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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는 목표 (삼상 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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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목표 (삼상 1:10-11)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1;10-11)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에 여호수아가 죽은 후 약 35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시기를 ‘사사시대’라고 부르고 또한 영적인 암흑기라고 합니다.  왜 영적인 암흑기인가요? 선민 이스라엘은 가나안땅에서 이방인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 그들을 이스라엘化 시켜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선민의 사명을 잃어버리고 가나안化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방인과 차이가 없었고, 어떤 면에서는 이방인보다 더 악하기까지 하였기에 영적인 암흑기 인 것입니다. 

 빛의 밝음을 잃어버린 신앙인, 소금의 짠 맛을 잃어버린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적인 암흑의 시기를 벗어버리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기도하는 한나의 아들, 사무엘선지자입니다.  한나라는 여인이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얻고, 그 아들이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영적인 암흑을 걷어내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 한나의 기도가 오늘 본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괴로울 때 어떻게 하십니까? 정말 마음이 괴로울 때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내시나요? 많은 사람들은 괴로운 일을 당하면 술을 마심으로 취(醉)해서 자기의 괴로움을 잊어 보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한탄과 하소연을 함으로 그 괴로움을 해소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한나라는 여인은 몹시 마음이 괴로웠지만 그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정말 마음이 괴로울 때 그녀는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를 합니다.  

성도여러분, 기도는 아무나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기도(祈禱)의 힘, 기도의 능력(能力)을 아는 사람입니다. 기도의 위력(威力)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다른 어떤 방법을 마다하고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빠른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시나요? 아마 빛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빛은 1초에 30만km를 달린다고 합니다. 1초에 지구 일곱 바퀴 반을 돌 정도로 빠릅니다.  빛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릅니다. 그러나 우주를 놓고 이야기 한다면 빛도 그리 빠르지 않습니다. 우주는 광활합니다. 어떤 별은 30만km 달리는 빛의 속도로 수십 억 년을 달려야 겨우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우주는 정말로 광활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좌는 그 우주의 높은 곳, 셋째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니 빛이 셋째 하늘, 즉 하나님이 계신 곳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달려야 할까요? 사람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먼 거리입니다.  그런데 이런 먼 거리를 단 1초도 안 걸리고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 보좌에 도달합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에게 기도 응답을 가지고 온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내가 고하러 왔느니라”(단9:23).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을 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우리의 기도보다도 빠른 것이 없습니다. 빛은 1초에 30만km을 달리지만 기도는 1초에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을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빠릅니다.

성도여러분, 한나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첫 번째는, 그녀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그 문제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우리는 한나가 여호와의 전(殿)으로 가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 놓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가 고플 때 배부른 사람 옆에 있다고 내 배가 절로 불러지나요?  내가 답답할 때 기도하는 사람 옆에 있다고 내 기도 제목이 이루어지나요?  

위대한 사람 옆에 서 있는 다고 내가 저절로 위대해지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노력을 해서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내 손으로 밥을 먹어야 배가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한나는 마음이 괴로울 때, 자기를 괴롭게 하는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고, 기도했고,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해결 받아야 할 문제가 있을 줄 압니다.  빛보다 더 빠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말씀 드리길 바랍니다.  문제가 있을 때, 마음이 괴로울 때,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한나의 기도는 수단이 아니라 목표였습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기도는 수단이 아니라 목표입니다.” 아멘?  많은 교인들은 ‘목사님, 나 병고쳐주세요. 병 낫기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목사님, 나는 너무 실패를 하기 때문에 이제 실패를 끝내고 잘 되게 해주세요. 제발 성공하도록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합니다.  병 낫기 위해 기도하고, 잘되기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을 해주십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가 기적은 체험을 하여도 그 한번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계속적인 신앙생활의 기적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일회용(一回用)으로 쓰기 때문이며,  기적도 일회용(一回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 병고쳐주세요.” 그 다음이 없습니다. 병 고쳐지고 나면 이제는 더 기도할 것이 없어서 ‘기도 끝’합니다. 기도의 집중력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영적으로는 퇴보합니다.  병 고치는 기도, 복 받는 기도에 완전히 몰입을 했기 때문에 병이 고쳐지고, 물질의 복을 받으면 그 다음엔 더 기도를 안 합니다.  이것이 ‘기도를 수단으로 삼는 일’입니다. 기도를 수단으로 하기 때문에 응답을 받은 후에 영적으로 더 다운되는 것입니다.  왜 병을 고쳐주셔야 하는지 이유가 없는 기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나와 가지고 먹을 것이 없었을 때에 하나님이 만나를 주셨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새벽에만 나가면 만나가 쏟아집니다. 우리 하나님은 새벽에 역사를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나를 먹는 사람들은 새벽에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새벽종교입니다. 새벽을 깨우는 종교고, 새벽에 역사가 많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만나가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만나가 기적이기 때문에 너무 좋은 거예요.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새벽에만 조금 일찍 일어나면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먹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도 않았고, 장사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인 먹는 문제를 매일의 만나로 해결을 하니.. 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만나를 먹는 것에만 열중한 나머지 하나님이 만나를 먹여주신 이유(理由)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만나를 먹여주셨나요?  만나를 먹고 힘을 얻어서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까지 가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먹고 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만나는 가나안땅으로 가는 수단입니다.  만나를 위한 만나가 아니라, 가나안으로 가게 하기 위한 만나라는 말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가 고쳐야 할 것이 바로 수단(手段) 때문에 목표(目標)를 잊어버리는 이 문제입니다.  어느 교회의 집사님 한분이 참 지지리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데, 기도를 해도 투박하게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돈 주세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물질주세요.” 그러면 덜 거부감이 들 텐데 “하나님, 돈 주세요.”합니다. 

그런데 사정을 아는 목사님은  ‘으이그, 왜 저렇게 기도 해.’ 그 소리가 안 나와요. 하도 돈에 시달리니까. 그래서 목사님도 같이 합세해서 ‘지지리도 가난한 저 집사 진짜 돈 주세요.’ 그랬답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진짜 주신 것입니다. 무슨 직장이 되고, 사업이 되어가지고 돈을 번 게 아니라 시골 자기 가문에서 땅을 사놓은 거… 시골에서 땅이 넓고 하니까, 그 가문에서 땅을 사놨는데 거기가 도시계획이 되면서 쫙 길이 난 거예요. 그래서 돈 분배가 되었는데… 세상에~ 없을 땐 그렇게 진실하고, 없을 땐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더니 돈 생기니까...먼저 목에 힘들어가고, 그 다음엔 기도 안하고, 주일도 지키지도 않더니, 그 다음에는 돈 생겼다고 바람이 났습니다. 결국에는…그 부인이 먹는 물에다가 약을 타가지고 부인하고 그 남자 집사하고 같이 죽었습니다.  물질이 그에게 축복이 아니라 물질이 재앙이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왜 이렇게 되었느냐. 돈이 많아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땅값 정도 되는 돈 가진 사람 한국에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다 약 먹고 죽지 않습니다. 

이 집사님의 문제는 수단을 축복으로 안 것입니다.  돈은 무엇을 하기 위한 수단이요 도구 아닙니까? 돈으로 자녀 공부시키고, 돈으로 맛있는 것 먹고, 돈으로 남을 돕기도 하고... 돈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수단을 목적으로 알고, 돈이 축복인줄 알았기에, 돈을 꼭 붙들었고, 돈 외에 다른 것은 축복이 아닌 줄 안 것입니다. 그래서 돈이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여러분, 수단은 수단이지, 수단이 목표가 아닙니다.  수단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고,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인데 왜 수단을 목표로 하느냐 말입니다.  ‘병 고쳐 주세요.’ 그럼 병 고치면 어떻게 할 건가요?  ‘물질 주세요.’ 그럼 물질 주시면 어떻게 할 건가요?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구체적으로 해야 됩니다.  ‘하나님 직장 주시면, 하나님 물질 주시면, 하나님 건강 주시면 내가 이렇게 살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한 가지 간증을 소개합니다. ‘박정찬 목사님’이라고 미국 감리교회에 최고 지도자이신 분이 계십니다.  미국 한인 감리교회가 아니라, 미국교회 가운데 최고 지도자 중의 한분입니다. 그분 아버님이 박신욱 목사님이라고 하시는 분인데, 그 박신욱 목사님이 영어를 그렇게 잘 하시는 분입니다. 한국의 6,25전쟁 때.. 미국의 제일 큰 교단인 감리교단이 전쟁이 나니까 구호물자를 보내기 시작하는데, 구호물자를 책임져야할 사람을 선택하려다 보니까 영어를 잘 해야 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구했습니다. 찾다보니까 박신욱 목사님이 영어를 기가 막히게 잘하고 또 강직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책임자가 되어서 한국 감리교회 사회부 총무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이 목사님이 6.25 전쟁을 겪으면서 5년 동안 미국에서 오는 구호물자의 총 책임자가 됩니다. 당시 우리나라 재무부 장관 이상으로 권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분 손을 통해서 모든 것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큰아들 박정찬 목사님이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 너무 반감이 있습니다.  미국 구호물자가 그렇게 수없이 들어오는데 아버지가 옷 한 벌을 안 주더랍니다.  아들이 화가 나가지고 “아버지, 우리가 횡령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도 남들처럼 옷 한 벌이라도 달래는데 왜 아버지는 안 주세요?” 그랬더니 아버지 박신욱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너희들은 먹을 게 있잖니. 너희들은 입을 옷이 있잖니. 미국에 있는 교인들이 이걸 보낼 적에는 없는 사람들을 주라고 보낸 거야. 우리는 먹을 거 있어. 입을 거 있어. 절대로 하나라도 탐내지 말자. 이거 욕심내지 말자.” 

어찌나 강직하신 분인지… 그래도 큰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불만이 많았어요. 그리고 그런 강직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당연히 남긴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심지어 큰아들이 한국에서 살길이 없으니까 돈 몇 푼 가지고 1977년에 미국엘 갔습니다. 돈은 다 떨어져 가는데 아는 사람은 없고 취직할 자리도 없습니다. 미국 가면 막연하게 뭐가 될 줄 알고 갔는데, 아는 사람이 있나, 취직자리도 없고…  어느 날 여인숙 같은데서 드러누워 가지고 신문을 보는데 구인광고가 신문에 딱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거기 갔대요. 그래서 얘기를 해보더니 당신은 우리 회사의 조건에 안 맞는다고 그냥 가라고 그러더래요. 안 되는구나 하고 돌아서는데 그러더래요. 

“어이 미스터 박. 혹시 한국에 박신욱 목사님이라고 아냐?” 박(朴)씨니까 그렇게 물어본 것입니다.  너무 놀래가지고 우리 아버지라고…그랬더니 그 사람이 더 놀래는 거예요. 그분이 감리교회 구호물자를 보내는 데에 연관이 되가지고 박신욱 목사님하고 친분이 있는 분이에요. 박신욱 목사님을 존경하고 있던 분이에요. 한국에서 박 씨 성을 가진 젊은이가 취직을 하러 왔으니까 회사에서 인터뷰를 하다 조건이 안 맞아서 돌려보내다가 박신욱 목사님이 생각이 나서 “당신 박신욱 목사님 아냐?” 물었는데 그때 아들이 뭐라고 그랬어요?  ‘father, my father’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끌어안고 울더랍니다.  

얘기를 하면서 당신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내가 얼굴은 못 봤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인데… 야, 감사하다. 고맙다 하면서 그분이 그 큰아들 박정찬 목사님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그 주변머리도 없는 아버지, 옷 한 벌 안 주던 불만 많은 아버지덕에 그 회사 사장 아들이 되고… 앞길이 확 열렸답니다. 

이 박정찬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때에 우리 아버지가 우리들에게 구호물자를 줘서 입고 먹었다고 하면 오늘 내가 이런 축복을 받지 못했어. 우리 아버지는 그것이 수단(手段)일 뿐이지 목표(目標)는 아니라는 걸 알았어.” 합니다. 성도여러분,  만약에 구호물자를 빼돌려가지고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주신 것이야 하면서 그거 가지고 자식들을 공부시켰다고 하면 하나님이 자식들에게 그런 축복을 주셨겠습니까??
 
우리는 종종 일시적인 현상을 축복의 전부인 줄 압니다.  병을 고치면 그게 전부인 줄 알고,  물질 축복 받으면 그것이 전부인 줄 압니다. 그러나 병고치고 다른 짓 하면 그게 무슨 축복입니까?  물질 받아서 다른 짓하면 그게 무슨 축복입니까? 아니잖아요.   어떤 부흥강사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가 20여 년 동안 930회를 부흥회를 다니면서 자기 집회에 수많은 암환자가 일어나고 숱한 병자가 병 고침을 받았지만 그 사람들의 그 후의 생활을 그 사람들 담임목사님을 통해서 통계를 내보면 정말 죽을병을 고치고 그들의 인생이 바뀌어 져가지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숫자가 10%도 안 된다는 거예요.  

기가 막힌 현실 아닌가요? 그럼 누가 진짜로 충성을 하느냐?  말씀으로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말씀 앞에서 마음을 바꾸고, 순종하고 복종해서 생활을 바꾼 사람들이  90%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돈 주세요.’ 거기에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내 자식들 잘되게 해주세요.’ 거기에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또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회개를 하는 것을 책에서 보았습니다.   이 분은 자라나는 다음세대를 키우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교회 학생들이 고3만 되면 이름을 성경책에다 넣어놓고 ‘하나님, 이놈 합격시켜주세요. 이놈 공부도 못한데요. 하나님, 그러나 그냥 시험장에 가서 번쩍번쩍… 담임목사님이 기도해줘가지고 3번 찍을까 그러는데 성령이 1번 찍어라’ 되게 해주세요.  그렇게 아이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기도를 반성한답니다. 이제는 학생들을 불러서 “너희들이 합격할 수 있도록 내가 기도해주마. 너희들이 땀 흘리고 공부할 때 내가 너희들을 위해 기도해 주마. 그러나 합격하는 게 네 인생에 전부가 아니다. 그건 수단일 뿐이지 하나님이 네게 주신 목표가 있을 것이다. 네 목표가 무엇인지 먼저 기도하자. 목표가 분명하면 하나님은 수단도 선하게 이끌어 주실 것이다.” 이렇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너희들 합격 하면 어떻게 살거니? 네 삶의 목표가 무엇이니? 하나님이 너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니? 사람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다 달라. 그렇기 때문에 네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네게 원하시는 목표를 깨달아라. 그러면 내가 목표가 있는 너희를 위해 기도하마. 이제는 내가 수단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겠다. 대학 합격이라는 수단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겠다.”  한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하나님이 내 기도 응답해 주시면 그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게 수단입니다.  ‘건강하게 해주신 하나님 영광을 위해 내가 살겠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물질을 주시면 저 그 물질 멋있게 쓰겠습니다.’ 아멘? 그렇잖아요.   ‘물질 주세요,’ 거기서 끝나지 마십시다. ‘병 고쳐주세요.’ 그걸로 끝내지 마십시다.  많은 교인들이 거기까지만 기도하기 때문에,  목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목표 없는 삶은 마치 만나에 취해서 사막 땅이 그게 하나님이 주신 것처럼 착각을 해버리는 것과 같아요.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온 교인들이 기도하기를, “저 감옥 안에서 구출해 주십시오. 저 감옥 문이 열리게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집중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했더니 베드로가 갇혀있던 감옥 문이 열려지게 되고, 생각지도 않게 사도바울도 감옥에서 나오게 됐어요. 우리가 생각해보면 기도가 이루어 진 거예요. 그렇죠? 기도가 이루어졌으니까 이제는 편안하게 숨어서 갇히지 않아야 됩니다. 이제는 위험 부담이 있는 일은 하지 않아야 됩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나온 사도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나오자마자 선교 현장으로 갔어요.  이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같으면 감옥 안에서 ‘감옥 문이 열려지게 하옵소서.’ 하고, 감옥 문이 열렸을 때 ‘할렐루야.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주셨네. 아, 우리의 기도는 이루어졌네요.’ 거기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사도들은 그렇지 않아요. 감옥에서 나온 날부터 선교현장으로 갑니다. 감옥에서 나와야 할 목표가 그들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수단이 우리의 인생을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목표가 우리의 인생을 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의 본질입니다.  기도는 목표를 이끌어가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한나를 보십시오. 한나가 서원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합니다. 이상하지요?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여호와께 드리고’ 합니다.  그러면 한나에게는 뭐가 남습니까?  아무것도 안 남지요. 그러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이런 기도를 뭐 때문에 합니까? 한나의 기도는 목적이 있는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아들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봐라 나도 이제 아들이 있다.’ 이렇게 자랑하는 것이 한나의 기도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나는 ‘만군의 여호와’ 께 기도합니다. ‘만군의 여호와’ 는 남편과 남편의 집안이 대를 이어서 하는 기도입니다. 그 내용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여호와입니다. 즉 영적인 암흑속에 있는 이스라엘 나라가 ‘만군의 여호와’를 만나게 되기를... 자기에게 자식을 주시면 자기 자식을 통해 ‘만군의 여호와’를 이스라엘이 체험하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자기는 여전히 자녀가 없어도 된다는 기도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문제가 있을 때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응답이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을 아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만나가 우리의 목표가 되지 않게 하시고, 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기를 바랍니다.  한나처럼 되기를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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