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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라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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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성공으로 바꿔라 (눅 5:1-11) 
  
  
어떤 집사님은 기도하기만 하면, "주여, 충만! 충만! 충만함을 주시옵소서!"라고, 늘 충만을 위해 기도했다. 하루는 옆에 계신 분이, 그 집사님에게 물었다. "제가 보기에 집사님은 이미 충만하신 것 같은데, 왜 자꾸 충만을 구하나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그러자 그 집사님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충만해야 하나님이, 많이 축복해 주셔서, 사업도 잘 되고, 돈도 많이 벌지요." 충만하기를 바라는 목적이, 기껏해야 돈 벌기 위해서였다. 목적이 잘못되니 어떻게 충만하겠는가? 

사도행전에 보면 "충만"이란 말씀이 많이 나온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충만했다. 말씀도 충만했고, 믿음도 충만했고, 성령과 은혜도 충만했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충만 자체를 위해서는, 한 번도 구한 적이 없다. 그들은 사명에 충성하기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 주님의 증인되는 일에, 열심을 다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사명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모든 면에서, 그들을 충만하게 해주셨다. 충만해야 전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충만해야만 헌신하고, 충만해야만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저 '충만!'만 구하다보면, 허구헛날 아까운 세월만 흘러가고 만다. 나아가서 담대하게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기 바란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자. 죽도록 충성하자. 그러면 하나님이 충만함을 허락해 주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때로는 마음에 의심이 들 때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보통 사람들은, 기도하면서 의심을 떨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무디는, 조금 특이했다. 이 분은 성경을 읽다가 의심이 생기면, 일단 성경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밖에 나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전도를 하고 돌아와서 성경을 펼치면, 의심은 온대간대 사라지고, 마음 속에 깊은 확신이 다시 든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만한 은혜를 이미 주셨다. 이 충만한 은혜를 계속 간직하는 비결은, 죽도록 충성하고, 열심히 헌신하면 된다. 

그때 주님께서 허락하신 은혜를, 계속해서 간직할 수 있다. 오늘 말씀은, 너무 잘 아는 내용이다. 어부인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도록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 날 처음 그물을 던진 것도 아니다. 밤이면 밤마다 그물을 내렸다. 고기를 잡아온 경험도 있었다. 

뜬눈으로 한 밤을 지새우면서, 계속해서 그물을 내렸다. 베드로는 자신의 기술과 경험과 노력, 이 세 가지를 총동원해서, 고기를 잡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전문적인 어부가 밤새도록 노력했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니 얼마나 허탈했겠는가? 

육지에 올라와, 그물을 깨끗하게 씻고, 심신이 피곤해 쉬려고 했을 때,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다. 베드로는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다. 그 결과가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전날의 한 숨이 변해, 만선의 기쁨이 되었다. 두 배에 가득 차게 되었다. 실패를 보상하고도 남는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우리도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모든 문제를 해결 받고,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은"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1. 베드로는 언제 예수님을 만났는가? 

베드로가 고기를 많이 잡아, 성공했을 때, 예수님이 축하해 주러 오셨는가? 아니다. 베드로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철저하게 실패했을 때, 예수님을 만났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전혀 달라진다. 자식은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부모는 자식을 잘 만나야 한다. 크면서 좋은 친구와, 스승을 만나야 한다. 좋은 직장과, 좋은 배필을 만나야 한다. 믿음 안에서 보면, 좋은 교회와 좋은 성도가 만나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누구나 자신의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볼 때, 아쉬움과 후회, 안타까운 시간들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날 실수와 실패가 많았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생활 하는 중에, 실패를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없는 줄 안다. 

그래도 한 가지 위로는, 그렇게 많은 실수와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신 손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위대한 그리스도인이라도,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주님을 섬길 수 없다.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이기고 다시 선 사람들이다. 

어떤 일에 실패했는가? 예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좋은 때다. 우리가 성공했을 때만 예수님이 찾아오시지 않는다. 우리가 실패했을 때에도, 예수님은 찾아와 주신다. 우리가 강할 때만 찾아오지 않고, 약할 때도 찾아오신다. 우리의 실패 현장 속으로, 예수님은 찾아와 주신다. 

위로해 주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 주기 위해, 낙심하고 힘들어 할 때, 예수님은 찾아와 주신다.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에게도 찾아오셨다. 나면서 눈먼 자에게도, 예수님은 찾아와 주셨다. 낙심 가운데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도 찾아와, 동행해 주시고, 위로해 주셨다. 

슬픔이 바뀌어, 기쁨이 되게 해주셨다. 'T. S. Eliot'라는 시인이 있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라고 시작하는 '황무지'라는 시를 쓴 시인이다. 그는 낙심 가운데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이, 그들과 동행하면서 위로해 주셨던 그 광경을, 다음과 같이 시로 읊었다. 

"항상 당신 옆에서 걷고 있는, 제 삼자는 누군가? 세어보면 언제나 당신과 나 둘뿐인데, 내가 이 하얀 길을 내다보면, 당신 옆에는 언제나, 또 한 사람이 갈색 망토를 걸치고, 소리 없이 걷고 있다. 두건을 쓰고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으나, 하여간 당신 곁에 서 있는 그 사람은 누군가." 

여기서 그 사람은 예수님이다. 엘리엇이 이 시를 쓰게 된 동기가 있다. 남극을 탐험했던 탐험대가, 무사히 돌아와, 사람들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그들은 남극을 탐험하는 동안, 혹한의 추위와, 극도의 피로와 싸워야 했다. 극한 상황에 처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실망과 좌절 속에 빠질 때도 많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도, 한 가지 신비로운 환상을 대원들 모두가 체험했다. 자기들 이외에, 또 다른 한 사람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 이외에 존재하는, 그 한 사람 때문에, 늘 위로를 받았다. 

그리해서 그들은 극한 상황을 이겨내고, 죽음을 이기고,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다. 그 은혜로운 간증을 들으면서, 엘리엇은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그 사람은 누군가'라는 시를 쓰게 되었다. 본래 대원들 숫자 이외의, 그 한 사람은 누구였겠는가?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인생 길을 걸어가면서, 피곤하고 힘들어 지칠 때마다,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분이 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 들어갔을 때, 함께 하는 분이 있었다. 그 분이 주님이시다. 예수님은 (마28:20)"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다. 

어려운 일을 당했는가? 어떤 일에 실패했는가? 낙심가운데 빠졌는가? 가족을 쳐다볼 면목도 없는 삶을, 살고 있나요? 실패를 치료하시는 주님을 환영해야 한다.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님은, 우리도 찾아와 주신다. 베드로는 실패했을 때 예수님을 만났다. 새롭게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을 의지했다.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다. 나중에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하는 실패가, 영적으로 큰복이 됨을 믿기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예수님을, 우리 모두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2.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무슨 말씀을 듣게 되었는가?(1-2)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들)을 씻는지라." 

무리들이 사방으로부터 몰려와서, 그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배를 잠시 육지에서 띄기를 청하셨다. 베드로가 그대로 행했다.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베드로는 무리와 섞여서, 함께 예수님의 설교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예수님은 설교를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개별적으로 말씀하셨다. (4) "…깊은 데로 가서, 그물(들)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하셨다. 무작정 배에 오른 후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지 않으셨다. 

순종의 태도와 말씀을 듣는 모습을 보시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다. 따라서 실패를 극복하려면, 놀라운 이적을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들으시기 바란다. 

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했나?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갈릴리바다의 고기가, 지금 어디에 모여 있는지 예수님은 아신다. 예수님은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전능하신 주님이다. 얼마든지 갈릴리 바다의 고기를 명해서, 베드로의 그물 안에 모으실 수 있다. 

우리도 따지고 보면, 이런 단계를 거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나왔다. 우리의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워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왔다. 베드로가 무리와 함께,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지금 함께 더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개별적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개별적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미국의 석유 왕이었던, 록펠러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다. 젊은 시절 광산업에 손을 대었다가, 큰 실패를 경험했다. 깊은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친구에게서 금광을 하나 인수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이미 캐내 갈 금은 다 캐내 갔다. 찌꺼기만 남았다. 폐광이나 다름없었다. 은행에서 계속 빚독촉은 날아온다. 또 광부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니까, 폭도처럼 변했다. 록펠러는 광산 속 깊은 데로 내려갔다. 

그곳에 돗자리를 깔았다. "내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식음을 전폐하면서, 기도의 깊은 자리로 내려갔다. 그런 가운데 깊은 은혜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더 깊이 파라. 때가 되면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리 깊게 파도, 금이 나오지를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으라는 음성을 듣고, 베드로가 말씀을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을 때,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서, 록펠러는 광부들을 독려했다. 

그리고 계속 깊이 파내려 갔다. 한참 파내려 갔을 때, 갑자기 "펑!"하면서 검은 물줄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그러나 흔한 지하수와는 달랐다. 분석해 보니까 석유였다. 유전이 그곳에서 발견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록펠러는 미국의 석유 왕이 되었다. 당대에 세계에서 제일 가는 갑부가 되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가 나아갈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지금은 더 깊이 기도해야 될 때다. 더 깊이 말씀을 묵상하고, 더 깊이 헌신하자. 때가 되면 기대했던 이상의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3.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나?(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4下)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순종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이유와 조건들이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그 사실을 먼저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5中)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우리들'이라 했다.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직업적인 어부다. 고기 잡는 일에는 전문이다. 예수님은 목수였다. 집 짓는 일이야 예수님이 전문이지만, 고기 잡는 일에는 베드로가 전문이다. 수산과 출신의 베드로에게, 토목과 출신의 예수님이 오셔서, 고기를 잡게 해 주겠다고, 지금 말씀하고 있다. 

'밤이 새도록'이라고 했다. 그물은 밤에 내리지, 낮에 내리지 않는다. 때가 적절하지 않다. '수고를 하였으되'하였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수고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그물을 내렸으니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그리고 지금은 그물까지도, 깨끗하게 다 씻어놓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다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을 하셨다. 사실 고기를 잡는 장소도 적합하지 않았다. 적당한 곳에 그물을 내려야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면, 그물이 땅에 닿지도 않는데, 고기를 어떻게 잡겠는가?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어려운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러나 (5下)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며 말씀에 순종하자 (6-7) "그렇게 하니,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만일 그물 하나만 내렸다면, 두 배에 가득 채우는 일은 없었다. 그물들을 모두 다 내렸기에, 두 배에 가득 채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우리가 순종하는 만큼,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순종하는 만큼 이적은 일어난다. 

실패가 큰 성공으로 바뀌어졌다. 경제적인 회복이 이루어졌다. 더 나아가서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영적인 복까지 받게 되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순종하기 어려운 환경과 조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순종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 예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한다. 옛날 중국의 순 임금이, 하루는 신하들을 다 불러모았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큰 항아리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을 왕궁 뒤뜰에 있는 우물곁으로 가지고 가서, 우물물을 길어, 항아리를 가득 채워라." 

그런데 항아리를 가만히 보니까, 중간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러니 구멍 뚫린 항아리에, 어떻게 물을 가득 채울 수가 있겠는가? 꾀 많은 신하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그 자리를 다 떠났다. 그런데 우직한 신하 한 사람이 있었다. 

물론 그도 구멍 뚫린 항아리를, 물로 가득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임금님이 말씀을 하셨으니, 어찌 그 말씀을 이행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계속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어다가, 항아리에 부었지만, 구멍을 통해서 쏟아져 나왔다. 

채워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임금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온종일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다가 계속해서 물을 담았다. 나중에는 우물물이 바닥나 버렸다. 두레박 소리만 요란하게 들릴 뿐이었다. 한 방울 남은 물마저도 마저 길어서 채운다는 심정으로, 남은 물을 길으려고 했다. 

그런데 우물 밑에, 큰 황금 덩어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깜짝 놀라, 황금 덩어리를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임금님에게 갖다바쳤다. 순 임금은 그것을 보고,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임금의 말에 순종하는 충신에게 주기 위해서, 하늘이 내린 상급이니, 그대가 그것을 가지도록 하게." 

그제야 다른 신하들은, 가슴을 치고 말았다. 나중에 순 임금은, 그 충신을 가까이해서, 우의정으로 삼았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언제나 더 큰 일을 맡기신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와 말씀하신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따를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와, 조건들이 있을 수가 있다. 그렇지만 순종을 시험하는 말씀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가 손해를 볼 수도 있는 모험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그대로 순종하면, 예수님이 책임져 주신다.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된다. 

성도는 신발과 같아야 한다. 신발은 주인이 가자고 하는 대로 순종만 한다. 자갈길로 가자면 가고, 가시밭길도 지나가고, 더러운 오물도 마다하지 아니하고, 불평불만 없이 따라간다. 이처럼 하나님의 종인 우리는, 자기 주장만 하지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따라가야 한다. 

어느 목사님이 중국에 가서, 성도들을 방문했다고 한다. 가정예배 처소였는데, 그곳에서는 예배를 드릴 때, 외부에서 온 사람은 절대로, 설교를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일어서서 말하면 설교요, 앉아서 말하면 좌담이 되어, 외부에서 온 사람도 앉아서 말하면, 상관이 없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좌담식으로 앉아서 설교를 하게되었다. 한 말씀을 더하라는 회중의 권유에 따라, 두 시간이나 설교를 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경청하던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오늘의 교양, 전적으로 접수합니다." 공산당이 교양 강좌를 할 때 쓰는 말이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전적으로 접수해야 한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제시해 주신 삶의 방향을, 깨닫기를 바란다. 말씀에 순종하자. 그리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함을 받고, 주님의 놀라운 축복 속에, 삶이 풍요로워지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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