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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이 열린 사람 (행 1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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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열린 사람 (행 16:10-15)


(행 16: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행 16: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볼리로 가고
(행 16: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행 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창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행 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행 16: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며 머물게 하니라

사도행전 16:6절에 보면 성령이 바울의 전도의 방향으르 180도 바꾸어 놓는 사건을 보게 됩니다.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밤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나타나서 “마게도냐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지체없이 배를 타고 아시아에서 유럽의 첫 관문인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라는 도시에 도착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의 첫 성이라고 했습니다. 역시 다른 지역처럼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아시아에서 복음의 불모지 유럽으로 건너와 지금 빌립보에 도착한 것입니다.

기도처를 찾으라
빌립보에 도착한 다음 거기서 며칠을 유하였습니다. 바울은 약간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에 따라 빌립보에 까지 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아 나갔습니다. 기도처를 찾다가 강가에 몇 명의 여인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유대인의 법에 따르면 회당에는 최소한 10명 이상의 남자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16절의 기도처에는 여자들만 있는 것으로 보아 전통적인 회당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찌됐든 바울이 기도처를 찾았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 기도처를 찾는 믿음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처는 교회당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원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조용한 골방일수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매일 매일 기도처를 찾으셨습니다. 바울도 그랬고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매일 기도처를 찾으십시오. 매일의 새벽 제단을 쌓으십시오. 
삶에 지치고 힘들 때 기도처를 찾으십시요. 
특별한 사업이나 일을 시작할 때 
그리고 어떤 결단을 필요로 할 때 
질병에 결려 어려울 때
성령의 도움과 역사를 원할 때 

시카고의 어느 상점이 화재가 나서 다 타 버리고 말았습니 다. 모두들 그 상점이 이제는 폐업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아침에 잿더미가 된 상점 앞에 간판이 나붙었는데,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집의 모든 것은 다 타 버렸습니다. 그러나 제 아내와 자식들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은 타지 않았습니다.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영업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모든 사람이 실망하고 슬퍼할 때에도 기도하는 성령의 사람들은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언제나 새로운 소망을 주시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는 믿음을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세계 선교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부흥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부흥의 원동력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

기도처에 있습니다. 
한국에는 수 없이 많은 교회와 기도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원 마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기도원에 기도하는 발길이 끊어지면 한국 교회는 생명력을 잃습니다.

우리 교회에 기도의 바람이 더욱 불어야 합니다.
저녁에 그리고 새벽에 기도처를 찾아야 합니다. 대개 새벽 기도하는 교인의 숫자는 그 교회 숫자의 십일조에 해당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 기도하는 교인은 그 교회의 십일조 교인입니다. 매일 못 나오면 일 주일에 가끔씩 빠지더라도 새벽 기도하는 교인이 됩시다. 

기도처에서 만난 사람 
바을은 기도처를 찾다가 강가에서 몇 명의 여인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 때 빌립보 교회의 개척자가 된 루디아를 만납니다. 바울이 기도처에서 루디아를 만난 것을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 성에서 온 자주장사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당시 두아디라는 직조기술이 발달하고 자주색 염료를 사용하여 염색하는 기술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아마도 루디아가 빌립보에 온 것은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루디아는 어떤 사람일까요?

1)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듣기전부터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실한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흔히 한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때 된 사람과 난 사람이라고 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난 사람이란 외형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회적인 신분과 명성과 재물과 권세를 얻은 사람을 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된 사람이란 내면적인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에 똑똑하고 뛰어난 난 사람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착하고 진실 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루디아는 난 사람이기보다는 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기 직업에 충실하면서 하나님을 공경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고 생활하는 것이 공경하는 것입니다. 
경건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을 듣기 전이기 때문에 복음의 기준에서가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의 율법적 기준에서 그는 하나님을 공경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만 가지고는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의가 아무리 많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공로가 아니고서는 구원 받을 수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에게 전도자 바울을 보내어 복음을 듣게하였습니다.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들을 때에 루디아의 마음이 열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마음이 열린 사람
사람이 마음대로 열 수 없는 문이 있습니다. 

천국의 문입니다. 
기도의 문입니다.
축복의 문입니다. 
천국의 문은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영접하고 시인하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열어주십니다. 기도의 문은 힘쓰고 애쓰는 자에게 성령께서 열어주십니다. 축복의 문은 복 받을 짓을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열어주십니다. 

또 하나의 문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의 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이 열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 문 앞에 서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성도들의 마음의 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시면서 열라고 하십니다. 계 3:20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닫힌 마음에는 주님이 들어가시지 않습니다. 
닫힌 마음에는 이웃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폐쇠적이 되어 언제나 자기입장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따듯하게 배려하지 않습니다. 닫힌 마음에는 성령님도 계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 시간을 통하여 마음의 문이 열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루디아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행16:1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일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주께서 마음을 열어 주셔야 믿습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 문을 여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열리면 어떻게 됩니까?

(1) 말씀이 들립니다.

들린다는 것은 귀로 들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영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계2:7, 2:11, 2:17, 2:29, 3:6, 3:13, 3:22)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에 영으로 들려져야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루디아의 마음을 성령께서 열었습니다. 그랬더니 바울의 말이 영으로 들려졌습니다.

(2) 말씀을 순종합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라고 했습니다. 
청종이란 말은 듣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순종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순종치 않으면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다고 주님은 마 7:26절에서 산상설교를 마치시고 결론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이것은 따르는 일 즉 순종이 듣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헌신하게 됩니다. 

15절에 보면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며 머물게 하니라” 라고 했습니다. 
루디아는 마음이 열려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 바울을 자기 집에로 강권하여 영접합니다. 
온 가족이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강권하여 바울이 빌립보에 머무는 동안 자기 집에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루디아의 집은 자연스럽게 성도들이 모이는 처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16:40절에서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준 후에 억울하게 고소되어 감옥에 갔다가 출옥한 다음에도 곧바로 루디아의 집으로 가서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였다는 것을 보면 루디아는 자신의 집을 교회로 하여 유럽 전도의 전초 기지가 되게 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날 루디아와 같이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선교의 현장에서 쓰임 받을 헌신된 일군 말입니다. 

(4) 마음이 열린 사람은 덕을 세우게 됩니다. 

마음이 열린 사람은 모든일에 긍정인 태도를 갖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됩니다. 루디아는 마음이 열린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고 그가 중심이 되어 빌립보 교회가 시작되었고 교회가 부흥하게 된 것이 바로 그녀의 마음이 열린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노인 하나가 젊었을 때부터 매사에 둥글둥글하게 처세하여 남들과 교제하는 일에서 일절 모가 나지 않으므로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시비 한 번 벌인 일이 없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큰일이 났습니다. 오늘 아침에 남산이 무너졌습니다." 
"그럴 걸세, 수천 년이 넘게 오래된 산이니 그동안에 비바람도 숱하게 겪었을 테고, 무너지는 것도 괴이한 일은 아니지." 
노인의 대답에 옆에 있던 한 노인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그럴 리가 있나, 산이 늙었다 해서 무너진다면 세상에 산이 몇이나 남아 있겠나." 
"자네 말도 옳아, 원래 산들이라는 게 위는 뾰족하나 밑은 넓고 또 바윗돌이 서로 얽혀 있으니 무너질 염려는 없다고 봐야겠지." 
노인은 태연히 대답했다. 젊은이 하나가 또 달려왔다. 
"참 이상한 일도 다 봤습니다. 소가 쥐구멍에 들어갔지 뭡니까. 그것도 조그만 송아지가 아니라 황소가 말이에요." 
"자네의 말이 거짓은 아닐 거야, 원래 소란 놈의 성품이 우직하니 비록 쥐구멍이라고 해도 돌진해 들어갈 것은 틀림없는 일이지." 
듣고 있던 노인이 답답하다는 듯 다시 참견을 했다. 
"그럴 리가 있나, 소가 아무리 우직하다고는 하나 어떻게 그 작은 쥐구멍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겠나." 
이 말을 듣고 노인은 다시 말을 바꾸었다. 
"자네 말도 옳아, 소는 뿔이 두 개나 있는데 그 거추장스러운 몸을 해서는 아무 구멍에도 들어갈 수 없을 거야." 

노인은 잠시 사이에도 여러 사람의 말을 한 번도 그릇되었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보다 못해 그곳에 있던 한 사람이 반박을 했다. 
"노인장! 사람이 어찌 그렇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모두 옳다고 하니 대체 무슨 까닭이오?" 

노인은 정색을 하고 대꾸했다. 
"이것은 내가 이렇게 늙어서까지 몸을 편안히 지내는 비결이니만치 그대들은 웃지 말아 주오, 나는 이렇게 해서 규각(圭角)을 잘 내는 자들을 경계해 왔소." 
※ 규각(圭角) : 옥의 뾰족한 모서리라는 뜻. 언행이나 성격 등이 원만하지 못하고 모가 나서 남과 잘 어울릴 수 없는 일. 

그렇습니다. 마음이 열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각을 세우지 않습니다. 덕을 세우고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마음을 닫아둔 사람에겐 결코 사람들이 모이지 않습니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사람의 뇌 속엔 이심전심 세포가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 어떤 드라마의 대사에 이런 대사가 있었습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반응하는 마음, 그 마음을 콘트롤하는 신경 세포를 학자들은 거울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열리면 거울세포가 작동합니다. 
이심전심 세포가 작동하지 않으면 왕따 되기 싶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 기도합시다.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도 되고 마음이 열려야 은헤도 받습니다. 열린 마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는 마음이 열리고 교회에 대하여 마음이 열리고 사람에 대하여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서 말씀을 듣고 은혜받게 하신 것처럼 내 마음을 열어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더욱 충만하게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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