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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후손의 나라 시작 (출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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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후손의 나라 시작 (출 1:1-7)
 

2011년 교회 표어는 골로새서 4:3절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먼저 어떤 목사님이 최근에 뉴스앤조이 인터넷 기독신문에 올린 글을 여러분께 말씀을 드림으로 복음전파에 대하여 현재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말씀을 강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목사님은 ‘현 시대에 맞는 전도법’이라는 제목으로 이곳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가 결론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현 시대를 바르게 성찰하여야 합니다. 현대인들의 코드를 읽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전도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그 복음을 담는 그릇은 변하여야 합니다. 과거를 답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 이 시대에 조금이라도 더 온전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감성과 소통이라는 현 시대의 코드를 가장 잘 활용하여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더 풍성히 맺어야 할 것입니다.’ 
  
이 분은 과거의 역사적 복음전파의 잘못을 예로 들었습니다. 십자군전쟁처럼 칼을 들고 정복하였던 교회의 역사, 그리고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소리높여 외치는 식의 전도에 대하여 말하면서 현시대는 그 때와 다르다고 하며 복음을 담는 그릇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감성과 소통이라는 현 시대의 코드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그 코드를 활용하는 것인가에 대한 대안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복음을 담는 그릇은 바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매체를 활용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복음의 본질도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제까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에 대하여 교회가 복음이 무엇인지 바르게 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복음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출애굽기를 강론함으로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그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하여 힘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여러분께 자주 말씀을 드렸듯이 구약의 하나님 나라의 근본과 신약의 하나님 나라의 근본을 잘 알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에 마가복음을 또 새롭게 함께 강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가급적이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본질을 문서로 정리하여 여러분이 전할 수 있는 도구로 만들어보도록 할 생각입니다. 
 
복음전파 명령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다 받고 있는 것인데도 우리는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저 교회에 가자거나, 예수를 믿으라는 단편적인 말만 거듭할 뿐 복음을 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예전에도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형제교회나 지방교회 같은 경우는 한 달에 한 번 쯤은 전도집회를 열고, 성도들이 돌아가며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교회 앞에 발표하듯이 합니다. 그런데 정통이라고 자부하는 장로교는 수십년 교회를 다녔어도 복음의 내용을 설명하거나 증거하지 못하는 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러니 형제교회 같은 곳에서 장로교를 얕잡아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그저 자기 개인만 구원을 얻어 천당을 가면 된다는 생각뿐이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조금 더 특별하게 일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개념은 ‘나를 따라오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에 있다고 했으며, 이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새 사람으로 땅의 것을 생각하거나 찾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찾아야 한다고 말씀드렸고, 그 위의 것은 천하만민이 차별이 없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제사장 나라로써 주님이 행하신 일과 가르침을 따라 행하여 사는 것인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는 것이라고 지난 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가득 채워지길 기도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세상의 초등학문의 교묘한 가르침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에나 말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삶에 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자로서 사는 삶이 무미건조하고 하나님께 대한 무감각으로 그저 교회를 왔다갔다 하는 종교생활로만 채워지는 경우가 우리 가운데 너무 많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역동적인 구원의 삶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원인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교회 생활 자체로만 만족할 뿐이지 자신의 일상적인 삶은 세상의 가르침과 상식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미건조한 삶의 원인은 복음을 위하여 싸우는 일을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나 하나만의 구원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역사 현장에서 70인의 제자들처럼 ‘귀신들이 항복하더이다!’라고 하는 승전보고를 드릴 만한 싸움이 우리 가운데 없기 때문입니다. 새 시대의 구원의 역사적 승리를 맛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삶 가운데 어떠한 불행이 닥치거나, 질병이 걸리거나,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만 하나님께 대하여 반응을 할 뿐입니다. 자기 필요에 의해서 하나님을 찾았지, 하나님의 필요에 응답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 신자들의 삶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왜 우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자고 지난 주까지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현재 신자들이 복음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갖고 있는지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 자신을 비춰보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게 헌신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는데 복음을 담는 그릇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 현 시대 교회가 당면한 문제인지 생각해 보자는 말입니다. 이러한 점을 이제 출애굽기 강론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근본과 내용을 확실히 하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복음의 일차적 내용이라고 확실히 알고 누구든지 복음을 자연스럽게 설명하고 증거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는 원래 책의 이름이 아닙니다. 구약은 책의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내용을 보고 출애굽에 관한 것이니까 ‘출애굽기’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이 책은 첫 번째 나오는 단어를 이름으로 사용했습니다. 히브리어로 된 출애굽기를 희랍어로 번역된 70인역 성경부터 출애굽기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출애굽기에 기록된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님이 오시기 전 1455년 정도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출애굽기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모세5경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세가 기록한 5권의 책 가운데 하나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대략적으로 출애굽기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나머지 출애굽기 개요에 관한 사항은 여러분이 참고서적을 따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출애굽기는 원어로 보면 ‘이러하니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그러니까 히브리 사람들이 이 책을 생각한다면 ‘이러하니라’고 이름을 붙였겠습니다. 뭐가 이러하냐고 물어본다면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들’이 이러하다고 답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럼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누구라고 말하냐면 1절에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이라고 설명하는 말을 통해서 알 수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단순히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이 누구인가 알리려고 하기 보다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간’ 것을 말하려는 것을 보니까 이것은 창세기의 기록된 일을 떠올리려고 하는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까닭은 ‘창세기의 기록목적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창세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때 ‘창조주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일이 야곱의 아들들에게서 이루어졌다고 출애굽기는 처음 부분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이 성취되었다는 의미로 1절이 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출애굽의 구원을 출애굽기에서도 이런 의미로 증거합니다. 2:24-2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물론 이 구절 뿐이 아니라 다른 구절에서도 이를 말씀합니다. 3: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그러므로 출애굽의 구원은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일의 성취라고 출애굽기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이름을 어떻게 말합니까? 야곱과 함께 애굽에 내려간 11명의 아들들과 애굽 땅에 있었던 요셉을 말합니다. 그리고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70인이었다고 합니다. 야곱의 열두 지파를 근본으로 하여 70인의 가족으로 확대하는 식으로 기술을 한 것입니다. 70명 전체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12명에 포함된 가족을 세고 있습니다.
  
그런 후에 6-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애굽에 내려간 70인의 가족이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의 성취라고 출애굽기의 처음 부분을 해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고 사람의 창조 목적을 말씀했습니다. 1:27-28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생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의 사람을 지으신 창조언약이 출애굽기에서 성취되었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언어를 그대로 가져와서 출애굽기 처음 부분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의 성취요, 창조주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라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성취라고 하는 개념은 그냥 옛 것이 다 완성되어 이루어졌다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성경의 성취의 개념은 새로운 시작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취라는 말은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족보 기록 방식도 족복의 맨 끝에 기록된 이름이 그 족보의 성취자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족보의 머리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 모양은 마치 사슬고리와 같은 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먼저 사슬의 마지막이 새로운 사슬의 처음이 되는 모양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출애굽기의 오늘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창세기의 언약을 성취하사 새로운 경륜으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는 출애굽의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신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단순히 출애굽기의 처음 부분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출애굽기 전체의 내용이 무엇이라고 하는 서론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새 역사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은 마태복음에서도 잘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1:1절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한 뒤에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 왕까지 14대를 기록하고, 다윗 왕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때까지 14대를 기록하고, 바벨론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까지 또 14대를 기록합니다. 1:17절입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

이 기록은 자세하고 정확하게 족보의 기술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저자의 의도에 따라 편집된 기록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이 계보의 마지막에 그리스도 예수의 나심을 기록하고 1:18절에 ‘그리스도의 나심을 이러하니라’고 말함으로 계보의 맨 끝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경륜을 말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마태의 계보 기록은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 시작되었던 하나님의 나라가 다윗 왕때 완성이 되었으나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갔습니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갔으나 이제 이 나라와 계보를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시키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나라를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나라의 경륜으로 시작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라고 하며 계속해서 낳고, 낳고, 낳고를 연속해서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나심에서는 이러한 혈통적인 낳음이 계속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1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즉 예수의 나심은 성령으로 잉태된 전혀 다른 새로운 나심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가 성취되었는데, 예수의 나심은 새로 성령으로 나심의 시작이라고 마태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12-13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을 누리는 자들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영접한 자들은 전혀 새로운 신분으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마가복음은 1:1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가 시작되었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시작은 단순히 처음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 안에 이미 성취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작에 대하여 마가는 1:3절에 말하는 바와 같이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기록된 것과 같은’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즉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것을 성취함으로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을 단순한 역사 기술로 보지 마십시오. 야곱의 자손들이 얼마나 내려갔나 하는 역사적인 사실을 알리려는 데 그 일차적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말입니다.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후손들로 말미암아 출애굽의 새로운 하나님 나라 경영이 시작된다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야곱의 아들들, 곧 12지파로 말미암은 출애굽의 역사로 하나님 나라가 건국이 되는 일을 기록한 것이 출애굽기의 전체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제까지 우리가 이 본문을 읽었을 때 여러분은 얼마나 이 본문으로 인하여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과연 이 본문으로 설교한 목사님들이 얼마나 계실까요? 이 본문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자신에게 주신 은혜로 주어지고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으로 인하여 감동함을 받거나 자기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을 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말씀을 자기 상황에 맞게 가져다 쓰려는 못된 습성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환경과 조건과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져다 썼기에 결국 성경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경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자기를 경배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게 적용이라고 여기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의 제일 첫 부분에 나오는 말씀은 그 성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처음 부분이 전체를 다 포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출애굽하여 세운 이스라엘 나라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나라이며, 창조주 하나님이 언약하신 나라이라고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을 따라 시내산에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부르시고 그를 보내어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시내산에 모으사 언약을 체결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 출애굽기의 전체적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여러 번 말씀드렸던 것처럼 모세는 여호와의 종이지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다시 되새겨야 할 것은 마가복음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이 복음으로 시작하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아들의 나라임을 처음부터 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여호와의 종들이 참여하여 시내산에 세운 나라이지만, 이제 이사야의 언약을 이루사 새롭게 시작된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라요, 갈릴리 산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마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나라는 야곱의 후손들이 번성하여 세운 나라가 아닙니다. 이 나라는 바벨론 땅에 흩어진 남은 자들을 새로운 거룩한 씨앗으로 하여 열방 백성들이 가득히 시온으로 돌아와 세운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마가복음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선지자 이사야에게 하신 언약의 성취로 세워졌습니다. 이 약속의 때가 차매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성령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취임하사 사단의 권세를 꺾는 영광의 나라를 세웠다고 마가복음은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후손들로 말미암아 세운 출애굽의 나라는 결국 망하고 말았지만,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함께 하는 새로운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는 나라임을 복음서는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교회를 바라보고 생각해야 할 때 그저 자기 감정이나 기분이나 경험을 따라서 판단하거나 해석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자신에게 은혜가 있고 없음에 따라, 자신에게 복이 있고 없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교회상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이 교회가 어떤 역사적 성취가 있으며 어떤 후손들로 말미암아 세워졌다는 인식이 없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죄인이 죄사함 받아 천국을 가느냐는 단순한 교리의 가르침으로 교회를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의 나라와 왕조도 그 나라가 새롭게 들어설 때는 그 나라의 정체성이 어디로부터 계승되었는가를 꼭 말합니다. 대한민국도 상해 임시정부의 정신과 삼일 운동 정신을 계승한다고 밝힙니다. 고려 왕조도 고구려의 정신과 이념을 계승함을 밝혔습니다. 
  
성경은 새로운 나라의 시작이다, 새로운 역사 경영이다라고 말하는 데, 이런 역사의 성취와 새로운 경영에 대하여는 아무도 말하여주지 않고 오직 개인이 죄사함 받아 천당가는 일에만 열중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의 본질이 훼손되었다고 제가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 다운 복음이 제대로 선포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은 종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아들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말한 야곱의 후손들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아들들로 이 나라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출애굽의 야곱의 후손들이 누리지 못했던 하늘 나라에 참여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큰 긍휼이요, 우리에게 베푸신 큰 은혜였습니다. 
  
모든 구원역사를 성취하사 하늘의 경영을 이루는 새 나라의 일에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 나라에는 옛 시대에서 비천하게 여김을 받았던 죄인들이 들어옵니다. 소경되었던 자들, 눈 먼 자들, 어둠과 그늘에 앉았던 흑암의 권세 아래 있었던 백성들이 들어옵니다. 천하만민이 들어옵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 예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로 아버지를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 새 사람으로 하늘 나라에 참여한 백성들입니다. 
  
참으로 이 나라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나라입니다. 사단의 권세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하여 영 멸하신 나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시고 선하시고 기뻐하신 뜻을 이룰 수 있는 나라의 백성들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고난과 죽임을 당하사 부활로 승리하여 세운 나라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의 건물과 모양으로 설명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모인 구성원들의 가진 것들로 설명해서도 안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나라를 성취하사 죄와 죽음을 이기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오르신 하늘 나라로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종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이 곳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하는 곳이요, 죽음을 이기신 왕과 함께 하는 자리요, 다시는 망하지 않는 영영한 권세가 함께 하는 곳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하는 영광의 나라에 여러분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께서 11명의 제자들로 갈릴리 산에서 세우신 영광의 나라가 천하만민에게 전파되었고, 이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는 자들이 이 영광의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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