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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의 기적 (벧전 1:23 - 벧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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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기적 (벧전 1:23 - 벧전 2:2)


최근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유머 동영상>으로 “도로 한 복판에서 일어난 기적”을 유쾌하게 감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목발을 의지하고 두발을 절룩이며 길을 건너던 한 사내가 자동차가 다가오자 이 절대 절명의 위기를 느낀 순간 그는 목발과 상관없이 두발로 순발력 있게 자동차를 피하는 기적을 연출한 것입니다. <감상해 보실까요?> 

유사하지만 한 가지 기적을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휠 췌어를 타는 한 여인이 음료수 가게에 갔다가 자기가 정말 좋아한 음료가 선반 위에 있는 것을 보고 그 음료를 먹고 싶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습니다.(사진) 

필요는 기적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적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일컫습니다. 기적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은 아니지만 분명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기적을 행하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하시매 빛이 있었고, <하늘과 땅이 나뉘라> 하시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땅은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하시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천년 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나사로야 일어나라> 하시매 그의 말씀으로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앉은뱅이에게 <일어나라>하시매 그의 말씀대로 일어났습니다. 손이 말라 펴지 못하는 자에게 <손을 내밀라> 하시매 말씀대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여러분과 더불어 기적중의 기적, 가장 위대한 성경의 기적 두 가지를 본문에 근거하여 묵상하고자 합니다. 

본문은 역사의 혼란기, 그리스도인들이 저 유명한 로마 황제 네로에 의하여 핍박을 받고 흩어지기 시작하던 위기의 때(AD 64년경)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1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한다는 것입니다. 

신앙 박해로 말미암아 흩어지는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체험하고 사모했던 위대한 두 가지 말씀의 기적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그들은 이 말씀의 기적만이 그 어두운 시대의 희망임을 확신했던 까닭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이 두 가지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이 기적을 세상을 향해 보일 수만 있다면 세상은 변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모할 두 가지 위대한 말씀의 기적-무엇일까요?

1. 거듭남의 기적입니다.

거듭남이 왜 기적이냐고요? “사람은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다시 반문을 던진바 있던 니고데모의 질문 속에 그 대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태어 날수 있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수 있사옵나이까?”(요3:4) 

거듭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지요. 그보다 더 오랜 옛날 예레미야 선지자도 악에 익숙한 인간이 선을 행하는 사람으로 새롭게 변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이렇게 되 물었습니다.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수 있느냐 할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 한마디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변화는 기적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변할 수 없다면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벧전1:25-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오직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인간은 거듭날 수 있다고 복음을 선언합니다. 그래서 거듭남은 말씀의 기적입니다. 본문 23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흥미로운 것은 이 구절에서 거듭남의 방편으로 사용된 ‘씨’(seed)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십시오. 본래 원문에서 이 단어는 ‘sporos‘ 혹은 ’sperma’라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비롯된 단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라는 영어 단어 곧 정충입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면 그녀의 밭에 사랑의 씨를 뿌립니다. 그 결과로 한 생명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죄인인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그의 마음에 받아 드리면 우리는 거듭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썩을 씨도 생명을 잉태하거늘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말씀의 씨는 얼마나 놀라운 능력으로 새 새명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살아있고 항상 있는 생명의 씨로서 이 씨가 떨어지는 곳에 영원한 생명이 심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의 증언을 약1:18에서 들어 보십시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무엇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구요? 예, 맞습니다. ‘진리의 말씀’ 곧 살아있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한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거듭남이란 단어의 중요성을 주목하게 한 사람은 챨스 콜슨(Charles Colson)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1969년부터 1973년까지 미국 닉슨 대통령의 특별 보좌관으로 미국 백악관에서 대통령 바로 옆방 사무실에 근무하며 무소 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정적들을 냉철하게 제거하던 사람이어서 ‘도끼 날 사나이’(hatchet man)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1974년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감옥행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미국 상원의원 세 사람이 그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감옥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책을 선물합니다. 

마침내 그들이 넣어준 C S 루이스의 <단순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를 읽은 것을 계기로 성경을 읽다가 그는 감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그때까지 늘 사람들의 섬김을 받아왔지 아무도 섬겨 본 일이 없던 그가 동료 죄수들의 빨래를 대신해 주고 힘들어하는 이들을 돌보기 시작합니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그는 1976년 <거듭남, Born Again>이란 베스트셀러 책을 써서 미국과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주게 됩니다. 

그는 감옥에서 나온 즉시 수감자들을 돕고 그들을 전도하기 위한 이란 공동체를 만들어 섬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후일 종교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템플상의 수상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가 이 <거듭남>이란 책을 펴낸 바로 같은 해 1976년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지미 카터는 그의 유세 기간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라는 간증을 해서 다시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간증에 걸맞는 삶을 통해 대통령 직을 떠난 후 더 큰 존경을 받으며 지금도 해비타트 같은 사역으로 섬김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거듭남의 기적이 일어난 일이 있습니까? 


2. 영적 성숙의 기적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거듭나게 할뿐 아니라 우리를 영적으로 자라게 한다고 증거합니다. 인간은 자연적 출생을 하면 자연스럽게 신체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나이가 먹고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영적으로도 저절로 자라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성인아이’라는 말입니다. 육체는 성인인데 정신적으로는 아이의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통용됩니다. 그래서 영적 성숙은 기적입니다. 

사랑 장으로 알려진 유명한 고린도 전서 13장에 보면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13:11)고 말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버려야 할 어린아이들의 유치한 행위들을 베드로가 열거하지 않습니까? 벧전2:1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그러나 이 버림의 결단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깊은 사랑을 체험할 때에만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영적 성숙은 기적입니다. 그런데 이 기적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다시 벧전2:2을 읽겠습니다.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구원의 완성)자라게 하려 함이라” 무엇으로 자라난다구요? 순전하고 신령한 젖,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 생활의 오랜 연륜이 경과되었음에도 교회 출석한다는 사실 하나만 빼놓고는 변화가 없는 사람들의 문제를 진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거듭나지 못했거나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난 것은 분명하지만 자라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하고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기적입니다. 

우리의 영적 성숙을 도울 수 있는 사람도 설교자도 심지어 교회가 없어도 성경 한권 말씀만 의지하고 인간이 변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증언하기 위하여 기록된 세계적인 명작 한권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다니엘 디포(Daniel Defoe)가 쓴 <로빈손 크루소>입니다. 

로빈손 크루소의 생애와 놀라운 모험속에는 소설속 주인공의 28년에 걸친 무인도 생활이 그려져 있습니다. 본래 이 책은 3부작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1부작 뿐입니다. 최근 특히 생명의 말씀사에서 간행된 책은 3부작을 다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단순한 하나의 소설을 출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증거하는 영적 메시지를 담고자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평범한 소설이 아닌 기독교 영성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눈으로 이 책을 읽어보면 이 책은 영적 상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가 고향을 떠나 바다로 나가는 것은 영적 방황의 시작을 보여 줍니다. 그가 아프리카의 노예가 되는 것을 통해 죄의 노예된 비참을 보여 주려고 했고, 그가 탄 배의 파선은 그의 인생의 영적 파산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본 아프리카의 길들여지지 않는 사나운 짐승은 우리 내면의 악한 본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가 마침내 도착한 무인도에서 그는 어느 날 파선한 배에서 발견한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의 생애 최초로 만난 말씀이 시50:15이었습니다. “환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그러나 그가 성경을 읽어가며 깨닫게 된 환난은 무인도에 남겨진 상황 보다 더 죄에 사로잡힌 자신의 내면의 영적 환난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읽다가 말고 무릎 꿇어 기도합니다. “다윗의 아들 예수, 높임 받으실 왕자 구세주여, 나를 회개시켜 주십시오” 

마침내 그는 말씀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가 죄 사함을 확신하고 영적 해방감을 맛보자 무인도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낙원이 됩니다. 섬에 표류한지 12년 한 사람도 볼 수 없었지만 그는 거듭난 이후 말씀으로 날마다 하나님과 대화하며 행복한 새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는 성경을 통해 노동의 소중함을 깨닫고 씨를 뿌리는 농사를 시작합니다. 그가 거두어들이는 풍성한 수확은 그의 영적 성숙의 결과를 상징하는 풍성함이었습니다. 섬 생활 24년째 되는 어느 날 그는 식인종의 자취를 발견하게 됩니다. 

얼마후 그는 식인종에게 잡아먹히게 된 흑인 청년 프라이데이(금요일 구조했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를 구조합니다. 그는 이 청년을 위기에서 구조했을 뿐 아니라, 성경 말씀을 따라 그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합니다. 로빈손 크루소는 이제 이 섬의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28년 2개월 19일 동안 온갖 고생과 모험 끝에 그의 제자 프라이데이와 함께 영국의 고향으로 기적적인 귀향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말씀으로 거듭나고 말씀 안에 성숙하여 말씀의 열매를 맺고 천국으로 귀향해야 할 우리 모두의 그림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오늘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말씀 앞에서 우리 모두가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당신은 영적으로 자라고 계십니까?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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