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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대로 미친 사람 (행 26: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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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미친 사람 (행 26:24-29)


세상에는 미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보통사람들이 볼 때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미친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병적으로 미친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제대로 미친 사람’입니다. 

우선 병적으로 미친 사람이란 한 마디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정신분열이나 정신착란과 같은 정신과적 질병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귀신들려 그 정신이 귀신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이상해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미쳐도 잘못 미쳐서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을 모두 힘들게 합니다. 그 행동이 파괴적이어서 그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제대로 미친 사람이란 한 마디로 무엇엔가 열광하여 몰입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소위 “매니아”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그것 없이는 못살 것 같고, 그것 없이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모든 것을 다 던져 그것에 몰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미쳐도 곱게 미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를 주지 않고 또 그렇게 모두를 힘들게 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경우 그 행동이 모두를 유익하게 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야말로 제대로 미친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우선 본문의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 후 가이사랴로 압송되어 총독 벨릭스에게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벨릭스가 급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재판이 잠정 중단된 채로 구금되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벨릭스의 후임 총독으로 베스도가 부임하게 됐습니다. 베스도가 부임한 후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바울의 재판을 속히 진행하여 처형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였습니다. 그래서 2년 만에 다시 바울에 대한 재판이 열리게 됐습니다. 이 때 문안차 가이사랴를 방문한 아그립바 왕과 그의 누이 버니게가 함께 배석했습니다. 

이제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순서에 따라 바울에게 자기를 변호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를 변호하도록 주어진 이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을 전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변호가 아니라 설교 즉 복음 제시를 했던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은 바울의 이 갑작스런 복음제시를 듣고 난 뒤 총독 베스도가 보인 반응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특히 24절을 보면 베스도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한 마디로 바울을 보고 미쳤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헬라어 원어로 “마이네”(maine)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보통사람들의 온전치 못한 정신 상태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바울을 보고 병적으로 미쳤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25절을 보면 바울이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한 마디로 자신은 정신이 온전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은 병적으로 미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9절을 보면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이 말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은 예수에 제대로 미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을 풀이해 보면 “아닐 ‘불’(不), 미칠 ‘광’(狂), 아닐 ‘불’(不), 미칠 급(及)” 즉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친 듯이 어떤 일에 몰입하지 않으면, 무엇도 이루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세상사가 그렇습니다. 사람이 무엇엔가 미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로 무엇엔가 열정을 불태우고, 모든 것을 다 바쳐 몰입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운동선수가 운동에 미쳐야 대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학자가 연구에 미쳐야 위대한 연구 업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뮤지션들이 음악에 미쳐야 길이 남을 명곡을 남길 수 있습니다. 역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수에 미쳐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에 미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본문의 사도바울을 통해서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에 제대로 미칠 수 있는 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미친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왜 예수에 미치게 됐는지 본문 바로 앞부분 즉 행 26:1-26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자기는 철두철미한 유대인으로 자랐고, 유대교에 온전히 헌신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왔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나사렛 예수를 믿는 무리들이 나타나 유대교를 어지럽히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흥종교인 기독교를 박멸하는 것이 유대교를 위하는 일이라고 믿고, 기독교를 박해하는 일에 앞장을 서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독교를 박해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됐습니다. 그가 그렇게 박해하던 바로 그 예수를 직접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가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바로 그 메시야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던 것입니다. 

이제 그 사건 이후 비로소 바울은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박해하던 사람이 예수를 전하는 사람으로 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에 제대로 미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예수에 제대로 미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리고 그 무엇도 가로막을 수 없는 예수에 미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일전에 미국 뉴욕을 여행 중에 겪었던 일입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승강장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한 흑인 청년이 귀퉁이 한 편에서 현란한 몸동작으로 춤을 추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나 춤을 잘 추던지 넋을 놓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까 뭔가 이상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춤출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곁에 함께 춤추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누가 음악으로 춤추도록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참을 갸우뚱 거리며 지켜보고 있었더니 이 청년이 오히려 제가 이상해 보였나봅니다.

손짓으로 저를 오라고 합니다. 가까이 갔더니 자기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을 제 귀에 꼽아주는 것입니다. 갑자기 제 귓가에 흥겨운 흑인 음악이 들려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습니다. 춤추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제야 이 청년이 승강장을 내려가다가 아예 자리 펴고 그렇게 현란하게 춤을 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음악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춤추는 사람들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귀에 헤드폰을 꼽고 흥겨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그 흥을 참을 수 없어서 춤을 추게 됩니다. 그러나 음악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춤추는 사람이 미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미친 사람 소리를 들어가며 그렇게 신앙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입니다. 사도 바울의 심령 속에는 예수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음성이 그의 귓속에 계속해서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여러분이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눈에 여러분이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안에 세상 사람들이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미친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여야 합니다.

2. 사명이 있습니다.

바울이 미친 사람 소리를 듣게 된 이유 가운데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행 26:16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로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한 마디로 바울은 예수님께 직접 사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자기를 변호해야 할 기회를 사명을 수행하는 기회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총독과 왕에게 자기의 무죄를 변호하고 선처를 구해야 할 이 때,  예수 믿으라고 전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사명이 바울을 미친 사람처럼 보이게 한 것입니다.

21세기 미국의 신세대 영성의 기수로 손꼽히는 레너드 스윗 박사가 쓴 책 가운데 재미있는 제목이 눈에 띱니다. “나를 미치게 하는 예수”(Jesus Drives Me Crazy)라는 책입니다.

스윗 박사는 이 책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미치게 하기 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미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비정상으로 보여야 하는데 모두가 정상처럼 보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 때문에 미친 사람들 세상 사람들 눈에 미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미친”이라는 뜻의 "NUTS"라고 부릅니다. 이 NUTS는 “성령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마라”(Never Underestimate The Spirit)의 약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때문에 미친 사람들은 늘 성령의 음성을 소중하게 듣고 그 음성에 응답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예수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비정상적 즉 NUTS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늘 성령의 음성을 듣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NUTS여야 합니다. 세 살 사람들이 볼 때 미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그 심령 속에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계셔서 늘 우리를 남다른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로 가려고 할 때 성령께서 우리 심령 속에서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 음성을 귀하게 여겨서 다른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로 가지 않고 힘겨운 좁은 길을 걸을 때, 사람들은 정상이 아니라고 손가락질 합니다. 

사업을 하면서 탈세를 하고 편법을 활용하려고 할 때, 성령께서 우리 심령 속에서 “No!"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 음성을 귀하게 여겨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법을 지키며 올바른 길로 나아갈 때, 사람들은 바보라고 손가락질 합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위한 삶 속에 안주해 있을 때, 성령께서 우리 심령 속에서 사명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 음성을 귀하게 여겨서 나를 위해 사는 삶을 뒤로 하고 사명을 위해 사는 삶을 찾아 나설 때, 사람들은 미친 사람이라고 조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NUTS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 눈에 정상처럼 보이면 안 됩니다. 우리 안에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 땅을 사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3. 뜨거운 가슴이 있습니다.

바울을 미친 사람처럼 보이게 한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은 그에게 뜨거운 가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바울에게 지금 간절한 소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심문하고 있는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서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바울이 예수의 복음을 전한다고 고발하고 있는 대제사장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있는데 그들도 예수 믿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상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는 재판을 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죄인으로 그 자리에 서 있고, 다른 사람들은 재판장으로 고발인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참 고인으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관심은 바울에게 어떤 죄가 선고될 것인가에 쏠려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실 그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이제 관심은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가에 쏠려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영혼에 대한 뜨거운 가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남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뜨거운 가슴이 있었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에 대한 뜨거운 가슴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뜨거운 가슴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뜨거운 가슴이 있었습니다.

한 비야가 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라는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십대 중반의 케냐인 안과의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를 만나려면 대통령도 며칠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한 의사였다. 그럼에도 그런 강촌에서 전염성 풍토병 환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며 치료하고 있었다.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이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러자 이 친구, 어금니가 모두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에요."

그렇습니다. 뜨거운 가슴이 있는 사람은 미친 짓을 잘합니다. 사람들이 볼 때,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짓을 잘 한다는 말입니다. 머리로는 바보 같은 짓처럼 보이지만 뜨거운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서 엉뚱한 일들을 저지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야 합니다. 불쌍한 영혼들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일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비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기를 원하십니다. 제대로 미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이 볼 때 정상적인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손가락질 할 까봐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 때문에 제대로 미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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