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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것을 본 사람이 큰일을 한다 (왕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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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을 본 사람이 큰일을 한다 (왕하 2장)


사하라 원주민의 사연 

사하라 사막 서쪽에는 사하라의 중심이라 불리는 한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매년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사막을 찾습니다. 하지만 레빈이라는 사람이 그곳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 마을은 전혀 개방되지 않은 낙후된 곳이었습니다. 이 곳 사람들은 사막의 척박한 땅을 떠나고 싶어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단 한 명도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레빈은 믿을 수가 없어 손짓발짓으로 마을을 떠나지 못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은 “어느 방향으로 가든 결국은 처음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더라고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말이 사실인지 실험해보기 위해 직접 북쪽을 향해 걸은 결과 단 3일 만에 사막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은 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인지 궁금해진 레빈은 답답한 마음에 이번에는 마을 사람 가운데 청년 한 명을 데리고 청년이 가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원주민 청년이 10일을 밤낮 없이 길을 걸었지만, 11일째 되는 날 마을 사람들의 말대로 그는 다시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레빈은 그 청년의 뒤를 따라가다가 그들이 사막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냈는데, 그것은 바로 마을 사람들 모두 북극성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레빈은 지난 실험에 참가했던 청년을 데리고 다시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낮에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아꼈다가 밤에 북극성을 따라 걷다보면 사막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청년은 레빈의 말대로 했고, 과연 사흘 만에 사막의 경계지역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훗날 사막의 개척자가 되었고, 개척지 중심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는데, 동상 아래에 '새로운 인생은 방향을 찾음으로써 시작된다.' 는 글귀가 있다고 합니다. (「삶의 목표가 그런 역할을 한다.」에서 인용) 사람은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삶의 목표를 정한 그날부터 진정한 인생의 항해가 시작되며, 이전의 날들은 그저 쳇바퀴를 도는 생활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인생 여정의 길잡이가 될 '북극성'과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사막을 회전하는 삶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시는 성도여러분! 오늘 능력을 얻은 엘리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엘리사의 인내

아합에 대한 엘리야의 심판 이후 점차적으로 북이스라엘의 몰락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실어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벧엘로 가라고 하시니 엘리사는 길갈에 남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선생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는 결코 선생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벧엘로 따라 갔습니다. 계속해서 벧엘에서도 여리고에서도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했고, 그때마다 엘리사는 반복해서 떠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선지자의 생도들도 엘리사에게 엘리야를 따르는 것을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전혀 개의치 않고 선생님을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요단에 이르게 된 엘리야가 겉옷을 벗어 둘둘 말아서 강물을 치자 요단강이 두 동강으로 갈라지고 강바닥이 마른땅으로 드러났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이후 엘리야가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고 하자 엘리사는 선생님인 엘리야가 가진 영감의 갑절을 구했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영감에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갖기 원한 것입니다.
   

조 건 

엘리사의 소원을 들은 엘리야는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 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에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불 수레(車)와 불 말(馬)을 보내셔서 두 사람을 갈라놓으신 후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 가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엘리야의 몸이 거룩한 몸으로 바뀌자 엘리야의 옷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엘리사가 그 옷을 붙잡고 요단강을 치자 또 갈라지므로 엘리야의 능력을 받은 것이 입증되고 뿐만 아니라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엘리사가 능력을 받은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저의 생각은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겠다는 거룩한 소망을 인내로 지키다가 부활의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지금의 수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거룩한 목표를 가져야 하고 그 목표를 위해서 뛸 수 있는 힘은 죽음 이후 천국에서 누릴 상급을 바라 볼 때 가능합니다. 


목표의 중요성 

톨스토이는 ‘세 가지 질문’이라는 글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즉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 삶이 더욱 풍부해지고 내가 행복해지는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 내 주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서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이 목표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할 수 도 있어야 하고,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서 싸우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앙인이 아닌 사람이라도 이 땅에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목표가 없는 사람보다 훨씬 더 힘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하늘의 목표를 가진 사람에게는 이 땅의 어떤 것으로도 멈출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목표

제가 아는 분 중에서 남자의 눈으로 보기에도 잘생긴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옛날에 여자고등학교에서 학도호국단 대대장을 역임한 리더십이 있는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문제는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너 같은 사람이 그렇지 뭐.”, “당신이 하는 것들이 뻔하지 뭐.”라는 식으로 아내를 인정하지 않는 말투라는 것이었습니다. 상당한 세월이 지난 뒤 그 가정을 본 뒤 말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의 아내는 의지나 힘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지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하면 세상적으로 대단한 것을 성취해야만 하는 것으로 오해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전에 우선 오늘 이 시간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일들 속에 하나님의 뜻과 형상이 일어나도록 하는 목표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할렐루야! 우리 자신을 살리고, 내 옆 사람을 살리고, 내 가정과 교회를 살리는 목표를 갖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한 목표를 가지시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은 목표가 있습니까? 있다면 그 목표가 당신 자신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벗어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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