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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참 빛이신 그리스도 (마 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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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빛이신 그리스도 (마 4:12-17)


대구에 있는 모 맹인학교 학생들이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관광으로 그들은 이른 새벽 동녘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 여러 우여곡절과 고생 끝에 석굴암 일출봉에 올랐습니다. 가슴 그득히 기대감을 안고 그들 시각장애인 학생들은 해가 떠오르기를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캄캄한 밤바다 끝 바야흐로 저 멀리서 동트는 새벽하늘을 바라보면서 선생님은 앞 못 보는 아이들에게 그 일출의 광경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온 정열을 다하여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시적인 상상력과 표현력을 다 동원해서 일출의 아름다움을 묘사해 가고 있습니다. “얘들아, 저기 지금 둥근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다. 붉게 타오르고 있다. 한 아름 뜨거운 정열을 담고 서서히, 그리고 고요히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학생들은 조용히 숨을 멈춘 듯, 선생님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설명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학생들을 돌아보며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얘들아 저기 저 앞에 둥글게 그리고 붉게 솟아오르는 태양이 보이느냐?”, 숨소리도 멈춘 듯 고요하던 학생들, 그중 한 학생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습니다. “선생님예, 보입니데이, 솟아오르는 해가 보입니데이”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수학여행을 인솔하였던 한 선생님이 기독교회관에서 자신의 가슴 쓰라린 경험을 이야기했던, 그리하여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던 이야기입니다. 그 선생님은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 학생들에게 정말로 아름다운 해돋이의 광경을 보여주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 선생님의 사랑이 가득한, 그리고 열정과 진실이 가득 담긴 그 설명을 듣고 앞 못 보는 학생들은 그 해돋이 광경을 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큰 빛으로 오신 찬란한 태양이 온 세상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이 빛에 대하여 마태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16절)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제 막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이 사순절 둘째 주일입니다. 이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부활 이전의 40일 동안의 예수님의 고난을 명상하면서 경건하게 지내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는 일반적으로 축제를 금하고 구제를 베풀고, 평소보다 신앙생활에 더욱 열심히 해야 합니다. 사순절 기간은 그리스도의 고난 주간을 앞두고 더욱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영적 수련의 때요, 내면적인 축복의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 그리고 고난을 생각하면서 경건과 참회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공생애의 삶을 시작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3가지의 주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흑암 가운데 오신 참 빛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이사야의 예언을 봅니다. (15~16절)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선지자 이사야는 산꼭대기에 서서 그 시대의 안개와 어두움 저 너머에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어두움을 뚫고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듯이 흑암 속에 있는 백성에게 큰 빛으로 오시는 임마누엘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임마누엘이 앗수르로 말미암아 가장 많은 고통을 당했던 스불론과 납달리로 내려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임마누엘은 앗수르 사람들 때문에 가장 천대를 받게 된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곳으로 가신 것입니다.  이 예언은 단순히 지리적인 예언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를 기초로 한 예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을 찾아가실 때에 어두움이 가장 극심한 곳으로, 백성들이 사망의 그늘 아래 앉아 있는 곳으로 가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 이후에, 곧 타락한 후에 허물과 죄로 죽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 흑암에 앉은 백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죽음 안에 있는 존재요 어둠 속에 속한 존재란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아직 어두움 가운데 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두들 그럴 듯하게 겉치레하고 포장하고 살아서 그런 것이지,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죄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특히 음란과 호색과 정욕의 노예로 어두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물질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얼마간의 돈을 벌어 물질적으로 부유해졌습니다만, 대신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습니다. 

여유와 낭만, 믿음과 사랑, 그리고 신앙과 생명을 잃어버리고 어두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여유 있는 것 같아도 불안한 삶을 살아갑니다. 질병과 죽음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질병 때문에 불안해하고 방황하며, 그 질병의 포로가 되어 몸과 정신과 영혼이 함께 황폐화됩니다. 이런 비참한 상태를 오늘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16절) 

혹시 아직도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아 있는 자’는 없으십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 어둠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무엇의 노예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말씀하기를 바로 이 어두움 가운데 예수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빛은 어두움을 사라지게 합니다. 빛은 사물을 분별하게 합니다. 빛은 생명을 존재하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빛이신 것입니다. 그것도 큰 빛이십니다. 세상의 빛이시오, 영광의 빛이시오, 생명의 빛이신 것입니다. 

지금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폭발로 대재앙을 맞은 일본, 동북부지역은 황폐화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재앙과 재난에 인내심 많고, 질서의식이 있는 그들도 황망해 하는 것을 봅니다. 도시가 어둠의 도시가 되었고, 재난을 당해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흑암에 앉아 슬퍼하며 고통당하는 백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일본은 경제대국이요, 부국입니다. 그래도 자연의 대 재앙 앞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경제적으로는 대국이라고 해도, 영적으로는 어두운 나라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나라와 민족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 폐허가 다시 회복되어질 때, 흑암가운데 오신 참 빛이신 그리스도가 그 땅에 더욱 전파되어져서, 영적으로 환해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말 그 상처를 딛고 잘 일어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흑암 가운데 오신 참 빛이십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삶의 때와 장소 -

오늘 말씀에서 두 번째 생각할 주제는 예수님의 사역의 때와 장소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그 시작의 때가 (12절)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이 일하기 시작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사역에는 연결점이 있습니다. 마치 릴레이 주자가 다음 주자에게 바톤을 넘겨주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때를 알고 복음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17절) “이때부터” 주께서 비로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그 공생애 시작의 장소가 (13절)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 (15절) “이방의 갈릴리”입니다. 예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가버나움은 택한 백성의 땅 중에서도 “이방의 갈릴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질 만큼 가장 조롱받는 지역에 속한 곳이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곳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이방의 침입자들에게 여러 차례 유린당하였으므로 ‘사망의 그늘진 땅’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이곳은 이방 세계와 연결되어 있으면서 죄악이 횡행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이방인들과 혼혈족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소요가 끊이지 않았던 곳입니다. 가버나움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신약 본문에서 예수님은 바로 거기서 그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셔서 거기 거하셨습니다. 즉 그곳은 기독교 최초의 정착지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보다 나은 사회적인 지위를 얻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그곳으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 그곳으로 내려가신 것입니다. 가버나움은 그의 기초가 되었고, 말씀 증거를 위한 기지가 되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빛을 보게 되었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백성들이 큰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편안하고 부유한 장소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가장 변두리에 있는 가버나움에서 그의 최초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 

세 번째 생각해야 할 주제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입니다. 
(17절)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이방의 갈릴리에 가셨을 때 그때부터 드디어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입을 열어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시험받으시고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셨다가 가버나움으로 오셨습니다. 바로 그곳이 스불론과 납달리입니다. 그곳은 흑암의 백성들이 있는 곳이었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리였습니다. 바로 그때 그 장소에서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 사역의 첫마디를 던진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예수님의 설교 내용은 간단합니다.  “회개하라....”,  

회개란 어떤 것입니까? 죄에서 돌이키고 예수 이름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흑암에 앉았다가 큰 빛으로 나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란 성격의 변화요, 생각의 변화요, 의견의 변화요, 방법의 변화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회개는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꺼번에, 반복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회개에 구체성이 없는 것입니다. ‘회’는 있는데 ‘개’가 없습니다. 그래서 생활의 변화가 뒤따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용서함 받은 확신도 기쁨도 없음. 복음의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

오늘 우리는 회개를 바로 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을 영접했는데도 아직 어두움 가운데 있다면 그것은 회개를 바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바로 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누가 인정하든 안하든 내 양심 앞에서, 성령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구체적으로 자백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자백하고 믿음으로 사죄의 은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를 한 후에는 끊어야 할 죄악이 있으면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더 이상 어두움의 그늘이 침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지의 두 번째는 천국이 가까왔다고 하는 선언입니다. 왜 회개해야 합니까?  천국이 가까왔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입니다. 천국이 가까왔다는 것은 메시야가 지금 왔다는 말입니다. 구세주가 지금 여기 있다는 뜻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 예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을 말합니다. 천국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천국이 이미 왔습니다. 그러니까 회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회개는 지체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김광석이라는 분이 있는데요, 이 분은 한때 아주 잘 나가던 약사였습니다. 그는 피부전문 약국인 '종로 피보약국'을 경영하면서 장안에서 일시에 유명한 사람이 됐습니다. 피부를 보호한다는 뜻을 가진 피보약국은 피부에 민감한 여성들의 사랑을 한껏 받으면서 날로 번창했습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 약국을 다녀갔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전국에서 약사들까지 몰려들어 자기들한테 약을 공급해 달라는 주문도 쇄도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환자들의 편의를 생각해서라도 약을 공급해 주는 게 좋겠다 싶어 60개의 다른 약국에도 약을 조제해서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 무허가 제약행위로 보건범죄 단속법에 걸려든 것입니다. 별 생각 없이 모르고 한 일이지만 법이 가만둘 리 없었습니다. 

1979년 당시 그는 무려 8억 3천만 원이라는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14년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돈을 벌었지만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고 말았습니다. 그는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도피생활을 해야 했음. 6개월을 피해 다니자 갈 곳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찾은 곳은 경상남도 양산에 있는 통도사. 그는 그 쾨쾨한 방에서 정말 인생을 마감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에서 그를 반기고 있는 게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건 기사가 실린 6개월 전의 신문이었습니다.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했습니다. 갑자기 울분이 솟구쳤습니다. 그는 그 신문을 움켜쥐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눈에서 마구 눈물을 뿜어내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입술이 열리면서 단어 하나가 툭 튀어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하고 말입니다. 

사실 그는 태어나서 여태까지 하나님이란 말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이 절간에서 하나님을 부른 것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도 잘 알 수 없는 기도 끝에 마침내 하나님께 항복했습니다. 그의 집안은 불교 집안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평상시에 승복을 입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는 그 잘 나가던 약사시절에 도봉산 기슭에다 절을 짓기도 했습니다. 그 절에는 1천 명의 불신도들이 몰려들었고 그는 불신도회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 절간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한테 항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절에서 내려와 자수한 뒤에 이전과는 완전히 딴 판으로 삽니다. 그는 매일 성경공부에 매달립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 마음대로 살아왔던 자기중심의 인생을 다 청산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예수 중심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는 변해도 아주 변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몰라볼 정도로 변합니다. 

하루는 기도하던 중에 이런 사업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피부는 서양 여성들하고는 다르지 않는가. 우리나라 여성들한테 꼭 맞는 기초화장품을 한 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그는 46세 되던 1984년에 (주)참존이라는 기초전문 화장품회사를 세우게 됩니다.

이 회사는 그 이후 지금까지 16년을 지나면서 기초화장품 분야에서 세계 제일의 품질을 자랑하는 수준으로 도약하게 됩니다. 이 회사의 간판 제품인 콘트롤 크림은 기초화장품 시장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이 회사의 김광석 회장, 지금은 장로님이신데, 새벽기도로 하루를 열면서 무엇보다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함.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 어찌 8억3천만 원의 벌금을 물고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매주 십일조를 드립니다. 십일조를 정확하게 드릴 때마다 두 배의 축복을 경험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개척교회를 비롯해서 20군데가 넘는 곳에 후원헌금도 보내고 있습니다. 한때 자살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김광석 장로님,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서 삶을 돌이키자 놀라운 삶의 변화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순절기를 지나는 이때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면 큰 빛이신 예수께서 한 줄기 빛으로 임하셔서 한순간에 모든 어두움이 사라지고 우리에게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감동의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입니다.  솟아오르는 해가 보입니다. 영화롭고 찬란한 해가 보입니다.” 이 영화롭고 찬란한 삶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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