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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빌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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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빌 2:1-8)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우는 장기려(張起呂) 박사는 의사이며 교수였습니다. 또한 의료보험의 시초가 된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만든 의료행정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서울의대 전신 경성의전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내 최초로 간절제 수술에 성공하는 최고의 외과 의사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평생 집 한 채 없이 자신이 설립한 부산복음병원 옥탑방에서 살던 그는 가난한 환자들의 수술비를 대주곤 했습니다. 월급명세서는 늘 적자였으며, 병원도 재정에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병원측에서는 입원비 지원 결정을 장기려 원장이 내릴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랬더니 장박사는 입원비가 없어 퇴원을 못하는 환자들에게 뒷문을 열어 놓을테니 몰래 도망가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집 한 채, 땅 한 평 가지지 않았고, 평생 옥탑방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말합니다. “늙어서 가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은 기쁨이기는 하나, 죽었을 때 물레밖에 안 남겼다는 간디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가진 것이 너무 많다.” 장 박사가 부산복음병원 이사장으로 있을 때, 그를 쫓아내고 병원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의 편에 선 젊은 수련의들로 인해 폭력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최중묵 수련의도 2개월 형을 받게 되었는데, 장박사는 오히려 그를 심하게 꾸중했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적대하던 상대방은 껴안으면서도 자기편이 되겠다고 나섰던 사람들을 매섭게 꾸중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폭력에 연루되었던 최중묵박사가 대한의과학회 최우수논문상을 받게 되었을 때 장기려박사는 폭력을 쓴 자라며 그의 상을 취소시켜버렸습니다. 

나중에 최중묵 박사가 병원을 개업한 뒤에야 위로의 뜻을 담은 기념패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장기려 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전혀 당연하지 않게 여기고, 당연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장기려 박사처럼 사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진정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본문을 통해 바울은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당부합니다. 이는 예수처럼 살아라, 예수를 본받으라는 뜻도 되지만, 예수를 마음에 품고 살라는 의미입니다. 즉 나를 사랑하신 예수의 사랑을 품고 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그리스도의 행동을 본 받으라고 하지 않고 마음을 품으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겉으로 드러난 행동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행동의 원천입니다.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품어야 할 그리스도의 마음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품어야 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무엇이며 어떠한 마음으로 행해야 합니까?
 
첫째로 같은 마음으로

루터(M. Luther)와 쯔빙글리(Ulrich Zwingli)는 종교개혁을 해야 한다는 신념은 하나였지만 서로 의논만 하면 의견이 합해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서로 일치하지 않아 다투기만 하다 헤어집니다. 헤어지고 보면 아쉽습니다. 도무지 의견의 일치가 되질 않자 두 사람은 깊은 산중으로 머리를 식히려 함께 갔습니다. 계곡의 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걸어가던 그들은 외나무다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외나무다리 양쪽에서 염소 한 마리씩 건너오고 있습니다. 

한 가운데서 염소가 만납니다. 바라보던 두 사람은 염소가 서로 받으며 싸우는 모습을 연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염소 한 마리가 다리 위에 납작 엎드립니다. 그순간 반대편 염소가 힘껏 밟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밟고 건너가더랍니다. 그 염소가 건너가고 난 후 엎드려 있던 염소는 그때서야 갈 길을 가더라는 것입니다. 염소의 양보하는 모습에서 루터와 쯔빙글리는 큰 교훈을 얻고 서로 힘을 합쳐 종교개혁에 같이하는 마음으로 동반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같이 하는 마음이 되면 위대한 일을 이루게 됩니다. 

본문 2절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무엇을 하든지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태도라고 강조합니다. 같은 마음을 품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누어진 마음을 묶어 한 마음 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교회는 예수 안에서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에 같은 마음이 되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같은 마음을 품는 성도들은 반드시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만 지식이 있되 마음은 무지한 자들과 같아질 수 있습니다. 재물이 있되 마음은 가난한 자들과 같아질 수 있고, 명예가 있되 마음은 이름 없는 자들과 같아질 수 있으며, 힘이 있되 마음은 약한 자들과 같아질 수 있습니다. 부디 같은 마음으로 같은 생각, 같은 뜻을 품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겸손한 마음으로

윌리엄 캐리(William Carry)는 인도 선교사입니다. 그는 유언할 때 “내가 죽으면 윌리엄 캐리에 대해서 말하지 말고 윌리엄 캐리의 구세주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주십시오. 그리고 장례식 때 시편 51편을 읽어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를 도말하소서’ 라는 낮은 자의 기도를 읽어달라고 부탁 한 것입니다. 언에 따라서 비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죄 많고 약하고 능력 없는 벌레인 나는 당신의 긍휼하신 거룩한 손에 기대어 잠드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살았던 그의 모습을 느끼게 하는 표현입니다. 창조주 앞에서 우리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스스로 낮아져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예수께서 낮아지신 것처럼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자발적으로 희생하게 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기꺼이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한 헌신의 생활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다툼과 허영을 버리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을 품으라는 뜻입니다. 낮아진 마음을 소유할 때 행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낮아진 마음을 품으면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탈무드에 보면 ‘교만한 자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기란 당나귀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교만한 자는 오래 동안 교회를 다녀도 은혜를 못 받습니다. 여러 날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겸손해져야 말씀이 들려지고 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회심을 하고 난 후 초기에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 지난 후에는 한층 더 자신을 낮추어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라고 했습니다. 생애가 끝날 무렵에는 더욱 낮아져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고 고백하였습니다. 지극히 작은 사도에서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로, 마지막에는 죄인 중에 괴수라며 자신을 낮춘 바울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낮아지는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돌보는 마음으로

래리 페퍼(Larry Pepper)는 우간다에 있는 음바라라(Mbarara) 대학 병원의 의사입니다. 1996년 2월까지만 해도, 그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미항공우주국의 비행전담 외과 의사로 휴스톤 우주센터에서 우주 비행사들을 위한 의료일을 하였습니다. 우주선이 발사되면,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여 비상의료팀을 운영했고, 언제라도 착륙지점으로 이동하기 위해 플로리다 우주항공센터에 상주하였습니다. 교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으며 헌신된 삶을 살았습니다. 

훌륭한 인재였으며 안정된 직업과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네 직장을 제외한 모든 것을 내게 맡겨라.”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좋은 조건을 버리고 내전이 있던 아프리카 르완다로 가서 피난민들을 돌보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음바라라 대학 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페퍼는 무능력한 사람이 아닙니다. 선교사가 되기로 결정했을 때 동시에 우주 비행사들의 의료를 담당하는 최종 주자로 선발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자신의 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 테스트하시는 것으로 깨닫고 포기하였습니다. 우간다로 건너간 그는 에이즈 환자들을 치료하고 의료진들에게 의술을 가르쳤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일들을 감당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돌보는 마음이 없다면 어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주님을 위해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이의 고통과 아픔을 돌아보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본문 4절입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돌보는 마음입니다. 모든 위대함은 돌봄에서 비롯됩니다. 섬길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함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돌봄은 섬기는 종의 마음을 품을 때 가능합니다. 종의 마음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돌봄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니고 어려운 길입니다. 넓은 길이 아니고 좁은 길입니다. 제멋대로의 길 아니라 구속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때에 비로소 돌보는 행위가 나타나게 됩니다.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봉사심을 넣어 짧은 글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한 어린이가 글을 지었습니다. “길을 지나던 미국 사람이 심봉사에게 물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심 봉사가 대답했다. 마이 네임 이즈 봉사 심” 여러분의 이름이 봉사심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대지진을 만나 고통당하는 이웃나라 일본을 돌아보는 마음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다른 이의 고통을 돌보는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상실되었다든지, 영적 수준이 낮아졌다든지, 교회의 분위기가 침체된다고 생각이 든다면 더욱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처처에 지진과 전쟁, 난리의 소식이 가득한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품어야 할 마음은 같은 뜻으로 뭉친 같은 마음입니다. 다른 이를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의 마음입니다.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돌보는 마음입니다. 부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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