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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제의 건덕

  • 강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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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28 주일 오전 설교

성경 : 고전10:23-24

제목 : 절제의 건덕(健德)

 

고전10:23-24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아멘.

 

교회헌법, 정치에 제 1조와 2조에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신앙양심과 교회공동체로서 세속에 제한 없이 누릴 자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같은 맥락에서 영적 자유를 말합니다.

자유에는 영혼의 자유와 육신의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에서 놓임을 받아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하셨으니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기독교 구원의 결과는 영혼의 자유입니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갈5:1). 그런 영적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이 영혼의 자유를 얻게 된 성도는 이제 자기 신앙을 위해서도 절제가 필요하고 또한 사회관계 속에서 타인을 생각하면서 절제하며 사랑과 헌신적인 삶을 살기 원합니다. 많은 부분에서 절제의 미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절제의 건덕(健德)>이란 주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희생을 아는 자로서 절제의 삶을 실천

 

예수께서 나를 위해 희생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알게 될 때 나도 주님처럼 삶의 목적과 방법이 남을 위한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뜻으로 인생관이 바뀝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 인생의 삶을,

 

고후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갈2:20)

예수님을 믿게 되면 먼저는 자신의 생활보다 교회 공동체의 빛을 위하여 생활에 조심을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으면 공동체적 삶의 의식이 생겨납니다. 또한 불신자들이 내 언행을 보고 교회공동체를 비난할까 염려해서 행동에 조심합니다. 자신보다 주님의 이름을 아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고전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건덕을 위해 자기 언행에 견제를 하는 것은 새로운 삶의 인격이며 이 절제의 태도는 사회에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쳐집니다.

 

롬14:7-8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성도는 살아있는 자기 존재의 가치를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것이 온전한 신앙정신입니다. 그러니까 내 이기심대로 살지 않고 주님의 사랑 가운데서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가? 늘 절제하며 긴장하는 것입니다.

 

2. 절제는 자신과 타인을 함께 유익하게 하려는 것

 

예수 믿으면 자기 욕심대로 이기심에 빠지지 않고 절제를 하므로 자신도 여유롭고 타인에게도 좋게 하려 합니다. 본문 고전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사도들 당시 세상에는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우상에게 제물을 드린 후 그 제물로 도로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그것을 신자가 사서 먹으면 믿음이 연약한 자가 보고 양심을 상하게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절제하라고 했습니다.

 

고전10:25-28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우리나라 경우 제사를 지낸 집에서 이웃이라고 신자를 불러 함께 제물로 식사를 하자고 초대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사도들 당시에도 아는 사람 중에 이방신을 믿는 자가 자기들의 신당(神堂)에 초청하여 혹시 우상 제물을 함께 먹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우상제물을 단지 음식으로만 생각하고 먹는 것은 잘못이 없으나 신앙이 초보인 사람이 옆에서 보면 혹 오해를 할 수 있으니까 가능한 절제하고 안 먹는 것이 유익하다고 바울은,

 

고전8:10-13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성도로서 문화생활을 할 때, 불신세상에서는 죄가 되지 않는데, 신앙공동체 안에서는 죄가 될 수 있는 생활면이 있습니다. 그것이 신자와 불신자의 삶의 방식 차이입니다.

가령 취미 문화생활로 요즘처럼 애완견을 키운다든가 하는 생활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절제가 필요합니다. 이웃에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절제하는 것이지요. 윤리적인 죄가 되어서가 아니라 덕을 위해 절제를 하는 겁니다.

 

고전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갈5:22-23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벧후1:5 ‘..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

딤전3:2 ‘..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

딤전3: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말세가 되면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부패하고 혼돈스러워질 것을 성경은 예언하는 중에, 사회도덕성에 있어서,

딤후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절제라는 단어 엥크라테이아(ἐγκράτεια)는 self-control로 자제하고 극기하는 뜻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 절제 능력이 없어지고 맘대로 말하고 행동하려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애(自己愛)에 집착하고 이웃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살려고 하다가서 사납게 되고 선을 아예 생각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딤후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신앙에 있어 절제는 자신을 지켜나가는데 매우 중요한 의지입니다. 또한 타인을 위한 배려차원에서 관계유지를 위해 절제하는 것은 성도의 아름다운 인격이 됩니다. 신앙도리에는 분명하되 특히 타인을 위해서는 절제의 미덕을 잃지 않아서 온전한 성도의 모습으로 영광을 드러내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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