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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인류 대표선수 (롬 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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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대표선수 (롬 5:12-21)
   

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주간의 수요일, 참회의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이란 말은 사십일절이라는 말입니다. 사순절은 교회가 오랫동안 지켜 내려오는 절기이만 성경에 나오는 절기는 아닙니다.    성경에는 사순절을 지키라는 명령은 없지만, 초대교회로부터 예수님의 수난에 참여하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부활절을 잘 맞이하기 위하여 경건하게 지켜오다가 4세기에 접어들면서 모든 교회들이 사순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참회의 수요일로부터 부활절 하루 전 토요일까지 40일을 경건하게 보내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주일은 사순절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46일간을 지키게 됩니다. 

40일의 사순절이 주일을 포함하여, 46일이란 7주간의 긴 날이기 때문에, 평상시와 다름없이 지내다가 고난주간만 정신 차리게 된다고 합니다.  46일 동안 성도들에게 죄를 회개하라고 강조하고,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라고 외치다보니 정작 기뻐해야하는 부활절 하루만 기뻐하고 허탈감에 빠지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순절을 영적 성숙의 시간으로 보내고, 부활절과 함께 성령강림절까지 기쁨의 50일을 지키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참회의 수요일예배 때에, 프랑스에 있는 떼제공동체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1940년도에 스위스의 개신교 목사님의 아들인 로제가 설립하였는데, 최초로 참여한 6명의 성도들은 개신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그 후에 성공회, 가톨릭교회의 성도들이 참여하면서 신구교를 떠나서 일치와 연합을 이룬 공동체가 되었고, 매년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찾아와 기도하고 돌아가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떼제공동체를 보면서 한 가지 발견한 것은 그곳 공동체에서는 사순절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용서하심에 대한 기쁨을 경축하는 기간”으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죄에 죄를 더하고, 고난에 고난만 강조하다가 부활절에 가서 용서의 기쁨을 가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떼제의 사람들은 사순절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기뻐하고 경축하는 감격으로 보내고 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 개신교회 성도들은 자신을 학대할 정도로 죄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는 죄의식을 가져야 하고, 죄성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깊은 죄의식에 사로잡힌다고 하여 무슨 공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죄를 아파하면서 회개하고, 통회 자복하지만, 그것이 우리로 구원을 받는데, 일조하고, 의롭게 봐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해주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주님의 죽으심 때문에 구원받고 죄에서 용서받은 것을 더 감격해야 합니다.  

‘아니 목사님, 죄의식도 없는 사람인데, 무슨 용서의 감격이 있을 것이냐’고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인정하고 죄를 아파하고 죄를 회개하면서 버리지만, 주님의 용서가 더 크고 넓기에 우리의 더러운 죄를 다 대속하시고 용서해주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순절만 되면 어릴 때 지은 죄부터 다시 끄집어내고, 죽었던 죄를 다시 살려내어 회개할 필요는 없습니다. 

매년 사순절이 되면, 죄를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러운 죄인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쓰고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를 회개한다고 하면서 일 년을 보냅니다.  그리고 다시 사순절이 되면 똑같이 죄를 회개하고, 죄를 버린다고 합니다.   매년 사순절이 되면, 습관처럼 죄 잔치나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떼제공동체가 하나님의 용서하심에 대하여 기쁨을 경축하는 것은 정말 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를 극복하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많은 성도들이 자선에 힘쓰고, 금식하며 기도하였고, 집중적으로 성경을 읽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훈련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사순절에는 영적으로 자신의 취약한 부분이 어떤 분야인지를 들여다보면서, 광야나 사막, 그리고 산으로 들어가서 기도하면서 영력을 얻었고, 욕심으로 더럽혀진 영혼을 깨끗하게 정화시켰습니다.  금요 기도회에 나오시고, 새벽기도에도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형식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기도회라는 형식에 내용을 담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주님의 대속의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목을 “인류 대표선수”라고 정해보았습니다. 

인류의 첫 번째 대표선수는 아담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아담 안에서 전 인류의 타락과 정죄와 심판에 이르렀습니다. 12-14절은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전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습니다.    두 번째 대표선수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으로 구원과 은총과 생명이 들어왔습니다. 

아담은 우리 인류의 대표자였습니다.  대표선수였습니다.  ‘국가대표’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스포츠 사상 가장 취약한 부분인 스키점프 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급조된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이 고군분투하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영화였습니다.   교역자 수련회에서 함께 관람하였는데 저는 우리나라 영화도 참 수준 있게 만든다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알아주지도 않는데, 불모지에서 최선을 다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으로 이 나라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는 온 국민과 하나 됩니다.    우리는 지난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5위에 오르고 금메달 6개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서, 하계올림픽만이 아니라, 동계올림픽에서도 상위입상의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했습니다. 대표팀이 이기면 우리나라가 이긴 것이요, 국가대표팀이 참패하면, 우리나라가 참패한 꼴이 됩니다. 국가대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우리 국민을 대신하고, 우리 한 사람을 한 사람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대표성의 원리를 알아야 성경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의 천황이 항복문서에 서명하였습니다.  누가 항복한 것입니까?   천황이 도장을 찍었지만, 일본이 연합국에게 진 것입니다. 우리 고종황제가 을사보호조약에 어인을 찍었습니다.  한일병탄에서 순종황제에게 옥새를 찍으라고 하니, 어린 순종이 흐느끼면서 승낙하지 아니하였고, 황후도 통곡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황후의 숙부 윤덕영이 순종에게 옥새를 찍으라고 다그칩니다.   순종이 울면서 침전에 들어가니, 윤덕영이 몰래 합방조약문서에 옥새를 찍어 가지고 나와 이완용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우리의 왕이 옥새를 찍었습니다.   대표성의 원리를 실감해야 합니다. 

유명한 구약신학자 ‘월터 브르그만’이란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성경을 연구하면서 아주 특별한 견해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헬라인들은 학문을 발전시킨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의식 속에는 헤브라이즘의 영향과 영적인 사고방식으로, “나는 어디에 속하였는가?”라고 질문한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였는가?”   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질문이지만, 성경적인 질문은 “나는 어디에 속하였는가?”  이 질문이 더욱 성경적인 질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소속의 문제로 고민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소속된 사람이어야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에게 소속된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은 종교의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주 예수님의 구원을 선포하기 위하여 참으로 많은 것을 연구한 세계의 석학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으로는 감히 생각해낼 수 없는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지혜와 지식이 넘치고, 영적으로 깊고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에게 미치는 구원을 설명하기 위하여 반대로 아담으로부터 출발해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죄와 사망이 들어온 경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인하여 전 인류가 구원받는다고 말하면 고개를 저으며, 의심하고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죄가 들어오고, 사망이 들어온 것은 반대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한 사람은 결코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아주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도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 합니다. 세계사를 보면 히틀러, 무소리니, 칼 마르크스, 레닌, 김일성 이런 무자비한 사람을 봅니다.  이런 사람을 보면, 한 사람의 나쁜 영향력이 한 민족, 한 시대를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은 미친 사람들에 의해서 다스려진다”는 말을 합니다.  그들을 보면 비정상적인 사람들입니다.  사람이란 상식으로 살아가는데, 이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악한 사람들입니다.  

1.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죄와 사망이 인류에게 미쳤습니다.  

12절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한 사람은 결코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그가 속한 지파, 그가 속한 가문을 말하게 됩니다.  한 사람은 모든 사람의 대표자입니다.  아담은 모든 사람의 대표자이고, 우리는 다 아담의 후손입니다.  죄와 사망은 아담 한 사람을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들어왔습니다. 죄와 사망의 원조가 바로 아담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부혈모정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죄와 사망이 전가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전가된 죄, 이 죄를 원죄(原罪)라고 합니다. 우리는 원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범죄하였기에 죄인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죄는 원죄와 자범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원죄는 한 마디로 아담의 범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온 인류의 대표인 아담이 범죄하였기에 그의 후손들이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죄는 파급성이 강해서 온 인류에게 죄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리문답 14문에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그것을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약속한 것은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후손도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범죄로 인한 형벌은 그에게만 미친 것이 아니라, 대대로 오고 오는 세대, 모든 후손들, 전 인류에게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담에게 ‘범죄하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창2:17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은 인류의 조상입니다.  우리는 대표성을 인정합니다.  이 대표성을  헤드십(Headship)이라고 합니다.  아담은 인간의 대표선수였는데 그가 죄를 범하고 불순종하므로,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고,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흘러들어왔습니다.  아담은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후손들에게 죄와 형벌을 물려주었습니다.  

우리 노회의 한 교회를 보니 담임목사와 함께 형편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담임목사가 중요합니다.  목회자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고, 정직하고 신실하면 온 교회가 복을 받고 바로 서지만, 한 사람 목사가 잘못되고 보니 그렇게 존경받던 장로님들도 다 무너지고, 교인들이 흩어지고 절망감에 빠져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본문에서 아담으로부터 주어진 것을 보면, 죄, 범죄, 정죄, 심판, 사망, 죽음이라는 말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죄는 연좌제(緣坐制)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친척이나 인척의 범죄로 처벌당하거나 불이익을 받게 하는 제도입니다.  역모와 같은 중대 범죄를 범하면, 범죄자의 친척이나 인척까지도 처벌을 받았습니다.  조선왕조에서는 역모죄, 반역죄는 9족을 멸하였습니다.  그러니 감히 반역하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기 한 사람 때문에 온 가족이 받을 고통 때문에 감히 반역할 생각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어디에 속하였느냐, 우리의 대표성을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청년 때, 신학교에 다니는데, 7대 국회의원 중에 경남 창녕에서 나온 성낙현의원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 작은 아버지와 같은 이름이었습니다.  성씨 중에 국회의원이 되신 것을 감사한 일이지만, 1978년 여당인 공화당 국회의원인 성낙현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낙현의원이란 사람은 유진산의 조카와 결혼한 인연으로 야당인 신민당공천으로 경남 창녕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그 때 신민당은 여당인 공화당에게 경남의 15 선거구에서 참패하였고, 한 곳 창녕에서만 당선되었는데, 성낙현의원입니다.   창녕은 성씨 문중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당선이 된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당적을 신민당에서 공화당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에 찬성표를 찍어달라고 회유된 사람입니다.  그것까지는 좋았습니다.   신민당이 당을 스스로 해체하므로, 성낙현의원은 의원직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다시 보궐선거에서 공화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직을 사표를 내었습니다.    55살의 국회의원과 18살의 여고생들 간의 충격적인 성 스캔들이 있었습니다.   학도호국단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차에 태워달라던 여고생들을 일본인 사업가에 소개시켜주었고, 여기에 국회의원이 연루된 것이 드러나면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같은 성씨라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같이 매도되었고, 왜 내가 성씨로 태어나서 같은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우리 모든 인류는 아담의 후손으로 아담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으므로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후손들에게 죄, 범죄, 정죄, 심판, 사망, 죽음이라는 말을 물려주었습니다.  

고전15:20-22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  이제 다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19절 말씀에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대표성의 원리를 인정해야 하는데, 초대교회 이후의 속사도시대의 교부로 크리소스톰 감독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유대인이 너에게 묻기를 어찌하여 그리스도 한 사람의 능력으로 세상이 구원 받느냐 하면, 거기에 반문하기를 어찌하여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이 전 세계를 정죄하였겠느냐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15절에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담이 죄의 원천으로 온 인류에게 죄와 사망을 미치게 한 것처럼, 그리스도는 의의 원천으로 온 인류에게 의와 생명을 미치게 하였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은 살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죄는 뒤따른 인간의 죄와 관계없이 죽음을 초래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의는 주님을 믿고 뒤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17절에서 “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데, 예수 그리스도, 또 한 사람, 하나님의 은혜, 의로운 행위, 순종, 선물, 은사, 의롭다 하심, 은혜, 의의 선물, 생명, 영생, 왕 노릇 이런 단어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 아담이 범죄하므로, 죄가 그에게 왕노릇하였고, 죄의 삯인 사망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은혜와 의가 우리 인간에게 들어오게 되었고, 생명이 왕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주어진 죽음이었는데, 이제 우리 주님 예수님으로 인하여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서실 준비는 되어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렸어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면, 그는 영원한 형벌에서 면할 수가 없습니다.  갑작스런 지진과 쓰나미 같은 재난이 우리에게 닥친다고 하면, 어찌할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들입니다.  내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한 죄의 유전은 자동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자연적으로 부모의 피를 받아, 유전인자를 받아 타락하고 범죄하고, 정죄받으며,  심판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인격적으로 믿어야 구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격적으로 믿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가정에 태어났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영향권에서 태어났어도 그가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인정하고 고백할 때에 구원받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은혜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은혜는 은혜로 받아들일 때에 은혜입니다.  우리의 대표자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이 구원의 복음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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