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2-47)

첨부 1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2-47)


드물게 초대교회를 가리켜 공산주의(communism)의 실현이라고 주장하는 몰상식한 자들도 있습니다. 아마 당시 성도들이 한 곳에 살면서 서로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는데 대한 오해일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 제도를 도입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① 초대교회 성도들의 교제는 정치적 공동체가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로 참된 영적교제의 갈급함에 있었습니다. ② 지속적인 정치집단이 아니어서 오순절 절기행사가 끝난 후에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③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운동이었다는데서 강압적인 공산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교회운동은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당시 초대교회에 나타난 특징들을 살펴보면서 그 뜨거웠던 교회운동의 역사를 순례하기 원합니다. 

Ⅰ. 초대교회는 신령한 공동체(Community)였 습니다. 

1) 사도들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본문 2장 42절에 『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했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권위있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체험한 사도들의 가르침은 특히 기독교를 처음으로 접하는 자들에게 매우 고무적이었습니다. 
저들의 가르침은 생산적인 교육이었습니다. 사도들이 가르친 것은 예수님의 말씀들과 그의 행하신 일을 직접 보고 들은 것들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에 『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 』고 했습니다. 

2) 서로 간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본문 2장 42절에 『 …서로 교제하며… 』라고 했습니다. 
『 교제 』는 함께 무엇을 나누는 일을 말합니다. 특별히 자신이 가진 소유를 나누었습니다. 성도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재산을 사용했습니다. 
교제의 목적은 하나 되는 것이고 교제의 가치는 신뢰를 얻는 데 있습니다. 공동체에 신뢰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공자는 군주의 3대 요건으로 식량을 족하게 하고, 병비를 튼튼히 하며,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 중 불가피하게 하나를 버린다면 병비를, 다시 하나를 더 버린다면 식량을,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은 신뢰라고 했습니다. 

3) 떡을 떼는 일입니다. 
본문 2장 42절에 『 …떡을 떼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 떡을 떼는 것은 일반적인 식사로 볼 수 있지만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행한 성찬식이라는 것에 무게를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만찬식에 사용했던 단어 클라시스( )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눅 24:35).
누가복음 22장 19절에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4) 기도에 힘쓰는 일입니다. 
본문 2장 42절에 『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 『 전혀 힘쓰니라 』는 말은 전력을 다하여 지속적으로 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기도하고 계획하고 결정한 것을 전력을 다하여 지속적으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회적으로 끝나는 것은 매우 유감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유대인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누구든지 이미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를 출교하기로 결의한 바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 22절에 『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리스도인들은 이 살벌한 현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 세력을 더해가니 유대인들은 두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마땅히 두려워해야 될 때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기독교인들은 일제의 기독교 말살정책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죽음으로 맞섰습니다. 북한 공산치하에 있을 때 기독교는 그들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순교로 맞섰습니다. 
특히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4장 30절에 『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12절에 『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6장 8절에 『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 6절에 『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3절에 『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12절에 『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라고 했습니다. 
『 믿는 사람들이 다함께 있어 』라고 하는 말은 그들이 늘 같이 있었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같이 있어야 합니다. 떨어지기를 좋아하는 성도는 이미 병든 사람입니다. 전에는 모일 때 구약의 규례에 의하여 습관적이고도 타성적인 지극히 형식적 모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 때문에 모인 것입니다. 
이들은 모여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방인 공동체는 유무상통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사유재산에 대해 철저한 자신의 소유 의식이 강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1-22절에 『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의 공동체와 상이한 점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소유에 너무 민감한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적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물질과의 바른 관계는 물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앙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재물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마6:21). 

Ⅱ. 초대교회는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는 공동체 (Community)입니다. 

본문 2장 46절에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서 굳게 계속하며'가 됩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라고 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후에 초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의 생활을 본문에 따라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는 것입니다. 
여기 『 마음을 같이하여 』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모뒤마돈)은 '한마음으로'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에도 동일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에 『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고 했습니다. 

2) 집에서 떡을 떼는 것입니다. 
본문 2장 46절에 『 …집에서 떡을 떼며… 』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나온 『 떡을 떼며 』라고 하는 말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다만 성전에서만이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집에서도 날마다 성찬식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3)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본문 2장 46절에 『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라고 했습니다.
여기 '음식을 먹는다'는 말은 '떡을 떼며'라는 말과는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일반 식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공동 식사를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은 식사할 때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교회도 주일날 점심식사와 필요에 따라서 몇몇 교인들은 저녁식사까지 하는데 우리의 식사 광경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순전하다'라는 말은 순수한 마음(아펠로테티, )으로 영어로는 simplicity(단순, 순박, 성실, 검소, 간편)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음식을 대할 때 우리의 마음가짐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음식에만 집착하는 자세는 순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재산을 다 팔아 내어놓는 자리에 음식 정도에 집착한다는 것은 무엇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누리는 예루살렘 성도들은 먼저 자기 것을 주장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기쁨과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한마음으로 먹고 예배 하면서 주의 만찬에 참여했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사람의 몸에, 성도들을 몸의 각 지체에 비유하고 있듯이 교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기체로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시고 대제사장적 기도를 하실 때 하나되기를 원하셨습니다(요 17장).

Ⅲ. 초대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공동체 (Community)입니다. 

본문 2장 47절에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라는 말은 온 백성들에게서 호의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 칭송 』(카린, )은 영어로 favor, 친절한 행위(goodwill), 편애, 치우친 사랑(partiality) 등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호감을 갖도록 매력적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매력을 느껴야 합니다. 더욱이 불신자들에게까지라도 무엇인가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7절에 『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 , 호 라오스)이라고 할 때는 누가는 항상 하나님께 택함받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칭송을 받는다는 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총독이었던 플리니우스(Plinius)가 트라얀(Trajan)황제에게 보낸 서신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즉, 그는 박해로 인해 비밀리에 모이는 기독교 공동체를 은밀히 조사해 본 후 '그들은 법 이상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윤리적 삶이 칭송받을만 했음을 그가 로마의 정치가로서 입증시켜 주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충만한 성도는 세상의 법을 초월해서 살게 되므로 온 백성의 칭송(稱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백성에게 지탄을 받고 욕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바른 윤리관, 즉 대신관계, 대인관계, 대물관계를 바르게 가져야 세상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완전한 윤리적 실천을 이상으로 삼지 아니합니다. 그렇다고 사죄의 은총과 은혜를 강조하므로 윤리적 실천은 무시해도 좋다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천하 인간들에게 완전한 윤리적 실천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윤리적 실천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 『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전 9:10)라는 우리 교회 금년의 표어도 하나님의 모든 선한 일에 대해서 힘을 다하여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말에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듯이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값주고 사신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교회부흥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우리를 통해서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경제신문, 수석 논설위원 박성희 논설위원이 쓴 짤막한 글을 요약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2009년 4월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라는 TV 장기자랑을 통해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됐던 영국 여성 [수전 보일]의 당시 출연 동영상이 담긴 내용입니다. 

배추머리에 헐렁한 통짜 원피스를 입은 아줌마에게 심사위원들은 진짜 출연한 것이 맞느냐는 표정이었습니다. 마흔 일곱 살이 된 그녀가 가수의 꿈을 꾸면서 12살 때부터 연습을 했다고 했을 때 심사위원들은 비아냥거리듯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 가수가 못 되었나요?", "기회가 없었어요." 그녀가 부른 곡은 뮤지컬(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이었습니다. 노래가 끝난 뒤 비웃었던 심사위원들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전원일치로 합격시켰습니다. 

준우승이 확정된 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느냐는 질문에 초등학생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지극히 짧고 분명한 말로 "도전하세요(Go for it!)." 이 쉬운 단어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데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목표로 세웠던 가수는 [폴포츠]인데 그를 능가했습니다. 2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에 2009년 말 내놓은 데뷔 앨범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은 세계적으로 1,000만장이 팔렸고, 2010년 11월 발매한 2집 '더 기프트'(The gift) 또한 발매 첫 주 미국 빌보드(Billboard)와 영국 UK차트 정상에 오르는 대박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어딘가 조금씩 부족한 사람들은 꿈에 다가서고 싶으면 도전하다 멈추지 말고 도전하세요.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작고 왠지 도전하면 모든 것이 잘못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보세요. 그런 다음 어떻게 바뀌는지 지켜보세요. 2011년에도 같은 말의 반복입니다. 꿈을 이루길 원하는 사람들은 도전하세요. '최선을 다 했지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다', '연줄이 없다', '학벌이 떨어진다', '학력 탓이다', '외모가 신통치 않다' 등등의 이유로 주저앉고 싶은 사람, 쓰러질 것 같은 사람 모두 35년 만에 꿈에 다다른 [수전 보일]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Go for it!"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말했습니다. 『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2)고 했습니다. 교회부흥은 곧 자신의 부흥입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것도 미련한 우리를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미련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내 속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해야(골 1:29)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만이 가지는 천혜(天惠)의 매력입니다.

-아 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