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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나팔소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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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나팔 소리 1.com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3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4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5너희가 그것을 크게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6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라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불 것이며 7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크게 내지 말며 8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9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10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민10;1-10)

   민수기 1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0장 11,12절을 보면,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12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합니다. 이 19일 동안 하나님께서는 출발 준비를 하셨습니다.  시내광야에서 인구조사를 하셨고(3,4장), 부정한 것으로부터 성결하도록 하셨고(5-6장), 열두지파가 예물을 바쳤고(7장)...하는 일들이 나와 있습니다.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본격적인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가나안으로의 여정을 시작하기 직전에...시내광야를 출발하기 직전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은 나팔 둘을 만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이 은 나팔의 용도는 3가지입니다.  
1) 나팔은 신호할 때 부릅니다. 
“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3절) 온 회중을 여호와 앞으로 부릅니다.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4절)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을 나팔로 부릅니다.
“너희가 그것을 크게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6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라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불 것이며”(5-6절) 진영이 출발할 때는 나팔을 크게 붑니다.

2) 나팔은 전쟁을 할 때에 부릅니다. 
(9절)“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대적과 전쟁을 하러 나갈 때 나팔을 크게 붑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입니다.

3) 나팔은 예배를 드릴 때 부릅니다. 
(10절)“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희락의 날과 절기에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붑니자. 이것은 찬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신호할 때, 기도할 때, 찬송할 때에 부는 은 나팔 2개를 하나님의 지시로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나팔의 첫 번째 용도인 신호용 용도에 대해서 말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성도여러분, 은 나팔 2개는 신호용 나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신호용으로 은 나팔 2개를 만들라 하십니다. 왜 만들라고 하셨을까요?  이스라엘에는 나팔이 많습니다.  주로 양각나팔입니다. 양뿔로 만든 나팔입니다. 가정들마다 다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기 때마다 그 양각나팔을 붑니다. 우리가 설에는 떡국을 먹고 세배를 하고 연을 날리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기 때마다 나팔을 붑니다. 길거리에 다니면서 사람마다 나팔을 불어제낍니다. 온 나라가 나팔소리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구분을 위해 은 나팔을 새로 만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 은 나팔은 제사장들만 불수 있습니다. 양각나팔은 모두가 다 붑니다. 이스라엘나라는 7월 1일이 새해로, 한 해의 시작인데...이 새해가 다른 말로는 ‘나팔절’입니다.  그들은 절기를 철저히 지킵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유대인들도 자기 월력으로 7월 1일, 새해가 되면 명동, 압구정동 다니면서 양각 나팔을 막 분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은 나팔은 아론의 제사장들만 불수 있는 구별된 나팔입니다.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8절) 은 나팔은 아무나 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제사장만이 나팔을 붑니다.  “대대에 영원한 율례” 라고 하셨습니다.
  또 이 은 나팔은 신호용이기에 그 부는 방법도 정해져 있습니다. * “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3절)  *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4절)   *“너희가 그것을 크게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6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라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불 것이며”(5-6절) 나팔을 크게 부는 것은 출발할 때입니다. 처음 크게 불면 동쪽 진영들이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잇사갈지파, 스불론지파가 행진을 시작합니다.  2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르우벤지파를 중심으로 시므온 갓지파 순서로 행진을 합니다.  3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있어 행진하되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각 사람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들의 기를 따라 앞으로 행진할지니라”(2;17)  그 다음 4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서쪽입니다. 에브라임지파를 중심으로 므낫세지파, 베냐민지파입니다.  5번 째 맨 뒤는 북쪽입니다. 단지파를 중심으로 아셀지파, 납달리지파입니다.

 ** 제사장은 늘 하늘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행진하는 법칙은 민9장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행군을 할 때는 구름을 보면서 행군을 했습니다.  (민9;17,23)“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23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구름 기둥이 움직임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그런데 오늘 본문 10장에서는 제사장의 나팔을 따라 행진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제사장이 구름을 보고 나팔을 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구름을 따라 하는 것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구름대로 나팔을 부는 것이 제사장의 일입니다.  성도여러분, 제사장은 항상 구름을 쳐다보고 있어야 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항상 구름을 쳐다보는 것이 제사장의 일입니다. 
  한번 생각을 해봅니다. 구름기둥이 움직입니다. 밤에라도 구름기둥이 움직일 수 있지 않습니까? 밤이라서 제사장이 다 잠이 들었습니다. 백성 중 누군가가 그것을 보았습니다. ‘앗 구름기둥이 움직였다.’ 먼저 본 사람이 ‘야 움직이자’ 하면서 움직이면... 엉망이 됩니다.  인원이 200만 명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통일성 있게 움직이도록 신호를 만들어 내는 것은 나팔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맨 앞에 법궤. 그리고 동쪽의 유다지파부터입니다.  그러면 유다지파는 어떻게 움직이나요.. 발 빠른 사람이 먼저 갑니까? 짐 정리 먼저 한 사람이 앞서갑니까?  만약 짐을 뒷 지파가 먼저 정리를 마쳤다면 남쪽의 르우벤 지파가 유다지파를 제치고 먼저 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발 빠르고, 성질 급하고, 짐 정리 다 한사람이 먼저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이 보고 제사장이 나팔을 ‘빠앙’하고 한번을 불면, 동쪽진영이 앞서서 가고... 빠져나갔다 싶으면 또 제사장이 ‘빠앙’하고 2번째로 불면 서쪽진영이 나가고.. 이런 모든 질서를 잡는 일에 나팔을 사용하였다는 말입니다. 구름기둥을 보고 먼저 본 사람이 먼저 뛰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은혜를 받았고, 계시를 받았다고 자기 맘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초월적인 계시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지만 그 인도하심을 질서 속에서 잡아가는 일은 제사장들의 나팔소리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구름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나팔소리를 듣고 움직인다는 말씀입니다.  성도여러분, 교회는 제사장의 나팔소리로 움직입니다. 제사장의 나팔소리가 곧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8절) 나팔을 부는 것은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나팔은 하나님의 싸인을 받아서 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어디를 늘 보고 살아야 할까요?  제사장은 항상 어디에 집중을 하고 있어야 할까요?  제사장은 항상 구름을 쳐다보고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누워 잘지라도 아론의 아들 제사장들은 구름의 움직임을 집중해서 봐야 합니다.  제사장은 언제나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늘 하늘에 집중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땅을 보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여러분,  제사장은 제사를 집행하는 사람일 뿐 만 아니라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움직임을 보면서 나팔을 불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이 움직이도록 해내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늘 하늘을 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지금 온 회중을 모으라고 하시는지, 천부장을 부르시는지,  진영이 출발하라고 하시는지,  매일 하나님의 싸인을 받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싸인을 나팔로 전달하는 제사장이 매일 잠이나 잔다면...하늘은 안 보고 땅의 일에만 신경을 쓴다면.. 그래서 다른 사람이 구름의 움직임을 보고 제사장에게 와서 ‘왜 나팔을 안 부나요?’ 하면 이것이 수치요 부끄러움이요, 비극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의 제사장입니다.   (벧전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지금은 만인이 제사장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 말씀은 목사인 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솔직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종일 구름만 보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리 못삽니다. 애도 키워야 하고, 땅에 있는 만나도 주워야 하고, 직장에서 일도 해야 합니다. 하는 일이 많습니다.  어떻게 매일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삽니까? 회사도 가야하고, 빚도 갚아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다 해야 됩니다.
 항상 구름을 보는 것은 제사장이 해야 합니다. 교역자,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교회를, 지금 이 땅을 어떻게 움직여 가시는지 늘 하늘을 보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의 싸인을 나팔을 불어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람, 모든 백성들이 자기 열심과 자기 힘으로, 자기 맘대로 먼저 뛰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신호에 맞추어서 질서 있게 움직이도록 만들어 내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공동체의 움직임의 기준이 나팔소리인데... 제사장이 드라마 다 보고, 주식에 신경쓰고, 세상 일 다 관심가지면서 하나님의 싸인을 받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사역자는 더욱 깨어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살면서 하나님의 싸인 못 받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리지 아니하면 싸인 못 받습니다. 
 성도여러분, 목회자가 하나님의 싸인을 제때 제때 잘 받고, 그때마다 나팔을 잘 불어서 하나님의 싸인을 교회에 잘 알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도여러분, 이 땅이 심판을 받는다면 그 이유는 세상이 타락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타락을 해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인이 없어서 심판을 받는 것이 성경의 메시지입니다. 즉 이 땅이 심판을 받는 것은 세상에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교회가 타락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타락은 목회자의 타락입니다.  만일 이 땅의 5만 개의 교회에 5만 명의 목회자가 정말 정신을 차린다면 이 땅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며, 이 나라는 새로워집니다. 아멘인가요?    그래서 지도자를 위한 기도, 목회자가 바로 서게 해달라는 기도는 정말 중요한 기도요, 꼭 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성도여러분은 이 기도하나만 잘해도 인생에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좋은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가? 평신도를 미치게 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평신도를 미치게 하느냐? 지도자 자신이 미치면 됩니다. 복음 앞에서 자기가 먼저 미치는 것입니다. 사역자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미치고 싶어 합니다. 복음앞에서, 사명앞에서 미치고 싶어 하는 것이 평신도입니다. 조금만 복음으로 건드려 놓으면 성도는 생명 내 놓고 하나님 섬깁니다. 그래서 지도자가 먼저 미쳐야 합니다’  한국교회 100년을 지나면서 오늘 이 땅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교회의 병폐들은 다 목사의 타락입니다. 목사의 타락이 결국 교회의 타락이요, 나라의 타락입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나팔을 불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지시를 빙자하면서 자기의 생각대로 나팔을 불었다면 이것이 타락입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이 넘어지는 것을 보십시오. 한국교회를 대표하시는 그런 분들이 퍽퍽 넘어지는 것을 보십시오. 목회자는 정말 하늘만을 쳐다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목회자를 위한 기도는 가장 현실적인 기도요, 가장 중요한 기도입니다. 

** 나팔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불어야 합니다. 
(고전14;8)“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 제사장들은 항상 뛰어난 영적 컨디션을 유지해야합니다. 정확하게 듣고 정확하게 불어야 합니다. 나팔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의 대신으로 생각을 한다면,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할 때 분명하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져야합니다. 나팔을 크게 불었습니다. 동쪽 진영이 출발을 합니다. 이제 두 번째로 나팔을 크게 불면 남쪽 진영이 출발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갑자기 나팔 하나를 작게 붑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천부장이상의 지휘관들이 무슨 일인가 하면서 회막 앞으로 모이겠지요?   나팔이 이상한 음을 내면 안 됩니다. 설교를 하는데 그 설교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이건 내 소리도 아니고 너의 소리도 아니고 도대체 누구의 소리냐 명확하게 해라 명확하게.’ 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소리도 있고 내 소리도 있고, 그럴 수 있거든요?  뭔가 표시 안 나게 싸악 짬뽕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제 3의 소리입니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 분명하게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유창하게 헛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라는 건지, 가라는 건지, 서라는 건지. 혼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 자신도 설교자이지만...정말 두려운 것입니다. 기도 많이 해 주십시오.  

   - - 이제 나팔소리를 듣는 백성들의 입장에서 말씀을 살펴봅니다. 
 ** 백성들은 나팔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백성들은 나팔의 소리에 감각적으로 익숙해져야 합니다. 나팔소리를 분명하게 듣는 귀가 백성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부르는 나팔소리를 듣고 ‘이게 무슨 소리지? 회중이 모이라는 것이다. 아니다 족장들 오라는 것이다. 아니다 출발하라는 소리 같은데’ 이러면 안 됩니다. 듣는 순간에 그 의미를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은 나팔 2개를 부릅니다. 온 회중을 여호와 앞으로 부르는 신호 아닙니까?  “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3절)   은 나팔 하나를 부릅니다.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을 부르는 신호입니다.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4절) 이 신호를 자다가도, 한참 일을 하는 중이라도, 알아들어야 합니다. 나팔소리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어리버리하게 들어도 안 들은 것 같으면 안 됩니다.   
 ** 성도는 내 상황과 상관없이 나팔소리에 움직여야 합니다.
흑염소농장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흑염소는 산에 울타리를 치고 방목을 해서 키우는데... 먹이 줄 시간이 되면 주인이 종을 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흑염소들이 정신없이 달려옵니다.  어디 숨었는지 몇 마리 보이지도 않았는데 구석구석에서 본능적으로 튀어나옵니다. 그때 흑염소를 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주인의 종소리를 듣고는 그야말로 본능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달려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제사장이 부는 은 나팔 소리를 듣는 이스라엘백성들도 이래야 합니다. 온 몸에 익어있어야 하고, 본능적으로 훈련되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체질이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팔이 크게 한 번 들리면 자동적으로, 본능적으로, 동쪽의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잇사갈지파, 스불론지파가 행진을 준비해야 합니다.  2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르우벤지파를 중심으로 시므온 갓지파 순서로 행진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몸이 안 좋다. 우리 지파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너네지파가 이번엔 먼저가라..’ 이런 것 아닙니다. 주인의 종소리를 들은 흑염소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소리에 본능적으로 반응을 해야 합니다. 제사장이 추가로 사람을 보내어 이리저리 따로 지시해야 합니까? 아니오. 나팔소리 하나로 충분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나안을 향한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이 수없이 반복해서 받는 훈련입니다. 구름이 뜨는 것을 보는 것은 백성들이 할 일이 아닙니다. 백성들은 나팔소리를 듣고 움직이는 것이 할 일입니다.  나팔이 울리는데 동쪽 유다지파의 한 사람이 ‘내 지금 몸이 피곤하다. 지금은 못가겠다. 서쪽 너희가 먼저가라..’ 이것은 아닙니다. 보세요. 이스라엘은 지금 모든 배치가 군대배치입니다. 모든 조직이 전쟁을 대비하는 군대조직입니다. 친목단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군대에서, 전쟁에서 개인의 사정이 통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군대가 아니게 됩니다. 전쟁을 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 군대와는 차이가 있지요. 이스라엘의 군대는 조직은 있지만 싸움은 없습니다. 싸움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순종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으면 진짜 싸움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진배치는 전투배치로 해놓았지만 그들의 진짜 싸움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불순종입니다.  순종을 놓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군대의 특징입니다.   즉 이스라엘 군대의 훈련은 외부와의 전술, 전략, 싸움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입니다. 내안의 불순종, 내 안의 죄와의 싸움이 이스라엘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싸워야 할 외부(外部)의 적은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전사가 되셔서 하나님 자신이 직접 싸우시는 것입니다. 아멘?   이것이 오늘을 사는 신앙의 원리입니다. 전투조직이지만 가장 큰 훈련은 순종과의 훈련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전투입니다.  그래서 나팔소리에 본능적으로, 온 몸으로 반응해야하는 것입니다. 나팔이 울려도, 말씀이 들려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순종하고 싶은 것만 순종하고, 순종하기 싫은 것은 순종 안 하고,  내 몸이 피곤하면 노!,  내가 싫으면 노! 이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이방인군대에서도 없는 일입니다.  순종과의 싸움에 익숙해지시기를 바랍니다. 본능적으로 순종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지도자만 따로 부를 때가 있습니다.
은 나팔 하나를 붑니다.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을 부르는 신호입니다. 천부장이상의 지휘관들이 신속히 모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은 나팔 2개를 붑니다.  온 회중을 여호와 앞으로 부르는 신호 아닙니까?  그때 천부장이상의 지휘관들은 어떻게 할까요?  나 부르는 것 아니요 하면서 자기 장막에 그냥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참석을 해야 합니까?  당연히 참석을 해야 합니다. 온 회중이 모이는데 어떻게 천부장 이상 되는 지휘관들이 빠질 수가 있습니까?  성도여러분, 천부장이상의 리더들만 따로 부르는 신호체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리더이기 때문에 따로 모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 회중과는 다르게 리더들만 따로 부르는 시간이 있었다.’ 그렇습니다. 리더들은, 직분자들은 한 번 더 모이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한 번 더 모이지 않는 사람, 좀 더 헌신하지 않는 사람은 리더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직분자가 아닙니다. 리더는 하나님 앞에 더 많이,  더 자주,  더 깊게 나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더 많이,  더 자주,  더 깊게 시간을 내는 사람이 리더라는 말씀입니다.  성도여러분, 초신자들은 주일 낮에만 한 번 예배 오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직분자들도 주일 낮에만 한 번 예배 오는 것이 당연합니까? 아니면 주일 밤에도 오고, 수요예배도 와야 합니까? 중직자들, 항존직의 사람들은 내가 답답하고, 집에 문제가 있을 때만 새벽기도 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항상 새벽기도 오는 것이 당연합니까? 항상 오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들이 아이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따로 한 번 더 교사모임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교사모임에 오지 않는 교사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입니다. 천부장이 아니라 회중이라는 말입니다.   리더는 온 회중과는 다르게 또 한번의 헌신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 리더를 부를 때는 한 번만 불었습니다.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리더를 부를 때는 한번만 불었고, 그리고 크게 불지 않았습니다. 크게 부를 때는 행진 할 때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리더는 한 번 말해도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야 알아들으면 리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한번만 불면된다. 두 번 세 번 불 필요가 없다’ 는 말입니다. 그만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한 번만 불어도, 크지 않게 불어도 다 알아듣고 바로 모이시는 리더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 나팔을 부는 것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항상 하늘을 쳐다보고 있어야...
* 제사장은 나팔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불어야 합니다. 
* 백성들은 나팔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 성도는 내 상황과 상관없이 나팔소리에 본능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 지도자만 따로 부를 때가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여러분의 말씀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이 은혜가 되고,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변화시키기를 원합니다.  나팔소리에 순종하시고,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일상 생활속에서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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