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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남의 은총(恩寵) (눅 10: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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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은총(恩寵) (눅 10:30-37) 
 
 
오늘은 3월 첫째 주일입니다. 그리고 음력절기로는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켠다는 '경칩'입니다. 겨울잠을 깨고 나온 개구리들도 새로운 세상과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진급과 진학으로 학년과 학급과 학교가 바뀌므로 새로운 만남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므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만남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만남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난 만남을 통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괴롭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집니다. 

그들 중에서도 유익한 사람들, 덕스러운 사람들, 지혜로운 사람들, 능력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는 아름답게, 선한 모습으로 변화를 받습니다. 반면에 무능하고 무지하고 완악한 사람들을 만나면 삶이 어두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 좋지 못한 사람을 만났을 때 물들지 않고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갈 힘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만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만남은 반드시 결과를 낳습니다. 그래서 만남은 신중해야 합니다. 좋은 만남이 좋은 인생을 만듭니다. 좋은 만남이 좋은 미래를 창조합니다. 좋은 만남은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만남에 따라 우리 인생은 달라집니다. 우리는 만남을 통해 변화됩니다. 우리가 교제하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변화됩니다. 

훌륭한 인물의 배후에는 반드시 훌륭한 만남이 있습니다. 훌륭한 만남이 없이는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인물을 직접 만날 수도 있고, 책을 통해 만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만남을 통해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삼중고를 짐어진 헬렌켈러는 셀리반선생님을 만남으로서 장애를 딛고 비장애인보다 훨씬 능력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12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서 뛰어난 인생들이 되었습니다. 바울사도도 안디옥교회의 바나바를 만남으로써 비로서 이방인의 전도자로서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잠 27:17절에 보면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했습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시각, 관점, 언어, 가치관, 의식, 태도, 심지어는 의상까지도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누군가를 생각하며 옷을 입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남이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좀더 좋은 만남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만남이 축복이다' '만남이 은총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만남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만남의 은총, 만남의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새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이 새 소리를 내니 정말로 야생의 새가 날아와 그 사람의 손바닥에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가 오랫 동안 새를 관찰하고 연습했더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짐승을 만나면 짐승의 말을 배우고 신을 만나면 신의 말을 배웁니다. 짐승을 만나면 짐승의 소리를 하고 신을 만나면 신의 소리를 합니다. 주식에 미쳐있는 사람을 만나면 맨날 주식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이야기만 하고, 땅에 미쳐있는 사람을 만나면 맨날 전국의 돈 되는 땅 이야기만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와 만나며 여러분은 어떤 소리를 냅니까?  

1. 나쁜 만남, 좋은 만남
  
오늘 본문에 강도 만난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길은 늘 강도가 출몰하는 예견되는 길이었습니다. 종종 뉴스거리가 생기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길을 아무대비도 없이 혼자 갔고 그리고 그 결과로 강도를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만나서는 안될 사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 만남은 상극의 만남입니다. 만나면 손해가 나고 만나면 문제가 생기고 만나면 잃게 되는 만남입니다. 그래서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서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그대로 놓아두면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강도들은 매우 야만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가 가진 돈뿐만 아니라 옷도 벗겨갔습니다. 그리고 쫓아오지 못하도록 하고 또한 그들의 잔악한 성격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그를 때렸고 상처 때문에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습니다.

사단과의 만남 우상과의 만남, 거짓선지자들과 사이비 이단과의 만남은 강도 만난 것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꾸미고 미혹을 하던 종국에는 그 야만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사단의 일은 속이고 뺴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을 만났지만 그들은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하여 지나가버렸습니다. 이들을 만난 것은 아무 유익이 없었습니다. 그는 친구이었어야 할 자들에게 완전히 무시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강도 만나서 다 뺴앗기고 죽어가는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만난 것은 행운이고 축복이었습니다. 그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하면 그는 목숨을 잃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상처를 싸메임 받고 생명의 보호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2.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기고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돌보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막을 떠나면서 이후의 모든 비용되 지불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되 끝까지 돌보아주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을 증오한 사람을 사랑하였고,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셨으며, 자신의 돈을 지불했으며, 우리가 아는한 공공연하게 보상을 받거나 칭송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강도만난 자와 같은 우리를 위해서 기름과 포도주가 아닌 물과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죄인이었던 자가 용서함을 받고, 절망가운데 있던 인생이 소망을 얻으며, 무능한자가 유능해 지고, 지치고 상처받던 삶이 싸메임을 받고 보람을 갖으며, 병마로부터 건강함을, 사단의 결박에서 자유함을, 어두움과 죄악된 삶이 빛의 생활로 바뀌는 역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편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내놓고 예수님을 만남으로 가로 막힌 담을 헐어야 합니다. 내 영혼이 생존하신 하나님을 갈망할 때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시편 42:1,2절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 함같이 내 영혼이 생 존하신 하나님을 찾기에 갈망하나이다."했습니다. 
 
절망적인 삶속에서 하나님을 만남으로 위대한 지도자된 모세처럼 우리도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만나기를 갈망하여야 합니다. 슬플때나, 기쁠때나,언제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강도 만난 사람은 사마리아인을 만남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났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고 하면 헛된 만남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괴테는 "먼지도 태양빛을 받으면 빛을 발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먼지와 같이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빛을 발할 수 있는 길은 태양빛과 같은 주님을 신앙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다르 사람들보다 먼저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를 만났기에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를 하게 되고 회개한 영혼을 치료하시고 고쳐주시고 회복시키시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3. 좋은 만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잘 가꾸는 것입니다.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의 공통점은 힘써 가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써 지켜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 1:14절에서 그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정원과 가정은 가꿀수록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남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난 것이 축복된 만남, 행복한 만남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님과의 만남을 정성스럽게 잘 가꾸어야 합니다.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만남의 은총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만남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난 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운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잘 가꾸고 길러가야 합니다. 신앙은 화초를 가꾸는 것과 같습니다. 조금만 소홀리 하면 뿌리가 마르고 잎이 스들어버립니다.  
교회와 만남도 그렇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인생의 방황도 신앙의 방황도 끝내고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히 살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영적 가정인 교회생활도 지키고 가꾸고 돌봐야 합니다. 

좋은 만남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지만 그 좋은 만남을 가꾸고 지속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입니다. 좋은 만남을 가꾸는 사람들은 좋은 만남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좋은 만남은 좋은 만남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 머뭅니다. 좋은 만남을 위해 우리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무엇보다 좋은 만남을 지속하는 길은 감사에 있습니다. 감사는 좋은 사람을 끄는 힘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을 머물게 하는 은은한 힘이 있습니다.

4. 네가 가서 네 이웃의 좋은 만남이 되라고 하십니다. 
  
눅 10:37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했습니다. 
너희도 선한 사마리아사람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의 좋은 이웃이되어주고 좋은 만남이 되어준 것처럼 너희도 이웃의 좋은 만남이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향하여 "난 당신을 만난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었고 축복이었오"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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