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마 5:21~37)

첨부 1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마 5:21~37)


장래가 촉망되는 한 시나리오 작가가 병마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영화 산업계의 구조적 병폐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고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영화 산업 시스템의 문제로 명백한 타살이다!” 전국 영화 산업 노동조합은 고인의 죽음에 대해서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노조는 그 성명서를 통해서 고인은 시나리오 작가로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그녀의 작품들이 제작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바람에 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에는 작가의 재능과 노력은 착취하고 단지 이윤 창출의 도구로만 쓰려는 영화 산업계의 잔인한 논리가 숨어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실제로 시나리오 작가 같은 영화 스태프들의 평균 소득은 월급으로 치면 52만원이 채 못 된다고 합니다. 고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명백한 타살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가 과연 영화 산업계에만 해당되는 문제입니까? 우리는 그들에게 돌팔매질만 하고 있어도 괜찮습니까? 이 세상의 빛이라고 자처하는 교회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과연 뭘 했습니까? 

청년 실업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이 시기에 어떻게 수천억짜리 초호화 예배당 건물을 지을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런 건물이 도심 한복판에 들어서면 어두움이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 세상이 이렇게 어두운 것은 교회가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오늘 봉독한 말씀은 주님이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산상 수훈으로 잘 알려져 있는 설교의 한 부분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니기 어렵습니다. 교회가 마치 개인의 소유인 것처럼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목사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파당을 짓는 것으로 모자라서 목사들끼리 서로 치고 받는 추태까지 연출하지 않습니까? 여기저기서 신도들에 대한 목사들의 성추행이 고발되고 있습니다. 또 천문학적인 액수의 교회 재정을 제멋대로 쓰다가 목사가 법정에 서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세상을 밝히는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교회는 이 세상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인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방식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때문에 먼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먼저 노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1~22) 주님이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하시는 것 같습니까? 그렇습니다! 거의 불가능한 것을 주님은 요구하십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는 반드시 요구되는 삶의 자세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의미는 생명을 살리는 것에 있습니다. 교회는 당연히 살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생명을 죽이는 일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미움이나 욕설도 또한 금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생명이 귀하면 내 이웃의 생명도 또한 천하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 이번에는 더욱 힘든 것을 요구하시는 것 같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얼마든지 지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요구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마음의 생각에서 모든 행동이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외과적인 수술을 할 수는 없지만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음욕이 틈타지 못하도록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깨끗한 것만 생각하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내 생명과 더불어 상대의 생명도 천하보다 귀한 것으로 생각하면 얼마든지 음란한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마지막으로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 5:33~37)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습니까? 어떻게 전혀 맹세나 서약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때문에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함부로 맹세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서... 그러나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2) 그렇습니다! 거짓말 하는 것은 악한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때문에 주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짓말을 입에 담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진실만을 말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관심은 임박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혹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이유도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으면 가난은 그 자체가 저주입니다. 결코 가난을 미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난을 미화하려고 해서도 아니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난이 하나님 나라와 연결될 때에 놀랍게도 참 복의 통로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나라가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종말론적인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주님의 말씀은 미래의 차원에서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장 여기서가 아니라 나중에 주어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기독교 신앙은 기본적으로 종말론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는 것처럼 궁극적인 생명이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미래의 사건일 뿐 아니라 현재의 역동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가까이 왔다는 것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은 이 세상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 자유를 확보한 사람은 비록 가난할지라도 이미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린다는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세상 재미에 푹 빠져 지낼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죽음은 우리를 피해 가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 최선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의식할 때에 비로소 오늘의 삶에 충실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정말 힘든 것 같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같은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온통 흔들고 있지 않습니까? 추하고 더러운 것은 더 이상 정치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교회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더 이상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오직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고 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빛으로, 소금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충성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주님 보좌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을 듣는 참으로 복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