 약 14년 후에 그와는 매우 다른 타입의 아미엘은 그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합니다.  "우리는 교회와 멀리 떨어져 있으나 예수께 머리를 숙인다. 우리는 성직자를 의심하고 교리문답을 거부하지만, 거룩한 이와 의로운 이를 사랑한다. 예수는 기독교를 가장 비판하며 항상 우리를 지지한다. 기독교가 쇠퇴할 때도 예수의 종교는 살아남을 것이다."(J. C. HARDWICK)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선포해 주시는 의롭다 하시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를 덧 입음으로 거룩한 무리 곧 성도가 되었으니 거룩함을 실천하며 사명 감당 합시다.

거룩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실제적으로 죄를 떠나 성별되며 완전한 거룩을 향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으로 이를 주관적 의미의 거룩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생활의 거룩입니다. 이것은 성화의 과정입니다. 성화는 육체를 따라 행치 아니하고 성령의 뜻을 따라 행함입니다.

(갈 5: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두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동아프리카 부흥시에 몇몇 아프리카 그리스도인들이 와서 서양 사람들보다 훨씬 더 솔직한 어투로 그들에게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이 두 선교사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 선교사들은 충격을 받아 놀라서 "왜요."라고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려고 왔다고 했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들을 구원해 주지 않고 있어요 당신들은 함께 사이좋게 살지를 못하잖아요." 말했다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종종 무심코 묵인해 버리는 실패들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곧 회개를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있을 때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가 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집에 있을 때. 사무실에 있을 때. 병실에 있을 때. 교실에 있을 때. 공장에 있을 때.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거룩은 죄에 대하여는 점점 죽고 의에 대하여는 점점 사는 것입니다.

(갈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펜실베니아의 어떤 부은행장은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한 전도자가 그의 마을에 와서 많은 군중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마다 그 전도자는 전날 밤에 걷힌 헌금을 은행으로 가져왔고 지금은 부은행장이 된 그는 그 시간에 금전 출납계원 일을 했습니다. 그는 여러 번 초청을 받았지만 그 집회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 목사는 사기꾼이야. 그는 우리 마을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러 여기에 온 자야."하고 말하였습니다. 매일 헌금이 늘어나자 그 은행 출납계원은 그 목사님에게 정중한 대우를 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마지막 날에 예금을 했을 때 가난한 과부가 낸 수표 한 장이 있었습니다. 그때 은행원들이 말했습니다.  "이 수표는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여자는 은행에 넣어둔 돈이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1,500불에 저당 잡힌 그녀의 집을 처분할 생각입니다."  전도자는 그 과부의 수표를 찢어버리고 계산대에 가서 1,500불 짜리 자기앞 수표를 끊어서 은행에 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당신들이 이 수표는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부인의 저당물을 잘 처리해주십시오. 하지만 누가 그 돈을 지불했는지는 부인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 은행원은 놀라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일이 그 은행원을 여러 달 동안 괴롭혔으며 이미 돈이 지불된 저당 증서를 그 과부에게 건네주었을 때 그는 사람의 얼굴에서 그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전도자가 이렇게 한 이유 한 가지를 생각해냈는데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도 그리스도인이 될 때까지는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를 위해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의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골 3:9)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골 3: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일본에서 개최된 한 집회의 주제는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어떻게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가?"였다고 합니다. 그 집회에 참석한 한 소녀가 주제와 관련시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나에게는 다음과 같은 것처럼 보입니다. 어느 봄날 나의 어머니는 작고 보기 흉한 검은 꽃씨를 조금 가져 와 심었습니다. 그 꽃씨는 자라나서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어느 날 그 꽃을 본 이웃 사람이 '이 꽃은 너무도 예쁘군요. 꽃씨를 좀 주시지 않겠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그 이웃 사람이 꽃씨만을 보았다면 그녀는 결코 꽃씨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꽃이 아름답게 핀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 씨를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기독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에게 성경의 진리에 대해 말해 줍니다. 성경의 진리는 그들에게 매우 어렵고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진리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친절한 말과 착한 행실로 피어난 것을 본다면 그들은 '그러한 삶은 너무도 멋있군요!'라고 감탄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말보다는 우리의 삶 자체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가 있습니다."

  
죄의 성질을 전면 고치는 것입니다.

(고후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퓰리처상에 빛나는 작곡가 저슈원(George Gershwin )은 "파리의 아메리카인"등 수많은 명곡을 냈고 재즈를 심각하고 깊이 있는 음악으로 승화시킨 공로자라 합니다. 그의 곡은 모두 명랑해서 인기가 높았다합니다. 그는 돈과 명예를 아주 일찍이 손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파티에서 오토칸이란 친구가 그에게 이렇게 충고했다합니다. "자네는 너무 빨리 성공해서 고통에 대한 슬픔의 경험이 없어. 그래서 자네 음악에는 슬픔의 요소가 빠져있다네. 인간의 뜨거운 눈물이 진짜 예술의 비료가 되는 법일세."  그는 이 충고에 큰 감명을 받고 25만 달러 짜리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작곡에 돌입했으며 그때 나온 작품이 절뚝발이 흑인 거지 소녀를 주제로 하는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갈 4:19)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순례자가 여행을 하다가 어떤 수도사를 만났습니다. 이 순례자가 수도사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만약 살 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렵니까?"  늙은 수도사는 자기의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 먼저 아침 기도를 올려야 되겠지... 그러고는 차를 한 잔 만들어 마시고, 뜰에 나가 잡초를 뽑아야 할 테고, 그 다음에는 이웃에 살고 있는 친구 존을 만나려 갈 거야... 그러고 나서는 낮잠을 좀 잘까?"  "잠깐만요."  순례자가 말을 막았습니다.  "그거야 선생님께서 지내시는 하루 하루의 생활이 아닙니까?"  "물론이지. 마지막 날이라고 여느 날과 다를 수 있나?"

거룩은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성별되어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의미며 이를 성별적 봉헌적 거룩이라 합니다.
성별적,봉헌적 거룩은 악하고 패역한 이 시대의 생활양식(life-style or pattern)으로부터 떠난 성별된 거룩입니다.
성별된 거룩은 (롬 12:2)의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요 17:17)에서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라고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셨습니다.

인도에 선교사로 간 맥스웰이라고 하는 분은 그곳 언어를 습득하는 데에 대단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별나게도 인도는 마을마다 언어가 달라서 새로운 마을에 들어갈 때마다 새롭게 언어를 습득해야만 됩니다. 

한 번은 어느 마을에 들어가 힌두교인 한 사람을 붙들고 말 좀 가르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 내게 와서 말을 가르쳐주시오." 예수를 믿든 안 믿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말만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힌두교인이 거절을 하더랍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당신하고 함께 있어 그리스도인으로 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싫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이 사람하고 만나면 누구나 기독교인이 됩니다. 이 사람하고 말을 하면 누구나 이 사람과 같아지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내가 이 집에 들어와 20년을 살았는데도 아직 나 닮은 삶이 하나도 없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이렇게 되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기독교인으로 어디 가서 머물든지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라고, 나와 같아지려고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기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저런 사람이 교인이라니, 나는 그런 종교 안 믿겠다"라고 하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면 참으로 문제 있는 기독교인이라 하겠습니다.

  
주님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성화시킨다고 하셨습니다.

(요 17:19)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엡 5:26)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딤전 4:5)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이 말씀을 읽고,명상하며. 지키려고 순종할 때 우리는 점진적으로 성화됩니다.

1973년 영국 런던에 사보이 호텔에서 부유층을 상대로 하는 경매 만찬이 있었다합니다. 경매품 중의 하나가 윈스턴 처칠 경(Winston Churchill)의 모든 저작을 34권으로 합본한 전집이었다합니다. 제본을 무척 튼튼하게 정성 들여 한 이 책들은 송아지 가죽으로 표지가 입혀졌으며, 2백 년 간 보증한다는 보증서가 붙어 있었다합니다. 즉 2백 년 이내에 훼손이 있으면 무료로 원상태로 고쳐 준다는 약속입니다. 이 전집의 경매 입찰 가격은 미국 달러로 환산해서 2만 4천 62달러였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2백년만 보증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막13: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 불변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성별적 거룩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봉헌적 거룩에로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제물은 흠없는 산 제물이므로 우리의 거룩은 성별적,봉헌적 거룩이어야 합니다.
  
한 왕자가 있었는데. 그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손을 가진 처녀와 결혼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합니다. 완공들과 대관들은 제각기 부원군이 되려고. 딸의 손이 곱게 되기 위하여 무슨 일이든 손으로 해야 할 일은 도무지 시키지 않았고 예쁘게 가꾸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아름다운 소녀가 무엇 때문인지 아파서 어쩔 줄 모르고 애쓰는 불쌍한 말을 보았습니다. 말은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듯 그 소녀를 바라보았습니다. 소녀는 보드랍고 흠없는 자기의 고운 손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고운 마음씨는 고운 손을 생각지 않고 발버둥치는 말을 조사한 다음, 다리에서 큰 가시를 빼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소녀의 손은 피투성이가 되어 여기저기 긁혀서 가실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왕자는 짝을 고르는데. 이 소녀의 손을 보고 그리고 이 소녀가 했던 이야기를 들은 후 두말없이 아내로 맞아들였다합니다.
제일 고운 손은 봉사와 희생의 흔적이 있는 손입니다. 자신을 치장하고 화장하는 고운 손에 비한다면. 남을 도와 주느라고 더러워진 거친 손이 얼마나 더 귀하고 아름다운 손인줄 믿습니다. 우리의 거룩도 봉헌적 거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광야의 이스라엘 백 성에게 이르시되 (출 19:6)에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고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신약 교회에 대하여 (벧전 2:9)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고전 3:16-17)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사6장에는 이사야가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가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천사들이 나타났고 천사들은 여섯 날개를 가지고 찬양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이 하나님께 대한 찬양입니다.

계4:8에는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어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나님께 대한 찬양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벧전1:15에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합니다.

학 2:12에는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고 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십니다. 예수님이 거룩하신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시기에 마7:6에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다 거룩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유대인에게는 ‘코셔’(Kosher)라는 말이 있다합니다. 구별하여 만든 것들을 말한다합니다. 채소나 과일 그리고 모든 제품에 코셔가 있다합니다. 이것들은 처음 재배할 때부터 특별하게 성별하여 만들어 하나님께 바치는 제품들이라 합니다. 이런 마음의 준비와 자세가 모든 성도들에게는 필요합니다. 

참된 거룩의 뿌리는 규범이나 원칙이나 기준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참되고 거룩한 하나님을 향한 넘치는 열정입니다. 거룩은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서 거룩이 성장하면서 유혹은 점점 줄어듭니다. 그 누구도 유혹받지 않을 만큼 성숙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유혹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조심하고 거룩하게 사는 삶을 연습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거룩성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거룩한 생각, 거룩한 묵상, 거룩한 생활을 지향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경건한 거룩은 관계의 거룩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 임재하게 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죄는 달콤하지만 뱃속에 들어가서는 쓴 것으로 변합니다. 반면에  거룩은 처음에는 쓰지만 나중에는 단 것으로 변합니다.

거룩의 연습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합니다. 거룩의 연습은 그 자체로 우리의 삶에 복이 됩니다.

스리랑카 어느 마을의 선교사에게 주민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선교사에게 “나는 그리스도를 사랑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사랑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선교사는 놀라서 “왜 그렇게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라고 그들은 대답하였다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하지 못한 삶이 결국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우리의 거룩은 우리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를 보는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간디는 “만일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적 삶을 충만하게 산다면 인도에는 힌두교도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고 하였다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거룩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그래서 중요한 말씀입니다.

비행기를 탄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불신자가 비아냥거리기 시작합니다. “그 책에 적힌 얘기를 다 믿수?” “예, 믿지요.” “고래 뱃속에 들어간 사람 이야기도 아슈?” “알지요. 요나이지요”. “사람이 고기 뱃속에서 살 수 있다고 보시오?” “천당에 가서 물어보면 알겠지요.” “그 사람이 천당에 없다면 어떡할꺼요?” “그럼 아저씨가 물어보면 되겠네요”. 거룩하지 못한 사람은 거룩하지 못한 생각만 합니다.

하나님 없이 보는 성경이 거룩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하는 일이 거룩할 리가 없습니다. 거룩은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는 삶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거룩하여지고'(헤기아스메노이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고 그 결과 이루어진 상태가 현재에도 계속 유지됨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소유로서 거룩하다고 불리워졌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을 지칭하여 거룩한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날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출 20:11). 

교회는 거룩한 무리 곧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는 교회로 그의 몸된 교회의 사명을 감당 하되 거룩함을 실천하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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