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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수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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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수 4:1-9)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길에 요단강이 범람하고 있었습니다. 당대 인간의 기술이나 어떠한 수단 방법으로도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백성이 요단 강을 도강(渡江)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진영을 두루 다니면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지시하십니다. 

(수3:3)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먼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 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위에서 흘러내리던 물이 그치고 마치 댐처럼 그 위쪽에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래로는 사해로 흘러가는 물길이 끊기자 바닥이 드러나며 곧 바로 마른 땅으로 바뀌어버립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강바닥 한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서 있는 동안 백성들은 그 언약궤를 보며 강을 건넜습니다. 백성들이 모두 건너자 제사장들이 그 언약궤를 메고 나오는 순간 그쳤던 물이 다시 예전처럼 범람하는 요단강이 되었습니다. 

언약궤는 언약의 말씀이 들어 있는 궤입니다. 축복의 땅으로 가는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앞세워 따라 가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무리 범람하는 요단강같이 어려울지라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메고 강 한 복판에 굳게 서 있듯이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 범람하는 요단강을 “이전에 다녀보지 못한 길”, 신작로(新作路) 걷듯이 건너게 되는 것입니다. 

(수3:4)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2.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모두 건너기 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수4:2-7,9) 너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모두 12명을 뽑아 세워라. 그리고 그들에게 요단강 한복판, 바로 제사장들이 서 있는 곳에서 12개의 돌을 가져와 오늘 밤 너희가 진 칠 곳에 갖다 두라고 지시하라. 훗날 이 돌을 볼 때마다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너희 자손들이 ‘이 돌들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고 물으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흐르던 요단 강물이 끊어져 이스라엘 백성이 신작로 걷듯이 건너게 되었다. 그래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는 기념비가 되리라.’고 전하라....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 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 있더라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선택된 12사람들로 하여금 제사장들의 발이 강 한 가운데 굳게 선 그곳에서 돌 12개를 택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또 미리 선택된 12사람으로 하여금 돌 12개를 택하여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 다시 말해 강 한 가운데 기념비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 가운데 굳게 선 결과, 강물은 갈라졌고 강바닥은 신작로가 되어 무사히 건널 수 있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은 백성들이 다 건넌 후 여호수아의 명령에 따라 언약궤를 메고 강 건너 편 땅을 밟는 순간 요단 강물은 전과 같이 언덕에 넘치도록 범람했습니다.

(수4:17-18)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여전히 언덕에 넘쳤더라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서 있었던 그곳에서 도합 24개의 돌을 취해, 12개는 가나안 땅 최초의 숙영지 길갈에, 또 12개는 요단 강 한 복판에 기념비를 세워 기념토록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무엇인지를 아주 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서 있을 때, 믿음으로 굳게 서 있을 때 범람하는 요단강에 신작로가 열렸습니다. 바로 이를 영원히 기념하여 후대에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세워진 기념비가 ‘너희 중에 표징이라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 돌을 볼 때마다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단강 도하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섰던 곳, 강 한 복판에 세운 12돌은(18절) 다시 흘러넘칠 요단 강물에 곧 잠겨 버려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요단강을 바라볼 때마다, 요단강을 마음에 떠올릴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다는 사실을 영원히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12개의 돌을 기념비로 세워 영원히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기념비뿐만 아니라 마음의 돌판에 새겨 영원히 기념하라는(고후3:3) 뜻입니다. 

요단 강물을 멈추게 하신 것뿐만 아니라, 다시 흐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강을 건너게 된 것을 영원히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 홍해 도하 사건과 마찬가지로, 실로 요단강 도하 사건 역시 이스라엘에게 있어 기념비적인 대사건으로 후손들에게 두고 두고 기억시켜야 할 역사적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기념비를 세우라는 것은 어제도 계시고 이제도 계시며 장차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해서, 그 후손들을 위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솔로몬 왕의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그 사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남쪽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르호보암이, 북쪽은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통치했습니다. 이때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 왕은 백성들이 남쪽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는 길을 막기 위해 ‘벧엘’과 ‘단’ 두 곳에 우상숭배의 제단을 세우고 자신도 그곳에 가서 분향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여로보암에게 보내 경고합니다. 열왕기 상13:2-3입니다. 

(왕상13:2-3)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그 날에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로 ‘이 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던 재가 쏟아질 것이니라.’ 

우상에게 분향하던 여로보암이 몹시 기분 나빠 그 선지자를 가리키며 ‘저놈을 잡아라!’ 하고 외치자, 그 순간 여로보암 왕의 팔이 펴진 채로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선지자가 말한 대로 갑자기 우상의 단이 갈라지고 재가 단에서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러자 여로보암 왕이 그 선지자에게 ‘제발 당신은 나를 위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내 팔이 다시 성하게 해 주시오.’ 하고 간청합니다. 그래서 그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왕의 팔이 다시 정상대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때 왕이 그에게 ‘나와 함께 집으로 갑시다. 내가 당신에게 답례하겠소.’ 했으나 ‘왕이 나에게 왕의 재산 절반을 준다고 해도 나는 왕과 함께 가지 않을 것이며 이 곳에서는 빵도 먹지 않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빵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오던 길로는 돌아가지도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며 단호히 거절하고, 그는 오던 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러한 사건전말을 자기 아들들로부터 전해 듣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를 뒤쫓아 갑니다. 

유다에서 온 그 선지자가 어느 상수리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가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유다에서 온 선지자입니까?’ ‘그렇습니다.’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식사합시다.’ ‘나는 당신과 함께 가서 먹고 마실 처지가 못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이 곳에서 빵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오던 길로는 돌아가지도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에 그 늙은 선지자가 ‘나도 당신과 같은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천사가 나에게 당신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접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며 거짓말로 미혹했습니다. 유다에서 온 선지자는 그 거짓말에 넘어가 늙은 선지자의 집에 가 함께 식사하게 되었습니다. 식사 도중에 하나님께서 그 늙은 선지자를 통해 유다에서 온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 여호와의 말에 불순종하고 내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내가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명령한 곳에서 네가 빵을 먹고 물을 마셨으므로 너는 죽임을 당할 것이며 네 시체는 네 조상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할 것이다.’ 

식사가 끝난 후 그 유다에서 온 선지자는 나귀를 타고 가던 도중에 사자를 만나 죽임을 당했고 그의 시체는 길에 버려졌으며 그 곁에는 나귀와 사자가 함께 서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그 늙은 선지자는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선지자의 최후이다.’ 라고 말했습니다.(왕상13장) 그리고 그 늙은 선지자는 시체를 나귀에 싣고 자기 성으로 돌아와 그를 장사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300년 후 요시야가 왕으로 등극하면서 여로보암 왕이 세운 모든 우상숭배의 산당들을 불태워 버리는 일대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심지어 우상숭배했던 자들의 무덤까지 파헤쳐 그 뼈들까지 불태워버렸습니다. 모든 우상을 타파하는 중에 요시야 왕이 ‘저기 보이는 저 비석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묻자 벧엘 사람들은 ‘유다에서 온 선지자의 무덤입니다. 그는 조금 전에 왕께서 우상을 타파하신 바로 그 일(왕상13:2-3,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을 예언한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때 왕이 ‘저 무덤은 그대로 두고 그 뼈를 옮기지 말라.’ 고 합니다.(왕하23:15-18)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는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후대에 길이 전하고자 그 비석과 무덤을 그대로 두게 한 것입니다. 끝까지,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의 결말을 그 후손들이 반드시 기억하도록 하고자 한 것입니다. 

후일에 너희 자손들이 이 기념 돌을 보고 “이 돌들이 무슨 뜻이냐?”고 묻거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다는 사실을 영원히 기억되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수4:24,신6:20-25) 요단강 한 복판에 세워진 기념비를 항상 기억하고 사시는 여러분과 성도 여러분의 후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는 ‘기념하는 돌들’ 뿐만 아니라 ‘기념하는 날’, ‘기념하는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여 약속하신 축복을 받도록 하십니다. 신명기6:20-25을 보겠습니다. 

(신6:20-25)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 온 집에 베푸시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하심이라 우리가 그 명하신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찌니라

‘유월절’은 애굽에 내린 장자 죽음의 재앙에서 벗어나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애굽의 장자들은 다 죽음을 당했지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던 이스라엘 백성들만은 그 죽음이 넘어갔다 해서 ‘유월절’(Passover)이라 부릅니다. 이 절기를 기억하여 지키도록 하여 애굽에서 구원받을 것을 기념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출12:26-27) “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는 말씀으로 유월절을 기념하도록 하셨습니다. ‘초막절’은 광야 40년 동안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고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도록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 것을 기념토록 하는 날입니다.(신 29:5)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 하나님 말씀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언약을 맺은 날입니다. 

‘부림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몰살당할 위기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맥추절’은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처음 보리 수확하게 된 것을 감사하여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추수감사절’은 한 해 농사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 은혜를 감사는 절기입니다. 

‘성만찬’은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그 몸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것을 영원토록 기념하도록 하기 위해 제정하신 예식입니다.

(고전11:24-25)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성만찬 예식을 행할 때마다 주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받은 것을 기념해야 합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오라버니 나사로에게 부활 생명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값비싼 옥합을 깨뜨려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 부어드렸습니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 “(마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오직 마리아만이 그간 예수께서 수차례 십자가 죽음을 말씀하셨던 바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 운명의 시간, 십자가의 죽음을 준비해 왔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께 향유를 부어드릴 기회가 오지 않을 것으로 알고, 미리 예수께 찾아와 관례에 따라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영적인 안목을 인정하시며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 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 향유를 쏟아 붓는 마리아의 사랑과 헌신 속에서 인류 구원을 위한 복음, 십자가 복음의 행보를 보시고 기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 “안식 후 첫날”, 곧 오늘날 ‘일요일’이기 때문에 ‘주일’(主日), ‘주께서 부활하신 날’로 지킵니다. 그러므로 매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입니다. 

‘성령강림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에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주셔서 교회가 탄생하게 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절’은 ‘교회 탄생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념비를 마음 속 깊이 세워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들을 철저히 지켜 약속된 축복을 대대로 누리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기념해야 하는 “기념 칭호”입니다.

(호12:5)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

그러나 사울 왕은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지만 그를 기념할만한 후손이 몰살당하고 말았습니다.(삼상15:12)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아말렉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공격했습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백성의 피곤함을 틈타서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공격했습니다. 이를 모르실 리 없으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25:17-18)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그리고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 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후일 하나님께서 이를 기억하시어 사무엘 시대에 사울 왕으로 하여금 아말렉을 진멸토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진멸하라는 하나님 말씀대로 다 시행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웠지만 결국 사울 왕은 비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삼상15:12)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났더니 혹이 사무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행하여 길갈로 내려 갔다 하는지라

자신의 삶이 후손들에게 기억되고 또 기념되는 것은 큰 축복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을 이롭게 한 의인,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의 길이 기억되나 악인의 이름은 철저히 잊혀지고 썩으리라고 했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자는 그 이름이 흙에 기록된 것처럼 바람이 불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잠10:7)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
(시112:6)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
(렘17:13)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사무엘 선지자 시대(B.C.1050)에, 유대 지도자의 타락으로 블레셋과의 거듭되는 전쟁에서 무려 3만 4천명이 전사하는 엄청난 참패를 당했습니다. 문제는 상황이 거기서 끝나지 않고 블레셋 군대에 이스라엘이 완전히 포위당하여 나라 존망의 위기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제서야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슬퍼하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때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여러분이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고자 하면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 한 분만 섬기기로 작정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블레셋 사람에게서 구원하실 것입니다.’라며 철저한 회개를 권고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했습니다. 

사무엘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두 미스바로 모이도록 해서 그곳에서 온종일 금식기도하며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이 소식이 블레셋에 전해지자 블레셋은 공격의 호기로 삼아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블레셋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도록 하고 계속해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했습니다. 그 예배와 부르짖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산이 찢겨 나갈듯한 우레소리를 블레셋 진영에 발하자 블레셋이 혼비백산하여 도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용기백배한 이스라엘이 반격하여 단숨에 블레셋을 추격 섬멸하여 그간 전쟁으로 잃어버렸던 영토까지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그때 사무엘은 돌 하나를 주워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와 진실로 회개 기도하여 승리하게 된 것을 기념한 것입니다. ‘미스바와 센 사이’의 지역, 이전에는 실패와 패전의 자리였습니다.(삼상 4:1-11) 그곳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제사장의 두 아들이 전사하고 언약궤마저 빼앗겨버렸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 앞에 돌아와 회개하고 온전히 하나님 한 분만을 예배할 때, 성공과 승전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에벤에셀’의 기념비는 실패한 인생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돌아와 믿음과 기도로 승리하게 하신 것을 기념하여 세우게 하시는 기념비입니다. 

요한일서 5:5절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6:33절에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우리들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에벤에셀’의 기념비, 신앙 승리의 기념비를 계속 세워 나가게 될 줄 믿습니다. 사무엘은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오고 오는 세대에 증거하기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것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실패를 승리로 회복케 하시며, 절망을 소망으로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기념하여 살도록 기념비를 세워 영원히 기념토록 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신앙생활로 여러분의 인생에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계속 세워나가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4.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9절을 보겠습니다.

(수4:9)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 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 있더라

길갈과 그 요단강에 세워진 기념비(돌)이 “오늘까지 거기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기념하라는 뜻입니다.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내일도, 아니 영원히 함께 하셔서 요단강의 기적을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 성경을 읽고 있는 오늘 살아 있는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있는 ‘오늘’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신5:3)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이 ‘오늘’은 모세가 모압 광야에서 말씀을 선포하던 ‘오늘’일 뿐만 아니라, 이후에 이 말씀을 지키기로 결단하는 후세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당하는 ‘오늘’이기도 합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대, 바로 ‘오늘’ 예수 믿음으로 인생들을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그 하나님께서 지금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제와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계1:4)

(계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성도 여러분이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하여 예배드릴 때, ‘오늘’의 예배가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유월절을 기억하여 어린 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기념하여 예배드릴 때,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길갈과 요단강에 세워진 기념돌을 기념하여 예배드릴 때,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건너가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 인생길을 평탄케 하시며 마른 땅을 밟듯이 건너게 하시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미스바와 센 사이, 실패와 절망의 자리에 세워진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기념하여 예배드릴 때 항상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오늘’의 예배가 되도록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념비와 기념하는 날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오늘’ 항상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오늘’ 기억하고 기념하여 살아갈 때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행하여 축복의 가나안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의 기념비들이 ‘오늘’의 기념비가 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며 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념하는 예배와 절기를 존중히 여기는 성도 여러분의 이름이 하나님 앞에 있는 영원한 기념책에 기록되시기를 축원합니다.(말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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