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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갑옷을 벗은 몸으로 (삼상 17: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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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을 벗은 몸으로 (삼상 17:37-45)


우리 교회 교육부가 요청하는 시설이나 내용들을 항상 제가 열심히 들어주면서 나름대로 많은 생각이 듭니다. ‘나도 어렸을 때 이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주일학교 교재도 참 충실해졌고, 시설도 좋고, 선생님들도 많으시기 때문에 교회 교육은 정말 활성화 되어 있습니다. 제가 주일학교를 다니던 60년 전을 생각하면 시골 교회이기 때문에 시설은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이 뒤떨어졌었고, 다니던 주일학교는 어른예배 드리고 다 나가기 전에 잠깐 동안 유치부에서 6학년까지 한군데에 몰아넣고 기준이 없이 떠들거나 말거나 듣거나 말거나 지도했던 곳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졸업하면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가 하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부터 어른 예배를 들어가야 했습니다. 사춘기도 없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더 심각했던 것은 중학교 1학년부터 주일학교 교사를 해야 했습니다. 선생이 하나도 없는 것을 어떡합니까? 제가 주일학교 다닐 때 선생님은 이제 고등학교 다니는 형들이 했었는데 형들이 뭘 알아야 지도를 하지요? 성경공부 교재도 아무것도 없으니까 성경책 하나를 가지고 가르쳤는데 형들도 언제 성경을 그렇게 봤습니까? 주일 때마다 선생님은 없고 자기들이 다 해야 하는데 재료가 없으니까 아주 큰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매주 똑같은 설교를 들어야 했습니다. 제일 많이 하는 설교가 구약에서 하나, 신약에서 하나였는데, 구약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다윗이 돌팔매로 골리앗의 이마를 맞춰 때려눕혔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고, 신약에서는 삭개오가 키가 작아서 뽕나무에 기어 올라갔다는 이 두 가지 이야기만 계속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중학교 1학년이 되니까 저더러 주일학교 선생을 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없기 때문에 교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들은 것이 저도 그것 밖에 없으니까 저도 그것 밖에 못했습니다. 

한 가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 이야기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한번 들으면 끝입니다. 두 번 들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 이야기는 100번 들어도 그때마다 새로운 감각이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영적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복해도 괜찮은 겁니다. 만약 오늘 읽은 성경 말씀 가지고 목사 10명에게 설교하라고 해보십시오. 모두 다르게 설교할 것입니다. 왜 그럽니까? 영적 감각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중해 연안에 블레셋 족속이 있었는데 호전 민족에 싸움하기 좋아합니다. 그래서 전쟁을 잘해서 지중해 일대 모든 땅을 정복한 당시 강대국이었습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종족이 블레셋족이라는 해석을 고집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구약에 유대 민족과 블레셋족은 계속 전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둘 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둘 다 맞상대가 되도록 강합니다. 유명한 삼손도 블레셋과의 전쟁 기록입니다. 그런데 오늘 전쟁은 유대 나라 사람들의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지금 엘라 골짜기에 양군이 마주 보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블레셋 장군 골리앗이 명령했습니다. “싸워봤자 너희들 다 죽어. 그러니 너희들의 사울왕 대표자가 빨리 와서 무릎 꿇고 항복하면 살려줄 테니까 그런 줄 알아라.” 전쟁하기 전에 이러고 있는데 여기서 나설 사람이 없는 겁니다. 사울 왕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벌벌벌 떨면서 “누가 저 골리앗 앞에 나가서 싸울 것인가?” 이 골리앗 대장 신상명세서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나 되었습니다. 

계산하면 ‘2미터 93’입니다. 놀라지도 않으시네요. 그가 가진 장비는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앞에는 방패 부대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어떤 학자가 계산해 보았습니다. 57kg의 갑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이때 다윗이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전쟁 병사로 온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심부름을 왔습니다. 

이 집은 아들이 8명인데 위로 셋이 다 지금 군대 나가 있습니다. 장남 엘리압, 차남 아비나답, 삼남 삼마이 현역병으로 나가서 이 전쟁터에 블레셋 장병들과 싸우기 위해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 셋이 군대 나가서 전쟁을 하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해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막내아들 다윗을 심부름 시킨 것입니다. “너 가봐라. 너의 형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를 확인하고 와라. 내가 도저히 궁금해서 견디지 못하겠다.” “그러겠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있는 전쟁터에 와 본 것입니다. 다윗을 보자마자 이 형들이 막 꾸지람을 합니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그렇게 어른들 일에 관심이 많고 호기심이 많더니 여기까지 왔느냐? 지금 봐라. 우리나라 임금님도 죽을 판이 났다. 다 죽는다. 우리도 다 죽는다. 너마저 죽으려고 왔느냐? 빨리 돌아가라. 너까지 죽으면 아버지는 어떡하느냐? 어서 돌아가라.” 이렇게 야단을 쳤는데 다윗은 그 관경을 보고 살겠다고 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이 전쟁에 참여해야 되겠다. 이게 뭐냐? 저 사람이 도대체 누군데 우리나라의 임금님과 형들을 비롯한 군사들에게 빨리 나와서 무릎 꿇고 항복하라고 소리치는데 한명도 나가는 사람이 없느냐? 그러면 내가 나가겠다.” 지금 이러고 이 소년이 나섰기 때문에 결국 사울왕과의 면담이 이루어졌고 방법이 없는 사울 왕은 다윗의 요청을 수락한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이 입었던 갑옷과 칼을 물려주었는데 이 뜻은 일종의 권한 대행입니다. 다윗을 인정하고 이제 전쟁의 모든 명령권을 너에게 이양한다는 뜻으로 임금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체격과 다윗의 몸은 절대 차이가 납니다. 사울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키가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크더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아주 장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많이 늙었습니다. 다윗은 이제 성장기 소년입니다. 임금의 갑옷과 칼을 가지니 싸움은 고사하고 옷만 입고 칼을 들기도 힘든 상태가 되었습니다. 결국 갑옷을 벗은 몸으로 평소 자신의 옷차림으로 골리앗을 물리쳐서 민족의 위기를 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위기는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국민의 과도기 역사가 너무나도 자세히 기록한 성경 하나를 봅니다. 바로 ‘사사기’라는 성경입니다. 이것은 그 나라의 역사서입니다. 그런데 이 사사기 역사서는 똑같은 패턴으로 14번이 지나갑니다. 그래서 14명의 사사가 탄생했고 그 기간은 약 300년 정도의 과거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가 똑같이 지나갑니다. 어떻게 지나가느냐?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위기가 찾아옵니다. 

영적 위기는 왜 찾아왔느냐 하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 숭배를 온 백성들이 하는 바람에 혼란기 역사가 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그 잘못 가는 영적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심판을 내리시는데 그 심판은 전쟁과 재앙으로 내려집니다. 그러면 참을 수 없는 민족 고난이 찾아오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 가운데서 회개 운동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이렇게 민족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잘못했다.” 그래서 여기저기에서 회개 운동이 일어날 때 하나님은 사사를 하나 세워서 그 민족을 새롭게 인도해 갑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과거를 용서하시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와서 사사가 대통령의 역할을 하면서 어떤 사사는 22년, 어떤 사사는 7년 동안의 역사가 계속 됩니다. 이렇게 평화의 시대가 올 때 반드시 그 다음 순서가 영적 위기가 또 온다는 겁니다. 이러한 똑같은 역사가 반복, 되풀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나타난 인간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다른 생각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에 좋은 말이 있습니다. 

바로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라는 말입니다.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지금 유대 나라의 위기는 사울왕의 잘못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뭐가 잘못 되었느냐? 사울은 본래 처음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때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된 다음에 그 초심이 다 어디로 가고 교만을 부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안 듣습니다. 더군다나 영적 지도자 사무엘의 말을 무시하고 영적 지도자가 해야 되는 일까지 자기가 뺏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왕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들과 영적 지도자 사무엘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 이러한 이스라엘의 국론 분열의 기회를 블레셋이 알아냈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지금 침략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위기 민족 상황이 왔을 때 하나님이 그 다음에 하시는 일이 뭔가? 하나님 백성의 위기를 하나님이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절대 이 전쟁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으로 훈련이 되거나 계획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아버지 궁금증을 확인하기 위해서 형들의 생사확인을 위해서 여기 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자기 앞에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사역의 성격입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보십시오. 

독일과 이태리, 일본은 온 세상을 손을 잡고 점령해 나갔습니다. 히틀러, 무솔리니, 히로히토는 이름만 들어도 도망가고 싶은 전쟁의 절대 강자들이었지 않습니까? 그 시절 한반도는 완전히 죽은 땅이었습니다. 그러한 죽은 땅 상황에서 독립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국민이 꿈에도 기대하지 못한, 그러나 현실이었습니다. 8·15 구원의 해방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아주 분명한 것은 그때 우리 힘에 의한 구원이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조선 사람들은 다 일본군대로 나갔지 무슨 연합군이었습니까? 이것은 순전히 외부의 힘에 의한 해방이 우리에게 주어졌지 않습니까? 왜 그런 것입니까? 

신앙적으로 해석하면 역사의 주인공이 되신 하나님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실 때 한반도의 평화와 해방을 제목으로 정하셨기 때문에 우리 힘이 하나도 개입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은혜가 선물로 우리에게 그냥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힘으로라도 구원하십니다. 지금 하나님은 누구도 생각지 못하고 있던 방법 하나를 동원하고 계십니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타나는 것을 누가 계획했습니까? 누구도 알지 못했던 일이 지금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믿을 수 없는 방법을 하나님이 동원하시기 때문에 때로 하나님의 방법은 불신임을 받을 때가 성경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은 이번 말고도 성경에 여러 번 나타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전쟁에서 하시는 일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미디안과의 전쟁도 구약 성경을 보십시오. 기드온의 전쟁 병사가 4만2천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 필요 없다.” 다 돌려보내고 300명만 데리고 전쟁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대 승리를 거두는 역사 기록을 우리가 역사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다윗이 이 전쟁에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덤벼들었는가 하는 이유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지금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한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아서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옛날 출애굽 시절부터 가지고 있는 법궤라는 것이 있는데 이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의 원천이 되어 있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성이라고 믿기 때문에 법궤가 우리 가운데 있는 한 우리는 절대 승리한다는 믿음의 원천이 이 법궤입니다. 

그러니까 블레셋은 법궤를 없애버리기 전에는 항상 불안하다고 해서 자신들이 믿는 다곤 신의 우월성을 보여주려고 지금 침략한 것입니다. 여기 골리앗 대장의 큰 소리는 “우리가 믿는 다곤 신이 우월한가, 너희가 믿는 야훼가 우월한가 오늘 여기서 결판을 내자. 너희가 하나님이라고 가지고 있는 그 법궤를 오늘 우리가 빼앗아서 박살을 내어버리겠다. 너희가 다시는 그 힘의 원천을 생각하지 못하게 해버리겠다. 빨리 나와서 굴복하라.” 이러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이 나간 겁니다. 다윗이 그 골리앗 앞에 나가서 하는 말이 더 중요합니다. “저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살아계신 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 일종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고하되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이것은 신앙적 싸움이 되었습니다. 양쪽이 다 자신들이 믿는 신을 내세워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성경에 많이 나타납니다. 엘리야 선지자 바알 종교 싸움을 보십시오. 갈멜산에서 “이 제단에 너희들이 믿는 바알신이 불을 내릴 것인가? 내가 믿는 야훼신이 불을 내릴 것인가 이 자리에서 현실적으로 싸우자.” 바로 이런 싸움이 지금 또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의 전쟁 방법은 역사적으로 절대 효과가 있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한 절대 승리하니까 이 법궤를 아주 하나님으로 소중하게 가운데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온 이 세상의 전쟁 역사 가운데 가장 짧은 시간에 전쟁이 끝난 역사가 1967년 이스라엘의 6일 전쟁이었습니다.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이스라엘은 자기나라 국토에 5배 만큼 넓은 땅을 차지했는데 그때는 하루에 자기 나라 국토 하나만큼 차지하면서 6일 만에 전쟁이 완전히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들을 주도했던 군대 사령관의 이름이 다얀 모세라서 20세기 모세가 출현했다고 온 세계 신문이 톱기사로 말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국영방송은 24시간 성경말씀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불과하지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 이스라엘과 이란은 숙명적으로 전쟁할 겁니다. 이란이 핵을 갖게 된다면 이스라엘은 행동하겠다고 이미 선언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윗 시절이나 지금이나 그들은 그것만은 아주 철저하게 믿고 행동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지금까지 그들의 믿음이 하도 강해서 믿음대로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지금 골리앗의 갑옷과 칼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인간들이 준비한 힘의 상징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어느 나라나 막론하고 갑옷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식 무기 구입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그 길을 누구나 다 가고 있습니다. 가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시급한 문제점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고 남한은 비핵화라는 불균형이 다소 문제를 주고 있습니다. 이런 때는 사실 남한에도 더 강력한 핵이 보장되어 있어야 회담이 순조롭게 풀릴 터인데 일 년에 두 차례나 결정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나서도 아무 말 못합니다. 20대의 꽃 같은 우리 아들들이 46명이나 천안함에서 죽었고 조기잡이 고장 연평도가 쑥대밭이 되었는데도 한 번도 응징을 못하고 항상 우리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추가 도발만 해봐라. 가만 두지 않겠다.” 추가 도발 했는데도 그렇게만 말하고 있습니다. 핵이 없는 약점을 저쪽에서는 이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도 함부로 너희가 응징 못할 것이다. 핵이 있으니 골리앗 앞에 까불지 말라.”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핵을 가지고 지금 나와 있고 다윗은 아득한 옛날 재래식 무기 돌멩이 몇 개를 가지고 나온 비교가 되었습니다. 결국 이 전쟁이 다윗의 승리로 끝이 나서 블레셋 민족의 전성기 BC 1180년에서 965년의 그들의 역사는 여기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다윗 때문입니다. 이때부터는 다윗의 전성기가 되어서 다윗의 정치 40년, 그의 아들 솔로몬 통치 40년 이 80년이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빛난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 되겠습니까?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이것입니다. 앞으로 핵을 가진 나라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핵 처리가 제일 고통으로 올지도 모릅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터졌을 때 제일 피해 입은 사람들은 자기 나라 사람들이었습니다. 

40만 명의 어린이가 핵병에 걸렸습니다. 자기들 치료 방법으로는 도저히 치료할 수 없어서 일 년에 수백 명씩 샌디에이고 미국 병원에 가서 치료 받고 있습니다. 그 땅은 지금 밟지도 못하게 가시 철망을 쳐놓았습니다. 밟아도 위험하다고 합니다. 결국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핵발전소 때문에 자기나라가 망해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왜 다윗의 이 갑옷을 다 벗겨버리고 알몸으로 전쟁터에 임하게 하셨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만약 갑옷을 입고 나갔으면 갑옷 때문에 살았다고 할 것입니다. “알몸으로 나가라! 인간이 만들어놓은 갑옷도 때로는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을 초월하는 영적 갑옷이 있어서 그것이 함께 할 때 이 전쟁은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을 택한 백성들에게 주입시키고자 오늘 말씀이 쓰인 것입니다. 여러분! 알렉산더의 갑옷은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자신이 점령한 도시 70군데에다 자기 이름으로 알렉산더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BC 330년에 그의 군대는 하루아침에 예루살렘을 점령해서 ‘샬롬’이라고 하는 이 평화의 도성이 알렉산더 군대의 야전 천막으로 뒤덮였습니다. 그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세력 확장을 계속하다가 아라비아 사막의 모래밭에 쓰러져 33세로 죽었습니다. 300년이 지난 어느 날 나사렛 예수는 갑옷이 아닌, 남루한 서민 옷차림으로 나귀 새끼를 타고 똑같은 길을 올라왔습니다.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들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33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결과가 무엇인가? 갑옷과 번쩍이는 칼을 들었던 알렉산더의 나라는 영원히 사라져버렸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온 세상을 진리로 정복했습니다. 한 사람은 인류 역사의 정복을 위해서 남의 피를 가장 많이 흘리게 한 사람이요 또 한 사람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누구의 피도 흘리지 않고 자기 피를 흘린 겁니다. 지금 인류는 핵무기라고 하는 갑옷을 빨리 벗어 버려야 인류가 삽니다. 전쟁을 해서 영토 확장을 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습니다. 앞을 다투어 핵무기라는 갑옷을 만들던 그 노력으로 갑옷 제거의 역사를 만들어가야 지구촌은 행복합니다. 

1992년도 국가 합의에 의해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이 갑옷 벗기를 한 것은 아주 잘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남한이 갑옷을 벗는 순간을 엿보다 북한은 재빠르게 갑옷을 만들어 입은 것입니다. 그 옷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300만의 인민이 굶주려 죽었다고 유엔이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 북한은 자기들이 만든 그 핵이라는 갑옷 때문에 가장 큰 고난이 닥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1992년도 약속을 지켜서 비핵화로 국가 신용도를 높여야 그들은 살 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악인은 자기가 파놓은 웅덩이에 자기가 빠진다.” 이것이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갑옷 위에 하나님의 영적 갑옷이 있는 것을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게 될 거 같으냐?” 하나님이 쓰셨던 사람들을 여러분이 보십시오. 다 옷을 벗겨 버립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생활의 갑옷을 튼튼하게 입고 살던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그때부터 옷을 벗기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너의 친척 고향 아비 집을 떠나라.” 나그네로 만들고 벌거숭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내가 일평생 닦아온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이 튼튼한 갑옷과 장비를 버리고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그래서 모두 다 버리고 벌거숭이가 되어서 가나안 땅으로 오지 않았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그를 영적 지도자로 세워서 결국 그 혈통에서 인류 구원의 역사가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모세의 갑옷을 벗겨 버리셨습니다. 그는 애굽 학문을 통달한 사람이요 당시 최강대국 애굽의 왕 바로의 왕자 책봉을 받은 튼튼한 갑옷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다 벗겨버리셨습니다. 몽땅 벗겨버리셨습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저 미디안 광야 이드로 목장의 품꾼이 되어 버리셨습니다. 

그가 건강할 때는 하나님이 쓰시지 않다가 40년이 지나서 노인이 되었을 때는 “이제 다 벗었지? 너는 아무 힘도 없어. 그러므로 나와 함께 일을 해야 해.” 모세의 손에는 목동 생활을 할 때 양떼를 몰던 지팡이 하나가 들려져 있고 다윗의 손에는 늑대를 쫓을 때 사용하던 돌멩이 몇 개가 있을 뿐이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쓰임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갑옷은 때로 필요를 우리들에게 채워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생각해야 될 것은 갑옷이 없다고 한탄하거나 좌절하면 안 됩니다. 이 위에 하나님의 영적 갑옷이 있어서 내가 준비한 갑옷이 나에게 아무 필요가 되지 않는 일도 벌어지고 상대방이 아무리 처치하기 곤란한 갑옷을 입었다 하여도 한방에 돌팔매로 쓰러지게 만드는 하나님의 영적 은혜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할 때 그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무모한 악령의 지시로 갑옷을 마련한 악의 무리를 심판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살면 그 후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이와 같은 진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오늘 이 말씀이 역사적으로 기록에 남은 것입니다. 알렉산더의 군대나 히틀러의 군대나 무솔리니 군대가 남긴 것은 인류 역사의 추악한 재앙뿐입니다. 칭기즈칸은 한 때 44개국을 점령하는 세계 영웅이었지만 뭐가 남았습니까? 그의 후손들은 지금도 사막 모래벌판에 그 시절과 똑같은 천막을 치고 빈민국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에 졸업 시기라 여기저기 대학에서 졸업 설교를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와서 지난 주간에도 기독교 대학의 졸업 설교를 제가 했고 이번 목요일에도 똑같은 일을 다른 대학에서 합니다. 가서 제가 줄 수 있는 말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제 대학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오늘부터 나가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인류 대학 졸업장이 인생의 큰 갑옷이라고 생각하면서 나갑니다.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학교에서 4년 동안 진리를 배운 것은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에 의해 나의 생을 관리하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갑옷이 없다고 좌절하고 낙심하지 말고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갑옷을 입고 오늘 이 교문을 나가시면 여러분의 일생은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런 믿음으로 승리를 해야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세상 기준으로 판단을 한다면 구태여 기독교 대학에서 4년 동안 예배를 드리면서 공부한 무슨 보람이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은혜를 믿고 나아가십시오. 자신감 있게 이 교문을 나가십시오.” 

요즘에는 취직하고 대학 들어가는 문제가 너무 민감해서 서로 물으면 굉장한 실례가 되는 말이 몇 가지 있다고 합니다. 수능 시험 몇 점 맞았냐고 하면 5년 징역이랍니다. 어느 대학 들어갔느냐고 하면 10년 징역이랍니다. 요즘 취직이 잘 안되지요? “너 취직했니?” 물어보면 15년 징역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결혼도 요즘에는 잘 안한답니다. 그러니까 “결혼했니?” 물어보면 20년 징역에 처하고, 이혼율도 하도 많아서 “지금까지 아기 낳고 잘 살지?” 하면 무기징역이랍니다. 

갑옷과 철창은 내게 없어도 하나님을 믿고 돌멩이 몇 개 주워서 “저 사람 누구야? 하나님의 군대를 저 사람이 뭔데 모욕하고 있어?”라고 말했던 다윗! 그래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다는 역사! 인간이 준비한 갑옷을 초월한 하나님의 영적 능력! 여러분, 이 믿음만 가지고 계시면 다윗과 같이 승리하십니다. 모두 다윗과 같이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다윗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좋은 신앙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믿은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저 몹쓸 말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 백성에 무슨 혈육이 있는 것인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여 주사 하나님을 모욕하는 저 군대를 물리쳐 주실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블레셋과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새롭게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다윗과 같은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지금 내 몸에 갑옷이 없다 하여서 한탄 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바라보는 믿음의 능력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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