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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찾아가는 사도와 영접하는 성도 (눅 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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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사도와 영접하는 성도 (눅 10:1-16)

 
내 용 

3월과 4월은 한국 교회들이 대심방을 합니다. 갈보리교회도 이번 주간부터 교구 목사님들이 계획하고 대심방을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실천목회’라고 말합니다. 우리 현대인들의 심리적 특성이 있는데 누가 집에 찾아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문화입니다. 그래서 남의 집을 드나드는 것이 이상하리만큼 이제는 오고가는 이웃 간의 아름다운 문화가 없어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부모님들이 찾아오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아파트 이름을 프랑스어로 짓는다고 합니다. 

‘아데나루채’, ‘상떼르시엘’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못 찾아갑니다. ‘뽀뽀스쉐르빌’ 찾아온 할머니가 여기 뽀뽀하는 아파트가 어디냐고 물었다는데 이러한 프라이버시 문화 때문에 교회 심방도 어려워졌습니다. 고급 아파트는 찾아가는 수속도 얼마나 복잡한지 주인이 문을 안 열어주면 들어갔다가 나올 수도 없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예수님은 70명의 사도를 세우시고 두 사람씩 조를 짜서 가서 전도하고 오라고 심방을 내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사도들을 교육시키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기독교의 성격은 처음부터 찾아가는 문화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숨어있는 아담을 하나님이 심방 가셨습니다. 결국 예수님도 하늘나라에서 세상으로 심방 오셨습니다. 선교 역사를 보십시오. 누가 오라고 하셨습니까? 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찾아가는 것이 선교입니다. 심지어는 오지 말라고, 오면 죽인다고 해도 찾아가서 순교를 당합니다. 환영받지 못할 것을 일방적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사람이 어디를 목적하고 가면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가고 싶은데 오지 말기를 바라는 데를 가는 것은 부담스럽습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씀하시는데 어떤 권사님께서 집에서 동네 아줌마들과 화투 치기를 열심히 하셨는데 느닷없이 목사님이 심방을 오셨더랍니다. 그래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장롱 속으로 들어가서 아들에게 “엄마 없다고 말해라.” 하셨답니다. 그런데 아들이 정직하게 “엄마 장롱 속에 있는데 없다고 말하래요.” 실화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 부흥의 이유는 한국인이 아닌 외국 사람들이 연구합니다. 한국의 부흥을 연구해서 박사학위 받은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며칠 전에도 교계 “크리스천 투데이”라는 신문에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필립 얀시라는 학자가 한국 교회를 연구해서 크게 발표해서 아마 대한민국의 목사들은 모두 읽었을 것입니다. 그분이 지적하는 것은 “유럽 교회가 쇠퇴했다.” 세계 모든 교회 지도자들이 지금 인정하는데 유럽은 교회 역사가 2천년입니다. 예수님의 직계 제자 12사도가 유럽을 다 다니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베드로 성당이 왜 베드로 성당입니까? 베드로가 거기 와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성경에 나온 대로 소아시아 일대, 유럽 일대를 복음을 들고 다 돌아다녔는데 그래서 유럽이 일찍이 기독교 문화가 이루어졌고 기독교 문화에서 나온 문명이 서구 문명입니다. 잘 살게 되었고 민주화가 되었습니다. 전성기 때 유럽 교회들은 90퍼센트 이상 교회 출석했습니다. 네덜란드는 100년 전만 해도 인구의 98퍼센트가 교회 출석자였습니다. 주일날은 아무것도 안하고 다 교회만 갔습니다. 

영국, 러시아, 이태리 모두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0퍼센트 미만입니다. 그 많던 교회가 다 없어지고 용도 변경을 해서 교회가 식당, 콘도미니엄, 아트갤러리, 술집으로 다 변했습니다. 모스크바 바실리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했던 교회인데 지금은 박물관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외국 사람들이 연구해서 발표한 것은 복음 자체보다 신학 의존도가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학자가 한 명 나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면 그냥 따라갔습니다. 그랬다가 다른 신학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또 그 이야기에 따라갔습니다. 저는 마가복음을 안병무 박사한테 배웠습니다. 그분은 독일에 가서 박사학위 받고 오신 분입니다. 

자기가 신학생 때 독일에서 신학자 한 명이 들어와서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의 “예수전 연구사”를 비판했다가 학생들이 반란을 일으켜 공부를 안 하고 나가버렸습니다. 신학자들의 인기가 그렇게 높습니다. “왜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같은 사람을 비판하느냐?” 사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의 “예수전 연구사”는 한국 교회에서도 안 받아들입니다. 필립 얀시는 “미국 교회가 유럽화되지 않으려면 한 가지 방법이 있다. 한국 교회를 모델로 따라가라.”라고 제시되었습니다. 이러한 제한은 지금 세계적 추세로 되어 있습니다. 세계 교회의 관심도가 한국 교회의 초점이 맞추어져서 특별히 교회 성장학을 배우려면 다 한국으로 유학을 오고 있습니다. 아주 당연한 통계는 전 세계에서 교인이 가장 많이 모이는 50대 교회를 조사했는데 50퍼센트인 25개 교회가 한국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으로 모여드는 것입니다. 

저는 PCUSA 미국 장로교단에서 27년 일을 했는데 해마다 교인 증가율과 헌금 통계를 내서 총회에서 공시합니다. 총회에 가면 정문에 커다랗게 사인펜으로 써서 “지난 일 년간 가장 교인이 부흥한 교회는 어느 노회이며 1인당 헌금 액수가 가장 높은 노회는 어디이다.” 알립니다. 그런데 우리 한미노회, 한국인들이 모여서 교회를 만든 그 보잘것없는 이민자들의 교회가 해마다 1번입니다. 

“여기가 제일 부흥했고 한미 노회가 제일 헌금을 많이 했다.” 그러면 “이게 뭐냐? 우리가 언더우드 보내서 예수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더군다나 미국에 이민 와서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교인이 제일 많이 부흥했고 헌금도 제일 많이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게 뭐냐?” 그래서 딱 밝히는 겁니다. “봐라. 우리 형제들 가운데 한인들이 이렇게 부흥했다.” 그러니까 자연히 미국 총회에서는 한국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을 물으러 올 거 아닙니까? 사무총장이 왔습니다. 

그런데 한미 노회 가운데 제가 목회하는 교회가 성장하고 헌금을 많이 하니까 저희 교회에 와서 묻는 겁니다. “창피합니다. 지금에 와서 한국 교회가 미국 교회에 가르쳐 줄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십시오. 도대체 당신은 이민 와서 삶이 고달픈데도 그렇게 헌금을 많이 했고 그렇게 교회가 성장하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야기해 보십시오.” 옆에 계신 분들이 저에게 “목사님이 해보십시오.” 그러시는 겁니다. 영어로 말하려고 하니까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겁니다. “모르겠습니다. 정 말하라고 하면 제 얼굴을 보십시오. 특별히 내 입을 잘 보고 내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듣고 따라해 보십시오. 

발음을 똑같이 해보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내 입 모양을 보고 이대로 발음을 해보란 말입니다. 믿씁니다!” “한국 교회는 이거 하나로 부흥한 것입니다. 이민 와서 우리가 영어를 잘합니까, 무슨 힘이 있습니까? 성경에 예수님이 믿음대로 된다고 하지 않으셨느냐? 믿습니다. 이거 하나로 한국 교회는 부흥했고 지금도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심각하게 듣더라고요. 

유럽교회는 GNP 1만 달러가 될 때까지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2만 달러에서 제자리이고 3만 달러에서 내려갔습니다.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입니다. 풍요가 도움이 안 되었다는 결론이 유럽에서 나왔습니다. 한국이 지금 그 수준에 와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숙제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 교회 부흥의 목회 방법 중에 추천할 만한 것이 뭐냐? 두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는 새벽기도입니다. 세계 교회가 안합니다. 

이렇게 새벽기도회를 열심히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이 한국 교회 기도 열정을 온 세계로 수출해야 합니다. 필립 얀시는 “미국 교회가 유럽화 되지 않으려면 한국 교회 기도 운동을 수입하라. 겸손히 배우라. 그러면 유럽화 되지 않는다.” 그렇게 발표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십시오. 큰 사건은 다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홍해도 새벽에 갈라졌습니다. 여리고성 새벽에 무너졌습니다. 예수님도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축복받은 것도 동이 튼 새벽이라고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마리아가 새벽 미명에 주님 무덤에 갔다가 부활한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났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부활 선교는 막달라 마리아가 제일 먼저 했습니다. “예수가 살아나서 내가 봤어요.” 그러므로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은 꼭 새벽기도회 식구를 만드십시오. 새벽을 찾는 자는 부귀와 재물을 얻는다고 성경 잠언에 약속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동아일보에 한국 개신교회에 설문조사해서 발표했습니다. 그때에 10년 동안 지난 개신교회 전체 교인은 7퍼센트 줄었다고 합니다. 이제 늘지 않습니다. 개교회는 부흥되어도 교인이 줄어드는 교회가 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일학교는 29.5퍼센트가 줄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갈보리교회는 주일학교가 자꾸 부흥해서 교육관을 계속 짓지만, 대형교회들도 주일학교가 날마다 줄고 있습니다. 비상입니다. 한국 기독교 복음이 민중의 환영을 받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미신타파, 정신 계몽 운동에 앞장서는데 효과가 있었습니다. 5천년 동안 때 묻은 민속종교, 미신에 사로잡힌 이 국민 정서를 개혁하는데 기독교가 최고 공헌했습니다. 지금도 미신종교가 있습니다. 

국가의 수천억짜리 외국 공사를 맡아서 시작하려고 하는데 반드시 돼지머리가 나옵니다. 첨단과학시대에 이게 뭡니까? 미신문화를 내쫓는 역할을 한 것에 민중들 마음을 설득했습니다. “기독교가 옳다. 맞다.” 그 다음에 신문화 교육을 실현시킨 것이 기독교 복음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온 세계가 인정하는 교육 강국이 된 것은 확실합니다. 대학 진학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습니다. 해외 유학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지금 중국 학생들이 한국에 유학 온 학생들이 몇 명인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7만 명입니다. 보십시오. 대한민국 대통령이 지금까지 10명인데 5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현재 국회위원들의 종교 다 조사해서 발표했는데 기독교인이 제일 많습니다. 애국가는 한국 최초의 15곡 찬송가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온 세상 국가 가운데 ‘하나님’ 들어간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 다음에 목회 방법 중에서 세계 교회보다 한국 교회가 아주 능력 있게 잘하는 것은 개척교회입니다. 여러분! 한번 여러분 머릿속에서 계산해 보십시오. 대한민국의 최고의 대형교회들은 누가 개척했습니까? 그 담임목사가 개척해서 은퇴할 때까지 있던 교회들입니다. 처음에 교인 몇 명을 데리고 아니면 혼자서 개척하기 시작해서 세계 최고의 대형교회들을 다 만들었지 않습니까? 이 능력이 한국 교회에 주어졌고 한국의 목회자들에게 있고 또, 교인들도 옛날에는 천막치고 십자가 걸고 개척교회 하면 ‘아! 너무 많은 훌륭한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보다 저런 교회에서 돕는 게 의미가 있겠다.’ 하고 많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안 갑니다. ‘저기 갔다가는 헌금 많이 내야 될 거 같다.’ 가지 않습니다. 변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축복받으려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축복받은 영적 이유를 발견하고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목사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끝까지 나아갔습니다. 개척교회 5개 했습니다. 나 때문에 세상에 개척교회 생긴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아십니까? 갈보리교회 은퇴하고 저는 개척할 마음 있습니다. 건강만 주시면 얼마든지 합니다. 외국 목사와 교인들 하나도 못하는 것을 우리는 다 했습니다. 

교구 목사님들이 심방 스케줄을 잡는데 한국 교회의 원동력은 심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성서적이기 때문에 축복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한 가지 제안할 테니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 가정에서 교구 목사님들 귀찮을 만큼 심방 요청하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가정에서 목사님이 오셔서 예배드린 것이 언제입니까? 50퍼센트 이상 10년에 한 번도 안 드렸습니다. 한번 믿음 생활의 패러다임을 바꿔보십시오. ‘이야! 그러고 보니 우리 집이 목사님 모시고 예배드린 적이 10년에 한 번도 없네?’ 평생 없는 가정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꿔보라는 겁니다. 마음을 열고 한번 방법을 달리해 보십시오. 어떤 유익이 있나 어떤 손해가 나나 바꿔보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들을 파송하시면서 오들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함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그런 마음으로 심방 요청을 해보십시오. 예수님의 목회는 심방 목회입니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가셨습니다. 삭개오를 보고 “내가 오늘 너희 집에 가야되겠다.” 가셨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을 보내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할 것이요 너를 저주하면 내가 저주하리니” 사도에게 권위를 그렇게 주셨습니다. 

사도들에게 예수님은 오늘 “너희를 영접하는 않는 동네가 있거든 발에 먼지까지 떨어버려라.” 하셨습니다. 심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주의 종의 사명을 가진 자들이 우리 집에 많이 올 수 있도록 마음을 여시고 바꾸시고 신앙생활의 문화를 달리 해보십시오. 심방 오는 것을 귀찮게 여기지 말고 반갑게 여겨보십시오. 가정만 아니라 사업장에도 목사님 오시라 해서 예배드리십시오. 한국 교회는 심방으로 축복 받은 나라입니다. 한국 교회 같이 심방 열심히 하는 나라 없습니다. 

우리 갈보리교회는 교인들에게 강제성의 행정력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다른 교회들을 보면 ‘목회 잘못하고 있구나!’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조직화하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어쩌다 교회 안 나올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선진국들은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무슨 사정이 있어서 교회 못나왔겠지.’ 절대로 교회 안 나온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교회 안 나오면 그냥 두지를 않습니다. 

권찰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겁니다. “집사님! 오늘 교회 왜 안 나온 거야?” 그러면 결석한 교인은 적당한 이유를 또 설명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어서 어쩌고저쩌고….” “그런 거 때문에 집사님이 교회를 안 나와요?” 검찰이 죄수를 잡아내는 거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거가 아닙니다. 구역장이 전화 와서 또 똑같은 반복을 하고 나중에는 교구 목사님, 필요할 때는 담임 목사님까지 나서서 색출 작업을 하니까 교회 나오는 것이 훨씬 편안합니다. 교회가 마음에 안 들면 시험을 받게 되고 교회를 옮길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갈보리교회는 절대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회를 보니까 그 집에 몰려가서 철야기도를 드립니다. “어디를 간다는 거야? 가기만 해봐! 하나님이 당장 심판을 내려서….” 다리가 부러지는 거 같이 말합니다. 그런데 싫어할 거 같지요? 좋아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관심 때문입니다. ‘내가 없어지려 했더니 교회가 이렇게 야단스럽게 구네?’ 좋아합니다. 이 심방의 관심이 한국 교회 부흥의 요소가 되었습니다. 인천공항은 지금 그렇지 않지만 옛날 70년대 후반, 80년대 초에 한국인이 3만6천 명씩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마다 1년 365일 떠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인들은 정이 많아서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5번 불러야 헤어집니다. 성가대원 이민 가니까 성가대원들이 옵니다. 남선교회 회원들이 옵니다. 여선교회 회원들이 왔지요? 지역에서 옵니다. 마지막에는 담임목사까지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5번 부르면 겨우 이별이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 끝나야 되는데 김포 공항까지 따라옵니다. 김포 공항 최고의 행정 책임자가 한국 교회 협의회 회장한테 공문 보냈다고 합니다. “제발 교인들 김포공항 대합실에 와서 예배 좀 드리지 마십시오. 

공항인지 예배당에서 부흥회하는 건지 분간이 안갑니다.” 하도 많이 와서 예배드리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신문에도 나왔고 교회 협의회장이 전국에 그렇게는 하지 말자고, 이건 좀 상식에 벗어난다고 공문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다 송별회 하고 왔는데 김포공항 이쪽 대합실에서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부르고 저쪽에서는 통성기도를 하고 “김 집사! 아무쪼록 미국에서는 성공해서 잘 살아! 그러나 십일조는 본 교회로 보내.” 이러면서 배웅하고…. 무식한 거 같아도 끈끈한 관계성이 이루어집니다. 저는 이민 교회를 오래한 사람입니다. 실제로 이민 교회 와서 신앙생활 한 사람은 몸은 거기 있지만 십일조는 한국 본 교회로 보내는 퍼센트가 아주 큽니다. 정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부흥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주의 이름을 가지고 오는 이 심방자들을 요청 많이 하시고 심방도 많이 다니십시오. 이것은 건강에도 좋고 우울증도 안 걸리고 치매 예방도 되고 하나님의 영적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안에서 찬송소리, 목사님 설교하는 소리 자주 나야 합니다. 그런데 10년이 가도 한 번도 심방을 안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의 패러다임을 바꿔서 ‘아! 바꿔보자. 안되겠다.’ 한번 해보십시오. ‘와 봤자, 내가 기도하는 거지. 집에서 기도를 하나?’ 이처럼 영적 느낌이 없으니까 안하는 것입니다. 교구 목사님들이란 심방을 위해서 계신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가지고 가서 그 가정에 복을 드리는 겁니다. 여기 보십시오. “이 가정에 평안이 있으라 하라.” 이것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복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으니까 24시간 언제나 임전태세 완비로 언제 불러도 달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구 목사님들을 많이 모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를 보십시오. 하늘에서 찾아오신 예수님의 심방을 거절한 무리와 영접한 무리의 판가름이 났지 않습니까? 

성경에 보면 이런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만삭된 마리아가 예수님 출산해야 되는데 아무도 방을 안주었습니다. 만약 방 하나를 주었다면 그 방은 영원한 성지로 이 세상에서 거룩한 장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구간으로 보냈기 때문에 그 마구간이 성지가 되었지 않습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 일행을 거절했다고 성경에 나왔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화가 나서 불을 내려서 저 사람을 새까맣게 태워 죽이자고 했습니다. 그런 요청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775년 가을 볼티모어 호텔에 허름한 농부 차림의 한 투숙객이 찾아왔습니다. 호텔 주인은 이런 고급 호텔에 이런 허름한 사람이 드나들면 호텔의 품격이 떨어지게 된다고 판단해서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받지 않는 것은 불법입니다. 그런데도 내어 쫓았습니다. 이 남자는 할 수 없이 쫓겨나서 자기를 받아주는 한 작은 여관에 그날 저녁 투숙했습니다. 그날 밤에 볼티모어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막 뉴스가 급전으로 나오는데 “오늘 저녁에 토머스 제퍼슨 부통령이 수행원 없이 볼티모어에 시찰차 오셨는데 어디 계신지 알지 못한다. 본 사람은 보고하라.” 결국 발견되었습니다. 

제퍼슨 부통령은 웃으면서 “사실 소란 안 피우려고 내가 몰래 왔는데 내가 호텔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이렇게 소란이 되어서 미안합니다.” 그러니 쫓아낸 그 호텔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예수를 알지 못하고 쫓아낸 사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쫓아낸 사람! 하나님의 종들을 몰라보고 박해한 사람! 성경에 수없이 많습니다.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요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둔감하니까 모르는 겁니다. 성경에 주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일의 중요성이 이렇게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37절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0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함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태복음 10장 41절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으리니”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 줄 믿으십시오. 

잔머리만 굴리고 뭐든지 상업주의 원리로만 계산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적인 풍성함이 물러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다면 겸손하고 순진하게 이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번 지금까지 내가 잘못 생각하여 게을렀던 부분에 내 믿음의 패러다임을 한번 바꿔서 해보십시오. 어떤 일이 생기고 무슨 유익이 있고 무슨 손해가 나는지…. 아무리 못난이가 되어도 주의 일을 맡은 자를 높이 보고 주님 만난 듯이 해 보십시오. 사랑의 문을 열고 믿음 생활을 한번 바꿔 보십시오. ‘우리 지역 식구들과 목사님이 우리 집에 심방 오시는 것은 영광이다.’ 주님 오시는 것과 같이 생각해 보십시오. 찾아가는 사도, 영접하는 성도! 주님이 오늘 이것을 교육했습니다. 앞으로 두 달 동안 대 심방이 여러분 가정에 큰 축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주시는 방법을 어떻게 우리가 해야 될까 영접 감각으로 잘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모두에게 주어지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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