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들 (고전 16:10-18)

첨부 1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들 (고전 16:10-18)


지난 명절에 mbc 방송국에서 40대 이상의 사람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오랜만에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세시봉 특집이었습니다. 70-80년대에 목소리와 기타 하나만을 가지고 포크송을 부르며 대중들을 사로잡았던 몇몇의 가수들이 나와서 주옥과 같은 노래를 들려주며 감동을 주었습니다. 제가 볼 때에 많은 사람들이 세시봉의 특집에 환호하는 것은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이장희 등이 부르는 아름다운 하모니가 이뤄지는 노래도 노래이지만 그들이 수 십년 동안 함께 하며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서로를 향해 변하지 않는 우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하고 끈끈한 우정을 그들을 통해서 보면서 휴머니티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기에 사람들이 감동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참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인생은 만남입니다. 계속적인 만남이 우리 앞에 열려 있습니다. 만남을 통해서 우리들은 변화를 주고 변화를 받습니다. 영향을 끼치고 영향을 받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인생에서 무엇을 아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를 만나느냐도 중요합니다. 성공하는 인생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성공적인 만남이 있습니다. 반면에 실패한 인생에는 후회스러운 만남이 있습니다. 그 만남이 어떠한 만남이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바울 자신과 어려움에 처해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수많은 분쟁이 있던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와 성도들로 인해 목회를 하는 바울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린도교회 안에 바울과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성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어려운 일이 있고, 성도 간에 분쟁이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새 힘과 지혜, 그리고 웃음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17-18절에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은 채웠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고 말합니다.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과 바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 가운데서도 스데바나를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시원하게 하였다는 것은 새 힘을 불어 넣었다는 의미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힘들고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불어 넣어주며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준 것입니다. 

스데바나가 목회를 하는 바울과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 것은 바로 ‘섬김’을 통해서입니다. 15절에 보면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스데바나와 그의 가정은 아가야 즉, 고린도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은 복음의 첫 열매라는 사람입니다. 스데바나는 고린도교회를 이끌어가는 바울과 힘들어 지친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바울과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은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도 아니고,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은 사람도 아닙니다. 교회에 대해서 옳고 그른 것을 잘 따지는 사람도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묵묵히 섬기는 사람입니다. 교회 공동체와 목회자에게 새 힘을 불어 넣어 주기 위해 섬기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스데바나의 섬김을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과 비교해 볼 때 아마 그는 요셉과 같은 성품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셉은 평탄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고되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고난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든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를 일으키며 아픔을 만들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힘을 불어 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애굽에 종으로 판 형제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디발 장군의 아내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은혜를 입은 것을 잃어버린 높은 관리들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과 평안을 주었습니다. 그는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피스 메이커였습니다. 그를 만나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우울 했다가도 그를 만나면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과 힘, 용기를 주며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때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병력이 부족하고 또 졸지에 일어난 전쟁이기 때문에 각 지방의 젊은 청년들은 영장을 받은 후 큰 도시로 집결해서 기차를 타고 훈련소로 갔습니다. 당시 국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장정들을 태운 기차는 주로 밤늦게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워싱턴에도 밤마다 유니온 기차 정거장에는 수백 명의 장정들이 몰려들었고 시민들이 나와서 그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시민들 가운데 밤마다 늦게까지 다리를 절면서 뜨거운 코코아 잔을 쟁반에 들고 젊은 장정들에게 봉사를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임시로 마련된 주방에서 친히 코코아를 끓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장정 하나가 그 노인을 자세히 보니 보통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대통령이었습니다.‘각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니십니까.’ 루즈벨트 대통령은 소아마비로 인해 자유스런 몸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육체의 불편을 무릅쓰고 밤마다 기차 정거장에 나와 떠나는 청년들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들고 다니며 봉사했습니다. 대통령이 친히 기차 정거장에 나와서 따라주는 코코아를 마신 청년들의 사기는 대단했습니다. 이처럼 섬김은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합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가면, 다른 사람에게는 마음의 시원함을 주며, 자신에게는 영광이 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은 ‘협력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16절에 ‘이 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하셨습니다. ‘이 같은 자들’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스데바나가 섬김의 삶을 살 때 그 모습을 보고 함께 섬김의 일에 동참한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를 말합니다. 어려운 일을 가지고 어떤 사람이 힘을 다해 섬길 때 그 일에 함께 힘을 모아 섬기는 사람들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과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마음의 위로와 시원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며 함께 일하라고 말합니다. 

새들 가운데 협력을 잘하는 새는 기러기라고 합니다. 기러기들이 V자 대형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비행기와 망원경으로 추적한 조류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첫째, 기러기는 혼자 나는 것보다 떼를 지어 날 때 71%나 더 오래 날수 있다고 합니다. 다. 둘째, 기러기가 V자 대형으로 나는 것은 공기대가 형성되어 뒤따르는 기러기들이 날기 쉽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뒤에 있는 동료를 조금이라도 편히 날게 하기 위하여 V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앞에서 나는 인도자격인 기러기가 가장 빨리 지친다고 합니다. 

이것을 아는 기러기들은 가끔 위치를 바꿉니다. 셋째, 기러기들은 날면서 계속 웁니다. 이것은 힘들어 지르는 비명이 아니라, 기러기의 울음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기의 위치를 알림으로써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를 격려하는 나팔 소리와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넷째, 만일 기러기 한 마리가 아프거나 부상으로 함께 비행을 계속하지 못하게 될 경우 반드시 서너 마리의 동료가 이 낙오자와 더불어 머문다고 합니다. 

새들도 이러한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더구나 사랑의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성도들이 아닙니까? 협력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무슨 일이든지 협력해야 합니다. 협력하면 일이 쉬워집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협력하면 일의 능률이 오릅니다. 협력하면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곳에 축복하십니다. 

시편 133:1~3에 말씀하시기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교육전도사로 중고등부를 지도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여름에 성경학교를 시골 학교를 빌려서 했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에 캠프 화이어를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장작을 하나씩 나눠주고는 운동장 복판에 모닥불을 조그맣게 피워 놓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모닥불이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가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닥불이 꺼져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손에는 장작이 하나씩 들려 있습니다. 모닥불이 꺼지지 않고 더 활활 타오르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손에 들려 있는 장작을 꺼져가는 모닥불 위에 얹어 놓아야 합니다. 

만약 꺼져가는 불을 보면서도 우리 손에 있는 장작을 모닥불 위에 얹어 놓지 않으면 불은 완전히 꺼지고 어두워집니다. 여러분이 꺼져가는 모닥불을 살리기 원한다면 여러분의 손에 있는 장작을 모닥불 위에 얹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이 가운데로 나아가 손에 들고 있는 장작을 모닥불 위에 얹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꺼져가는 불이 다시 활활 타올랐습니다. 제가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우리 중고등부가 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능들을 하나로 모아, 지금 우리의 장작을 얹어 놓았을 때 모닥불이 활활 타는 것처럼 그렇게 힘차게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그 해에 50 명 정도가 모이던 중고등부가 100 명이 넘는 중고등부로 성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함께 했던 학생들이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으며 각 자의 자리에서 여러 모양으로 아름답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웃들 속에서 스데바나와 브드나도, 아가이고와 같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믿음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있음으로 가족들의 마음이 시원하게 되고, 내가 있음으로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의 마음이 시원하게 되고, 내가 있음으로 이웃과 직장의 동료들의 마음이 시원하게 되는 향기 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특히 3월 3일부터 알파 5기를 시작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입니다. 

많은 도우미들의 헌신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게스트를 초대하는 일이 우리에게 관건입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동하시는 분들은 물질로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시고 그들을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섬김을 통해 교회 공동체를 시원하게 하는 역사가 주의 백성들을 통해서 이뤄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