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거짓 신앙에서 벗어나라! (롬 2:17-3:8)

첨부 1


거짓 신앙에서 벗어나라! (롬 2:17-3:8)


남자 배우가 드라마에서 좋은 남편 역할을 합니다. 집에서는 그냥 평범한 남편노릇 합니다. 사람들이 비난할까요? 왜 드라마처럼 집에서 안하느냐고? 안 그럴겁니다. 드라마하고 현실은 다르니까요. 목사가 설교시간에 좋은 남편의 역할에 대해서 설교를 합니다. 집에서는 안합니다. 식구들이 뭐라 할까요? 설교하고 현실은 다르니까 괜찮아! 그럴까요? 

배우가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것과 현실에서 생활하는 것이 다르면 별로 문제가 안 됩니다. 
목사가 설교시간에 설교하는 말과 현실에서 생활하는 것이 당연히 다르면 문제가 됩니다. 

예수님이 신앙생활 잘 한다는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마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오늘 말씀을 보면, 바울 사도도 유대인들의 신앙의 문제점을 비슷하게 지적합니다. 
속과 겉이 다른 신앙입니다. 문제가 있는 신앙입니다. 거짓신앙의 모습입니다. 
한국교회의 신앙의 모습은 어떨까요? 우리의 신앙은 어떨까요? 

1. 거짓 신앙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신앙을 자랑합니다(17-20절). 무얼 자랑합니까? 

‘우리는 유대인이다.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다. 우리는 무엇이 선한지를 알고 선한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영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인도할 줄 안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주는 사람이다. 우리는 율법의 진리로 어리석은 사람을 가르치고, 영적으로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굉장한 영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0절 끝에 ‘스스로 믿으니’ 스스로 그렇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우리도 이만한 영적 자부심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바울 사도가 다섯 가지 질문을 합니다(21-23절). 
남에게는 잘 가르치면서 너 자신은 왜 가르치지 않는가? 
남에게는 도적질하지 말라 가르치면서 너는 왜 도둑질을 하는가? 
남에게는 간음하지 말라 가르치면서 너는 왜 간음을 하는가? 
남에게는 우상을 가증히 여기라고 가르치면서 너는 왜 우상 물건을 탐내어 훔치는가? 
남에게는 율법을 지키라고 말하면서 너는 왜 율법을 지키지 않아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가? 

무엇이 문제입니까? 남에게 가르친 대로 자기는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교는 해놓고, 자기는 설교대로 살지 않습니다. 남에게는 훈계하고 자기는 하지 않습니다. 
또 문제가 있습니다. 하는 척 합니다. 나중에는 착각에 빠집니다. 스스로 잘한다고 믿는 겁니다. 무슨 소리냐면 이런 겁니다. 여러분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예배가 중요합니다. 예배를 매우 강조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예배시간에 늦습니다. 찬양도 잘 안 부릅니다. 뒷자리에 앉아서 졸거나 딴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앞에서는 예배를 잘 드리는 척 합니다. 자꾸 ~척하다보면 나중에는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습니다. ~ 척하는 단계에서 착각의 단계로 넘어가는 겁니다. 스스로 믿는 겁니다. 외식하는 신앙입니다. 거짓 신앙입니다. 

신앙생활 오래하다 보면 이렇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설교를 자주하고, 리더가 되어 자주 가르치다 보면, 부모가 자녀에게 자꾸 잔소리 하다보면, 자기는 하지 않으면서 하는 척합니다. ‘하는 척’을 오래하다 보면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단계에 들어갑니다. 스스로 착각을 합니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믿는 겁니다. 
우리 중에서 이런 착각을 하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옆에서 보면 다 보입니다. 하는 척도 보입니다. 착각도 보입니다. 그러면 욕을 먹게 됩니다. 그 사람도 욕먹고, 하나님도 욕을 먹게 됩니다. 24절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목사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습니다. 교회 때문에 예수님이 욕을 먹습니다. 기독교인 때문에 안티 기독교가 생겨납니다. 

기독교가 욕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욕하는 사람들에게 탓을 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신앙을 깊이 반성해 보십시다. 우리에게 있는 겉과 속이 다른 신앙의 모습, 거짓 신앙의 모습을 깊이 반성하십시다. 말과 행동을 일치될 수 있도록 간절히 은혜를 구하십시다. 
사도 바울의 두려운 고백입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2. 좋은 신앙은 겉보다 속이 더 좋아야 한다. 

유대인들의 두 번째 자랑은 할례를 받았다는 겁니다. 몸에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인 할례를 받은 겁니다. 예를 들자면 기혼자의 표시로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낀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습니다. 할례는 받았는데, 율법은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면 할례 받은 것이 무의미 하다는 것입니다. 결혼반지는 끼고 다니는데, 바람을 피우고 다닙니다. 그 결혼반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겁니다. 
오히려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게 더 낫습니다. 비록 결혼반지는 안 끼었지만 오로지 자기 배우자에게만 충실하면 그 사람이 좋은 배우자인 것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결혼반지까지 끼고 있으면서 바람을 피울 수 있소. 나는 반지는 없지만 당신처럼 바람은 피우지 않아요! 그게 뭡니까? 정신 좀 차리세요’ 

28절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무슨 말씀일까요? 당시 유대인들은 할례를 무슨 부적 같은 의미로 생각했습니다. 랍비들이 이렇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할례받은 사람들은 게헨나로 내려가지 않는다. 할례는 이스라엘을 게헨나에서 구해 줄 것이다.” 할례가 지옥에 가지 않도록 지켜준다는 말입니다. 
미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부적을 몸에 지니든지, 집에나 자동차에나 가지고 있으면 그게 자기를 보호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부적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처럼 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큰 교회 다니면 자기가 신앙이 좋은 줄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까요? 어떤 직분을 가졌으면 그것으로 자기가 신앙이 좋은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럴까요?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어떤 봉사의 사역을 하고 있으면 자기가 신앙이 좋은 줄로 생각합니다. 그럴까요?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음 중심의 자리에 예수님이 주인으로 계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소원을 붙잡고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형식보다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보다 내면적인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이 칭찬해 주는 것보다 하나님이 칭찬해 주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29절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3. 거짓 신앙에서 벗어나자! 

유대인들이 바울사도에게 몇 가지 반론을 합니다. 예전에 유대인들데게 당한 일을 염두에 두고 썼을 겁니다. 무슨 반론을 합니까? 내용들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나음이나 할례의 유익은 없단 말이냐?’ 대답합니다. ‘아니오. 범사에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우선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특권입니다.’ 그 외에도 

롬9:4-5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의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또 반론을 제기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버린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하나님은 신실하지 않다는 말이냐?’ 대답합니다. ‘아니오. 사람은 거짓되어도 하나님은 영원토록 참되십니다.’ 
‘사람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는데, 그렇다면 사람의 불의를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아니오. 하나님은 불의는 불의대로 심판하십니다.’ 

‘사람의 악한 행동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면 악을 더 행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소리냐?’ ‘하나님의 선을 드러내기 위해서 악을 더 많이 행해야 된다는 말이냐?’ 뭔 말인가 싶죠? 지금 말꼬리를 잡고 말싸움을 하고 있는 겁니다. 트집을 잡고 있는 겁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겁니다.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잘못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이단에 빠진 사람은 절대로 자기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단에서 빠져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이단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짓된 신앙에 한 번 빠지면 그게 문제가 있다는 걸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변화되기가 참 어렵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세상이 교회를 공격하고 공격합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인터넷이든 쉴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 내부에서도 교회의 문제만 들춰내기 바쁜 언론도,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언론보도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 기관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먼저 해봐야 하겠습니까?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문제를 볼 수 잇어야 합니다. 자기가 옳다고 나는 문제없다고 주장하던 욥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물으십니다. 욥38:1-3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제대로 네 자신을 보고 있느냐? 제대로 네 자신을 알고 있느냐? 물으시는 겁니다. 

욥이 정신이 번쩍 들어서 대답합니다. 

욥42:1,3, 5-6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 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변명을 중단하고, 자기 합리화를 중단하고 욥의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시라고 간구하십시다. 욥처럼 스스로 거두어 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다. 
거짓된 신앙에서 벗어나서 바른 신앙 위에 든든히 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맺는 말 

상품의 포장과 내용이 다르면 우리는 화를 냅니다. 환불해 달라고, 바꿔 달라고 항의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포장과 내용이 다른 상품상자 같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답답하시고, 사람들이 보면서 비난하지는 않겠습니까? 
포장지보다 내용이 훨씬 좋은 선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칭찬해 주시는 교회, 사람들이 보기에도 좋은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