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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세우시는 가족공동체 (시 1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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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우시는 가족공동체 (시 127:1-5)


얼마 전, ‘아바타’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최초의 4D 플렉스라고 해서 3D 입체영상에다가 영화속 환경을 더욱 생생하게 하는 체험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중에 꽃향기가 나고, 물이 튀고, 바람에 머리가 날리고, 진동이 좌석에 느껴진다고 그래요. 

영화의 내용은 미래세계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판도라’라는 행성에서 지구에서 필요한 자원을 얻으려고 그 토착민인 ‘나비’족의 외형을 만들어서 그것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하여 원격조종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인 ‘아바타’를 탄생시켜서 그 종족 가운데 투입시킵니다. 그래서 그 주인공 아바타가 그 종족의 공동체 안에 들어가서 점차로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가는 과정이 나옵니다. 또한 과격한 개발주의자인 인간들로 인해 그 종족이 생존의 위기 앞에 놓이면서 결국 전쟁을 치르고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킨다는 이야기입니다. - 이 영화를 보면서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인류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한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의 참으로 귀중한 가치는 가족, 공동체, 사랑,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이 설인데, 우리나라에서 설은 추석과 함께 민족 최대 명절입니다. 지금 몇 년째 명절연휴가 주일과 겹쳐서 기간이 짧아 이동하기가 더 불편한 지경인데, 이렇게 명절을 전후해서 고속도로를 꽉 메우는 차량을 보면 생각되어지는 바가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설을 춘제라고 해서 수억의 사람들이 이동을 하니까 군중들이 기차역마다 벌떼처럼 몰리고, 귀성하는데 며칠씩 걸리다 보니 설 연휴를 일주일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일 주일쯤 해야 합니다. 

왜 사람들은 명절에 고속도로를 꽉 메워가며 고향으로 갑니까? 단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요? 고향의 매력이 무엇입니까? 고향의 산천입니까? 오랜만에 고향에 오신 분들, 단지 내가 자란 고향의 산천이 그리워서 오셨습니까? 아니지요. 고향에 내 가족과 친척이 있기 때문이죠?  고향의 산천은 그대로 있는데 고향을 찾지 않는 분들은 왜 그렇습니까? 이제 고향에 더 이상 가족이 없기 때문 아닙니까? 

우리가 고향이 그리운 것은 단순히 고향의 산천 때문이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한 그 추억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고향에 가지 않아도 고향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 이유는 가족들과 어우러졌던 그 추억의 자취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설 명절에 생각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가족이요, 공동체입니다. - 명절에 여러분의 가족들이 다 모여서 함께 음식을 먹고, 세배를 드리고, 서로 덕담과 아름다운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면, 여러분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더 나아가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믿음을 가진 식구들이라면 여러분 가정은 축복받은 가정입니다. 

인류 최초의 공동체는 가정입니다. 가정은 교회보다 먼저 있었고, 국가보다도 먼저 있었습니다.  인간이 최초로 맡은 사회적 직분은 남편과 아내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가정보다 우선할 수 있는 조직이나 집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의 가치관입니다. 가정의 중요성은 인간 창조에서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을 주셨습니다.(창1:27-28) 그 생육 번성 충만을 실현하는 방법이 바로 가정인 것이죠. 

가정은 결혼과 함께 시작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결혼하면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 결혼의 최대 주제는 남녀 사이의 애정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큰 목적은 생육 번성 충만입니다. 이는 자녀 출산과 아름다운 공동체를 통한 인류 공동체의 번영입니다. 가정은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회 진화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대한 목적으로 세우신 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가정들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세계 2위입니다. 몇 년 전, 신문에 실린 통계를 보면 하루 평균 결혼하는 사람이 840쌍, 이혼하는 사람이 398쌍이라는 것이에요. 결혼에 비해 절반 가까운 이혼율인데 참 심각한 일입니다. 

한국 가정사역학회 부회장이신 김성묵 장로님이 쓴 책, ‘그 남자가 원하는 여자, 그 여자가 원하는 남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 표지 상단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극과 극의 남심 여심, 그 30cm의 차이를 극복하는 법’ -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기대를 하고 삽니다. 그 차이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아도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할 때 서로의 기대치가 완전히 다릅니다. 

모든 남자가 기대하는 이상형 아내감 

1) 그 여자는 언제나 아름답고 명랑하여 미남들이 주위를 졸졸 따라다녔으나, 다 버리고 자신을 택한 여자.  
2) 건강하여 절대 아프지 않은 여자.  
3) 요리와 청소의 달인.  
4) 세상에서 제일 쇼핑을 싫어하는 여자.  
5) 남편이 집안일 돕는 것은 결코 바라지도, 생각지도, 꿈꾸지도 않는 여자.  
6) 그 외에도, 천사처럼 맘씨 곱고, 가정 교육 잘돼 있어서 예의 바르고, 어머니처럼 헌신적이고, 낮에는 현모양처 같고, 밤에는 요부같고, 어떨 때는 연인 같으면서도 누이동생 같이 편안하고, 애 잘 낳고, 거기다가 돈까지 잘 버는 여자. 

이런 기대를 하는 남자들이 실제로 결혼하게 되는 여자 

1) 1분에 140개 단어를 따발총처럼 말하며, 흥분하면 180개까지도 올라가는 여자.  
2) 그 여자의 예리한 눈빛은 10년 전의 일까지도 정확히 기억해서 고백하게 만듭니다.  
3) 그 여자는 전지전능하여 남편이 동에서 서로 옮겨 가도 이미 거기에 미리 가 있습니다.  
4) 비수와 같이 예리한 손톱과 몽둥이 같은 주먹을 겸비하여, 부부 싸움이 벌어지면 반드시 남편을 입원시키고야 맙니다.  
5) 그 여자는 남편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생긴 것과 실력과 인격만 빼면 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모든 여자가 기대하는 이상형 남편감 

1) 그 남자는 섬세하고 따뜻하고 이해심이 깊으며, 세련된 화술까지 겸비했고,  
2) 그는 자신을 위하여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는 사람입니다.  
3) 그는 여자가 무리해서 몸살이라도 날까봐, 집에만 오면 날렵하게 설거지를 하고, 음식을 차려주고, 바닥을 쓸고 닦아주며, 아이들과 놀아주고, 빨래까지 완벽하게 널어 줍니다.  
4) 빌 게이츠처럼 똑똑하고, 로버트 레드포드처럼 분위기 있는 미남이며, 이외 신앙 좋고, 학벌 좋고, 키 크고, 잘 생기고, 집안 좋고, 능력 있고, 매너 좋고, 거기다 차남이나 막내면 더 좋고, 어지간한 수준의 집과 차는 기본으로 갖춘 남자. 

그런 기대를 하는 여자들이 실제로 결혼하게 되는 남자 

1) 자기는 스트레스가 없지만, 남에게는 반드시 스트레스를 주는 남자.  
2) 그는 기적의 일꾼(그가 일을 하면 그건 기적이라는 뜻)입니다.  
3) 함께 영화를 보면 반드시 지적인 대사나 분위기는 전혀 없는 액션물만 봅니다.  
4) 같이 분위기 있는 음악회에 가면 반드시 도중에 잠이 들고,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일어나서 박수를 칩니다.  
5)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횟수는 월드컵이 열리는 횟수와 정비례합니다.  
6) 아내가 한껏 화장을 하고 나오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당신은 마음씨가 착하니까 괜찮아” 

여러분, 이제 막 결혼하는 새 신랑, 신부를 만나보면 한결같이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합니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은 기쁜 일이라는 것과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축복을 참된 축복이 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시편 127편은 128편과 더불어 히브리 사람들에게 가정의 소중함과 신성함을 일깨우는 대표적인 시편입니다. 오늘 시편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시는 가정의 모습을 노래합니다.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여러분, 여호와께서 세우시는 집, 하나님이 세우시는 복된 가족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일까요? 1. 하나님의 설계를 따르는 가족공동체입니다. 

어떤 부부가 집 한 채를 새로 짓게 되었습니다. 부부는 각자 건축에 대한 의견이 뚜렸했습니다. 그래서 제각기 설계를 해본 후에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조정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부는 워낙 개성이 강했습니다. 둘의 뜻이 서로 달라서 합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새로운 집을 짓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 부부가 각자의 아이디어를 포기하고, 유능하고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설계자를 찾아 그에게 설계를 의뢰했었더라면 얼마나 멋진 집이 지어질 수가 있었을까요?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 가정의 설계를 의뢰한다면 어떤 집이 지어질 수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가정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래서 가정을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Divine Institution)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은 둘밖에 없습니다. 가정과 교회입니다. 국가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 아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졸라대니까 하나님이 할 수 없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이 만드신 공동체입니다. 교회보다도 가정이 앞서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 말씀 1절을 음미하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참으로 축복된 가정과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온 가족과 구성원이 그 말씀의 권위 앞에 복종하고, 진리를 따르는 가정과 공동체가 바로 하나님이 세우시는 가정과 공동체의 모습인 것입니다. 축복된 가정과 공동체는 하나님의 설계를 따르는 가정과 공동체입니다. 


2. 복된 공동체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는 가족공동체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정을 세우는 줄로 압니다. 결혼만 하면 돈도 벌고, 자식도 낳고, 집도 생기고... 노력만 하면 다 되는 줄로 압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솔로몬이 뭐라고 합니까? (2절)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수고의 떡’이란 말은 다양하게 번역됩니다. 고통스런 노고의 떡이요, 근심의 떡이요, 눈물의 떡입니다. 또한 수고는 수고대로 하고 대가는 엉뚱한 데로 갑니다. 혹시 노력의 대가를 얻는다 해도 평안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갖출 것을 다 갖췄는데 안식이 없어요. 돈도, 명예도, 권세도 다 별무소용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삶을 살면서 경험하는 커다란 인생의 허무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여 애를 써보지만 수고한 대가를 거두지 못할 때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애쓰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고, 땀을 흘리는 데도 결과가 없을 때, 우리는 인생에서 허무를 느낍니다. “....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 안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평안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느껴지는 사람은 평안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에 이러한 평안이 있을 때,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시는 가정, 축복된 가정과 공동체인 것입니다. 


3. 복된 공동체는 미래의 소망이 있는 공동체입니다. 

(3~5절)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자녀는 가정의 미래입니다. 가정이 지닌 최대의 보물은 바로 자녀들입니다. - 오늘 말씀에 기업이라는 말씀을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업이라는 말을 많이 말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녀보다 더 소중한 기업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 양육의 책임과 과제, 숙제를 동반한 기업입니다. 

자식이 최고의 기업인 줄 알았다면 최고의 기업답게 경영하십시오. 제대로 돌보고, 제대로 기르라는 말입니다. 자식은 낳기만 하면 저절로 불어나는 재산이 아닙니다. 열심히 양육해야 합니다. 

몇 년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0세 이상 가족 구성원 4만2000여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한국인의 생활시간 배분실태와 효율적 활용방안에 관한 연구’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 사람이 주일날 미취학 아이들을 씻기거나 함께 놀아주는 시간은 평균 16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인이 배우자의 일을 도와주는 등 상대방을 보살피는 데 쓰는 시간이 평일과 토요일에는 각 2분씩, 시간여유가 있는 주일에는 그나마 1분으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반면에 잡지나 TV를 보는 시간은 남자가 평균 2시간29분, 여자는 2시간18분에 이릅니다. 이중 TV 시청시간은 남자 2시간6분, 여자 2시간4분을 차지합니다. 주일에는 TV 시청시간이 평균 3시간이 넘습니다. 한국인들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18분인데, 실상 이 중 40분은 가족과의 식사시간. 그나마 식사시간은 묵묵히 밥을 먹거나 어수선하게 보내는 게 보통입니다. 

자식을 위해서 돈을 번다고 하면서도 자식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는 않아요. 상당히 모순된 일이 아닙니까? 돈 버는 데 집중하지 자식의 형편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언제 사춘기가 됐는지? 몇 학년 몇 반인지? 무슨 과목을 좋아하는지? 취미가 뭔지? 무슨 놀이를 좋아하는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전혀 몰라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시집 장가 가 버리면 끝입니다. 아이들 추억 속에 부모님에 대한 이미지가 전혀 없어요. 그저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직장에 열심히 다니신 아버지! 열심히 돈 벌어다 주신 아버지! 열심히 밥 해주고, 빨래 해 주신 어머니! 열심히 학교 보내고 학원 보내 주신 어머니! 잔소리만 하신 어머니! 같이 얘기할 “꺼리”가 없습니다. 시집 장가 간 후에 찾아가 보세요. 같이 얘기할 추억거리가 있는지? 

우리가 믿음 안에서 우리의 기업인 자녀를 잘 양육할 때, 우리는 당당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녀 교육을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합니다. 그 중에서도 반드시 가르치는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이 신명기 6:4~6절입니다. 이 말씀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쉐마’라고 하며 강조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씀 후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 가장 존귀한 삶인 것을 알았다면 그 동일한 사랑을 여러분의 자녀에게 가르치십시오. 

오늘이 설 명절입니다. 가족이 다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설 명절에 가족이 모여 예배드리라고 가정예배 순서지를 마련했는데, 온 가족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서로 축복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일 것입니다. 아직 온 가족이 믿지 않는 가정은 이를 위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가족은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내 핏줄과 혈연에만 한정된 가족주의는 우리의 이기심만 키우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족관은 핏줄을 넘어 이웃에 까지 범위를 넓히는 것입니다. 민족 고유의 명절인 이 거룩한 주일에 가정과 공동체에 대한 말씀을 되새기시고, 하나님이 세우시는 공동체, 축복된 가족공동체를 만들어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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