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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창 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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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창 26:1-5)   
 
: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명절을 잘 지내셨습니까?

이번 명절 기간 동안 전국적인 뉴스 중의 하나는 ‘석선장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해적에게 납치되었던 배의 선장 석해균씨의 이야기입니다. 석 선장은 지난달 21일 아덴만 여명작전 중 소말리아 해적에게 총상을 입었습니다. 그 이후 세 차례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지난 설날에는 13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18시간 만에 다시 의식을 잃어 국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진들은 석선장이 다시 인공호흡기와 호흡관을 부착했지만 건강이 호전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의료진에 의하면 치료와 회복은 어차피 장기전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선을 그리는 파도처럼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 선을 그리는 파도처럼 진행되는 것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면서 결국 나빠져서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면서 결국 좋아져서 역사에서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흐름입니다. 역사에는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선을 그리면서 발전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퇴보하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흐름입니다. 이것을 볼 줄 아는 것이 바로 역사의식이자 또한 바른 신앙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26장을 본문으로 앞으로 여섯 주일을 역사에 대하여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이삭의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오늘의 시대 속에서 영적인 부흥을 다시 오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말씀에서 오늘과 내일에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역사란 무엇입니까?

I. 역사

우리는 오늘 본문 속에서 역사의 한 단면을 보게 됩니다.
     
1절 말씀입니다.
: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일찍이 아브라함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삭 때에 또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나이 일흔 다섯에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나 마침내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땅을 자신의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 기근이 너무 심해서, 아브람은 애굽에서 얼마 동안 몸 붙여서 살려고, 그리로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이 경험하였던 흉년이, 약 100년 뒤, 그의 아들 이삭 때에 또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흉년은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삭의 아들 야곱 때도 다시 있었습니다(창 42:5 43:1).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 때 들었던 흉년이 또 들자 가나안의 서남쪽에 위치한 풍요한 곡창지인 그랄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은 약 70년 전에 아브람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20:1).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1. 역사에는 반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26장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의 삶이 아들 이삭의 삶에 그대로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흉년이라는 재난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자손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반복되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내에게 부끄러운 일하는 수치도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같은 모습으로 순종하는 것이 반복되었습니다. 

시간과 장소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지만 삶의 동일한 모습이 반복되었습니다. 지난 세대에 일어난 일이 나에게 똑같이 일어나고, 나에게 일어났던 일이 다음 세대에 똑같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전도서1:9-10)고 인생을 한탄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과거의 일그러진 역사가 반복됩니다. 어쩔 수 없었던 실수가 반복됩니다. 하지만 올곧은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회복도 반복합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역사에는 성령의 역사도 반복됩니다. 부흥의 역사도 반복됩니다. 예루살렘에 있었던 성령의 역사가 가이사랴에도 있었습니다. 
      
가이사랴에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랐습니다. 유대인인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방인인 로마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였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10:1-48)
      
그 후, 베드로가 가이샤라 방문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인 베드로가 로마인인 고넬로의 집에 들어갔다는 것을 비난하였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 지라”(행 11:15)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신 것과 같은 일이 가이사랴의 로마 사람들에게도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임한 성령의 역사와 같은 역사가 가이사랴에도, 사마리아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임한 성령의 역사는 바울과 바나바의 제1차전도 여행 중에도 있었습니다(사도행전 15:8-9).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성령님께서 함께 하신 것과 같은 일이 전도할 때 있었습니다. 역사 속에는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많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었던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영국의 웨일즈에도 있었습니다(1740년대, 1859년, 1904년). 미국의 아주사 거리에도 있었습니다(1906년). 조선의 평양에도 있었습니다(1907년). 성령의 기름 부르심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었습니다. 또 다시 우리 영생교회에도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일정한 모습을 하고 있는 흐름을 읽어야 합니다. 역사 속에는 반복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역사의 흐름을 발견함으로 역사를 읽고 그 흐름을 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역사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를 보는 눈이 열립니다. 기대하고 예측하고 미리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땅에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역사하셨던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면 역사는 과거의 무한 반복이기만 한 것입니까?
      
2절입니다.
: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과거 아브라함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애굽으로 내려가도록 그냥 두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애굽으로 가지 말라. 내가 너에게 살라고 한 이 땅에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으나 시간이 흐르고 장소가 바뀌고 사람이 다르면 전혀 다른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이 애굽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었습니다.(15:13) 훗날 요셉 때, 다시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내려감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 갈 때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사건의 반복인 듯하지만 전혀 다른 내용이 있습니다.
      

2. 역사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언제나 똑같은 일이 똑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작게 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사람은 태어나서 자라고 활동하고 늙고 죽어갑니다. 똑같은 설이지만 어렸을 때의 설과 어른이 된 다음의 설이 다릅니다.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며 지내던 설과 세배를 받으며 보내는 설은 다릅니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작년 설과 올해 설이 다를 것입니다. 어떤 분의 표현으로는 설은 서러워서 설이라던데 마냥 즐겁기만 하던 설에서 서러운 설로 변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을 경험하면서도 느낌과 경험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결국 같은 일이 일어난 것 같으나 다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전에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고, 이번에는 이삭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지금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같을 일이라도 전혀 의미가 다를 수 있습니다. 수레바퀴는 수레바퀴의 축을 중심으로 제자리를 끊임없이 돌고 돕니다. 그러나 바퀴는 굴러서 새로운 곳으로 갑니다. 수레바퀴가 닿은 곳은 때 마다 다릅니다.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곳은 언제나 새로운 곳입니다. 전에 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도 이미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똑같이 서해로 흘러들어간 강물이라도 흘러온 사연은 다 다릅니다. 그 속에는 수많은 다른 경험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크고 작은 변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반복되는 과거에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배웁니다. 그리고 오늘의 또 다른 경험을 통하여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 지를 배웁니다. 오늘을 이해하고 미래로 가는 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변화되어 어디로 무엇을 위하여 흘러갑니까? 역사의 진행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II. 진행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삶 속에 흐르고 있는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을 보게 됩니다. 
      
3절입니다.
: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내가 너를 보살피고, 너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나안을 그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삭에게 이렇게 약속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한 맹세를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들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는 단 하나,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약속한 것을 그 아들에게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도 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흐르고 있습니다. 역사는 성취되어야 할 약속을 위하여 흐릅니다.
      
1.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룹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시간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처럼 시간은 약속의 성취를 향하여 날아갑니다. 시계 바늘이 같은 자리에게 뱅글뱅글 돌고 있지만 그 시간에 자동차는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그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달려가는 것이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여야 합니다. 고난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죄인의 몸으로 묶여서 로마로 갔습니다. 항해 중에 바울 일행은 풍랑을 만났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별도 보이지 않고, 거센 바람만이 심하게 불었습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으리라는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때 바울이 일어나 사람들 앞에게 외칩니다.
      
“기운을 내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로 지난밤에, 나의 주님이시요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내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반드시 황제 앞에 서야 한다.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 타고 가는 모든 사람의 안전을 너에게 맡겨 주셨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사도행전 27:22-25) 바울은 자신의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내다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 질 줄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자신의 삶과 주변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를 보아야 합니다. 역사가 흘러가는 방향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시간은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지는 것을 보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4절입니다.
: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은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민족이 그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약속을 이삭에게도 주십니다. 그의 자손들이 번성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천하 만민이 그들의 후손을 통하여 복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2. 약속은 만민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기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위하여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 자손인 유대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민족적 우월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유대인은 먼저 부르심을 받은 자로써의 사명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셔서 모든 사람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복 받게 하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것이었습니다.(마태 28:1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삼기 위하여 교회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임하시는 곳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성경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잃은 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신 목적은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를 찾게 하는 것입니다.
      
설을 보내면서 가장 많은 인사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는 복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 우리 민족이 모두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를 통하여 또 다른 사람을 복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서 멈추지 말고 흘러가게 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복 받는 통로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이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5절입니다.
: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삭에게 이루어 주신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잘 지켰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율례와 법도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훨씬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아브라함이 성심껏 지킨 덕에 그의 아들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순종이 그 주변 사람들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통하여 주변의 사람들이 구원의 복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여야 합니다. 순종할 때 복이 임합니다.
      
3. 복 받기 위해 순종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의 성취를 위하여 순종할 때 우리의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순종한 사람들의 발자취입니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여리고의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과 가족들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정탐꾼들이 자신의 집에 왔을 때, 여리고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지혜도 필요하였지만 생명을 거는 용기도 필요했습니다. 그가 순종함으로 여리고의 멸망 중에 그의 가족들은 건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뜻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가룟 유다는 스승을 배신하고 팔았습니다. 빌라도는 진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의 소리에 굴복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나 빌라도의 이름은 더러운 이름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복에 참여합니다.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피를 흘려가면서 말씀에 순종한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주변사람들과 우리의 자손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여야 할 차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역사에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있습니다. 역사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크고 작은 변화의 연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려고 시간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순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더 많은 사람들이 받게 되는 일에 우리가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간과 장소에 일하십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부흥을 원하는 사람들은 다만 하나님의 임재를, 성령님께서 일하시기 갈망합니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기를 노래합니다. 은혜의 성령님께서 하늘 가르고 임하셔서 부흥의 불길로 타오르기를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미래를 향하여 오늘 이 땅에서 영혼 구원을 위하여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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