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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 붙든 손 (출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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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붙든 손 (출 17:8-16)


1965년 7월에 영국 웨일스의 시골에서 태어나 ‘엑세터’ 라는 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나이가 25세가 되던 해인 1990년에 두 가지 일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이고, 또 하나는 자기가 일하던 그 직장에 임시직으로 있었는데 해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영어강사를 하기 위해서 포르투갈로 떠납니다. 거기서 한 저널리스트 기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져 1992년에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해 제시카 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생활은 3년이 못되어서 파경에 도달하게 됩니다. 별 수 없이 생후 4개월 된 딸을 안고 이 여인은 다시 조국인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자기 여동생이 살고 있던 에딘버러로 돌아와서 방 한 칸짜리의 아파트에 전세를 얻어서 거기서 정착하게 됩니다. 한때 이 딸에 대한 보육비가 없어서 3년 동안 주당69파운드의 정부생활비 보조비를 받고 있었는데, 때로는 이 보조비마저도 끊어져 아기에게 우유를 먹일 수 없어서 맹물을 먹여야 하는 그런 비참한 생활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경에서도 이 여인은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살려고 하였습니다. 

어느 날, 할 일 없이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가지고 공원을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이 여인의 머리속에서 이야기 하나가 펼쳐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기를 한쪽에 뉘어놓고 고물 타자기를 끌어내어서 그것으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1996년, 6월에 원고 한 뭉텅이를 들고 이 여인은 어떤 출판사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출판사는 보기 좋게 거절을 했습니다. 또 다른 출판사 블룸스웰 이라는 출판사에 가져갔더니 한번 출판해 보죠. 그래서 그 이야기가 출판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출판된 책이 ‘해리포터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영국에서 유럽, 미국을 넘어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급기야 영화로 만들어져서 이 여인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여인이 바로 조앤 롤링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여러 가지로 많은 시험과 문제를 만납니다. 하나의 시험이 지나가면 또 다른 시험이 다가오고, 하나의 문제가 빗겨 가면 또 다른 문제가 우리의 나가는 길에 계속해서 찾아옵니다. 그러나 여러분, 문제없는 인생도 없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또한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문제는 풀기위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행진하던 중에 아말렉 족속을 만나서 전쟁을 하는 장면입니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을 한마디로 묘사하면, 그것은 지속되는 시험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을 양식이 떨어지고, 마실 물이 없어지고, 계속해서 어려움이 닥칩니다.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험을 만날 때마다 불평과 원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다른 종류의 시험인 아말렉과의 전쟁을 치르게 되었을 때는 불평하고 원망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동안 하나하나의 사건과 시험 때마다 규칙적인 행사처럼 늘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었는데 놀랍게도 이번에는 불평과 원망의 흔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좀 성숙해진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인생의 장에는 피할 수 없는 고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고난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성숙해진다는 것입니다. -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숙해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난은 확실히 축복입니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성숙시켰던 이 싸움이 단순히 육체적인 싸움이 아니라 영적 싸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하는 말씀입니다. (8절) “그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애굽을 떠날 때는 떠나지 못하도록 뒤에서 물고 늘어지는 애굽의 바로 왕과 그의 군사들이 이스라엘의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장애를 넘어서 나가는데 앞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서는 적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아말렉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죄악된 세상을 등지고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유혹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기 위하여 나가려 할 때에 뭔가 뒤에서 붙들고 늘어지는 무엇, 애굽이 있었습니다. 또 이제 우리의 신앙이 성장되기 위하여 앞으로 나가는데 못하도록 가로막고 나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아말렉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진을 막고 나서는 아말렉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창36:12절 말씀에 보면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라고 되어있습니다.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핏줄입니다. 그들은 싸움하는 연습을 많이 해서 싸움에 굉장히 능했다고 합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중동지방의 베두인 족속이라 불리는 이들이 아마도 옛날의 아말렉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아말렉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영적 세력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9절)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이제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르비딤에서 전쟁을 하게 되는데, 여호수아는 군대를 통솔하여 직접 전쟁을 하고,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게 됩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게 되자 함께 있던 아론과 훌이 각각 양쪽에서 모세의 팔을 붙잡았더니 모세의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았고, 결국 이스라엘은 아말렉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 전쟁의 승패는 인간의 능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터에 나아가 승리하기 위해선 몇 가지 선행조건이 있었습니다. 우선 저들을 “너희 손에 붙였다”는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너희가 정복하게 될 것이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갈 때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능력 있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우스개 소리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북이가 한양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한참 가는데 지렁이가 꿈틀거리면서 저도 한양 가겠다는 것입니다. 불쌍해서 ‘야 타’ 그래서 탔습니다. 한참을 가는데 굼벵이가 꿈틀거리면서 한양을 가겠다고 합니다. 불쌍해서 ‘야 타’ 그래서 탔습니다. 그랬더니 지렁이가 굼벵이한테 그러더래요. “야, 꽉 잡아 되게 빨라” 

여러분, 되게 빨라 봤자 거북이는 거북이입니다. 지렁이, 굼벵이가 보기엔 거북이가 빠르겠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 한계에 갇혀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굼벵이처럼 꾸물거리기도 하고,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기도 하고, 거북이처럼 어기적거리기도 하고 그것이 내 삶의 전부인줄 앎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달리는 말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비행기도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진정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빠르게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전쟁의 승패는 인간의 능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싸울 때 성결의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전쟁을 목전에 두고 “성결케 하라 너희 백성을 성결케 하라 지도자를 성결케 하라” 말씀하십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하기 전에 장정들을 들판에 눕혀놓고 할례를 행했습니다. 칼을 갈고 활을 다듬어도 이길까 말까한 이 전쟁터에서 저들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영적인 전쟁은 거룩의 싸움이다. 성결의 싸움이다.” 

지도자들이 얼마나 거룩해 질 수 있을 것인가, 그 공동체 백성들이 얼마만큼 성결해 질 수 있을 것인가, 축복의 그릇이 얼마나 깨끗하게 준비될 수 있을 것인가, 거룩의 싸움이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거룩하려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2. 대적에 맞서고 있는 성도에게 있어서 최고의 무기는 기도입니다. 

본문을 보면 아말렉과의 전쟁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명대로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나가서 싸우는데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일방적으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밀고 밀리는 팽팽한 싸움을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산꼭대기에 서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지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느냐, 군대의 숫자가 많으냐 적으냐, 어떤 무기로 싸우느냐 등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1절)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여기 모세가 손을 든다는 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손을 들었다”는 것은 축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지도자들에게, 가정의 어버이들에게 축복의 권세를 주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거룩한 손을 들어 내 자식을 축복하면, 교우들을 축복하면, 한국교회와 이 민족을 축복하면, 여러분의 축복을 성령께서 보증을 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손끝에 주신 축복의 열매를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2) 또 “손을 들었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며 기도했습니다. 

중곡교회 시절, 새벽기도회가 끝나면 교회 뒤의 아차산에 올라갔습니다.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지역을 위해, 교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용두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시내와 우리 교회가 잘 보이는 정상에서 손을 들고....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무리 피곤해도 기도를 멈추면 안 됩니다. 내 기도의 손이 올라가면 우리 가정에 승리가 올라갈 것이지만 내가 피곤하여 내 기도의 손이 멈추어지면 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은 기도의 싸움입니다. 


3. 함께 손 붙잡고 하는 기도가 확실한 승리로 이끌어 줍니다. 

한참동안 손을 들고 있던 모세의 팔이 내려옵니다. 그러자 전쟁에서 밀립니다. 이때 옆에 있던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줍니다. 아론과 훌이 누구입니까? 한 사람은 모세의 형이었고, 한 사람은 모세의 매형이었습니다. 이 세 사람 다 노인이었습니다. 무슨 힘이 남아 있어서 서로 손을 붙들어 줄 수 있습니까? 그러나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붙들어 줄 때 놀라운 영적인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에 나 혼자 서 있기도 힘든데 누구의 손을 붙들어 줍니까? 나 혼자 일어서 있기도 힘에 부치는데 내가 또 누구의 팔을 붙들어 준단 말입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목사의 팔을 붙들어 주면, 내 남편의 손을 붙잡아 주기 시작하면, 내 아내의 팔을 붙들어 주면, 내 속회의 지도자들의 손을 붙들기 시작하면, 힘에 지쳐 쓰러져 가는 성도들의 팔을 붙들기 시작하면, 거기에 성령께서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내 복이 너에게 전해지고 너의 복이 내게 전해져서 갑절의 복을 우리가 받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왜입니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임. 

이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실패한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수아나 군인들의 피 흘림 없이 모세 혼자 기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회야 목사 혼자하면 되는 것이지, 기도만 하면 되겠지’ 이러한 안일한 자세에 빠지게 되면 아말렉을 우리가 물리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그 지혜를 통하여 구체적인 전략을 주십니다. 그 전략을 붙들고, 비전을 붙들고 당당하게 댓가를 지불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할 때에 그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은 역사를 행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세가 없이 여호수아 혼자 전쟁터에 나가면 된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갔던 군인들 가운데, ‘지도자인 모세는 어디 갔는가? 비겁하게 우리만 전쟁터에 내 보내고 모세 혼자 저 언덕위에 홀로 앉아서 기도한다고’ 모세를 비판한 사람도 아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손이 올라가는 것이 승리의 비밀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제 우리 교회를 통한 지역의 복음화와 이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구체적인 비전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곳에서 더욱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그리고 점차로 한국교회를 품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를 위해 교회의 영성이 더욱 열정적인 영성이 되어야 하겠고, 교회의 시스템도 변화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한 열정을 제 속에 주십니다. 

그런데 저의 가정에서부터 조그마한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어머니의 병세도 더 위중해지는 가운데, 제 아내가 약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갑상선에 혹이 있었는데, 이것이 암으로 판명받았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왜 저의 가정에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암 중의 갑상선 암은 착한 암이라 심각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수술 잘 받고, 잘 관리하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 그래도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기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더욱 기도에 힘쓰라는 것으로 깨달아졌습니다. 여러분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일부터 중보기도세미나가 이틀 동안 있고, 또 후반기 중보기도 사역이 시작되는데, 늘 해왔던 중보기도지만 금년 후반기에는 중보기도를 더 힘있게 하십시다. 여러분,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합니까? 함께 손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함께 손 붙잡고 기도할 때 교회도 승리하고, 여러분의 가정과 기업도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손을 들면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승리를 줄 것입니다. 모세의 손의 신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전쟁터에서, 믿음 생활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인생여정에서 예배의 승리없이, 기도생활의 승리없이 내 삶의 승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 목표를 가지고 함께 손을 붙잡고 나갈 때, 우리가 아말렉을 함께 무찌를 수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는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나는 너희 교회를 쓰기를 원했다. 제일교회의 부흥의 불꽃을 통하여 지역의 악한 영의 세력들에 휘둘리고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고, 쓰러져가는 한국교회를 일으키기를 원했다. 제일교회가 그 일을 감당할 때에 너는 무엇을 했는가?” 하나님께서 물으실 것 같습니다. 그때 대답하기를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이곳저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하여 울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이 나라를 가슴에 품고 새벽마다, 또 기도실에서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대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전쟁이 승리로 끝나자 모세가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승리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우리들에게 영적인 전쟁은 계속 있을 것입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의 무릎을 꿇는 저와 여러분에게 승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을 체험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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