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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목제물 예수 그리스도 (레 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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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제물 예수 그리스도 (레위기7:11-21)

성찬식을 거행하는 주일에 레위기서에 나오는 화목제와 우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주님이 직접 가르쳐 주시고 명령하신 성찬식을 함께 상고하기로 합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평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평을 위하여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죄로 가로막혔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용서하심으로 화해가 이루어짐을 감사하는 화목제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제사이며, 또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하나님께 헌신을 맹세하는 제사이므로 서원제사, 또는 스스로 원하여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에 자원제사라고도 합니다.

레위기 3장과 7장의 말씀을 참고로 말씀드리면, 화목제로 드리는 제물은 암수컷 구분이 없었고 형편에 따라 흠이 없는 소, 양이나 염소로 드렸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가져온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 앞에서 잡았습니다. 안수할 때 소의 뿔 사이 머리를 힘있게 눌렀는데 안수는 나의 죄가 소나 양 혹은 염소에게 전가되는 의식이었습니다. 안수한 짐승은 나를 대신하여 희생제물이 됩니다.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죽어가는 짐승을 바라보며 자신을 살피게 됩니다. 내 손에 죽어가는 어린 양의 슬픈 눈을 바라보아야 했고, 그 양의 목에서 흐르는 피를 바라보며 내 죄의 끔찍함을 깨달았습니다.그리고 내가 다시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이것이 희생제사의 교훈입니다.

요즘 우리 나라 농가에서는 밤마다 소 우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온다고 합니다. 구제역 살처분으로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짐승들이 뭔가를 아는 것처럼 밤마다 구슬프게 울어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구제역이 발생했다고 판단이 되면 발병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3 킬로미터 내에 있는 소나 돼지 염소 등 가축들을 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살처분 해야만 합니다. 가축의 다리에 주사를 놓아 주저앉힌 후 땅에 파묻는 것이 살처분인데 지금은 주사액이 부족하여 포크레인으로 땅을 판 후 그냥 산채로 생매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설 연휴 기간에도 살처분이 계속되어 이렇게 죽은 가축이 총 300만 마리를 돌파했다고 하니 살처분이라는 것이 사실상 동물 집단살육이 되고 있습니다. 정성스럽게 기르던 가축을 수백 마리씩 살처분을 한 어떤 농민들이나 살처분을 담당한 공무원들 중에는 환청에 시달리리며 정신적 후유증을 앓는 사람도 있다고 한답니다.

여러분도 들어서 알지만 구제역이란 질병은 발굽이 두개인 소나 돼지 같은 짐승의 입과 발굽 사이에 물집이 생기고 거품 섞인 침을 흘리며 잘 일어서지 못하는 증상으로 앓다가 죽는데 치사율이 55%까지 달하는 가축의 제1종 바이러스성 법정전염병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입맛에 맞는 고기를 생산하려고 인위적으로 품종을 개량하거나, 풀을 먹고 되새김질을 해야 할 소에게 유전자조작 농산물 사료를 먹여 중량을 늘리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선홍색 고기를 생산하려고 소나 돼지를 좁은 우리에 가두어 체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사육하다보니 가축들이 면역력이 떨어져 쉽게 질병에 걸리고 구제역 같은 질병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다른 가축에게 옮겨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 위주의 사고와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에서 나왔고 인간들의 이기적인 욕망이라는 죄악은 결국 무서운 자연 재앙이 되어 사람들에게 되돌아오고 있습니다.사람들의 입맛을 즐겁게 하는 식품이 되기 위하여 대량으로 길러지던 가축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위험을 가져다 주게 되자 이번에는 가차없이 생매장을 시키고 있으니 강제로 살처분 당하는 가축들이 이기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인간의 죄악을 대신하여 희생제물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시장에서 고기를 사다 먹는 우리는 잘 모르지만 농가에서 가축을 직접 기르던 농민이나 살처분을 담당한 사람들은 현장에서 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있으니 정신적인 충격이 왜 없겠습니까?

화목제물을 드리는 오늘 말씀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짐승의 목을 찔러 나온 피를 제사장에게 가져가면 제사장이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렸습니다. 죽은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 콩팥과 그 위의 기름과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것을 다 제사장에게 전달합니다.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 불살라 드립니다. 그런데 제단에는 이미 번제로 드려진 제물이 있었습니다. 화목제사는 이렇게 짐승의 모든 부위가 전부 태워지는 번제물 위에 태워졌습니다. 그리고 감사로 드리는 화목제사일 경우 기름 섞은 유교병과 무교병을 함께 드렸습니다. 

제물의 가슴 부분과 오른편 뒷다리는 제사장의 음식으로 돌렸고 나머지 고기는 화목제사를 드린 후 제물을 드린 사람과 가족, 그리고 이웃들이 공동식사를 하였습니다. 다른 제사의 고기는 오직 그 피를 단에 뿌린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었지만 화목제사의 고기는 드린 사람과 이웃들이 나누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하나님의 구원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며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 역시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어떤 차별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화목제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번제와 소제, 화목제와 속죄제 그리고 속건제 등 모든 희생 제사는 에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연관이 있습니다.구약의 희생제사들이 모형이며 그림자라면 예수님은 모든 희생제사의 원형이며 본체이십니다.특히 오늘 말씀과 관련하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가로막혔던 담을 허물고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대신 값으셨고, 주님의 육체를 찢으심으로 우리 모든 죄인들이 그 갈라진 육체를 통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주셨습니다(히10:19-20). 

화목제사의 제물은 암수컷의 구별이 없었고 흠이 없는 깨끗한 소나 양이나 염소로 드렸습니다. 누구든지 자원하는 사람이면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혈로 하나님과 화목함에는 남녀와 빈부귀천과 노소의 차별이 없습니다.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장2절에서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하였습니다.우리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이렇게 찬송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났도다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우리를 살리게 하시려 화목제로 보내셨도다 화목제로 보냈도다
 사랑하는 자들아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서로 사랑하면 서로 사랑하면 주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세상의 죄인들을 살리시려고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보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살려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려고 아들을 화목제물로 받으셨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한 가족이 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며 사람들과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것이 우리에게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입니다. 

화목제물을 먹을 때 특별히 주의할 것이 있었는데, 감사로 드린 예물은 남기지 말고 그날에 다 먹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서원과 자원하는 예물은 그날에 먹고 남은 것은 다음 날까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하나님께 죄사함을 받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기쁨에 넘친 사람이 이웃과 친척들을 초청하여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하지만 남은 고기는 제삼일에는 불살라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부정한 것이 되고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는 제사가 될 수 없었습니다.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부정한 물건이나 사람 혹은 짐승들을 만져 몸이 부정한 사람은 먹지 못하고 깨끗한 사람만 먹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도 깨끗해야 하지만 제물을 드리는 사람 역시 자신을 깨끗하게 준비하고 드려야 합니다.이것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오는 사람이 가져야 할 거룩한 마음과 몸가짐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께서 제정하신 성찬식의 의미를 가르치면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자신을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11:27-29) 하였습니다.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도들은 이 점을 항상 마음에 두고 성찬식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신다는 말은, 성찬식에 참여하는 사람이 성찬의 의미를 망각하고 무분별하게 먹고 마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신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된 것처럼, 우리와 하나님이 하나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는 오직 한 길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 화목제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나를 위한 죽음이며 나의 죄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음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이 사랑과 은혜가 나의 솔직한 신앙고백이 되지 못하면 주님의 살과 피를 아직 먹고 마실 수 없습니다. 

화목제사는 서원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구원하심을 감사드리는 마음과 함께 사랑과 헌신이 고백되어야 합니다.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목숨을 주심같이 나도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드리기까지 충성합니다. 이런 헌신 고백이 서원과 자원하는 제사에 담겼습니다.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신다는 말은 이런 헌신의 고백이 없이 습관적으로 혹은 형식적으로 성찬에 참여한다는 말입니다. 지난 주일에 설교한 것처럼, 마음에 감동이 되어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살피라 하였습니다.자신을 살핀다 함은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준비하여 성찬예식에 거리낌이 없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고린도 교회가 어떤 점에 문제가 있었습니까?교우들 사이에 편을 갈라 서로 등을 지고 지냈습니다.부자가 가난한 교인들을 업신여겼습니다.많이 배운 사람이 못배운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인간의 지혜를 자랑하며 교만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나와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심으로 서로 하나가 되고 사랑하라 하셨는데 교인들은 서로 자기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편당을 지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갈래갈래 찢어놓았습니다. 심지어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시면서 아무런 가책도 없이 그리스도의 성찬에도 참여하였습니다. 간음과 도적질을 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교회에 나와 성찬식의 떡과 잔을 먹고 마셨습니다.이 모든 것이 주의 성찬에 합당치 않은 모습입니다.

자기를 살핌이 없이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습니다.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엄한 교훈의 말씀은 곧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오늘 성찬식에 참여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살피시기 바랍니다.회개할 일은 회개하고 결단할 것은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이 성찬이 여러분에게 은혜가 되고 능력이 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히브리서 13장에 나오는 말씀으로 드립니다. 우리의 화목제물이신 그리스도는 또한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속죄제로 드려지는 희생 양의 피는 화목제물처럼 제단에 뿌리고 모든 기름과 콩팥과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힌 꺼풀은 제단 위에 불살랐습니다. 가죽과 나머지 고기 전체는 진 밖으로 가지고 나가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살랐습니다(레4장).우리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지고 예루살렘 성밖으로 끌려나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히브리서를 기록한 기자는 말합니다.‘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13:12, 13)화목제물을 드리고 그 제물을 나누어 먹은 사람들은 또한 마음에 결심하고 각오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자로 살아갑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신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영문 밖으로 나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시라면 우리는 주님의 뒤를 따라 섬기는 제사장들입니다. 주님이 가시는 길에 우리도 함께 합니다. 사랑이 메마른 거친 세상에 하나님의 화평을 선포하고 서로 화목하기 위하여 나를 깨뜨리고 나를 내어주는 삶을 실천합니다.그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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