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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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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살전 5:16-18)


다윗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된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행 13:36에 보면 다윗의 인생을 이렇게 요약해 놓았습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다윗의 일생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본문에서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세 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바로 성공의 비결이며 행복의 비결인 것입니다. 첫째는 항상 기뻐하는 것이고, 둘째는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고, 셋째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1.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16절). 
   
잠 17:22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에 즐거움은 건강에도 좋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의 표현이 웃음인데 실제로 웃음에 관해 연구한 글들을 읽어보면 웃음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스탠포드 의과대학에서는 건강한 성인 남자를 대상으로 웃음의 효과를 실험했습니다. 1시간 동안 웃음이 터지는 비디오를 보여 준 후에 몸속에서 일어난 변화를 조사했는데, 암을 억제해주는 호르몬이 평소보다 200배 가량 증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탠포드대학의 윌리엄 프라이 박사는 사람이 한바탕 크게 웃을 때 몸속의 650개 근육 중 231개 근육이 움직여 위장, 가슴, 근육, 심장까지 움직이게 만든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래서 1분을 웃으면 이틀을 더 살고, 5분간 웃으면 5백만 원 상당의 엔돌핀이 우리 몸에서 생산된다고 합니다. 

웃을 때 나오는 엔돌핀이 몸을 치료하여 건강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평균 7년을 더 장수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성들이 남성들 보다 더 많이 웃으며 기쁘게 살아가기 때문이랍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더니 그 말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든지 웃고 싶고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하고 싶지만 그것이 되지 않으니 문제인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성경에는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 내면이 변하면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경 눅 6:45에 보면 주님께서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 들어간 것이 나옵니다. 좋은 것을 넣으면 좋은 것이 나오고 나쁜 것을 넣으면 나쁜 것이 나옵니다. 주전자에 물이 들어있으면 물이 나오는 것이고 술이 들어있으면 술이 나오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입력 시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때문입니다. 꿀통에서 꿀이 나오는 것처럼 말씀이 입력되면 우리 안에서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시 119:24에 보니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이 즐거움이 되는 이유는 말씀의 역할 때문입니다. 말씀의 역할 중에 하나가 우리의 내면을 씻어주는 역할입니다. 엡 5:26에 보면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워를 하고 나면 몸이 개운 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의 내면을 개운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내적이 상쾌함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마음이 기뻐지는 것입니다.
제 아내는 제 설교를 들으면 영적인 샤워를 하는 것 같다고 표현을 했는데 참 고마운 표현입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읽거나 제 설교를 들을 때 그런 은혜를 받으셔서 항상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령 충만하면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희락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에게 성령의 열매가 열리도록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가 희락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경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 식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음식의 맛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이 천국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을 현세천국이라고 합니다.
   
롬 14:17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세 가지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성령 안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특징 중에 하나가 희락입니다. 기쁨입니다.
성령 충만의 다른 표현은 임재의식의 충만함입니다. 또 다른 표현은 신전의식의 충만함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것,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면 항상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면 언제나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시 16:8,9) 다윗이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았더니 그가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되었고, 마음은 기쁘고, 영은 즐겁고, 육체는 안전했다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십시오. 교회에서만 아니라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사십시오. 그것이 행복해지는 비결이고 그게 바로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수도사가 황소를 타고 어느 마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황소를 탄 수도사가 두리번거리며 무엇을 찾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수도사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찾으십니까?”, “나는 황소를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가 막힌 듯이 웃어버렸습니다. 수도사는 다른 무리가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로 갔습니다. 

그 사람들도 수도사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나는 황소를 찾고 있습니다” 그곳이 다시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수도사는 세 번째 사람들에게 또 갔습니다. 사람들이 또 물었어요. “무엇을 찾으십니까?”, “나는 황소를 찾고 있소” 사람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서로 말합니다. “당신은 지금 황소를 타고 있는데 왜 황소를 찾는다고 하십니까?” 수도사가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분 앞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언제나 그분을 의식하고 사는 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할 때 항상 기뻐할 수 있고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하면 행복한 것입니다. 
 
3)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으면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기쁨은 마음의 상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좋은 환경 속에 들어가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하고 싶고 행복하려고 노력을 해도 마음에 기쁨이 없으니 스스로를 불행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볼 때는 너무나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거나 자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마음의 상처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그 상처 때문에 쓴 뿌리가 생기고 쓴 뿌리 때문에 인생에 쓴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성경 히 12:15에 보면 마음에 상처로 인해서 생긴 쓴 뿌리 때문에 마음이 괴롭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상처는 돈이나 환경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으로 치유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 되고 쓴 뿌리가 제거 되면서 마음의 괴로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환경을 초월한 기쁨이 생기게 되고 인생이 행복해 집니다.
   
제가 약 15년 전쯤에 너무나 힘든 환경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몸은 아프고, 영적인 침체에 빠졌고, 재정적인 어려움도 너무 컸고, 목회도 힘들었습니다. 제 마음은 가시 박힌 목구멍과 같았습니다. 제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섭섭함과 약간의 원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봉고차로 걸어가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니?” 그 음성은 귀로 들리는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으로 들리는 음성이었는데 제 가슴을 녹이는 음성이었습니다. 음성만 들린 것이 아니라 제 심장으로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알아지게 하는 음성이었습니다. 저는 그 음성을 듣자마자 주님의 바다 보다 넓은 사랑이 깨달아지면서 제 마음의 모든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봉고차 핸들을 붙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행복해서 울었습니다. 감사해서 울었습니다. 그날 주님의 사랑이 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환경은 변한 것이 없는데 제 마음이 천국이 되었습니다.
   
제 아내의 마음에도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 상처로 인한 쓴 뿌리 때문에 마음에 괴로움과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붉은 석양빛에 물들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하늘도 산도 들판도 도심도 다 아름다워집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그 시간만 되면 자신도 알 수 없는 마음의 허전함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마치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처럼 마음에 무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아내가 주님과 깊은 대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신랑으로 아내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팔로 제 아내 안아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눈빛은 육체의 신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눈빛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후에 석양의 허전함이 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깊이 만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으십시오. 여러분 마음의 쓴 뿌리가 뽑히게 될 것이고 여러분의 마음은 현세천국이 되어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17절). 
   
우리를 향한 주님의 두 번째 뜻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1)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시간입니다. 
   
성경은 기도의 책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기도와 응답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수많은 기도와 응답을 기록해 주신 것은 우리에게 기도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렇게 강력하게 기도하라는 메시지를 주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를 만나고 싶어서 입니다. 저는 요즘 우리 아이들이 더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면 행복해집니다. 한편으로 인런 생각을 해봅니다. 

제 아들들도 사랑스러운데 손주를 보면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요? 보통 자식보다 손주들이 더 사랑스럽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들은 사진관에 사진 찍으러 갈 때 손주를 데리고 가면 환하게 웃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합니다. 손주가 노는 것만 봐도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고 합니다. 하나님도 그런 마음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만남이 행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의 능력이 공급되는 시간입니다. 
   
약 1:5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들은 세상적으로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지난 금요일에 에디슨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이번 주에 읽고 있는 책은 성공과 축복을 위한 7가지 지혜입니다. 거기에 보면 에디슨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디슨은 3천 여종을 발명했기 때문에 발명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는 한 가지를 발병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실패할 때마다 매번 3시간 이상씩 기도하고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기 때문에 위대한 발명가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는데 백열전구를 만드는데 1천2백번이나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백열전구는 얼마나 많은 기도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입니까? 1번 실패할 때마다 3시간 이상 기도를 했다니 1천2백번 실패하면서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겠습니까? 한번 실패했을 때마다 1시간만 기도해도 1천 2백시간입니다. 1천 2백 시간이면 50일입니다. 1천2백 번 실패할 때마다 3시간 씩 기도했다면 백열전구 하나를 만들면서 기도를 150을 쉬지 않고 한 것만큼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생활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겠습니까?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지속성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호흡은 세게 강하게 하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코골이가 심한 사람 곁에서 잠을 자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코고는 소리도 옆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무호흡증입니다. 코고는 소리가 일정하게 나면 리듬이 있어서 옆 사람의 몸이 그 리듬에 적응하고 잠을 청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무호흡입니다. 코를 골다가 갑자기 멈춥니다. 그리고는 몇 초간 조용합니다. 이 무호흡이 옆 사람을 긴장시킵니다. 10초가 지나고 20초가 지나도 코를 골지 않으면 옆 사람이 불안해집니다. 

심한 사람은 1분도 넘게 무호흡 상태로 들어가는데 이런 경우에는 옆에서 자던 사람이 불안해지면서 깨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을 하게 됩니다. 그대로 숨을 멈추면 죽을 거니까 깨워야 하는데 또 깨웠다가 곤히 자는 사람 깨웠다고 야단맞을 것 같으니까 깨우지도 못합니다. 옆 사람은 불안해서 잠을 못 자는데 당사자는 모릅니다. 한참을 무호흡 상태로 있다가 “푸-”하고 숨을 내쉬면 옆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됩니다.
   
코골이의 무호흡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영적인 무호흡입니다. 코를 고는 당사자가 무호흡 상태를 모르고 있는 것처럼 기도를 쉬는 사람들은 자신이 영적 무호흡 상태에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는 목회자나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은 압니다. 그래서 자꾸만 기도하라고 잔소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사람은 한 주간 숨 쉴 것을 몰아서 쉬지 않습니다. 일상적으로 평범하게 숨을 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도 한꺼번에 왕창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날마다 기도하는 것이 건강한 기도생활이고, 날마다 생활 속에서 주님을 찾는 것이 건강한 기도생활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18절).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 세 번째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죄가 있고 마귀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도 발생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만나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1)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실재로는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갖지 못한 신령한 것들까지 가지고 있으니 내가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갑부 순위에서 2위인 앤드류 카네기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분도 한 때 자살하려고 했었습니다. 미국 경제공황 때 카네기는 누구보다 많은 어려움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점점 어려운 상황만 만들어졌습니다. 그가 아침 일찍 강물에 빠져 죽으려고 강물 쪽으로 달려가는데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두 다리를 잃어버리고 땅바닥에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조그마한 판자 위에 앉아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그의 옷차림이나 외모는 어렵게 살아서 매우 힘들어 보였는데, 그의 얼굴은 환한 미소로 가득했습니다. 

그 청년은 카네기에게 연필 한 자루만 팔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카네기는 1달러를 주머니에서 꺼내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죽기 위해서 돌아섰습니다. 돌아선 카네기를 청년이 부르면서 “돈을 내셨으면 연필을 가져가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카네기는 자살할 계획이었으니 연필이 필요 없어서 받지 않으려고 하고 청년은 돈을 냈으니 받아야 한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상황 속에서도 청년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카네기는 그 청년의 모습에서 강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신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어려운 청년이 생계를 위하여 연필을 팔면서도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데 자신은 그 청년에 비하면 가진 것이 너무나 많은데 자살을 하려고 했던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카네기는 자살하려던 비겁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사업을 해서 대성을 하게 되었고 인류 역사상 최고의 갑부 2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니 절대 없는 것을 생각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가운데 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2) 믿는 사람들이 당하는 모든 어려움과 고통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롬 8:28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홍해가 있었기에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처럼 우리들의 삶에 일어나는 어려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입니다.
   
88올림픽에서 100m 우승을 한 인간 탄환 '칼 루이스' 기억하실 겁니다. 그가 달리기 선수로 대성한 배경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룬 역사가 있습니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을 하였는데, 그 오토바이를 도둑맞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전거를 사서 타고 다녔는데 또 도둑을 맞았습니다. 화가 난 그는 “내 다리만큼은 도적질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왕복 24km을 매일같이 억지로 참고 달리며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세계적인 육상 선수가 되었습니다.
   
제가 오금동에서 목회할 때 교회가 4층에 세 들어 있는데 3층과 6층에 안상홍 하나님의 교회 이단이 들어오는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시고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시더니 생각지도 않게 이곳에 예배당을 준비해두셔서 이곳에 오게 하셔서 좋은 분들과 함께 교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범사에 감사합시다. 
 
3)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켜 나가시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변해야 기도도 응답되고 삶도 신령해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가 받은 비전도 성취할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붕어빵 기계로는 아무리 기도를 하고 금식을 하고 철야를 해도 붕어빵이 나오지 국화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기계의 틀을 국화빵틀로 바꿔야 자연스럽게 국화빵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나 축복도 똑같습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지금 이상의 은혜나 축복을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 이상의 것을 취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바뀌면 은혜도 축복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전방에 근무하던 어느 군목의 이야기입니다. 부대에서 복음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는데, 인적이 드믄 지역이라 꽃이 만발하고 벌들이 많이 날아옵니다. 그래서 벌통을 벌여 놓고 틈틈이 양봉을 했습니다. 아주 좋은 꿀을 많이 얻게 된 군목은 부대원들에게 이렇게 광고했습니다. “누구든지 빈 통을 갖고 오시면 꿀을 드립니다!” 그랬더니 어떤 군인은 박카스 병을, 어떤 군인은 링거 병을, 그리고 어떤 군인은 큰 깡통을 가져왔습니다. 군목은 그들이 갖고 온 빈 통에다 가득 가득 꿀을 채워 주었습니다. 그러자 박카스 병을 가지고 온 병사가 항의를 했습니다. 불공평하다는 겁니다. 누구는 많이 주고 누구는 적게 주느냐는 겁니다. 그때 군목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누가 박카스 병 갖고 오랬소?” 우리가 변화되는 것은 그릇을 키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고난의 재료로 나를 변화시켜서 나를 큰 그릇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 세 가지를 살펴봤습니다. 항상 기뻐하시고, 쉬지 말고 기도하시고,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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