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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인 광야경험 (마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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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광야경험 (마 3:1-10)

 
우리는 광야의 한복판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광야의 한복판에 서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살아갈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곳, 모래바람이 불어 앞을 내다볼 수가 없는 곳, 때로는 먹고 마실 것조차 없는 허기진 곳에 서있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광야학교에 입학했다고 하면서 토로한 고백이 있습니다.

“저는 광야대학 고생과에 다니고 있어요. 나는 아직도 이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성적이 별로 좋지 못해서 입학한지 오래됐지만 아직 졸업을 못하고 있는 형편이지요.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이름은 광야대학교, 내가 다니고 있는 과는 고생과 입니다. 총장님은 하나님이신데 대충 넘어가는 일이 절대로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커닝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시험을 볼 때에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광야학교의 교과는 성령님이십니다. 교과과목은 기다리는 훈련입니다. 포기하는 훈련입니다. 깨어지라는 훈련입니다. 내려놓는 훈련입니다. 하나님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순종하는 훈련입니다.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능력만으로 살아가는 훈련입니다. 학비가 비싸냐고요? 네 좀 비싼 편입니다. 인생을 모두 걸어야 할 정도이니까요. 때로는 목숨까지도 저당 잡혀야하니 결코 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과목은 버리기입니다. 욕심을 버려야 되고, 내 고집을 버려야 되고, 내 생각도 버려야 되고, 인간적인 모든 수단방법도 버려야합니다. 그런데 나는 매일 낙제를 해서 이렇게 졸업을 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합격하리라 결심을 하고 도전해보고 있습니다. 합격하는 자에게는 졸업선물이 주어지겠지요. 소망, 기쁨, 문제해결이라는 은혜의 선물이 주어질 것입니다. 나는 그 선물을 받고 싶어요. 어서 고생과를 졸업하고 헌신과에 들어가서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싶습니다. 하나님 한눈만 살짝 감아주세요.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번 시험에는 꼭 합격할 수 있도록 제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헌신과, 충성과에 어서 들어가고 싶습니다. 하나님 부탁해요. 은혜를 감사드리며...” 

우리는 어떤 광야학교 어떤 과에 들어가 있습니까? 우리도 고생과에 들어가서 아직까지 인생의 아픔과 슬픔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까? 아니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하나님, 이제는 헌신하겠습니다. 이제는 순종하겠습니다. 이제는 내가 있는 곳이 광야이든, 푸른 초장이든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를 향해 달려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인생의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는 반드시 광야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삶의 구조를 보면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출애굽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억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첫 번째는 억압의 땅인 애굽입니다. 자유를 잃어버린 땅, 애굽이 인생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목적지입니다. 그런데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광야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땅에서 종노릇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우리는 사탄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어둠의 세력이 나를 지배하여 기쁨으로 살지 못하고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자유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억압당하며 종으로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을 향한 출애굽의 역사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출애굽의 역사를 한 발짝 내딛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광야를 거쳐야 했습니다. 이곳은 자유를 향한 여정의 길입니다. 믿음과 도전과 모험이 필요한 곳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자유와 은혜가 있는 가나안땅에 가기 위해서는 광야를 거쳐야 합니다. 

노예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마치 우리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땅까지는 보통사람이 사나흘이면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고 가나안땅 앞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약 6개월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각 지파에서 한명씩을 선택해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가나안땅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40일 동안을 정탐했고 와서 보고를 합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이 말합니다. “그들은 아주 거대한 거인과도 같은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들어가기는 어렵습니다. 그곳에 가면 우리는 모두 멸망당할 것입니다.” 

그 때 다른 두 명, 갈렙과 여호수아가 말합니다. “아닙니다.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저들을 넉넉히 이길 수 있고 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들은 갈렙과 여호수아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화가 우리에게 미쳤구나, 이제 우리가 다 죽게 되었구나.”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모세를 향해서 비난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냥 애굽땅에 그대로 놔두지 왜 이 가나안에까지 와서 죽게 하느냐며 탄식하고 비난하며 주저앉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듣고 진노하며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저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없다. 약속과 비전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내가 함께 갈 수가 없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40년 동안 방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여기서 죽게 될 것이다.” 

결국 애굽땅에서 태어나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오직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믿음이 없어서 40년 동안 고통을 받게 됩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의 땅으로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노예의지를 품은 채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노예의식이 무엇입니까? 비겁하고 비굴한 것이며 책임지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노력 없이 결과를 바라고,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배 아파하고, 자존심을 버리고 남에게 빌붙어 살려는 노예의식을 가지고는 자유의 땅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땅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다 벗어버리지 않으면 자유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옛것을 훌훌 털어 버리지 않으면 과거 지향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들은 옛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애굽땅에서 노예로 사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냥 먹고 살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돼지처럼 사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세례요한의 목표는 오직 예수님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만이 참된 빛이고 참된 생명임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먼저 세례요한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을 통해서 이 땅이 얼마나 어둡고 죽음의 세력으로 가득 차 있는지, 이 땅이 얼마나 인간의 탐욕 속에 놓여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광야의 체험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내가 갖고 있던 죄악을 다 털어내야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모든 복음서들이 예수님의 선구자로서 세례요한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등장했던 곳은 광야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습과 세례요한의 모습은 아주 다릅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한 곳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갈릴리였습니다.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역하시기 전 세례요한은 아무도 살지 않는 황량한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사람들을 초청하면서 외칩니다. “회개하라! 너희들의 삶에서부터 떠나라! 이스라엘이 광야의 체험 속에서 자신의 것을 훌훌 털어버렸던 것처럼 옛것을 버려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네 안에 있는 노예의식을 버리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3:3) 

세례요한의 목표는 오직 한 가지 예수님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 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하여 오리엔테이션 된 인물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든 높이기 위해서 헌신된 인물입니다. 

세례요한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과 동갑내기입니다. 아니,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형이 되는 인물입니다. 가정환경과 종교적 배경도 아주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예수님을 향해서 선포하는 내용은 눈물겹도록 놀랍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왔다. 나는 예수님을 높이고 싶다.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온 세상 사람들이 듣게 하고 싶다.” 이것이 세례요한이 갖고 있던 열정이었고 열망이었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마태복음 3:11) 

사람들은 동료가 잘되고 승승장구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진심으로 그 사람을 칭찬할 수 없습니다. 그를 높여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자신과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한복음 3:30) 

세례 요한은 자신의 한계와 역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위의 말씀은 나는 들러리이지 주인공이 아니라는 자기 확인입니다. 주인공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낮춘 인물, 그가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보면서 여인이 낳은 인물 중 최고의 인물이라고 칭찬하십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초대장을 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세례요한의 초대장, 회개와 세례의 초대장을 받아야 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광야학교에 입학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마치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모세의 메시지를 듣고 광야를 향해서 나아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신의 삶의 터전과 자기 안에 있던 모든 찌꺼기와 죄악들을 세례 요한에게 나아가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마태복음 3:5~6) 

이 회개의 메시지가 전파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죄악들을 세례요한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자신들의 죄의식, 노예의식, 거지의식, 거짓과 불의를 모두 자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예수님의 주위로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아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실 때 그 곳에 들어가기를 열망하면서 뒤따랐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세례요한이 준비시켜주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많이 가졌고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미 습관화된 종교성에 매몰되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태복음 3:7) 

수많은 민중들은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기위해 세례 요한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구경꾼으로 세례 요한에게 나아왔습니다. 단지 꼬투리를 잡기위해 나왔습니다. 세례 요한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후에 예수님이 등장했을 때 예수님을 공격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조롱하고 십자가로 몰고 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우리의 지성과 명예와 재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알고 다가서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회개의 기간이며 준비의 기간입니다. 내 안에 1년 동안 찌꺼기처럼 쌓여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 기간입니다. 내 안의 교만과 거짓과 불의와 탐욕의 모습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옛 믿음의 격언은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고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의 기회라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마음껏 일하시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다 열어놓아야 합니다. 나 자신의 것들을 비워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빛의 역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광야 체험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빨리 통과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평생 동안 내 안의 찌꺼기를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서도 답답하고 불안하며 예수를 믿으면서도 억눌려 살고, 참다운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종처럼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 광야를 지나가면 또 다른 광야가 다가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광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바위를 쳐서 샘물을 솟아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는 존재인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는 삶의 광야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입니까? 거기서 매몰될 것입니까? 아니면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도전하고 모험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역사를 향해 달려 나갈 것입니까? 비록 광야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복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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