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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 왕국이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 (삼상 16: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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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6:13-14)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23:16-18)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5:1-5)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가장 큰 주제는 ‘하나님 나라’ 입니다. 구약성경이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예언, 예표하고 있다면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오심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완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다윗 왕국’ 입니다. 다윗 왕국의 많은 것들은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영적 실체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다윗의 자손 메시야가 오시면 그가 다윗의 위(位)에 앉아서 다윗이 비유와 그림자로 대표했던 것의 실상을 온전히 보여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예컨대 삼하 7장에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대상은 솔로몬이 아니라 예수님이었습니다.

다윗 왕국이 완성되자 그 왕국의 형성 원리들은 모든 이스라엘 왕들을 위한 확실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다른 모든 왕들은 그가 얼마나 다윗처럼 행했는가에 따라 평가되었습니다. 어느 왕이 다윗과 똑같이 행하면 그는 선한 왕이었고(왕상 3:3), 그렇지 않으면 그는 악한 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은 다윗의 길로 갔기 때문에 선한 왕이 되었고, 므낫세는 다윗의 길에서 떠났기 때문에 악한 왕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윗 왕국의 원리들은 다른 왕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잣대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주님의 나라를 세우셨을 때에 동일한 원리들이 신약성경에 적용되었습니다(마 21:9, 22:41-46).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이 모든 원리들은 우리의 교훈을 위해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다윗 왕국에 대해 70장이 넘는 방대한 양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어떤 주제도 이렇게 많은 시간과 단어를 할애한 경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기 원한다면 성경이 상세히 보여주는 그대로 임할 것을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다윗 왕국이 사라진 뒤에도 선지자들은 계속해서 그의 나라를 언급했고, 장차 다윗의 아들이 보좌에 앉아 영원한 능력과 권세로 통치함으로써 새 언약의 영광 가운데 그 나라가 다시 세워질 날이 도래(到來)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 왕국이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 에 관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히고 우리의 믿음을 더욱 키우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1. 다윗에게 기름부음이 임함 (= 성령의 부으심)

다윗 왕국의 생성 과정에서 놓칠 수 없는 특징 중 하나는 ‘기름부음’ 입니다. 다윗은 세 번이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의 첫 번째 기름부음은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사울 대신에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로 작정하시고 사무엘을 보내셨습니다.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삼상 16:1)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베들레헴의 이새의 집으로 가서 일곱 아들을 면접하였으나 결국 여덟 번째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됩니다.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다윗이 사무엘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로 그는 성령으로 충만해졌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에게 기름부음이 임했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기름부으심을 받은 것을 의미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성령의 부으심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정확한 나이는 밝혀지지 않지만, 그가 화목제사 이후 공동식사에도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성인의 나이(=20세)에도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그는 B.C. 1025년경, 약 15세에 처음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다윗은 두 번 더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그가 헤브론에서 왕이 된 30세(= 1010년, 삼하 2:1-4) 때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38세(= 1003년) 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그는 처음 기름부음을 받고 정식 왕으로 등극하기까지 많은 험악한 세월을 기다려야 했으며, 그 기간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연단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고 묘사한 본절의 표현에 유의하십시오. ‘여호와의 영’ 은 과거 사울에게 임하셨던 것처럼(10:6) 이번에는 다윗에게 임했습니다. 그러나 두 경우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울의 경우에는 기름부음을 받을 때 곧바로 여호와의 영이 임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돌발적으로 임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경우에는 기름부음을 받을 때 곧바로 여호와의 영이 임했으며 그 능력은 거의 지속적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큰 특징은 백성 위에 임하는 ‘성령의 부으심’ 에 있고 또한 ‘지속적으로 백성과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 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땅에는 마치 기름부음이 떠난 사울 왕국의 모습과도 같이 위조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성행하고 있어 우리의 주의를 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셨을 때 사울에게서 기름부음이 떠났지만, 사울은 자기 위치를 지키려고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싸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하나님의 영이 더 이상 사울과 함께 하지 않자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한 영들과 협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사울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다투는 것은 사술(邪術)처럼 악하고 마귀적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잃었을 뿐 아니라 결국 귀신에 사로잡혔습니다. 악의 영들은 사울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에 대항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속한 하나님 나라에서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최고의 관심사요 최상의 가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사울 왕국에서 상처받고 지친 영혼들이 사울의 통치가 끝날 무렵 다윗에게로 찾아오던 것처럼, 세상에서 상처받고 낙담한 자들과 마귀에게 눌려 부서진 자들이 오늘 우리 교회를 찾아오도록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2. 요나단이 비극적인 선택을 함 (= 영적 선택>>인간적인 선택)

다윗 왕국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다윗과 우정관계를 돈독히 했던 요나단의 일입니다. 요나단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으면 다윗 왕국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삼상 18:3-4).

그런데 계속되는 요나단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의 아버지 사울의 이야기보다 더 비극적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해서 세 번에 걸쳐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요나단이 이 언약을 갱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곧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과 사울의 집에 충성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와 원수가 된 자와 언약을 맺었습니다. 혈통적으로는 사울과 연합되었지만 언약적으로는 다윗과 연합되었습니다. 그는 성품상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매우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아버지 사울과 친구 다윗 중 한 쪽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의 앞에는 일생을 좌우하는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서 갈등하던 요나단을 보십시오. 사울의 집은 많은 종들을 거느린 화려한 궁전이었고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동굴 안에서 살았으며 거기에는 현대적 편의시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요나단은 사울 왕국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았습니다. 미래는 자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사울의 편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영으로 알았습니다. 

삼상 20:13에 보면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라 했습니다. 매츄 헨리 주석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의역합니다: 

“주께서 지금은 내 아버지를 떠나셨지만 이전에 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이제 주님이 너와 함께 하셔서 너를 보호하시고 형통케 하시길 기도한다.” 계속해서 요나단이 말합니다: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20:14-16).이제 삼상 23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23:16-18).

성도 여러분! 요나단은 장차 일이 어떻게 될지 그리고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사울을 떠났고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실 것임을 영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 요나단의 미래는 자기 아버지의 집을 버리고 동굴에 있는 다윗에게 가서 그와 연합하는 데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그렇게 했더라면 그는 차후 다윗 왕국에서 2인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가족에 대한 충성심에서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적인 선택을 버리고 인간적인 선택을 따랐습니다. 그 결과 아버지 사울과 함께 길보아 산 전투에서 목숨을 잃게 되었고 사울의 집과 함께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만일 요나단이 사울의 집을 떠나 다윗에게로 와서 다윗 왕국에서 파트너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사울이 죽은 후에 사울의 집이 다윗과 요나단의 연합군과 싸우지 않았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너무나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그들은 다윗을 중심으로 즉각 강력한 왕국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영적인 선택보다는 인간적인 선택을 따라갔고, 그 결과는 오랜 기간 양대 진영의 반목과 대립으로 온 나라가 피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나단의 비극적 선택은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사울의 집에서 다윗의 집으로 건너가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크게는 전국 교계와 지역의 교계에서, 교단과 선교 단체에서, 작게는 한 교회와 교회 내 구역이나 전도회 등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소수의 사람들이 진정한 용기를 내어 영적 선택을 감행할 뿐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좋아. 모든 것을 잃는다 할지라도 나는 성령께서 지금 역사하시는 것과 함께 할거야!” 우리 모두는 매일 사울의 길과 다윗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면 어느 편을 택하시겠습니까? 육신적이고 인간적인 편입니까, 아니면 영적인 편입니까?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요나단의 경우처럼 어려운 선택을 해야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자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사울과 함께 길보아 산에 엎드러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그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한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3. 헤브론에서 왕으로 추대됨 (= 단결, 충성)

삼하 5: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후에 다윗은 먼저 헤브론으로 왔습니다. ‘헤브론’ 은 히브리어로 ‘연합의 자리’ 또는 ‘교제’ 를 의미합니다. 그는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에 의해 남부 유다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삼하 2:4). 삼하 5장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세우기 위해 헤브론으로 오고 있는 상황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때는 B.C. 1,003년경으로서, 사울이 전사하고 다윗이 남부 유다의 왕이 된 지 7년이 경과한 때였습니다. 다윗의 원수였던 그들은 태도를 돌변하여 뜻밖에도 다윗에게 자신들을 다스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삼하 5:1-2=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다윗의 인내하던 모습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이란 의식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자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에 의해 처음 기름부음을 받은 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나는 동안 그는 스스로 왕이 되고자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도(正道)를 걸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훌륭한 본이 됩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를 대망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에서 우리를 높이시며 영원히 왕노릇하게 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다윗처럼 정도를 걷는 것은 미련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지혜로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이 왜 헤브론의 다윗에게로 몰려왔습니까? 다윗을 대적하였던 자들이 그에게 나아와 자신들을 다스려달라고 간청하고 있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그들이 스스로 다윗에게 나아와 굴복한 것은 다윗이 미련스러울 정도로 의롭게 행하며 정도를 걸은 데 대해 감복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를 두 번씩이나 가졌지만 살려주었고, 사울의 손자 이스보셋과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습니다. 그는 인애와 덕으로 온 나라의 지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앙금을 풀어버리고 다윗을 향하여 “(우리를)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생략해도 되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하여 ‘우리’ 를 강조한 것은 다윗을 향한 이스라엘의 단결된 모습과 일치된 충성심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왕의 골육(아츠메카 우베사레카)’ 은 문자적으로는 ‘당신의 뼈와 당신의 살’ 입니다. 자신들이 다윗과 혈육지간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는 선결조건은 같은 민족으로서의 ‘형제됨’이기 때문에(신 17:15) 이러한 고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그들은 오랫동안 다윗을 대적하는 사울을 따랐었고, 다윗 또한 한동안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 땅에 거했기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형제됨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그들의 진정성을 나타냅니다. 즉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은 그동안 사울 왕가의 몰락과 다윗의 선정을 목도하면서 다윗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진심으로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고백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성도 여러분! 다윗 왕국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셨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이 다윗은 장차 육신을 입고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참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만을 우리의 목자로 고백하며 그분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헤브론으로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만을 자신들의 진정한 목자요 왕으로 인정했듯, 성도들은 예수님을 영원하고 유일하신 우리의 목자로 알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룬 한 골육이요 공동 운명체입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단결하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인 것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전 10장 11절에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다윗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의 것이지만, 우리 중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 아침 신문을 읽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해지기 위해 자신을 비우며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오랜 시간을 연단받으며 기다려야 할 지도 모릅니다. 다윗은 20년이 넘도록 인내하며 믿음을 키워야 했습니다. 

요나단의 비극적인 선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합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자신에게 다가온 선택의 기로에서 인간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도우셔서 여러분 한분 한분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분명히 세우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목자요 왕으로 확실히 모시고 그분의 통치에 절대 복종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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