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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꾸게 하시는 성령님 (행 2: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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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게 하시는 성령님 (행 2:14-21)


저는 어려서부터 특별한 꿈이 없었습니다. 인생에 대한 특별한 계획도 없었고 욕심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무엇을 그다지 열심히 했던 것도 없었습니다. 덕분에 원 없이 잘 놀았습니다. 아주 건강하게 잘 놀았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고 열심히 했던 것은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재미있었습니다. 노래를 잘 불렀고 성경암송을 잘한 덕에 교회에서 늘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는 일 년 내내 결석 한번 하지 않았고 학교에서는 변변한 상 한번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지만 교회에서는 늘 상을 그것도 일 등가는 제일 큰 상을 받곤 했었습니다. 교회가 좋았습니다.

교회가 좋으니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믿어졌습니다. 설교가 귀에 들렸습니다. 어려서부터 제법 은혜를 받을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노래를 제법 불러서 특별한 교회 절기 때 특송을 부르는 때가 많았습니다. 교인들 앞에서 노래를 자주 부르다 보니 좋은 소리가 나는 때가 있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서 제일 좋은 소리가 나는 때는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아 가슴이 뭉클하고 뜨거워졌을 때였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소리도 졌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리까지 감동을 받을 만큼 은혜 받을 줄을 알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축복이고 은사입니다.

설교가 귀에 잘 들리다보니 성경도 제법 눈에 잘 들어왔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제일 재미있는 것은 말씀의 은혜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서 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꾸게 되는 꿈은 욕심을 통하여 꾸는 꿈과 달랐습니다. 그 꿈은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냥 하나님의 식과 법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식대로 산다는 일이 죄인인 저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조금씩, 조금씩 재미있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면 땅도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는 주기도의 가르침과 같이 하나님의 뜻과 식에 순종하여 사는 삶의 끝은 언제나 천국이었습니다. 말씀이 꿈이 되고 꿈이 삶이 되는 일 그리고 그 삶이 구원이 되는 일을 조금씩 맛보고 경험하게 되면서 제에게 있어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예수 믿는 일이 되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꿈꾸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을 대신 꿈꾸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냥 믿고 따라가면 그것이 꿈도 되었고 삶도 되었습니다.

날마다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면서 읽는 성경이 너무 좋았습니다. 매일 매일 읽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기막힌 새벽’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말씀 때문에 그 말씀을 만나는 새벽이 날마다 기가 막혔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말씀이 내 삶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내 삶이 조금씩, 조금씩 말씀에 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말씀에 끌리는 삶은 언제나 꿈꾸는 삶 같았습니다.

선악과에 대한 깨달음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결정해 주었습니다. 선악과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으며 매우 중요한 결단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욕심대로 살거냐 아니면 말씀대로 살거냐?’ ‘네 삶의 주인은 너냐 아니면 나냐?’ ‘네가 네 삶의 주인이 되어 네 마음대로, 욕심대로 살면 정녕 죽으리라. 나를 네 삶의 주인으로,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말씀을 따라 살면 정녕 살리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다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었습니다.

저도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죄인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꿈이 되었고 욕심이 되었고 목적이 되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나름 공을 세운 곳에 오래 머물려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성장의 큰 물살을 타기 시작한 동안교회 담임목사 자리를 내어 놓고 50이 넘은 나이에 교회를 개척한 이유 중에 하나도 그것이었고, 개척하여 7년 만에 동안교회만큼이나 커진 높은 뜻 숭의교회 담임목사 자리를 내어 놓고 물러 선 이유 중의 하나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세상 욕심으로 꾸는 꿈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꾸는 꿈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뒷 끝입니다. 세상 꿈은 뒷 끝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꾸는 꿈은 언제나 뒷 끝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좀 부담스럽고 때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믿고 순종하면 언제나 뒷 끝이 좋습니다. 기가 막히게 좋습니다. 그것은 한 번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씀 때문에 구체적으로 꿈꾸고 생각하고 준비한 것 중에 하나는 은퇴였습니다. 은퇴를 생각하고 꿈꾸고 준비하게 된 구체적인 동기 중에 하나는 느보산에서 죽은 모세에 대한 말씀의 묵상 때문이었습니다.

전에도 설교 중에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저는 죽도록 충성한 모세를 가나안 땅에 일등으로 들려 보내지 않으시고 느보산에 올라가 죽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후 그 깊으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모세를 위한 최선이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로 제 꿈은 ‘느보산의 모세’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근사한 은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을 꾸게 되었을 때 저는 인간적으로만 이야기하자면 한창 목회의 상승기류를 타고 있을 때였습니다. 40대에 동안교회에 부임하여 제법 교회를 부흥시키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었고, 느닷없이 개척한 높은 뜻 숭의교회가 시작한지 일 년 만에 이 천 명 정도가 모이는 교회가 되었으니 50대 초 저는 나름 정점에서 마음껏 상승기류를 타고 더 올라갈 수 있어 보였습니다.

교만한 이야기지만 올라가는 것은 쉬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제게 내려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잘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내려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셨습니다. 비행기를 타보면 국내선은 도착 15분 전쯤부터, 국제선은 도착 30여분 전부터 하강을 방송하고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야만 도착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와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올라갈 수 있다고 무조건 나이 생각도 하지 않고 올라만 간다면 착륙해야 할 때 추락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갈 수 있었을 때 저는 하강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작정 교회를 키우지 않고, 교회가 점점 커지게 되면 천 명 정도씩 교회를 분립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천 명 교인을 내가 내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서 천 명 정도의 교인을 데리고 나갈 수 있는 목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교회 분립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보면 좀 건방지다고 생각할만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제게서 교인 천 명 정도씩을 뺏어 나갈 수 있는 좋은 목사 넷을 주십시오. 그 기도를 꽤 오랫동안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꿈의 기도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교회를 넷으로 분립 하려고 생각하고 결정했을 때 돌아보니 네 교회를 맡길 네 목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의 분립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를 저는 네 교회를 맡고 있는 네 목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저는 그것이 오랜 제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냥 올라갈 수 있었을 때 내려가는 꿈을 꾸게 하신 하나님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저는 지금의 저가 너무, 너무 좋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낮아짐 속에 숨어있는 높아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높아짐은 세상엔 없는 천국의 높아짐 같아 보입니다.

어려서는 본시 꿈이 없었는데 이제 나이들어 조금씩 늙어가는 때에 저는 꿈을 꿉니다. 잠을 설칠만큼 황홀한 꿈을 꿉니다. 지금의 저는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들 떠 있는 때입니다. 꿈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아주 근사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60 이후의 삶에 대한 근사한 꿈입니다.

내일 모래가 제 환갑입니다. 저는 환갑이라는 의미가 좋습니다. 인생의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가 환갑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환갑의 의미를 정말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한 바퀴의 삶을 저는 정말 잘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다시 새로 태어나는 아이처럼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그리고 그 꿈을 이루며 살고 싶습니다.

제 새로운 인생의 계획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주 단순합니다. ‘첫째, 논다. 열심히 잘 논다. 둘째, 싹수가 있어보이는 젊은이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 저들의 사역을 돕는다.’입니다.

잘 노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게 노는 것을 배우는 것이 노인에게 있어서 중요합니다. 노인의 삶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놀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노인 때 재미있게, 정신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는 노인을 행복하게 하고 그 노인을 모시고 사는 자녀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우리는 노는 것을 부끄러워 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죄악시까지 합니다. 물론 열심히 일하여야 할 때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 일과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야 할 때에 일과 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과 젊은 세대를 힘들게 하는 것 또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일과 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위하여는 노년 때 잘 노는 것이 필요합니다. 

행복하게, 재미있게 잘 노는 것을 배워야만 점점 길어지는 노년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고, 우리 노인들을 부양해야만 하는 자녀들과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저는 은퇴 후에도 자꾸 일에 집착하는 노인들을 선동하여 잘 놀게 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늙어서 잘 놀고 즐기는 것에 대하여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젊을 때는 놀 때가 아니라 일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늙을 때는 일할 때가 아니라 놀 때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요즘 젊은이들과 후배들을 보면 희망적입니다. 우리들 세대보다 훌륭한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정말 훌륭한 후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청년들과 젊은이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습니다. 밀어주고 싶습니다. 격려해 주고 싶습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니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노인들을 모아서 열심히 재미있게 놀러 다니고 그리고 젊어서 열심히 일한 덕에 모은 물질과 쌓은 경험과 경력을 이용하여 희망이 있어 보이는 훌륭한 젊은이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 주는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희년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희년의 정신이 너무 좋습니다. 50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얻은 재산을 50년 동안은 누리고 살다가, 50년 즉 희년이 되면 다시 세상에 환원하여 다음 세대에 희망을 주고 활력을 주는 일에 저는 관심이 많습니다.

갑자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이름을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미국의 어느 부자가 어느 날 무조건 돈을 벌지만 말고 지금부터는 그 동안 번 돈을 죽을 때가지 다 그리고 잘 쓰다가 죽자는 생각과 결심을 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 의대에 폴 파머라는 훌륭한 교수 의사가 있는데 이 분은 아이티에서 의료 사역을 대대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폴 파머는 요즘 시대에 로빈 훗과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동키호테 같기도 한 사람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치료하고 돕기 위하여 급박한 일이 일어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일을 저지르는 사람입니다. 어떤 때는 하버드 대학 병원에서 필요한 의약품을 훔치는 일까지 한다고 합니다. 약을 훔쳐서 아이티로 보내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도 한답니다. 그렇게 폴 파머가 사고(?)를 치면 좇아다니며 그 사고 수습을 앞에서 말씀드린 그 부자가 한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도 유산을 드리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에게만 유산을 남기지 말고 하나님에게도 몫을 드려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많은 분들이 동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요즘 그 생각이 조금 더 발전하였습니다. 죽어서 하나님께 드릴 유산을 죽어서 드리지 말고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다 쓰고 죽자는 생각입니다. 생각만 해도 재미 있습니다. 

늙어서 매달 안정적인 생활비 마련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역 몰게이지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내어 놓고 죽을 때가지 생활비를 받아쓰는 제도입니다. 제법 역 몰게이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위하여 쓸 여유가 없는 경우라면 그 비용의 마련을 위하여 집을 좀 줄이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죽으면 그 집을 팔아 자식들의 몫을 상속하게 될 겁니다. 그때 하나님의 몫도 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몫을 쓰고 죽기 위하여 큰 집을 좀 줄여서 살면서 죽어도 뗄 하나님의 몫을 쓰다가 죽을 수도 있을 겁니다. 저라면 후자를 택하겠습니다.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조금 작은 집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재미있게 돈을 쓰다가 죽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규합하려고 합니다. 함께 놀러도 다니고, 함께 모여 식사도 하고, 함께 모여 좋은 강의도 듣고, 함께 모여 성경공부도 하고, 함께 모여 여행도 다니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훌륭한 일과 사역을 하는 사람들과 단체를 만나면, 사역을 만나면 힘을 합하여 저들을 돕는 사역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유산을 모으는 것이니 돈도 적지 않게 많이 모을 수 있을 겁니다. 평생 살아온 경험과 경력들이 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 관계들이 있으니 젊은이들의 훌륭한 사역을 돕는 일은 제법 파워풀 해질 겁니다. 꼭 돈과 재산이 없어도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평생 가졌던 직업적인 경험들을 가지고 봉사할 수 있을 겁니다. 큰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놀이들을 개발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고령화입니다. 우리나라는 급격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고령화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멈출 수 없다면 이용해야만 합니다. 활용해야만 합니다. 노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작든 크든 저는 오늘 말씀드린 일을 실천할 겁니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그것을 실천하고 살면 근사할 겁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이 좋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늙은이들도 꿈을 꾸리라는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평생 예수를 믿다보니 정작 어려서는 큰 꿈이 없던 제가 나이 들어 늙어가면서 아름다운 꿈을 꿉니다. 저는 저를 늙어서도 꿈꾸게 하시는 하나님이 좋습니다. 성령님이 좋습니다.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욕심 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젊어서는 환상을 보고 늙어서도 꿈을 꾸는 복을 받으실 수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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