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전도자의 발걸음 (롬 10:13-17)

첨부 1


전도자의 발걸음 (롬 10:13-17)
 
“성도님은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지금 일본은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큰 고통 속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각지에서 구호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 피해 규모가 방대해서 쉽게 상처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나 지진에 이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일본 국민은 더 큰 어려움 속에 빠져있습니다. 자연재해야 그렇다 치더라도 원전 사고는 인재입니다. 원전의 상태를 제대로 알려서 초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함에도 숨기기에 급급해 상황이 더 악화되고 나서야 대책을 세우려니 문제가 더 커지고 만 것입니다.

일본의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영적으로 더욱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이는 복음 전파의 시급성을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육신의 옷을 입고 있을 때에만 구원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보면 구원 얻을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맙니다. 인생의 쓰나미가 어느 순간 닥쳐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전할 때 절대 망설여서는 안 됩니다. 강단 메시지를 통해 여러분이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이유를 분명히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전도자의 가슴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과 전도자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어디론가 발걸음을 내디디며 살아갑니다. 직장인은 직장으로, 사업가는 사업장으로, 학생은 학교로, 주부는 지역에서 저마다의 활동을 합니다. 이런 모든 발걸음 속에 있어야 할 것이 바로 전도자의 발걸음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참 복음의 전파자로서의 삶이 인생의 본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언약적 한이 담긴 외침을 사실적으로 받아들이고 발걸음마다 생명이 살아나는 전도자의 발걸음을 내디디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3~14)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운 것이 구원 받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쉬운 구원의 길도 알지 못하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되는 과정을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이를 역으로 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듣게 되고, 들어야 믿게 되며, 믿어야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면 참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만 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의 사역을 마치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메시지의 핵심이 바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그 현장에 흑암이 꺾이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됨을 이르셨습니다. 성경은 이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막 16:20)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왜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받는 응답이 없는지 궁금해 하고는 합니다. 이런 궁금증을 갖는 까닭은 하나님의 시간표를 보는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살아나는 영혼 구원의 시간표에 자신의 삶을 맞추지 않기 때문에 응답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면에서 보면 이미 응답이 와 있는데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현장에서 유리방황하고 있는 불신영혼을 향해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일본에서 일어난 대재난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참으로 눈물겹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육신의 죽음 앞에서는 안타까워하면서 정작 그들의 영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얼마나 안타까움을 가지고 눈물을 흘려왔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우리가 영혼이 떠난 육신을 앞에 놓고 통곡한다면 하나님을 떠난 영혼을 놓고는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우리에게 진정한 영혼 사랑의 가슴이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한 무리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탄식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을 우리가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5) 이는 보내심을 받은 자만이 복음을 증거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전도사고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선교사도 아니니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고 여깁니다. 이는 큰 착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반열에 오른 모든 사람 ―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 ― 은 누구나 다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증거가 다음의 성경 말씀에 확실히 나와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여러분을 창세기 3장의 저주 속에서 건지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을 택하셔서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신 까닭은 바로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일어난 불순종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 가운데 사단 종노릇하며 살다가 영원한 멸망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회복이 됩니다. 선지자로서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고, 제사장으로서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원죄와 자범죄 등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으며, 왕으로서 인간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는 마귀의 일을 멸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가 그리스도’되신다는 참 복음을 선포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보다 강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는 두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정말 여러분이 복음을 통해 새로운 자아상이 확립되었다면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자신이 무엇을 해야 주님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될 것인가 라는 사명을 인식하게 됩니다.

복음의 가치를 깨달은 사람은 사도 바울처럼 그 복음이 자신에게서 멈추도록 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기도 요청을 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골 4:3) 바울은 자신에게 임한 복음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고 놀라웠던지 자신의 삶 전부를 복음 증거하는 일에 걸었던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존재라는 영적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고 생명 살리는 참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걸음을 내디디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과감한 복음 선포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6~17) 바울이 복음을 전했음에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울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18~21절을 보면 그들이 듣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을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모세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전통에 매여 예수가 메시야, 그리스도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구세주가 올 것이라 믿으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문 17절을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인데 그 들음이 과연 어떤 들음이냐가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율법을 들어서는 구원을 믿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좋은 도덕적 가르침을 많이 듣는다고 하여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을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레마로 부딪혀와야 비로소 사실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아름다운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언급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의 복음 거부를 대조적으로 밝힌 까닭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을 증거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혹시,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망설여지십니까? 결과를 염려하지 말고 과감하게 복음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언변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 말씀을 붙잡고 복음을 선포하며 생명을 살리는 행복한 전도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VIP라는 말에 V가 하나 더 붙은 VVIP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Very Very Important Person의 약자로 ‘매우 매우 존귀한 자’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최상위 1%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이 VIP를 넘어선 VVIP라고 생각합니다.

지구상에서 여러분처럼 참 복음의 진리를 정확히 깨닫고 누리며 증거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최고 관심 대상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행보가 생명을 살리는 최고의 아름다운 전도자의 발걸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