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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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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14절-17절: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멸망의 가증한 것이 뭐냐? 그게 서면 안 될 곳에 서면 그걸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게 다 일어난 일들이지만 이것도 지금 우리에게는 비사다.


성경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뭐냐? 가령 강도짓하고 도둑질하는 자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이는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이다. 살인강도는 그의 속에 있던 것이 겉으로 나온 건데 그의 겉만 보면 모른다. 속이 문제다.


목사가 자기 노후대책을 세우는 것은 속에 물질 돈이 들었다는 것이다. 요즘 여러 가지 보험도 나오는데 이것은 세상 것이다. 사람 속에 세상 것이 들어있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돈 때문에 싸우고 있다면 돈은 물질이니 그 물질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 통하지 않기 때문에 싸우는 거다. 사람 속에, 너와 나의 관계에서 물질이 끼어있으면 백성이나 왕이나 부모나 자식이나 친구끼리 안 통한다. 그게 끼어서는 안 될 일인데, 그건 너와 나를 위한 이용물인데 이 물질 때문에 너 나라고 하는 사람의 마음이 딱 닫아지면 그게 가증한 것이다. 너와 나 사이에 가증한 것이다.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에 속하는 것인 고로 그 물질은 썩는다. 그리고 시간에 속하니까 시시때때로 변질성이 있고 요동성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세상에 속한 거고, 눈에 보이는 거고, 바람 불면 날아가고, 불나면 불에 타지고 하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 하나님처럼 하나님 자리에 서면 가증한 게 된다. 물질은 이용 활용물인데 그것이 하나님 자리에 목적적으로 딱 서 있다면 가증한 게 된다. 하나님이 앉을 자리, 변치 않고 영생되고 할 그 자리에, 인간의 기쁨이 되고 행복의 극치의 자리는 하나님이신데 그 자리에 물질이 턱 세워져 있으면 가증한 것이다.


예수 믿으면서 예수 믿는 자기의 소원 목적이 세상에 속한 것, 물질에 속한 것으로 세워져 있다면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가증한 것이 끼어있다. 자기가 그 자리에 물질을 세워놓으면, 그게 목적이 돼 있으면 그 신앙은 가증한 것이다. 사람이 가증스럽게 돼버리는 거다.


예수 믿으면서도 물질에 속한 것, 시간에 속한 것, 불에 타질 것, 물에 쓸려갈 것, 바람불면 날아갈 것, 변질 변동 요동될 것이 하나님 앞에 목적적으로 세워졌다면 이건 가증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가증한 것이 역사적으로는 하나님의 성전에 돼지가 올려져 있었지만 오늘날 그 정신을 갖고 와서 보면 현재 목사가 신앙하는 소원 목적이 물질을 세워놓고 설교를 한다면 이건 하나님 자리에 가증한 것이 세워진 것이다.


나에게 물질이 없어도 내가 소원 목적적으로 물질을 좋아한다면 물질의 소원성이 그 사람 속에 들어있는 거다. 자기 속에 하나님이 계셔야 자기가 심령천국이 될 텐데 물질을 앉혀놓으니 심령천국이 아니다. 쉽게 말해서 이런 사람은 믿을 사림이 못되는 거고, 물질은 움직이니 이 물질이 움직이면 자기도 움직여야 하고, 이래저래 거짓말쟁이가 되는 거고, 흔들리는 거고, 누가 ‘예수 믿어 부자된다’ 하면 그리로 쫓아가게 되고, 그러니 자기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사람이 된다.


또 한 예를 든다면 ‘우리교회에서 예배당을 지읍시다’ 하고 예배당 건축을 목표로 세우면 신앙하는 목표 기도하는 목표 설교하는 목표가 그 예배당을 짓기 위한 목적으로 하게 된다. 그래서 ‘성전을 지어라’ 하는 성경구절을 가지고 와서 ‘우리도 예배당을 지읍시다’ 하게 되는데, 성경은 성전을 지으라고 했지 예배당을 지으라고 한 건 아니다. 성전의 의미는 예배당의 의미와는 다르다.


어쨌든 성경구절을 빙자해서 ‘예배당을 지읍시다’ 하며 성경구절을 대고, 기도를 그렇게 하면 그건 하나님 자리에 예배당이 앉아있는 거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다. 예배당 건물은 시간 속에 속한 거고, 불에 타는 거고, 썩는 거고, 지진나면 허물어지는 거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과 나, 하나님과 교회는 인격과 성품적 의사적으로 통해야 할 텐데 물질이 끼어있어서 안 통한다. 불통이다.


오늘날이 역사 초기냐, 성경이 말하는 대로, 예수님께서 그 때도 말세라고 했으니 이미 말세냐? 지금은 말세 지말이다. 말세 때는 어떤 믿음이 있다고 했느냐?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셨다. ‘예배당을 보겠느냐’가 아니라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했다.


믿음은 성도의 몸 밖에 있느냐, 성도의 몸 안에 있느냐? 몸 안에 있다. 몸 안에 예수 믿는 정신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자 하는 그 정신이 있어야 하고 말씀의 이치에서 밝아져야 하는 건데 수년 수십 년을 믿고 교회에서 직분을 얻었다 해도 자기 마음 안의 소원 목적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닮아진 건 없고 기도하는 건 여전히 안 믿는 이방인들이 원하는 세상을 늘 구하고 있으니 그게 믿음이냐?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을 얻기 위해 금식기도 하고 철야기도 한다고 그게 믿음이냐? 믿음이 아니다.


교인의 마음속에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이 기준으로 들어있으면 그건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산당이다. 산당은 숲속에 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세워놓는다. 예수 믿는 사람은 골방에서 주님과 인격적 결합적 애정적 의사단일의 속삭임이 있어야 하는데 예수 믿으면서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으로 소원하고 있으니 그 자는 산당에서 우상을 섬기는 자와 같은 거다.


유형교회 또는 예배당 안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한다는 교인이 그 마음속에 세상 물질성으로 들어있다면 전부는 가증한 무리들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불의 심판에 타질 것들이다.


서지 못한 곳이 어디냐?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이 서야 할 교회에서 진리가 바로 서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의 이치가 바로 서야 하는데 머리가 좋아할 그게 아니라 세상을 턱 갖다놓으니 교회에서 가르치고 기도하고 소원 목적하는 것이 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이다. 예를 들면 자기가 육신에 병이 들면 그 병이 나을 목적으로 예수 믿는 것. 성경은 영적인 면에서 영원히 가는 병 고침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육신의 병을 고쳐주신 것이다. 영적인 병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라야 고쳐진다.


사람과 차단되고 물질을 바로 못 쓰고 하는 것은 사람과의 인격적으로 통하지를 않기 때문이다. 서로가 물질을 소원하고 있으니 인격적으로 통하지 않는 것이다. 회사가 그렇고, 일터가 그렇고, 가정이 그러니 어떻게 통하느냐? 이건 지옥이다. 사회적으로도 돈 때문에 얼마나 야단법석이냐? 솔직히 말하자면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살림살이에 신경을 쓰느냐? 자기 월급 올리자 하는 데는 양쪽이 다 찍소리도 안 하고 올리지 않느냐? 이게 다 물질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은 애국자다.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자다. 그런데 돈 때문에 지도자가 되고, 노후대책 때문에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건 애국자가 아니다. 국가를 다스린다면 애국자가 돼야 한다. 양을 기른다면 양을 사랑하는 목자가 돼야 한다. 양을 잡아먹는 목자라면 하나님 앞에 목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한 사람의 영혼이 중하다고 하면 영혼이 바로 되는 교훈이 필요하다. 영인성장이 잘 되게 사람의 깨달음을 줘야 그게 영혼을 사랑하는 거다.


예수 믿으면서 예수이름으로 부자 되기를 바라고, 자기의 어떤 세상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라면 그게 다 이뤄지느냐? 이뤄진들 100% 다 이뤄지느냐? 이루려다 죽고, 이뤄놔도 언제 죽을 런지 모른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늘 사람이 문제다. 사람이 바로 만들어지자고 하나님께서 사람이 모본이신 예수님을 주신 것이고, ‘내가 너를 만들 때는 이런 목적으로 만들었다’ 하고 성경을 주신 건데 불타지고 썩어지고 없어질 세상 것에 소원을 하고 있으니 사람 만들어지는 건 없는 거다. 이건 예수 믿으면서도 지질이도 못난 사람이고 지질이도 욕심쟁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바로 안 만들어지면 안 믿는 사람보다 더 흉측하다. 예수 믿으면서 인격 면에서 성품 면에서 안 만들어지면 믿는 가치가 뭐냐? 자기 평생을 바로 살아도 모자랄 텐데 인생으로 태어나서 예수를 건성으로 믿다가 가서야 되겠느냐?


믿는 자기가 할 일이 뭐냐? 먹고 마시는 거냐? 아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주시는 것도 ‘나그네로 살다가 하늘 고향으로 가야 하니 그 전에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참 사람으로 만들어 오너라’ 하고 주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까지 보낸 것이다. 그럼에도 믿는 사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정신으로 소원 목적으로 하나라도 만들어지지 못했다면 불쌍하고 처절한 것이다. 그 인간 됨됨이를 생각을 해 봐라. 지금 하시는 말씀이 이거다.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이건 영의 눈으로라야 보이는 거다. 육의 눈으로는 안 보인다. 소경이니 그렇다.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우리는 다 읽는다. 그런데 ‘어떤 눈을 가지고 읽느냐’가 문제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예루살렘 안에 있는 자들이 있고, 유대 관할 아래 있는 자들이 있다. 무슨 말이냐? ‘예루살렘’이라 할 때는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다. 평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나님과 의사단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이란 하나님과 의사단일이 되는 도시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진리통치가 내려가는 것이다.


‘유대’라 할 때는 유대에 있는 자들은 멀리 관할이다. 그 관할 아래 사는 자들. 쉽게 말해서 어디에 살던 멸망의 가증한 것이, 딴 데는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들랑’으로 돼 있다. 어쨌든 멸망의 가증한 것이 하나님 자리에 즉, 물질이, 썩어질 것이, 시간에 속하는 것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 기준으로 세워지는 것을 보거들랑 예수 믿는 전체는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이다. 어느 산? 관악산? 도봉산? 말씀의 봉우리로 올라가라. 도의 봉우리로 올라가라. 그래야 네가 산다. 왜냐? 멸망의 가증한 것은 이미 불에 태울 심판거리다. 그러니 너도 그곳에 있으면 같이 타진다.


이게 지금은 안 보이느냐? 이걸 개인적으로도 불 줄 알아야 하고, 교회적으로도 볼 줄 알아야 하고, 세계적으로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가 하나님과 의사단일 성경과 의사단일로 들어가는 건지, 아니면 세상 밑으로 들어가서 그 비위를 맞추려고 있는 건지? 이게 멸망의 가증한 것이다.


우리 이웃교회에서 그렇게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나님 앞에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을 자꾸 추켜세운다. 이건 물질화 된 교회요, 가증한 것이 하나님 앞에 세워진 것이다. 이건 인간이 기준이 된 것이다. 헌금 많이 하고 충성봉사 많이 하는 인간이 기준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교인들에게 ‘그 사람 본을 받아라’ 하는 거다.


그런데 그 사람이 몸이 아파서 장사를 못해서 헌금을 못하니까 그 교회 목사가 하는 말이 ‘헌금을 안 하니 저주를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그 목사가 양심적으로 생각을 한다면 바른 종이냐? 누가 보낸 종이냐? 목사가 판단이 그렇게 들어가야 될 일이냐?


오늘날 예수 믿는다는 자기는 어떤 판단을 가지고 있는 건지? 목사의 말이 문제가 아니라 성경을 보면서 성경에서 바른 기준을 찾아서 보는 건지?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했는데 이 성경이 나온 지가 언제냐?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뜻이 뭔지도 모르고 하루하루 배불리 먹고 사니 그게 인생이 다인 것으로 여겨지느냐?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 말라.’ 그러니까 급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당시 그 지역의 지붕 위에는 기도실이 있었다는데, 어쨌든 지붕 위에 있다면 신앙의 차원이 물질에 속하지 않는 정신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이 자고 일어나면 지붕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아니라 물질에 속하지 않는 신앙의 차원을 말하는 것이다.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것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상황적으로 급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럴 새가 없을 정도로 급박하다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너에게 필요한 것마저 가지러 갈 새가 없다는 것이다. 급박성을 말한다. 성전 안에서 되어지는 걸 보고, 교회 안에서 되어지는 걸 보고 ‘이제 시간이 없구나’ 그렇게 들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롯의 처의 경우다.


‘밭에 있는 자는.’ 밭에 있는 사람은 노는 사람이 아니라 밭일을 하는 사람이다.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 밭에 있는 사람은 밭을 갈며 앞으로 가는 거지 옷을 가지러 뒤로 돌아간다면 일을 안 하는 거다. 성경을 보는 사람은 밭을 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뒤로 돌이킨다는 것은 물질을 가지러 간다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자꾸 앞으로 가야 하는데 성경을 보면서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내 문제 해결할 구절이 없나’ 하며 성경을 본다는 것이다.


성경을 가지고 점치는 사람도 있다. 예수 믿는 가정이 장사를 하면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케 되리라’ 하는 성경구절을 벽에 붙여놓는다. 이건 미신을 믿는 사람과 똑같은 부적식이다. 성경을 가지고 미신 식으로 믿는 신앙은 속에 물질욕심이 낀 것이다.


성도를 뒤로 돌이키게 만드는 건 사단 마귀의 짓이다. 창:에 보면 여자 하와의 발뒤꿈치를 깨문다고 했다. 깨물면 아프니까 뒤를 쳐다보게 된다.


17절: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을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 아이를 배고 있거나 젖먹이 아이가 있으니 도망을 갈 수가 없다. 그러니 그 아이를 내버리기 전까지는 계속 재앙은 따라 붙는 것이다.


자기 속에 죄악의 씨가 들어있는 자는, 이건 영적으로 말하는 거다. 이런 자는 세상 것에 소원 목적하고 있는 자이니 이는 아이 밴 자다. 세상에 대한 소원 목적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젖을 먹이고 있는 자는 양육자다. 말하자면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교회들을 말한다. 영의 눈으로 보면 목사가 세상에 관한 것을 가르치면 그 교회 교인들은 ‘예수 믿어 부자 되고, 예배당 키우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런 면으로 나가게 된다.


내가 아는 목사가 이 진리를 받으면서 여자들이 하는 어느 신학교에서 가르쳐 달라고 해서 갔나본데 그래도 여기서 들은 것이 있어서 학생들에게 신비주의적인 것을 하지 말라고 하니까 배우는 학생 중에 간첩이 있어서 그 설교를 듣고 학장에게 일러바치는 거다. 그래서 학장이 하는 말이 “그렇게 가르치면 안 된다. 부흥이 안 된다. 어쩌든지 붕붕 띄우고, ‘의샤 의샤’ 하고, 예언 방언하고 해야 한다”고 했단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화가 나서 더 큰소리로 따지니까 그만 쫓겨났다.


그게 신학교냐? 아니다. 거기서 배출되는 목사들이 참 목자냐? 아니다. 바알의 신당에서 가르치는 바알의 종들이다. 정신이 그렇고 사상이 그렇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목적대로 보면 이건 사람을 완전히 영원히 망하게 만들고 귀신이 들게 만드는 거다.


교회가 그런 정신으로 나가고 있으면서도 눈으로 보여지는 십자가 붙이고 간판 붙이면 진짜 교회냐? 속이 도둑이 들어있어도 옷만 잘 입으면 신사냐? 참 교회를 껍데기 표면을 보고 알 수 있는 거냐? 교회에서는 말씀을 들어보면 안다.


예수 믿어 부자 되자? 거짓말 하지 말아라. 안 믿는 사람도 부자가 많다. 그러면 성경에 부자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 영적 면에 부자요 깨달음에 부자를 말하는 거다. 물질이야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돌아서 오기도 하는 건데 물질에 욕심을 품으면 뭐가 되느냐? 사람마나 개인마다 나라마다 물질에 욕심을 품으면 어떻게 되느냐? 사람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예수를 믿어갈수록 하나님의 지혜가 생기고 물질을 지키고 다스리고 자기를 다스려 나가야 한다.


인간세상의 문제의 핵심은 뭐라고 뭐라고 해도 사람이다. 교회에서 참 사람이 되어야 할 우리 모두인데 참 사람이 되지 않으면 자기 몸 안에서부터 몸 밖에까지 뭐가 되느냐? 자기 스스로 넘어져 있는데 누구를 세우겠으며, 어떻게 전도가 되며, 가정이 어떻게 서며, 사회가 어떻게 서겠느냐? 그런 책임이 있음을 예수 믿는 스스로에게 정답을 내려 보라는 것이 성경이다.


자기가 소원 목적적으로 교회에서 뭘 배우고 있는지,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뭘 가르치고 양육하고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으로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고 있다면 어떻게 세상으로부터 도망을 갈 수가 있느냐?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 위에 떨어지는 건데 자기가 세상 것으로 품고 있다면 어떻게 도망이 가지겠느냐? 자기가 세상 것을 버리면 자기는 죽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어떻게 세상을 버리고 도망을 가겠느냐?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 위로 떨어지는 건데 어디로 도망을 가겠느냐? 어디로 도망을 가도 도망이 안 되는 거다.


일반세상은 육신적으로 아이를 배거나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면 모두 축하를 한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세상의 소원 목적을 품고 있다면 환난과 재앙을 앉고 있다고 보는 거다. 자기가 세상에 속한 그 정신, 물욕에 속한 정신 소원 목적을 자기 속에 가룟유다처럼 키우고 있다면 재앙을 앉고 있다고 보는 거다.


이게 언제부터 이렇게 됐느냐? 하나님 자리에 세상의 것을 기준으로 세운 후부터다. 선악과를 따먹은 후부터다. 자기 속에 언제부터 세상 것을 목적적으로 세워놓았느냐? 교회적으로 보면 누가 언제부터 세웠느냐? 목사가 안 세우면 누가 세웠겠느냐? 교인들 속에 산당처럼 세워진 것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의 이치로, 하나님의 뜻으로 부숴야 하는데 목사가 교회에서 설교로 기도로 세상 것을 세워놨으니 한 번 생각을 해 봐라. 사람이 전봇대를 세우듯이 물질을 세우는 것만 보느냐? 정신이 세워지는 것도 봐야 한다.


에덴동산에서 보암직한 것에 기준을 삼았다. 그렇게 되니 먹음직이 들어가고, 그 다음에 탐이 나오는 거다. 목사부터가 그렇고, 교인들 역시도 서울의 큰 교회 건물을 보고 부러워하고 있으니, 그게 보암직인데 그 소원을 먹으면 먹음직이다. ‘꿀꺽’ 하고 그 소원이 마음속에 들어간 것이다. 그게 탐스럽게 보이니 그렇다.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보이는 이 속에는 자기의 세상 것에 대한 소원 목적의 사상이 다 들어있다.


유대 율법주의 종교지도자들의 외식신앙도 마찬가지였다. 세상 마지막 시대의 교회도 그렇게 된다.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자리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 세워진다는 것이다. ‘다른 것’이라는 게 뭐냐?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한다. 말세 때는 많은 교회의 인도자들과 주님을 따르는 많은 교인들이 비진리화 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이다. 비진리란 성경을 가지고 세상 것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비진리화 된 신앙은 전무후무한 혹독한 하나님의 심판의 형벌을 받게 된다. 그걸 알아야 한다.


오늘날 자기 속에 무엇이 세워져 있는 건지? 자기 마음속에 누가 앉아있는 건지? 그걸 생각해 봐라. 딴 것은 다 잃어버려도 되지만 진리정신만은 잃어버리면 안 된다. 자기 속에서 말씀이 성령으로 잉태된 이것으로 자꾸 키우는 건지? 이걸 키우면 나오는 것은 진리활동이요 구원이다.


마리아가 성령의 말씀을 배워서 속에 말씀이 잉태가 되니 예수로 되어 나온다.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속에서 생명이 점점 커지니 구원이 나온다. 이래야 신앙이다’ 하는 것이다. 자기 속에 뭘 잉태하고 있는 건지, 그리고 궁극교회는 뭘로 양육을 시키고 있는 건지 구별하고 분별해야 한다. 그냥 교회 다니면 안 된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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