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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야를 지나는 동안 (신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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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지나는 동안 (신 8:1-6)
 

지난 20세기를 살았던 프랑스의 성자 피에르 신부는 세계적인 빈민 구호 공동체인 엠마우스의 창립자입니다. 엠마우스는 삶의 희망을 잃고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다시 삶을 시작할 용기를 되찾는 곳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피에르 신부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프랑스정부는 집을 한 채 그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피에르신부는 그 집이 자기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문에 ‘엠마우스’라는 푯말을 걸고 여행객들에게 숙소로 개방하였습니다. 하지만,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그 집에 모여든 사람은 고아, 가정을 잃은 사람, 감옥에서 나와서 갈 곳이 없는 사람, 알코올 중독자들이었습니다. 
  
하루는 자기의 아버지를 살인하고 20년 동안을 형무소에서 복역한 남자가 그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다음날 아침 피투성이로 발견되었습니다. 자살을 기도한 것입니다. 다행히도 목숨은 건졌습니다. 그를 치료하는 동안 피에르 신부는 단 한 마디도 그에게 그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때에 자기 집에 머무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집을 짓는 자기의 일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 그는 피에르 신부에게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그 때 만일 신부님이 제게 돈을 건네거나, 직장을 찾아주거나, 훈계를 하려했다면... 저는 또다시 자살을 시도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신부님을 따라 집을 지으러 다니면서, 저처럼 하찮은 인간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나를 기쁘게 하던지요... 그리고 나에게는 목수의 자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엠마우스 공동체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가끔씩 피에르 신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나는 왜 세상에 태어났는지... 그것을 모르겠어요...’ 이렇게 물을 때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을 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지요...’ 

광야는 흥미와 호기심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인간이 오래도록 머무를 만한 장소는 될 수가 없습니다. 일상에 지치고 무엇인가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은 광야를 찾기도 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 곳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럽기도 하겠지만... 어느덧 도시의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무려 40년 동안을 광야를 전전하였습니다. 그동안 그들은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갑니다. 이러한 그들에게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이제 그들의 지난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은 끝나고 오래 전부터 하나님이 점지하신 그들의 땅... 젖과 꿀이 흐른다고 알려진 가나안에 들어갈 날이 눈  앞에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나안은 아주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그것과는 상관이 없이 길고 지루한 광야의 길이 끝난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참으로 흥분되고 희망이 넘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분위기를 좀 염려스런 마음으로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모세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모세는 이들과 함께 약속의 땅에 들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의 편안치 못한 마음은 자신이 그동안 고생한 보람도 없이 약속의 땅에서 제외되었다는 것... 이런 개인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신세를 벗어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모세는 판단하였습니다. 만일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자기들에게 주어진 땅에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은 알지 못하고... 마치 자기들의 힘으로 얻게 된 것처럼 생각하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할 줄도... 하나님을 찬양할 줄도 모르면 어떻게 하나... 만일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그들의 가나안 땅에서의 생활은 오래지 못할 것이고, 그들도 가나안의 다른 민족들처럼 종국에는 그 땅에서 쫓겨날 운명이 되리라는 것을 모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지난 40년 동안을 겪어 온 광야의 생활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알려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모세는 지난 40년의 광야 생활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드시기 위한 교육과 훈련의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2절)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서 한 없이 자기를 낮추고 살도록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그들이 더욱 겸손함 사람이 되도록... 그들이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도록 그들을 가르치셨다는 것이지요. 
  
이어서 모세는 참 중요한 말을 하였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3-4절)
  
지난 사십년 동안 그들은 광야에서 참으로 신비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먼저는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바다를 건너고 신 광야에 도착하였을 때... 기적처럼 바다는 건넜던 감동은 벌써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고... 그들은 이제 배고픔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애굽이 좋았는데... 애굽에서는 떡반죽 그릇과 고기 가마 옆에서 그나마 실컷 먹을 수 있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굶겨죽이려고 광야로 데리고 오셨어...’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을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안식일을 제외하고 광야의 생활이 마치는 날까지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가 그들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중 어느 누구도 광야에서 굶어 죽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깨닫게 된 신비한 경험 하나는 그 누구도 옷이 헤어져서 헐벗고 다닌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 중에 누구도 발이 부르터서 신발을 신을 수가 없거나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들 중에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부인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경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그들은 광야를 전전하면서 자신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옷을 만들거나 준비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광야의 생활을 다 마치기까지 지난 사십 년 동안을 배가 고프거나 옷이 헤어지거나 발이 부르터서 움직이지 못하는 경험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들을 돌보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면서 그들에게 깨우치고 싶었던 단 한가지의 소중한 교훈 그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이스라엘이 깨닫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들이 지난 40년 동안 광야라고 하는 학교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정말 어렵고 힘든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의 먹고 입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할 힘이 내게는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바라보면... 이런 눈앞에 보이는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시는 구나... 어떤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만 믿고 따라나서면, 심지어는 하늘에서 만나를 비같이 내려 주셔서라도 먹고 살게 하시는 구나...’ 적어도 하나님은 이런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리를 길고 긴 광야의 생활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터득하며 살기를 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는 한 번 여러분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고 싶습니다. 모세가 말하는 것처럼 지난 40년 동안 그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먹고 입고 광야를 걸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 모세의 고백이 오늘 우리들 자신의 고백과 간증은 될 수가 없는 것일까요? 우리가 오늘 아침에 먹은 양식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가요?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어디서 난 것입니까? 비록 어렵고 힘든 조건 속에 살고 있지만, 자신의 몸을 움직여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우리들 자신의 힘과 의지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던가요? 우리들도 모세처럼 그렇게 고백을 할 수는 없습니까? ‘오늘 제가 먹은 양식이 바로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인 것을 저는 고백합니다...

지난 시간을 살아오면서 그래도 벌거벗은 채로 세상을 살지 않았던 것... 다니고 싶은 곳을 다닐 수 있었던 것... 이런 것들은 제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옛날 모세의 고백이 오늘 우리들 모두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고백이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부터 비로소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길고 긴 세월 동안이나 광야에서 그들은 먹이시고 입히신 것은 오로지 이 한 가지를 그들에게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이 말씀을 모세를 통해서 배우기 이전에 예수님에게서 배웠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는 예수가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시험을 받으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40일 동안을 광야에서 보내시며... 금식하시며 기도 하신 후에 첫 번째로 받으신 시험이 바로 먹는 것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마귀는 예수의 배고픈 사정을 깊이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가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비범한 능력도 아는 것처럼 보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 덩어리가 되게 하라...’(마4:3) 이렇게 예수를 충동합니다. 

예수로서는 40일을 굶주린 배고픔도 해결할 수 있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마귀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그 대목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태4:4) 예수는 떡을 만들어 먹으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으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은 세상을 어떻게 사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물론 예수는 떡의 중요성을 아주 무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예수는 우리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도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태6:11) 이렇게 먹는 문제를 위한 대목도 집어넣으셨습니다.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우리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가 없는 것을 예수도 잘 아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기억해야할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바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떡도 없어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도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설 자리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는 떡과 말씀을 동시에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예수는 떡보다는 말씀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것이 첫 시험을 물리치는 행동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도 자기처럼 선택하고 살 것을 권하셨습니다. 

이를테면 마태복음 6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너희들의 목숨을 유지하는 일... 먹고 입고 사는 문제에 대하여 지나치게 신경을 쓰거나 염려하지 말아라... 오히려 우리가 염려해야할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떻게 하면 나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과 소원을 만족시켜 드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예수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록 예수는 모세와 더불어 광야를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이 광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분명히 파악하셨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기를 힘쓴다면... 먹고사는 문제는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 보다 더 심각하게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거슬리지 않게 살아가는 일인가?’ 이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떡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항상 떡의 문제에만 집착한 채로 모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에 우리들의 관심사가 오로지 떡에만 집착하게 된다면...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들은 더 가난해지고, 더 비참해지고, 우리의 삶은 더 초라해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할 일이 있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불러 주셨다는 것... 그래서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40일 동안을 굶었다고 하더라도... 돌을 떡으로 만들어서 먹으라고 하는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그런 남다른 고민을 하면서 살게 되었다는 것... 이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에서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말씀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야할 이유를 분명히 밝혀줍니다. 말씀은 우리들에게 그동안 우리가 잊고 살았던 인간으로서의 본래적인 삶(Authentic Life)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을 주셨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걸 맞는 고민을 하게 하셨다는 것.. 단지 이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우리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생각하건대 광야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짜 좋은 것은 하늘에 있습니다. 광야에서 더 좋은 것을 누리려는 것은 단지 욕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적인 고민을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탈 없이 보살펴주신 하나님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잘 먹고 잘 입는 것... 이것보다 더 행복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라서 거룩한 고민을 하면서 품위 있게 사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면서... 내게 거룩한 고민을 할 수 있는 말씀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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