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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갈 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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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갈 2:20-21) 


저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다독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어느 때는 그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죄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누구 못지않게 성경을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저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며 복된 말씀임을 그냥 상투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깨달은 진리가 제 삶에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제가 받은 많은 복의 근원이 말씀임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과 사망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복과 화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너무 단순합니다. 너무 단순해서 사람들이 신뢰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성경은 믿음이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가져다 준다고 말씀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많은 사람들은 세상적인 성공과 물질적인 부요함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시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 우리의 생각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생각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삼고 다시 말해 하나님이 자신의 주(Lord)이심을 인정하고 이해가 되든 이해가 되지 않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의 길과 법과 식을 삼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에게 복을 줍니다. 생명을 줍니다.

제가 받은 모든 복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부터 왔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 (3월 25일) 오후 1시 30분에 파주에 있는 메자닌 아이팩 공장에서 ‘메자닌 아이팩 이전 확장 감사예배’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메자닌 아이팩 공장은 3년 전에 탈북자들의 자립을 위하여 세운 공장입니다. 그 공장을 시작할 때 많은 분들의 염려가 있었습니다. 노골적으로 그 공장 시작하면 안 된다고 막으신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분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도 섭섭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시작하면서 제가 설교 중에 했던 말들을 여러분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생각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인가 아닌가만 생각한다.”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할 수 없어도 해야 한다. 그러다가 죽고 망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왜냐하면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이다.”

“해야만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망한 것이다. 왜냐하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하나님의 문제이다. 해야만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하나님의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문제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뒀다 어디 쓸꺼냐?”

“미션 임파서블”

메자닌 아이팩 공장은 정말 말 그대로 미션 임파서블한 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업이 성공의 궤도에 올랐습니다. 메자닌 아이팩 공장은 이제 3년이 다 되옵니다. 그런데 아직 망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위기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망하지 않고 살아 남았습니다. 살아 남은 정도가 아니라 성공하였습니다. 지난 1월 메자닌 아이팩은 15억 원 정도의 공장을 사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엔 매출 30억 원을 달성하였습니다. 올해 매출 목표는 45억 원입니다. 상장급 대형 거래처들과의 계약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 공장의 미래는 아주 밝아 졌습니다. 

메자닌 아이팩은 성공은 우리 교회와 재단에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와 같은 큰 복을 주신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이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을 믿습니다.

제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이 되고 원칙이 된 말씀 중에 또 다른 하나는 로마서 6장 23절의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과 야고보서 1장 15절의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잘 살게 하는 것은 세상적인 성공과 물질적인 부요함이 아니라 믿음이며, 우리를 못 살게 하는 것은 세상적인 실패와 물질적인 가난이 아니라 죄라는 말씀은 삶의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늘 감사하면서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하여, 다시 말해서 정말로 잘 살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은 죄를 멀리하는 것이고 죄를 멀리하기 위하여 곡 필요한 것은 욕심을 버리는 것은 살아오면서 깨달은 진리 중의 진리였습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고 못 살게 하는 것은 죄요 그 죄의 뿌리는 욕심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잘 살려고 하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죄의 뿌리가 되는 욕심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잘 살 수 없습니다. 구원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갈라디아서 5장 24절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씀하여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정과 욕심을 육체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 받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잘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욕심이라고 무조건 다 나쁜 것도 아니고 다 버려야 할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버려야 할 욕심이 있고 버려서는 안 되는 욕심이 있습니다. 버려야 할 욕심은 육체에 속한 정욕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에 속한 욕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의에 대한 욕심’입니다. 육에 속한 욕심을 버리다가 의에 대한 욕심까지 버리면 안 됩니다. 육에 속한 욕심을 정죄하다가 의에 대한 욕심까지 정죄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육체에 속한 정욕과 탐심이지, 영에 속한 주림과 목마름은 아닙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여 육체와 세상에 속한 것에는 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영과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욕심이 많은 즉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혼돈하여서는 안 됩니다.

육체에 속한 정욕과 탐심을 버려야만 합니다. 육체와 세상에 속한 욕심은 십자가에 못박아야만 합니다.

욕심은 우리를 어리석게 합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주 심각한 내용의 장면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밤 늦게까지 이 학원 저 학원을 다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그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가방이었습니다. 그것은 손으로 들고 다니는 가방도 아니었고 등에 메고 다니는 가방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여행을 다닐 때 가지고 다니는 캐리어였습니다. 그 시간에 학원에 가는 모든 초등학생들의 가방은 다 캐리어였습니다.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다녀야만 하는 책이 너무 많아 들 수도, 멜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퀴 달린 캐리어가 아니면 가지고 다닐 수 없는 분량의 책을 대학생도 아닌 초등학교 우리 아이들이 끌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욕심과 탐욕이 부른 치명적인 어리석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모는 다 아이들의 성공과 행복을 위하여 그러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아이는 절대로 그와 같은 식으로 세상적인 성공은 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절대로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지금도 불행하지만, 앞으로 성공하여 부모가 바라는 세상적인 성공을 혹시 한다고 하여도 불행할 것입니다.

행복은 세상적인 성공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인간의 인간성과 정서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바른 인생관과 깊은 철학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으로부터 말미암은 오직 세상적인 성공 하나만을 위한 발버둥질은 아이의 인간성과 정서 그리고 바른 인생관과 철학 모두를 짓밟아 놓습니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요즘 우리 개신교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우리 개신교에는 한기총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공식 명칭은 ‘한국 기독교 총 연합회’입니다. 한기총은 말 그대로 한국 개신교 교단 수십개가 연합해 있는 단체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기총에는 자연스럽게 세상적인 힘과 권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한기총을 대표하는 대표회장의 자리는 많은 사람들이 욕심을 내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 한기총의 대표회장이 되'기 위하여 돈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돈을 쓰지 않으면 절대로 한기총의 대표회장이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0당 5락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 돈답니다. 10억 원을 쓰면 당선이 되고 5억 원을 쓰면 탈락한다는 말이랍니다..

이번에 대표회장이 된 분도 그렇게 해서 되었다고 고발하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회장만 그런 것이 아니랍니다. 제가 보기에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는 세상의 선거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세상 사람들이 반발할 겁니다. 아직도 세상 선거가 깨끗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세상 선거는 전보다 많이 달라졌습니다.

부정한 돈을 주거나 받은 것이 발각되면 50배로 물어내야만 합니다. 벌금이 100만 원이 넘으면 당선이 되었어도 그 당선은 무효가 됩니다. 한기총 대표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세상에서는 우선 그 받은 돈의 50배를 벌금으로 내야만 합니다. 500만 원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고 1,000만 원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을 용기 있게 고발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다행이기도 하지만 우리 교계에도 그렇게 부정한 돈을 받았다면 50배의 벌금을 내야만 한다고 해도 저들이 과연 그것을 용기 있게 고발했을까는 의심스럽습니다. 어쨌든 선거판 하나만 놓고 보아도 우리 교계가 세상보다 더 썩었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 한국 개신교는 세상에 대한 지도력을 잃었습니다. 영적인 매력을 잃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예수가 잘 믿어지지 않아서 예수를 믿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사람들은 예수가 믿기 싫어서 예수를 안 믿습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기를 싫어하는 까닭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리는 추태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요즘 우리 개신교를 싫어합니다. 그 모든 것이 어리석은 욕심 때문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 성전에서 뛰어내리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면 천사가 와서 발을 붙을 것이라고 유혹했습니다. 천사가 와서 발을 붙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천사가 예수님의 발을 붙드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스타가 되실 것입니다.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높힘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많아질 것입니다.

사탄이 이 두 번 째 시험에서 노린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헛된 영광에 눈 어두워 예수님의 사명 즉 십자가를 잊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오늘 날 우리 한국 교회는 이 사탄의 두 번째 시험에 빠졌습니다. 헛된 영광에 눈 어두워 성전에서 뛰어 내리는 어리석은 짓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욕심은 과정도 나쁘고 결과도 나쁩니다. 욕심은 과정도 힘들고 결과도 힘듭니다. 욕심은 과정도 불행하고 결과도 불행합니다. 결과가 좋다면 과정의 어려움은 혹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욕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욕심으로 혹 성공한다고 하여도, 다시 말해서 부자가 되고 대표회장이 된다고 하여도 절대로 그와 같은 세상적인 성공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아까 말씀드린 갈라디아서 5장 24절의 말씀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에 우리가 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셨는가?’ ‘예수님은 왜 천사가 발을 붙들어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고 영광을 받는 길을 버리시고 스스로를 사람의 아들이라 낮추시며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는가?’를 깊이 묵상해 보아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우리를 잘 살게 하고 죄가 우리를 못살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죄의 뿌리가 욕심인 것이 맞습니다. 세상에 속한 정욕과 탐심이 우리를 어리석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사탄에 속아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살면 바보가 됩니다. 어리석어 집니다. 실패합니다. 불행해 집니다.

구원을 얻으려면,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한 복된 삶을 살려면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자신을, 자신에 속한 헛된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매우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고 표현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문장이 능동형이 아니라 수동형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속한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서부터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만 말미암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진심으로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에 속한 헛된 세상적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 기도가 상달되고 응답되어 우리가 드디어 어리석고 쓸데없는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다면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훌륭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욕심을 버릴 수 있다면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들이 다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 재능, 자리, 권력, 권세, 경험들이 사장되지 않고 바울의 로마시민권과 같이 쓰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욕심은 우리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들을 사장 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말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싶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이 갈라디아서 5장 24절의 말씀과 같이 진정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되어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며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사는 복을 받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축복을 누리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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