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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 보는 기쁨

  • 강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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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눅1:40-44

제목 : 주를 보는 기쁨

 

눅1:40-44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아멘.

 

오랫동안 잉태치 못하던(눅1:18) 제사장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으니 세례요한입니다. 13절에 ‘..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는 말씀을 보면 나이 들어도 아이를 갖기 위해 계속해서 기도를 했다는 말입니다.

본문은 엘리사벳이 아이를 잉태한지 여섯 달이 되었을 때 친족인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직후에 곧바로 엘리사벳 집을 방문한 장면에서 엘리사벳이 잉태한 아이, 세례요한이 뱃속에서 기뻐하며 뛰노는 일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기 예수를 인식한 뱃속에 있는 세례요한의 기쁨을 보면서 <주를 보는 기쁨>이란 주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을 만난 자의 기쁨

 

예수님을 믿는 자는 기본적으로 형용할 수 없는 영혼의 기쁨을 얻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얼굴은 대부분 평안과 기쁨이 베여 나옵니다.

 

1)죄인으로서 구원자를 뵈니 기쁨

 

세상 사람들은 지옥 갈만큼 스스로 죄인인 줄은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주를 만나자말자 죄인인줄 알고 주를 보며 기뻐합니다.

본문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여기서 엘리사벳이 주(主), 퀴리오스(κύριος)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아이가 메시아인줄 인식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주 특별한 감각적 지식입니다. 태중에 아이라도 구주를 인식합니다. 성령의 지식입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아를 증거할 마지막 선지자로서 주를 기뻐했습니다(마11;13).

그는 요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요4:에서 주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도 주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어 큰 기쁨을 얻고 흥분된 마음으로 마을에 들어가 전도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도 구원의 주님을 알게 되었을 때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구원이 너무 기뻐서 방방 뛴다는 말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말도 잘 듣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제자들이 전도 나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와서 기쁨을 표시할 때, 눅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진정한 기쁨은 영생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됨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2)성령이 감동하시니 기쁨

 

예수님이 누구신지 안다는 것은 성령님의 조명과 지혜로 아는 것입니다(고전12:3).

마리아가 집안에 오자마자 엘리사벳은 영적 감각으로 주님이 오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복 중에 세례요한이 기뻐하면서 모친도 함께 기뻐한 것입니다.

 

본문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사람이 억지로 웃고자 하는 웃음철학은 순간입니다. 영적변화는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주를 만나는 영적 기쁨은 영생에 이르는 기쁨이요 평강입니다. 구원을 확신 할 때 기쁨은 저절로 나옵니다. 예수 믿고 큰 기쁨의 경험이 없었다는 것은 구원이 애매합니다.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2. 주를 위하는 자의 소망으로 인한 기쁨

 

세상 일 중에 교회의 충성과 복음 전도에 동참하는 일을 크게 기뻐하는 일만큼 귀중한 일이 없는 사람은 구원이 아주 분명한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은 주님을 위하는 마음이, 요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주를 위한 자기희생이 즐거운 세례요한이었습니다.

 

기쁨을 얻지 못하고 논리로만 아는 신학지식은 유익이 없습니다. 아무리 깊은 신학이라도 그것이 기쁨이 있는 신앙이 안 되면 소용이 없습니다. 복음(福音)의 뜻이 기쁜 소식(Good News)입니다.

렘 15:16 ‘...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

시 119: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혹 교회의 일로 인해 기쁨을 상실하고 서로 싸우거나 괴로워 자살까지 한다면 하나님이 그런 일을 맡기셨다는 차원에서 나쁜 신이 됩니다. 그러니까 구원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교회생활을 하거나 교회의 일을 하다가는 그런 불상사가 생깁니다. 교회의 일이 아무리 어려워도 기쁨을 상실할 처지로 가지는 않습니다.

 

벧전4:13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소망 때문에 주님을 위하며 고난을 받을 때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마5:11-12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

 

그러므로 주를 믿고 살아가는 과정에 비록 고난을 받아야 할 경우가 있겠으나 기쁨을 상실하고 좌절할 만큼 괴롭지는 않아야 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괴로움으로 따르라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로 돌아가실 주님도 찬미하셨다고 했습니다(마26:30).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행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후12:10)

 

성도는 고후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 하심대로 영적으로 늘 기쁨을 속에 안고 살아야 합니다.

 

시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그리스도를 위한다면서 괴로워한다면 주께서 그 충성을 편하게 받으시겠습니까? 헌금도 즐거이 내고(에스라 8:28,고후9:7) 봉사도 즐거운 심령으로 해야 합니다.

영생을 소유한 자는 세상 살기 힘들다고 영혼의 기쁨마저 상실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에 우리의 고난과 슬픔에 대한 큰 위로가 있을 줄 알고 기쁨으로 섬기며 복음대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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