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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 (막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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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 (막 1:1-15)


오늘부터 마가복음을 공부합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서 중에서 가장 간결하고 긴박감이 넘칩니다. 다른 복음서처럼 족보로 시작하거나 특정인물을 대상으로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언적입니다. 마가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1절)

우리가 듣고 있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기쁜 소식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생기는 기쁨을 뜻합니다. 그 기쁨은 기뻐 뛰며 춤추고 싶을 만큼 생동감이 넘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복음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상을 봤다든지 자기 중심으로 설교를 한다면 그것은 이단입니다.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복음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 중요한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제이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이날까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왔기에 여기 서서 높고 낮은 모든 사람들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앞으로 일어나리라고 예언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행 26: 27)

여러분, 복음은 내가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창세기부터 지금까지 여러 방법으로 표현되어왔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복음입니다. 복음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진리에 다가가지 못합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유대 사람에게요, 다음으로는 그리스 사람에게 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돼 믿음으로부터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기록되기를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롬 1:16~17)

메시아의 의미는 국가적·군사적·종교적 ·개인적으로 다양하게 쓰였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이 메시아를 기다린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진짜 이름은 그리스도입니다. 선지자나 제사장처럼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최초의 증인 세례 요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최초의 증인이 세례 요한입니다. 오늘 본문 2절부터는 세례 요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내가 네 앞에 내 심부름꾼을 보낼 것이다. 그가 네 길을 준비할 것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의 소리가 있다. ‘주를 위해 길을 예비하라. 그분을 위해 길을 곧게 하라’고 기록돼 있는 대로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서 죄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습니다.”(막 1:2~4)

마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의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곧장 세례 요한을 등장시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마가복음이 쓰인 당시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 이사야의 말씀부터 존재했습니다. 성경은 미리 예언하고 약속을 성취합니다. 성경은 예언과 성취가 짝을 이뤄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예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보라. 내가 내 심부름꾼을 보내 내 앞에 길을 닦게 하겠다. 그러고 나면 너희가 바라는 주께서 갑자기 그 성전에 올 것이다.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심부름꾼 말이다. 그가 올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말 3:1)

신약과 구약의 공통적인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과 신약은 복음으로 시작합니다. 마가복음 1장에 나오는 ‘복음의 시작’이라는 단어는 마치 팡파르와 같은 것입니다.

둘째,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사역을 한 사람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이나 유다 한복판에서 태어나거나 일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영성은 ‘자기부인’입니다. 그는 유명하거나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살기 어려운 곳이나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사역한 곳은 마치 선교지와 같은 곳입니다.

누구나 선교지에 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셔야 가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죄 사함을 위한 회개 즉, 세례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메시아를 맞이하는 필수 조건입니다. 회개 없는 세례와 구원은 없습니다. 또한 자신의 죄에 대한 애통이 자기 부인입니다.

셋째, 세례 요한은 강력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광야에 살면서 단순한 음식을 먹고 의복을 입고 살았는데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을까요.

어떤 이들은 교회가 잘 되려면 위치가 좋고 화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차세대를 위한 주일학교 시설이 좋아야 부모들이 유치원처럼 활용하기 위해 교회로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험한 곳에서 성자가 나옵니다. 육신이 편한 곳에서는 성자가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영향력도 갖지 못합니다.


세례 요한의 영성 ‘자기 부정’

“유대 온 지방과 예루살렘 모든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아와 자기 죄를 고백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5절)

세례 요한이 광고를 하거나 누군가가 사람들을 초청한 것도 아닌데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거짓이 많은 세상, 가짜 선지자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목이 말랐던 것입니다. 세상이 험할수록 영혼은 메마르게 됩니다.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세례 요한에게로 몰려든 것입니다.

넷째, 세례 요한은 자신을 부정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영성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단순한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크리스천의 삶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단순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만 붙들고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검소하고 철저한 자기 절제와 단순한 결단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눈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예수님의 눈처럼 인자하고 사랑스러운 눈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 16:24)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부인해야 자신을 따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삶에 만족이 있을까요. 누군가가 인정을 해주면 더 인정을 받기 위해 애를 쓰게 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부정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숨었지만 그럴수록 더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내 뒤에 오실 텐데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7~8절)

세례 요한은 자신보다 능력 있는 분과 신발 끈도 풀 자격이 없는 자신을 비교했습니다. 이것은 탁월성과 무가치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굉장히 훌륭한 것 같아도 실체는 무가치합니다. 이 말은 인간이 존귀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탁월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물세례와 성령세례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줍니다.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회개의 세례입니다. 땅의 세례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세례는 성령 세례 즉, 하늘의 세례입니다.

여러분, 물로 받은 세례와 성령으로 받은 세례는 영적 경험이 다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성령 세례를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능력입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으면 세상 사람들의 시선, 인정 등이 무가치해집니다. 하늘로부터 세례를 받았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여섯째,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물 세례를 준 사람입니다.

“그 무렵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에서 요단강으로 오셔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물에서 막 나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무척 기뻐한다.’”(9~11절)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준 것이 좀 이상합니다. 순서가 뒤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요구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거절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인류의 세례를 시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 세례는 죄가 있는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겸손, 즉 자기를 부정하는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류를 위해서 대신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까요. 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세례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은 후에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여러분, 겸손은 하늘 문을 열게 합니다. 하늘 문이 열렸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길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이 비둘기처럼 임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님이 불같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셨지만 30세가 될 때까지 인간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앞 못 보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하는 등의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언제부터 행하셨을까요. 성령세례를 받고 난 이후부터입니다.

사역 현장에서 능력이 발휘되지 않거나 부흥이 없다면 성령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 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목회는 지식과 경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하는 일은 지치고 결국 탈진하게 됩니다. 또한 화를 자주 냅니다. 여러분 성령 세례를 받으십시오.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님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시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해야만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은 미래를 가르쳐주는 예언적인 음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무척 기뻐한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 음성을 들으면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기쁨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사탄의 권세 짓밟은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한 이후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습니다.

“그러고 나서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계셨는데 천사들이 예수를 시중들었습니다.”(12~13절)

성령님께서는 왜 예수님을 사탄에게로 이끄셨을까요.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서 패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사탄과 예수님을 유혹한 사탄은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이긴 사탄을 예수님께서 쓰러뜨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최초의 사역으로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고 사탄의 권세를 발로 밟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시험을 모두 말씀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또한 하나님 외에는 경배할 대상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시험이 온다면 예수님처럼 사탄을 꾸짖으며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한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실 때 들짐승과 천사가 예수님을 보호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천사는 우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요한이 감옥에 갇힌 뒤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가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4~15절)

예수님이 처음으로 선포한 메시지는 복음입니다. ‘때가 찼고’라는 말의 의미는 불완전한 때가 아니라 성숙한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하고 성숙한 응답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인간의 시간과는 다릅니다. 구약시대가 막을 내린 후에야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나라를 말합니다. 우리의 생각처럼 어떤 새로운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왔습니다. 우리가 손을 내밀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을 초청하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여러분, 어떻게 해야 우리의 죄가 씻어질까요. 우리는 반드시 죄사함을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죄를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야합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큰 죄일수록 감춰두고 꺼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동안 자신의 뜻대로 살기 위해 예수님을 부인했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초대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지금 여러분 앞에 서 계십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문을 열어 줄 때까지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선교사로 헌신하는 것을 몹시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대륙으로 파송될지 몰라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맞는 땅으로 보내십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는 아직 예수님을 가슴 깊이 만난 경험이 없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천 년 동안 우리를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만나는 복을 누리십시오.

오늘 예배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신 분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일어서 주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은 일어서신 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모두가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찬양을 잘한다고 해서 믿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누구보다 교회에서 봉사를 열심히 한다 해서 모두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가슴 깊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찬양도 하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생활을 끊고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하늘의 복이 여러분에게 넘쳐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설교의 영향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것을 믿습니다.

오늘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가슴 깊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또한 이들에게 용기를 주시어 다시는 주저앉지 않게 하옵소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용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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