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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의 근원이 된 사람 (창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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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근원이 된 사람 (창 12:1-9)


브루스 페일러라는 사람이 ‘워킹 더 바이블’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저자 브루스 페일러(Bruce Felier)는 작가이면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사람입니다.  미국의 알려진 여러 신문에 기고하는 사람으로 여러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중동의 화해’, ‘워킹 더 바이블’을 썼습니다. 

브루스는 생각하기를 성경은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한가?  아니면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는 역사적인 실체인가?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았습니다.  그는 구약성경을 발바닥으로 읽겠다고 결심하고 아브라함과 모세의 발자취를 따라서, 3개 대륙-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발로 걸어 다녔습니다.  그는 많은 광야와 사막을 여행하였습니다.구약 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이 걸어간 그 길을 걸으면서, 성경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저도 시간을 충분히 내어서 예수님이 걸어 다니신 모든 동리, 예수님이 살아 숨 쉬던 그곳을 하나도 빠짐없이 걸어보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깊이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는 몇 번의 작가로 활동하면서 중동의 여러 나라를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막에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자기 영혼의 사막을 찾아낸 것입니다.  자기의 영혼이 사막화되어가고, 목말라하고 배고파하는데도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고, 생명수를 받아 마실 생각조차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그는 영혼의 갈급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우선 성경을 통독했습니다.  한 달여 동안 성경 읽기에 전념하면서 순례 여행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성경을 아는데, 깊이 알기를 소원했습니다.  그가 책에서 이런 말을 쓰고 있습니다.  

“성서를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성서의 행간 속으로 내가 직접 들어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성서. 저 오랜 지식의 보고와 마주하리라.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여행하고 대화하고 체험함으로써 그것과 만나리라.  성서라는 하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 세계의 일부분이 되리라.성서 속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성서 속의 계곡에 머물고, 성서 속의 주인공들을 만나, 성서 속의 물음들을 물어 보리라.”고 다짐합니다.  

그는 휴가를 내어 예루살렘의 고고학자 ‘아브라함 바란’ 교수를 찾아가 모든 성경의 장소들을 발로 걸어 돌아보는 여행 계획을 말했더니, 그 교수는 “당신은 제정신이 아니군요.무엇보다 공식적으로 확인한 유적지가 그리 많지 않아요.또 대부분이 분쟁 지역에 있지요.  게다가 그 유적지는 주로 고고학자들이 관리하고 있는데, 그들은 너무 바빠서 유적지를 안내해줄 수 없을 겁니다.” 거기다 한 마디 덧붙이는데,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사람 고고학자 아브너 고렌이란 분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아브너는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이스라엘의 고고학자인데, 브루스는 아브너박사의 인도를 받으며, 모세의 발자취를 따라, 아브라함이 걸었던 그 길들을 걷게 되었습니다.그는 3개 대륙의 5개국을 발로 여행하면서 성서 속의 사건과 만나고, 그 사건들의 사실성을 따져 묻기로 했습니다.  

그는 사막을 여행하고, 광야를 헤매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고, 국경을 넘으면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집트, 시나이반도 이스라엘, 요르단, 팔레스타인 지구, 터키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성서에 나타난 모든 사건을 몸으로 겪어나갔습니다.  성서와 관련된 모든 장소에 가보았습니다.  그는 성서에 나오는 어떤 현장에 가보면서 먼저 고고학적으로 남아 있는 유적을 통하여 옛날을 회상하고, 성경을 펼쳐서 옛날 그곳에서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이 오늘의 그에게 어떤 은혜를 주는지, 자세히 기록하면서 여행하였습니다.  

그는 터키의 동쪽 하란이라는 유적지를 방문하였습니다.  하란의 유적지 폐허 위에서 성경을 꺼내들었습니다.  하란에 도착한 아브람 앞에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12:1)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격려하시고 복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2-3)고 하셨습니다.  

브루스는 아브너와 창세기 12장의 말씀을 가지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왜 이 문구가 유명한 거지요?”  아브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리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유일신교, 유대 민족의 창조 등을 알리고 있어요.  이 땅을 떠난다는 것은 과거의 신앙, 생활방식, 풍요로움을 모두 버리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이지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젊은 시절에 아버지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습니다.갈대아 우르라는 곳은 우상이 만연되어 있었고, 특별히 달의 신이라는 ‘난나’를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신이란 많이 섬길수록 좋은 것이지, 적게 섬기거나 또 하나만 섬긴다고 하면 여러 신들의 노여움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범신론 사회가 되고 보니 그렇습니다. 

“교회사에서 골라난 신앙 이야기”라는 책에 보면 재미있는 사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직업을 갖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어린 아브람은 신이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아브라함은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 앞에 죄짓는 우상장사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우상장사를 그만 두실까?”하면서 걱정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가 아브라함에게 “저 신상들이 상하지 않도록 잘 지켜라”고 당부하고는 출타하였습니다.  마침 그 때 이웃집에서 음식 한 그릇을 가져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께서 출타하신 틈을 타서 작고 큰 여러 모양의 우상들이 진열되어 있는 신당에 들어가서 망치를 가지고 여러 우상들을 다 때려 부순 후 그 중에 제일 큰 우상의 손에 망치를 들게 하고, 끈으로 꽁꽁 묶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이웃집에서 가지고 온 음식그릇을 큰 우상의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외출했다가 돌아온 아버지 데라가 신당에 들어가 보니 신상들이 모두 목이 부러지고 팔, 다리, 허리가 꺾어져 있었습니다.데라는 놀라기도 하고 화가 나서 아브라함을 불러 야단쳤습니다.  아브람은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버지, 이웃집에서 떡을 가져왔기에 그 떡을 신당 앞에 두었더니 신상들이 서로 먹겠다고 소동을 부렸는데, 결국 제일 크고 힘센 저 신상이 망치를 들고 다른 신상들을 모두 때려 부수고 떡을 차지했습니다.”그러자 아버지는 더욱 화가 나서 “사람이 만들어놓은 흙덩이 신상이 어떻게 다른 신상을 때려 부수고 떡을 먹는단 말이야?”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겸손하게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래요. 아버지, 생명도 없는 우상이 어떻게 사람에게 명을 길게 해주고, 복을 준다고 하면서, 사람을 속이며 우상을 파십니까?  이제 이런 일은 그만 두세요.”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깊이 깨달은 바가 있어 우상 만들어 파는 직업을 버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세 아들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습니다.  세 번째 아들 하란은 그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습니다.  데라는 사랑하는 아들 하란이 세상을 떠나자 우르에서 살고 싶지 않아 가나안 땅으로 가고 싶어 길을 떠났습니다.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 그리고 하란이 낳은 손자 롯을 데리고 본래는 가나안으로 가려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지나오는 길에 하란이란 도시에 오고 보니 죽은 아들 하란과 이름이 같은 것이 좋았던지, 데라는 나홀이란 아들 가정과 함께 하란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습니다.  

데라에 대한 다른 기록이 있는가 하여 성경을 깊이 찾아보았더니 여호수아가 증언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수24:2-3에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며”라고 했습니다.  

데라가 강저쪽에 거주하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했습니다.  그도 부르심을 받은 소명의 사람이었는데, 중도에 포기하고 만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너무나 귀한 명령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 때에 하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창12:1-3을 읽어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1.  아브라함은 순종하였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떠나느냐 하면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좀 막연하기만 합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히11:8을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하셨습니다. 갈 곳을 알아보고, 사전 답사라도 했으면 쉽겠지만 그는 전혀 알지 못하는 땅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보여주시고, 이 땅이라고 하실 때까지 무작정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자기 혼자만 결단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가족을 데리고 결단한 것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안전하고, 안일한 자세를 버리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담대하게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야만 합니다. 떠나라 하면 떠나고, 가라 하시면 가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억압하고 부자연스럽게 하고 속박하기 위하여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이 되고 복이 되기에 주신 말씀으로 받고 순종하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할례를 행하라 하시면 할례를 행하였고, 독자 이삭을 바쳐라 하시면 바쳤습니다.  오직 말씀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는 것으로 그치고 좋은 것으로 아는 것으로는 정말 미흡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났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한 사람입니다. 부모, 친척, 형제, 친구를 신뢰할 것입니까?  아니면 나에게 약속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할 것입니까?  아버지가 물려주는 것을 바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챙겨주시는 것을 바랄 것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집을 떠났습니다.  사실 아브람이 고향과 친척 사회, 그리고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고 하는 것은 그동안 보장받고 있었던 안정과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고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위험부담이 큰 것이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실 때 먼저 그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떠나라”고 하는 이것은 ‘버리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벗어버리라는 말씀이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실 때에는 먼저 세상에서 분리하시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자녀로 장식하시고 채워주십니다.  


2.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주 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2-3절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큰 민족을 이룬다고 하셨는데, 숫자적으로 큰 민족이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위대한 민족, 우수한 민족이라는 의미가 많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되라”는 말은 “복이 되라”는 뜻입니다. 나 한 사람 때문에 우리 가정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나 한 사람으로 인하여 우리 교회가 복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십시오.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십시오.복된 말을 하고,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성목사님만 만나면, 다 잘 될 것 같습니다.  고 정주영회장님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념에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신념만 가진 사람도 하는데,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는데, 못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3.  아브라함은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  

본문 7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피조물입니다.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높여드리고, 존경하고 그 분만이 유일하게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드리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여러분, 제단을 쌓으려면 먼저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시간을 내어야 하고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아무리 좋은 신앙이라고 해도 건강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교회도 못 나옵니다. 가족들까지 신앙을 떨어뜨립니다.  퇴원하시는 성도들 가운데 먼저 교회로 나와서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이들도 있습니다.  얼마나 교회에 나오고 싶었으면, 먼저 교회로 와서 기도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십니다. 예전에는 예배드리는 주일이 되면, 집에 누워 있을 수가 없어, 자녀들에게 부축을 받아 교회에 나오시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다 나아야 교회에 나옵니다.  나을 줄 믿고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교회의 집사였으면 무엇하고, 권사였으면 무엇합니까?  동리에서 병원에 걸어가시고, 식사도 잘 하시는데 몸이 우상입니다.  이 몸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바울은 영적인 예배를 잘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고 하셨습니다.여기서 너희의 마음을 드리라 하지 않고 네 몸을 드리라고 했어요. 

바울이 마음을 드리라고 하지 않으시고,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몸은 시간과 물질입니다.  시간을 바치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물질을 드리지 못하는 사람. 그 헌신은 미흡하고 거짓이 될 수 있습니다. 


4.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우리가 우리 집안의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교회”입니다.부모 되신 사람들은 물려줄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믿음을 물려주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재산인 믿음을 물려주셨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소중한 인물이 되었는가 하면 하나님의 천국을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눅16:22에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하나님의 벗, 친구라고 불렀습니다.이사야41:8에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고 하셨습니다.  약2:23에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친구 아브라함의 부탁을 잘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친구로 부르신 아브라함을 생각하셨습니다.창 19:29에서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고 했습니다.  

시105:42 “이는 그 거룩한 말씀과 그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고 있습니다. 

창15:6에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적인 메시지를 주시는 말씀입니다.우리도 주님을 믿으니, 의로 여겨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시고, 어느 곳을 가든지 복의 근원된 삶을 살고, 어떤 어려운 일에도 예배 잘 드리는 사람이 되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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