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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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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1절-9절: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 가로되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유월절을 만드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또 ‘유월절을 지키라’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날짜를 지키라고 하는 그 말씀 속에는 ‘그 사람으로 만들어져라’ 이다. 이 날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날이다. 이 날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만든 날이 아니다.


그런데 유월절은 양이 죽어야 지켜진다. 백성을 구원시킬 양이 없으면 유월절은 없다. 죄인을 죄에서 구원시키려면 구원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 곧, 예수님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죽는 것, 그러니까 우리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필히 신령천국에서 죄 없이 오셔야 했고, 오시되 하늘의 성격 성질, 하늘의 성분, 하늘의 소원 목적, 하늘의 모든 것을 갖고 오셔야 했고, 오셔서 그걸 다 전해주고 그 다음에 죽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원 전서부터 하나님의 우리를 위한 구원계획이 그렇게 들어있다. 괜히 오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구원계획이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날 자기를 인간으로 만들어서 존재케 하는 것은 내가 예수를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고가 아니라 반드시 믿어야만 되고, 믿어야만 된다는 것은 하나의 종교적인 개념이 아니고 ‘창조의 목적에서 볼 때 신령천국에 올라갈 너이니 너는 예수님처럼 신령한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안 믿는 사람처럼 ‘네 종교가 뭐냐?’ ‘나는 불교다. 나는 기독교다’ 그런 차원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들어있는 네 존재다. 그래서 인간 자기를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뭘 못하시겠느냐? 돌도 짓고 구더기나 송충이도 만드는 분인데 아닌 말로 인간 너를 송충이나 구더기로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런데 인간으로 만들었으니 네가 인간 존재의 가치를 좀 깨달아라. 세상에서 본능으로 살다가 죽어질 네가 아니다. 인간으로 만들어진 자가 짐승처럼 살면 그 사람이 행복하겠느냐? 고통이고 힘든 삶이다.


인간 자기는 모르면 불행이고 알면 알수록 자기의 존귀 영광성은 계속 올라간다. 믿는 일에 부지런하면 부귀영광에 오를 것이다. 창조의 목적이 그렇게 들어가 있다. 그래서 ‘꼬리가 아닌 머리가 되게 하리라’ 했다. 자기에게 ‘머리가 되리라’ 하는 그게 들어있는 건데 왜 꼬리로 살려고 하고, 졸졸 따라다니며 살려고 하고, 세상 밑에 가서 정신 팔고 몸 팔며 살려고 하느냐?


‘하나님을 믿되 힘과 몸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는 여기에는 자기의 전 인격이다. 자기 살아생전에 전 일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찬송을 부르는 것도 아무렇게나 사방을 쳐다보면서 하는 게 아니다. ‘힘과 뜻과 정성을 다한다’는 말의 의미가 그렇게 하면 그 효력이 다 자기 것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유대 최고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해방이 무엇으로 되어있는 것인지 그 깊은 뜻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해방이 무엇으로 되는 건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모르고 있다. 그러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예수가 죽이고 싶도록 미운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죽였다.


그런데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손에 죽어야 했을까? 구약시대로 보면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노예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난과 핍박과 고통을 받고 있는 상태다. 그 때가 하나님의 꿈을 갖고 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 요셉이 죽은 지는 400년이 흘렀고, 그러니까 그 후에 모세가 태어나는 건데, 요셉이 죽고 난 뒤 400년 흐르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가 엄청나게 불어났다. 처음 400년 전에 애굽으로 내려왔을 때는 70명이 내려왔고, 400년이 지나서 애굽을 출발할 때는 장정만 해도 60만 명이다. 여자들과 남녀 어린이, 노년층 모두 합하면 250만 명은 될 것이다.


아무리 육적으로 사람의 수가 불어났어도 영적인 지도자가 없으면 환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적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영원 궁극적 결과적 구원목적은 계시로 등용된 이스라엘을 그대로 두는 건 아니다. 필연적으로 애굽을 탈출을 하고 광야를 거쳐서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게 돼 있다. 오늘날 우리의 존재목적도 그렇다. 그래서 성경 속의 무리들을 보고 ‘나는 어느 쪽에 서서 가느냐’ 하는 걸 믿음의 눈으로, 영의 눈으로 볼 줄 알아야 재미있게 갈 수가 있다.


예수 믿는 게 어느 노선에서 누구랑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자기 신앙의 성질을 모르면 구별 분별이 안 되는 거다. 그러면 교회에서 ‘저건 이단이다’ 하면 자기는 이단이 뭔지도 모르면서 남을 이단이라고 저주하게 된다. 남을 보고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구절이나 읽고 그렇게 말을 하는 거지만 나는 성경도 안 읽고 그들을 따라서 ‘저건 이단이다’ 한다면 누가 뺨을 맞을 일이냐?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영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그의 육신을 짐승에게 짓밟히도록 내놓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간섭이 없는 거다. 신앙의 세계에서 성령의 눈으로 보면 아무리 몰라도 하나님의 역사를 대강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서 인도자로 세워서 양의 피를 문설주 발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에서 건지셨는데 이게 지금 예수님의 죽음의 상징이다. 좀 더 개인적으로 보면 자기가 현재 예수 믿는 게 어떻게 교회에 왔건 하나님의 인도라고 볼 때 거기에는 예수님의 구속의 피가 들어있는 거다. 자기를 교회로 인도하기 위한 주님의 구속이 거기에 들어있다. 그러니 예수 믿는 걸 아무렇게나 생각해선 안 된다. 아닌 말로 큰 회사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느냐? 문 앞에 문지기가 있어서 신분을 확인한다.


애굽에 있을 때 누가 양을 죽였느냐? 이스라엘 사람이 죽였다. 애굽 사람들이 죽인 게 아니다. 그러니까 모든 구원계획은 인간들의 주권역사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구원자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백성 중에 즉,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유다지파에게 보내진 것이다. 역사로 보면 그렇다. 사실 이들은 이스라엘 족속의 대표로서 메시아를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걸 모르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있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나라는 로마라는 세상 강대국 밑에서 속국으로 살고 있었다. 로마를 왕국으로 섬기고 있었고, 로마를 등에 업은 분봉 왕 헤롯을 왕으로 삼고 있었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신앙은 세상 로마식의 정신으로, 또는 외식주의로 흐르고 있어서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그러니까 신앙도탄에 더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은 노력을 해도 그 세금이 로마의 건설을 위해 쓰인다. 하나님 백성들의 노력과 바쳐진 세금이 그렇게 쓰였다.


예수님께서 로마라고 하는 죄에 빠져있는 당신의 백성을 거기에서 탈출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로 교훈으로 활동으로 깨우치려고 하셨지만 당시의 껍데기 운동을 하고 있던 외식 신앙자들은 더욱 악하게 굳어져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다. 왜? 예수님이 자신들을 외식자들이라고 하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고, 마귀의 지식들이라 하니 그랬다. 예수님은 그들의 정신 사상 소원 목적이 세상으로 돌아간 걸 지적해 주는 건데 그들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예수를 어떻게 하면 죽일까’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게 참 많다. 사람의 활동 이전에 그 속에 들어있는 정신의 위치, 마음의 위치, 소원 목적의 위치가 바뀌면 그 자는 사람을 해치고 죽이는 쪽에 서게 된다.


예수님은 살리는 운동, 창조의 목적대로 사람을 하나님을 많이 닮게 해서 천국에 데려가는 것인데, 그게 창조의 목적인데 그거와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 현재적으로 안 믿는 사람들이요, 또 예수를 믿어도 창조의 목적대로 속을 안 바꾸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소원 목적을 가지고 사는 자가 예수를 죽이게 된다. 진리이치를 죽인다. 구원을 죽인다. 옳은 이치를 죽인다. 그 정신과 마음을 지적해 주면 그 말을 받아서 자기 속에서 그 말을 죽인다. 이건 예수를 죽이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그러다가 ‘눈으로 보이는 큰 사건 환경에 네가 어떻게 견디나 보자’ 하는 사건이 오게 된다.


모세 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미래를 바라보며 모세의 지시에 따라서 양을 죽여서 애굽을 탈출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다. 탈출을 하라고 죽음의 천사가 죽음을 넘어가게 하는 것이다. 천사가 문설주에 뿌려진 양의 피를 보고 ‘아, 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있구나’ 하고 죄도 죽음도 사망도 넘어간다. 예수님께서 죄를 이기고 사망도 다 이기셨으니까 그걸 미리 구약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성육신 예수님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래가 아닌 현실세상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 그러나 이렇게 죽였던 저렇게 죽였던 하나님 당신은 당신의 선하신 구원계획대로 당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을 잡아 죽일 때 잡아 죽이는 그들이 ‘우리가 주격적 주인이다’ 하며 그렇게 한 것이지만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대국적인 큰 구원의 뜻으로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의 마음속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순서 중에 하나로 그게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그대로 당하시는 것이다. 구원의 순서 중에 예수님의 죽음이 들어있고 핍박도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의 이룰구원의 성장 면을 가지고 이것을 볼 때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걸 다 이겼고, 성공했고, 상대를 패배시켰다. 그리고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을 깨닫게 해 주시자니 당신의 부활로써 그걸 증거해 내는 것이다. 우리도 그 정신을 가지고 예수님처럼 구원을 입어가는 목적으로 산다면 세상에서 무엇을 못 이기겠느냐? 세상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 뭐가 있느냐?


하나님의 구원계획에는 예수님을 죽인 그들이 예수님을 좋아하던 미워하던 그 날에는 그들의 죄에 의해 죽게 되어 있다. 다 같은 당신의 백성에게 죽게 되어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미래의 꿈을 주신 요셉에게,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함으로써 요셉의 꿈이 실현되도록 요셉을 팔아먹은 셈이다. 그들이 요셉의 식구들이듯이 예수를 팔아먹고 죽인 자들이 예수님 나라의 백성들이다. 표면으로 보면 그렇다.


3절-9절: 예수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이렇게 하는 행위를 계시의 눈을 가지고 보면, 영의 눈으로 보면 항아리는 사람인 여자의 몸, 그 몸을 깨뜨리니 지극히 값진 향유가 나오는구나. 이게 신앙 믿음의 세계다.


이 여자가 예수님께 그렇게 하기 전에 예수님이 자신에게 어떻게 해 주신 역사가 있다. 그래서 여자가 예수님께 향유 옥합을 깨뜨린 것처럼 동방박사들이 수만리에서 예수님께 찾아와서 예수를 보자 마음이 열렸다. 마음이 열린 거기에서 나오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 그걸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집에서 그걸 준비했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계시의 눈, 영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그 마음이 열리게 돼 있다. 지극히 값진 이걸 그냥 향유로만 보지 말라.


그래, 그 향이 온 집안에, 이웃으로 풍겨나간다. 그 다음에 성경이 있는 곳에는 그 향기가 빙 돌아서 오늘날 우리들 코에까지 나는 신앙이다. 이걸 지금 말하고자 하는 거다.


여자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렸고, 나음을 받은 문둥이 집에서는 예수님께서 식사를 하신다. 그는 예수님을 독차지 했다. 그러니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공모를 하고 있는데 여자는 지극히 값진 향유가 담긴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고, 문둥이 시몬은 예수님께 식사대접을 해 드리고 예수님을 독차지 했다. 이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으나 큰 은혜를 받은 자가 틀림이 없다. 은혜를 받지 않고는 이런 게 나올 수 없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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