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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아, 부자여! (약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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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부자여! (약 5:1-6)


충분히 재산을 비축해 놓은 사람을 부자라고 부릅니다. 자, 문제를 하나 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될까요? 첫째, 1년에 10억 버는 사람. 둘째, 1년에 30억 버는 사람. 셋째, 1년에 100억 버는 사람. 이 중에서 누가 부자가 될까요? 
사실 이 질문에는 답이 없습니다. 비록 1년에 100억을 버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1년에 150억을 쓴다면 그 사람은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부자가 되는 사람은 수입에 상관없이 버는 것보다 덜 쓰는 사람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고을에 만석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안은 날이 갈수록 재산이 늘어났으며, 알부자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 고을에 사는 한 가난한 젊은이가 자신도 큰 부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만석꾼에게 부자가 되는 비결을 배우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용기를 내어 부자를 찾아갔고, 무릎을 꿇고는 부자가 되는 비결을 가르쳐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 부자가 젊은이를 데리고 뒤뜰로 갔습니다. 

“자네가 진정으로 부자가 되기를 원하니 내 그 비결을 가르쳐 줌세. 자 저 감나무위로 올라가게.” 
부자의 비결을 가르쳐 준다면서 갑자기 감나무로 올라가라니 젊은이는 의아했지만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감나무로 올라갔습니다. 감나무 중간 쯤 올라가니 그 부자 노인이 이번에는 가지 하나에 매달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젊은이는 감나무의 큰 가지하나를 골라서 두 손으로 매달렸습니다. 그러자 부자 노인이 이번에는 왼손을 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젊은이는 오른손 하나로 가지를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그 노인은 그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젊은이는 마른 땅에 떨어질까 봐 오른 손에 온힘을 다해서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어르신, 도대체 부자의 비결은 언제 가르쳐 주실 거요. 팔이 아파서 죽을 것만 같소.” 
그제야 그 노인이 한마디 했습니다. 
“만약에 자네에게 돈이 들어오면 지금의 오른 손이 감나무 가지를 잡고 있는 것처럼 꽉 잡고 절대 놓지 말게. 그게 바로 부자 되는 비결일세.” 
들어온 돈을 보내지 않고 차곡차곡 쌓는 것이 부자 되는 가장 기본적인 비결인 것입니다. 그 노인이 오늘날 부활한다면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있을 법합니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저금하십시오.” 
“월급이 쥐꼬리만 해서 쓰기도 바쁜데요.”
“그래도 저금하십시오.” 
“공과금도 밀려 있고, 집안 행사도 겹쳐 있어서…….”
“먼저 저금부터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부자 되는 비결은 어쩌면 간단합니다. 내가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적으면 됩니다. 얼마를 벌든 그것보다 적게 쓰기만 한다면 당연히 돈은 모이게 될 것이고 이윽고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같이 부자는 인색하다는 평을 듣는가 봅니다. 그만큼 그들은 결코 함부로 돈을 쓰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백만장자만 돼도 부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기야 쌀 한 가마가 1원씩 하던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억만장자라고 해도 부자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물가가 올랐기도 하거니와 우리의 가치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를 가지고 있어야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부에 대한 요한 웨슬리의 유명한 설교가 있습니다. 
첫째, 열심히 돈을 벌어라. 
둘째, 허비하지 말고 많이 저축하라. 
셋째, 선한 일에 아낌없이 써라. 
우리들 가운데 재물을 많이 가지고 싶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돈 많은 것이 싫은 사람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부자를 대하는 우리들의 잣대는 이중적입니다. 누구라도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도 부자라고 하면 흔히 도둑놈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부자들은 다 도둑질을 해서 부자가 된 것입니까? 물론 누구는 부모를 잘 만나서 물려받은 유산으로 부자가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재벌들이 그만큼 성장하기까지 원래부터 부자였던 집은 없었습니다. 그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이 그렇듯 자녀를 교육시키는 것도 자식만큼은 부자소리는 못 들어도 남부럽지 않게끔 살도록 만들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왕이면 부자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면 더 좋겠고요. 

그건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같이 하나님께 복을 받아 모든 것에 풍족하게 누리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복에는 재물의 풍성함도 당연히 포함이 됩니다. 그런데도 부자를 부러워하면서도 욕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부자가 잘못이라는 뜻입니까? 아니죠. 부자가 결코 잘못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보면 믿음의 조상들은 다 부자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자였고, 하나님이 칭찬하던 믿음의 사람 욥이 부자였으며 다윗이 부자였고, 바나바 같은 사람도 부자였습니다. 

오늘날 예수 잘 믿는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부자입니까? 우리나라만 해도 지독히도 못살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날처럼 잘 살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6, 70년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시기가 같이 맞물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히 답이 나올 줄로 압니다. 

부자가 되는 자체를 성경은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예물 함에 두 렙돈 드린 가난한 과부를 칭찬한 것도 그의 가난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자기의 전 재산을 드린 그 헌신된 마음을 칭찬하신 것이요 부자 청년에게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신 경고는 그가 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부자가 범하기 쉬운 죄가 있다 다시 말해서 부자가 된 경우에 큰 위험이 있다는 것을 경고해 줍니다. 본문에서도 부자가 범하기 쉬운 죄가 무엇인가를 경고해 줍니다. 이 경고를 무시할 때 부자에게 임할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이렇게 말합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야고보는 부자들에게 앞으로 임할 비극을 생각하고서 울고 통곡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자가 무서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범하기 쉬운 죄가 무엇입니까?
재물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 가운데 하나임을 우리가 분명히 믿는다면 그렇다면 오늘 주시는 말씀을 반대편에서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너희 재물은 싱싱하고 너희 옷은 잘 간수되었고 너희 금과 은은 광이 나니 이 광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하나님의 은혜가 너희 영혼과 육체에 가득하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선용하였도다.” 이렇게 된다면 더 이상 우리의 재물이 결코 비난받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모든 칭찬과 존귀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2:16~21에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그리고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지니고 있는 재물이 썩은 재물이요 녹이 슬거나 좀이 먹지 않도록 하는 비결은 바로 구제하는 것입니다. 잠언 11:24~25에서도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고 했습니다. 

눅 6:38은 우리에게 부자가 되는 비결을 말씀하십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먼저 주라고 하십니다. 흩어 구제하고 나눠주고 주의 일에 수고하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섬기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부자가 되도록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보십시오. 전 5:19은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고 신 8:18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나의 노력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재물 얻을 능력을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야 재물과 부요를 능히 누릴 수 있는데 누구에게 그렇다면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셔서 재물과 부요를 능히 누릴 수 있게 하는가 하면 이와 같이 흩어 구제하는 것이요 선교에 힘쓰는 것이며 주의 일에 수고하는 이들을 위하여 힘써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가난한 자를 더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품꾼은 그날의 삯을 받아야 자기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삯을 주지 않는다면 결국 굶주린 채 밤을 지새워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이 배고파 울부짖는 그 소리를 어찌 들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주셨던 말씀을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마땅히 베풀어야 할 선을 베풀지 않으면 그것이 곧 죄라는 것입니다. 이는 약 4:17에서도 똑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당연히 마땅히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칫 자기 생각만 하고 내일로 미루다보면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리게 되고 그렇게 될 때 나타나는 결과는 참으로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하나님이 그것을 그대로 두고 보시겠습니까? 모르드게가 에스더에게 하는 말이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고 한 것처럼 부자가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른 데 다른 사람을 통하여 그 일을 하실 것이지만 부자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지금 야고보가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한 가지를 더 말씀하십니다. 마 6:20에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늘에 쌓을 수가 있습니까? 잠 3:9~10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권면합니다. 그렇다면 재물과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십일조와 감사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 하면 그것이 곧 우리의 재산에 대한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것을 잘 관리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는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재물을 우리들에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재물을 가져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하나님 앞에 드리고 그리고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시고자 하시는 자들을 위하여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사용하며 거룩한 사업에 부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들을 향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부르시며 더욱 많은 것으로 맡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딤전 6:17에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돈이 있다 보면 자칫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물론 돈이 있으면 편리한 것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돈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를 멸시하는 이유도 단 한 가지 돈이 없다는 것 때문이 아닙니까? 돈이 있기에 가난한 자를 무시한다면 하나님이 그러한 자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 부자가 음부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자기 집 문 앞에서 구걸하는 거지 나사로에게 선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부자는 날마다 잔치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사로에게 베풀 수 있는 선을 마다했습니다. 심지어 개가 와서 그 헌데를 핥기까지 할 정도로 나사로가 병들어 있었지만 그는 결코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나사로가 거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앉은뱅이 거지가 한 푼 달라고 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금과 은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당신에게 줍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십시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그 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가 곧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섬김이 우리들 모두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부자는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베풀 마음이 있는 사람이 바로 부자입니다. 섬기며 드릴 마음이 있는 사람 그가 부자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자야 말로 더 많은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하나님이 풍성하게 채우심을 기억하십시오. 한데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하지 못한다고 조금 살만하게 되면 조금 남들보다 낫다고 하게 되면 그만 자기만 못하게 느껴지는 사람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습니다. 누가 부자입니까? 비록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내게 있는 작은 것을 가져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믿음으로 섬길 수 있었던 사르밧 과부 그가 진정 부자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비록 자기도 과부였지만 자기의 있는 재산으로 다른 과부와 고아를 섬겼던 다비다 그가 진정한 부자였습니다. 자기에게 아이 없는 아픔이 있지만 그 아픔을 딛고 엘리사를 섬겼던 수넴 여인 그가 진정한 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부자입니까? 참으로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여러분에게 주심으로 모든 복을 누릴 뿐 아니라 재물에 있어서도 풍성함을 누리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동안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한 신용카드회사가 인기 탤런트를 통해 홍보한 멘트로 히트를 쳤습니다. 지금도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아마도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말로나마 충족시켜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자를 꿈꿉니다. 그렇다면 부자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람의 눈높이에 따라 각자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만큼 재산을 소유한 사람을 뜻합니다.

하지만 부자가 된다는 것이 재산의 많고 적음만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정당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자답게 산다는 것은 돈을 벌었다는 그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돈을 쓰며 사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출판된 ‘경주 최 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은 어떻게 돈을 벌어 부자의 대를 이어가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 속담에도 ‘부자가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최 부잣집은 300년 동안 10대에 걸쳐 부자로 살아왔으니 참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들이 부와 존경을 함께 받을 수 있었던 비밀을 살펴보면 ‘부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위만을 가져라. 만석 이상 재산을 가지지 말고 만석 이상 재산이 늘면 그 이상 되는 재산은 인근 각처에 나누어주라. 지나가는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함께 일하고 일한 만큼 가져가라. 근검절약 정신을 실천하라. 덕을 베풀고 몸으로 실천하라.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기쁘게 버려라.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라’ 등입니다. 여기에 참 부자가 되는 덕목들이 넘쳐 있습니다. 우리가 최 부잣집처럼만 살아간다면 우리 모두는 이미 부자가 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려면 먼저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것입니다.

“부자로 죽는 것보다 부끄러운 일은 없다”고 말한 철강왕 카네기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부자보다 자선 사업가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록펠러, 세계 1위의 부자로 살면서 그 엄청난 재산을 사회에 내놓고 은퇴 후 자선 활동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한 빌 게이츠의 소식을 들으면서 미국이 왜 최대 강국이 되는지를 생각해봅니다.
어떤 사람이 “내 재산의 반을 무조건 주겠다”고 약속했을 때, 그 사람이 부자인가 가난한 사람인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억만장자가 그런 약속을 했다면 우리는 너무나 흥분하여 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이제 고생 끝! 행복시작 아닙니까? 
그런데 똑같은 약속을 한 푼 없는 건달이 했다면, 그의 약속에 가슴이 뛰기는커녕 기대할 것도 없고 오히려 기분이 나쁠지도 모릅니다. 

“무엇이든 구하는 대로 주겠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나는 어떻게 믿고 있습니까? 그분의 약속에 흥분이 되고, 기대가 되고, 가슴이 뜁니까? 그분은 나에게 억만장자입니까? 아니면, 그분의 약속은 빈털터리 건달의 약속과 같습니까? 
그분은 나에게 억만장자입니까 아니면 빈털터리 건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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