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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음 세대와 함께 가는 교회 (마 2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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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와 함께 가는 교회 (마 28:18-20)


1959년에 미국의 49번째의 주가 된 알래스카라는 곳이 있습니다.  미국 본토의 5분의 1 정도이고, 한반도의 일곱 배가 되는 아주 큰 땅입니다.  이 땅은 원래 러시아의 땅이었습니다.  그 땅을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1867년에 720만 달러를 주고 샀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좀 더 쉬울 것입니다.  1에이커가 우리 나라의 도량형으로 1,300평 정도 됩니다.  그런데 1,300평 정도를 러시아로부터 살 때 2센터, 우리 나라 돈으로 18원 내지는 19원 정도를 주고 그 땅을 샀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H. 슈어드가 그 땅을 구입하려고 의회의 승인을 받으려고 보고를 했더니 의회에서 대동소이한 말이 나왔습니다.  그 까짓 땅, 얼어붙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땅을 720만 불이나 주고 살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겁니다.  안 된다고 의회에서 허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두고 미국인들은 가장 어리석은 거래라고 하여 '슈어드의 어리석은 행위'(Seward Folly)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윌리엄 슈어드s는 의회에 나가서 호소합니다.  그 호소하는 내용 가운데 우리를 감동시키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를 위하여 그 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그 땅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때를 놓치면 안됩니다."

그러면서 역사적 사명을 갖고 의회에 호소하게 됩니다.  결국 투표에 들어가게 되고, 한 표 차이로 그 땅을 구입하는 것으로 상원의회에서 결정이 되어서 그 땅을 샀습니다.

그런데 1880∼90년대를 기점으로 알래스카에서 금, 은, 석유 등을 비롯한 각종 자원과 금속들이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황당한 것은 알래스카에서 채굴된 철광석만으로도 당시 기준으로 720만 달러의 몇 배나 되는 4000만 달러 어치나 발견이 되었다는 겁니다.  지금은 그 알래스카 땅 속에 전 세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지하 자원이 엄청나게 묻혀 있습니다.

그때 만약에 미국 의회가 인준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지금 러시아는 대박 터진 것입니다.  그런데 의회가 인준해서 구입을 한 미국이 대박이 터졌습니다.  지금 미국 본토의 지하 자원을 다 파내지 않고 있습니다.  알래스카의 모든 자원을 그대로 감춰두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은 중동, 베네수엘라에 이어 세계 석유매장량으로 3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알래스카에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윌리암 슈어드의 다음 세대를 위한 바라봄의 법칙이 오늘의 미국이 있게 한 하나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항상 미래의 새로움에 도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미래에 도전하십시오.  믿음이란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작업입니다.  역사는 오직 도전하는 자에게만 열립니다.  무엇보다도 주님 안에서 꿈과 환상을 품으십시오.  믿음의 환상은 환경을 바꾸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입니다.  모름지기 생명은 꿈이 있어야 소중한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싱싱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역사는 준비된 자의 몫입니다.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어느 역사에나 주역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아, 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라.  네가 보는 대로 내가 주리라."  문제는 무엇을 보느냐는 것입니다.  당시의 대다수의 국민들과 의회 의원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땅으로 보았기 때문에 구입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윌리엄 슈어드 국무장관은 반드시 미래 세대를 위하여 이 땅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구입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지금의 국가 역사관도 마찬가지고, 교회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보는 눈을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영안을 여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세상을 변화시킬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사랑을 부둥켜안고 값진 미래에 도전하십시오.

이 시간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노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앞에 열린 문을 두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의 믿음이 실개천 같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값진 미래에 도전하십시오.  하나님을 붙들고 미래의 문을 열어 보십시오.  누구든지 하나님을 붙든 사람은 미래를 열었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아무쪼록 당신의 미래, 우리의 미래를 열어 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닫친 문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열 수 없는 문은 없습니다.  오늘 여호와의 신으로 예배하다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 처음부터 위대한 민족은 없습니다.  위대한 민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각성과 훈련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세계 역사를 보면 그 시대 속에서 제일 각성된 민족이 제일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위대한 교회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몸된 이 교회를 완성된 상태로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완성을 향해 지어져가도록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21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완성된 상태로 보내 주시지 않으신 것처럼 교회도 완성된 상태로가 아니라 계속해서 지어 가고, 되어 가도록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들의 교회는 천사들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의인들의 집합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결코 성자들의 박물관이 아닙니다.  다만 세상 사람들과 달리 자신들이 죄인임을 알고 주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실재와 만남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한 지체가 되고자 오는 곳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부름을 받아 세워 가는 이 몸된 교회를 잘 되게 해야 합니다.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생명체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현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식물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고(生), 노쇠하게 되고(老), 병들고(病), 죽습니다(死).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생명체가 다 그런 전철을 밟았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열심히 일하고 문화의 업적을 이루어 가다가 그들은 어느 날 늙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가 그 생명을 이어 받아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체에 있어서 생로병사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탄생이 있고, 성장이 있고, 성숙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역사의 흔적을 남기고 창립 세대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그리고 그 다음 세대가 이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세월이 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자라고 성공해서 잘되는 것을 보면서 죽으면 그것이 복입니다.  나는 하나님 나라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이 땅에 남아서 내가 한 일보다도 더 훌륭히 다음 일을 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된 우리들은 다음 세대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그 토양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다음 세대들에게 결코 부끄럽지 않는 믿음의 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심는 대로 거둡니다.  2차 대전의 영웅이었던 아이젠하워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염가로는 승리할 수 없다."  그렇습니다.  뿌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심은 것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아이들과 다음 세대를 위해 먼저 투자를 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과 물질을 바쳐 희생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기회의 문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붙들고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심으십시오.  다음 세대에 결코 부끄럽지 않는 자랑스럽고 존귀한 믿음의 선배들이 되십시오.

이 땅이 열강국들에게 짓밟히고 지도자들이 도탄에 빠졌을 때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믿음의 선배들이 이 땅에 와서 복음의 씨앗을 심은 결과 지금 우리들은 이렇게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보다 앞선 교회의 믿음의 선배들은 100명 밖에 모이지 않으면서 1000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모두 저당 잡았습니다.  희생했습니다.  30년을 앞선 세대가 그 눈물겨운 다음 세대를 위하여 교회 부흥을 위하여 몸부림쳤기 때문에 지금 우리 세대가 이렇게 좋은 예배를 드리면서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가 수고하지 아니하고, 애쓰지 아니하고, 시간과 물질과 마음과 재능을 주님 앞에 돌려드리지 아니하고 우리의 다음 세대가 행복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우리는 시간도 주님께 바쳐야 됩니다.  몸도 바쳐야 됩니다.  주신 재능도 바쳐야 됩니다.  때로는 물질도 바쳐야 됩니다.  그럴 때에 다음 세대가 행복하게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저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로서 다음 세대와 함께 가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하고 구체적으로 행동해야 할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다음 세대와 함께 가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19절 상반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 전도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오직 복음 전도였습니다.  복음 전도 이외에는 하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장 38절과 39절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리에 다니시면서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유언일 수가 있습니다.  하늘나라로 가시면서도 우리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복음 전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가 무엇입니까?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여 살리는 것입니다.  먼저 믿은 우리가 전도하지 않으면 저 죽어 가는 영혼을 누가 살리겠습니까?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이 죽어 가는 저들을 살려야 할 책무가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가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우리 가정에 믿지 않는 가족들이 지금 지옥에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믿은 우리가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 가족을 구원하겠습니까?  여러분의 사랑하는 친구들이 지금 지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가만히 놔두면 누가 그들을 살려내겠느냐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로 가시면서도 우리들에게 이를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진정한 사명은 전도에 생명을 거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건축을 왜 합니까?  교회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왜 합니까?  교회에서 다양한 직분을 받아서 일을 왜 합니까?  왜 집사, 권사가 되셨습니까?  왜 장로가 되려고 하십니까?  교회의 다양한 직분을 통하여 왜 그렇게 애쓰고 헌신합니까?  기억하십시오.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왜 봉사합니까?  우리가 왜 헌금을 해야 합니까?  영혼 구원을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를 위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를 주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가 끊어진 유럽의 교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만 지금은 몇몇 나약한 노인들이 모이는 경로당이나 아니면 이슬람 사원으로 팔려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술집으로 팔려지는 교회도 있다고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주님께로 인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교회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먼 훗날 세월이 흘러서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우리를 기억하고자 이곳에 왔지만 교회는 온데 간데 없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영혼의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십시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교회 학교의 부흥에 힘을 모아주셔야 합니다.  교회에서 아이들을 보면 주님을 보듯이 하셔야 합니다.  내 아이, 네 아이 가릴 것 없이 주님을 보듯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아끼는 마음을 가져주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학교에서도 그저 형식적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곤란합니다.  한 영혼의 어린아이를 들여다보고 그 아이의 영혼을 살리기 위한 교회학교와 교사들이 되셔야 합니다.

물론 이벤트성 프로그램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먹을 것을 주어야 교회에 오고, 상품을 주어야 교회에 오고, 선물을 주어야 교회에 오는 그런 교회학교가 아니라 주일날 교회에 나오지 않고는 못 견디는 그 아이의 영혼을 만들어 가는 교회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 학교 교사들은 항상 그 마음이 내 아이들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내 반 아이가 교회에 왜 안 오는지, 오지 않았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 아이를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보다 먼저 교회에 나와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교사가 되십시오.  여러분은 5분 늦게 들어가고 5분 일찍 마치는 강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실천하면서 영혼을 살리는 교사들입니다.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십시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우리 전 교인들은 한 사람이라도 영혼을 구원하여 하늘나라의 영원한 새가족을 탄생시켜야 합니다.  제 말이 가혹하면 미안하지만 좀 받아주십시오.  안수 집사님들, 권사님들, 1년이 지나면서 한 사람도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고서야 안수집사, 권사 왜 합니까?  이것은 서리 집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명색이 집사님이신데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한다면 문제 있는 잡사가 아닙니까?

제 말이 듣기가 민망하고 아파도 도리가 없습니다.  장로가 왜 됩니까?  집사가 왜 됩니까?  권사가 되려고 왜 그렇게 애를 씁니까?  영혼을 살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것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1년에 한 사람이라도 전도합시다.  알고 계십니까?  우리 교회 내규 12조에 보면, 안수집사, 권사는 2명 이상 전도를 해야 하고, 장로는 3명 이상 전도해야만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정말 2011년에는 영혼을 사랑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 모두가 마음을 같이 하고 뜻을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다음 세대와 함께 가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를 복음으로 양육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출산도 중요하지만 양육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복음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이 낳아도 제대로 기르지를 못하면 그 낳은 아이가 오히려 짐이 되는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잘 길러야 됩니다.  교인이 많아지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인이 많아서 날마다 불편스럽고 분쟁하면서 행복하지 않은 것보다는 교인 수가 적으면서 행복하고 평안하고 축복을 나누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떤 양육이냐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또 바르게 배우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하면서 데살로니가전서 2장 7절에서 어떻게 양육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여기에 보면, 유모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감동스러운 말입니까?  젖을 먹이는 엄마라는 말입니다.

아이가 젖을 먹지 않으면 엄마는 애가 탑니다.  그래서 그 젖을 먹이려고 갖은 애를 다 씁니다.  그러다가 이 아이가 젖을 먹는데 먹다가 어떤 때는 젖꼭지를 그냥 꽉 깨물어버립니다.  젖꼭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아픔이 있습니다.  내가 경험해 보니까 그렇더라는 말입니다.  그래도 엄마는 이 아이가 젖을 먹지 않으면 안타까워서 깨물리는 것을 알지만 또 먹입니다.  이것이 엄마의 마음입니다.  이 엄마의 마음 때문에 젖먹이는 엄마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담임목사의 마음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젖을 먹이려고 해도 안 먹습니다.  안 먹으니 안타깝습니다.  젖 좀 먹어라.  어쩌다가 젖꼭지를 물더니만 꽉 깨물어버립니다.  너무 아파서 몇 날 몇 일을 잠을 못 잡니다.  그 아픔이 너무 심해서 밤새도록 혼자 속으로 울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다음날 또 먹여야 됩니다.  제발 젖 좀 먹어라.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야 말이지.

사랑하는 여러분, 젖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은 그 모습 때문이 아니라 그 마음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그것이 행복이었습니다.  아이들도 그때가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출산한 우리 어머니들의 수유 기간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6개월 젖먹이는 어머니는 대단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어머니의 젖 때문에 살았습니다.  이 어머니가 물려준 젖힘 때문에 힘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도 똑 같습니다.  말씀의 젖을 잘 먹어야 건강합니다.  말씀의 젖을 제대로 안 먹으면 건강하지 않습니다.  바르게 먹어야 됩니다.  잘 먹어야 됩니다.  잘못 먹으면 설사합니다.  이렇게 교회에서 제대로 양육을 받게 되면 성장해도 말씀 안에서 바르게 자라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례를 베풀고.  다시 말할까요?  제대로 양육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직접 낳아서 길러본 부모가 아니면 자식의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열 달 동안 수고하여 낳고 길러보아야 그 자식이 소중하다는 것을 압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 낳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목사인 저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을 살피기를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젖 먹기 싫더라도 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교회가 결정해서 진행하는 것들이 때로는 싫지만 먹으십시오.  먹어야 여러분이 삽니다.  그 젖을 먹지 않고서는 살지 못합니다.

가끔 어머니로부터 충분한 젖을 먹지 못한 굶주린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머리와 눈은 커지만 몸은 아주 작습니다.  우리가 말씀의 젖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머리와 눈은 커집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니까 비판과 정죄가 많아집니다.  반면에 가슴에 따뜻한 사랑이 없습니다.  손과 발에는 힘이 없기 때문에 섬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젖을 잘 먹으십시오.  여러분의 입맛에 맞지 않아도 먹으십시오.  그러면 살 것입니다.  그래서 금주부터 시작하는 열린모임에 부지런히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참여해서 함께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역사를 경험하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복음의 재생산을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세대와 함께 가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를 지도자로 세워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2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합니다.  알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를 바로 알아야 하고, 또 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보고 듣는 것이 아름답지 못하면 내 의식과 인격과 삶이 아름답지 못합니다.  보고 듣고 자라는 것이 아름다우면 내 인격과 신앙과 삶이 아름답게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앞선 세대는 다음 세대를 바르게 가르쳐야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도록 노력을 해 주어야 됩니다.  무엇보다도 다음 세대들에게 바른 믿음의 본을 보여주셔야 됩니다.  아이들이 교회에서와 가정에서의 삶이 혼돈하지 않도록 일치된 신앙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아이들은 보고 들은 그대로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자라는가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교육학에서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순자의 교육학 가운데 "청출어람 청어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푸른색은 쪽[藍]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가 선생님에게서 배웠지만 그 선생님보다 훨씬 뛰어난 인물이 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앞선 세대의 어른들이 지금 우리들을 볼 때 행복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 세대가 우리 세대를 잘 길러놓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나는 나보다 앞선 우리의 어른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잘 기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우리의 다음 세대를 잘 길러야 됩니다.  잘 가르쳐야 됩니다.  그리고 10년 후, 20년 후에 우리 아이들 때문에 우리 세대가 행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선대 어른들은 우리의 세대를 위하여 희생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너희들을 위하여 이만큼 희생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 잘 되었고 다음 세대인 우리는 더 좋은 세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하여 희생해야만 우리가 잘 되고 우리의 다음 세대가 더 잘되고 더 멋지게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지키도록 어른들 세대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마법의 문장"이라는 책의 저자인 '도로시 로 놀테'가 지은 시가 있습니다.
"남을 헐뜯는 아이는 야단 맞으며 자란 아이다.
잘 싸우는 아이는 미움 받으며 자란 아이다.
늘 불안한 아이는 두려움 속에서 자란 아이다.
신뢰가 가는 아이는 격려를 받으면 자란 아이다.
감사할 줄 아는 아이는 칭찬 받으며 자란 아이다.
대체로 너그러운 아이는 나누면서 함께라는 틀 안에서 자란 아이다.
진실한 아이는 정직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다."

다시 말을 바꾸면, 격려를 받으며 자란 아이는 신뢰가 간다.  칭찬 받으며 자란 아이는 감사할 줄 안다.  나눌 줄 알며 자란 아이는 대체로 마음이 넉넉하고 너그럽다.  정직한 환경 가운데서 자란 아이는 진실한 아이가 될 수가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교육학에서는 굉장히 중요시하는 말입니다.  이 아이가 어른이 되면 똑같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분위기에서 예배를 드리느냐, 어떤 분위기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느냐가 자신은 말할 것도 없지만 다음 세대에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하십시오.  희생하십시오.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전도에 생명을 거십시오.  다음 세대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기 위하여 제대로 믿으십시오.  우리의 아이들이 좋은 교회, 좋은 신앙의 틀 안에서 마음껏 뛰놀고 자랄 수 있도록 영적 토양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우리는 이를 위해서 먼저 부름을 받았습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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