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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빛 (엡 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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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엡 5:8-12)

  
어둠은 흙색이고 빛은 밝은 색입니다. 빛이 없는 어둠은 혼돈이고 빛은 질서입니다. 어둠은 창조이전의 상태로 무질서입니다. 빛은 창조 세계의 영광입니다.  
  
성경에서 어둠은 밤이고 밤은 악의 지배 하에 있는 곳입니다. 빛이 없어 어두우면 사람들을 실족하게 합니다. 어둠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 무지의 세계입니다. 어둠이란 그리스도가 없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곧 빛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없는 세상은 어둠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등을 돌리면 빛을 등지게 되고 그는 어둠에 들어서게 됩니다. 
  
우리는 광명의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빛의 신앙을 갖고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은 빛의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최초 말씀은 “빛이 있으라” 였습니다. 빛은 밝습니다. 우리는 어둡지 말고 밝아야 합니다. 밝은 사람이 밝은 가정을 만들고 밝은 세상을 만듭니다.  

  
󰊱 주안에서 빛이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8절) 
  
내가 전에 어둠이었던 것은 내가 전에 어둠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태양으로부터 받은 빛을 반사합니다. 별이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별이 태양 빛을 받을 때 별이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나는 어둠도 아니고 빛도 아닙니다. 내가 어둠이 되느냐 빛이 되느냐 하는 내게 달렸습니다. 내가 어둠가운데 있느냐 빛 가운데 있느냐에 따라 어둠도 되고 빛도 됩니다.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잠8:12) 
  
나의 주소는 나의 거주지입니다. 지혜는 자기가 사는 곳을 어둠으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밝은 데를 놔두고 왜 어둠에 가서 삽니까? 내가 빛이 되려면 빛 가운데 있으면 됩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이 안 되는 버스를 탔습니다. 손님을 기다리느라 안가고 있으니 짜증납니다. “이 똥차 왜 안가!” 기사가 뒤돌아보며 “똥이 차야 가지!” 똥차 타고 똥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라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하실 것이요”(요일1:5,7)
  
내가 빛 가운데 서면 나는 빛이 됩니다.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습니다. 내가 빛과 사귀면 빛을 닮아갑니다. 빛을 받는 것이 빛이 되는 길입니다. 
  
우리는 주안에 있을 때 빛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시27:1)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빛이라는 것을 아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빛”이란 나와 관계된 빛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밝게 하는 빛, 나로 보게 하는 빛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이 여호와가 나의 빛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나의 희망이요 등불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10)  
  
빛 되신 주님께서 어둠이던 우리를 빛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어둠이던 내가 빛 가운데 들어와 어둠이 사라졌습니다. 
  
내가 빛 가운데로 들어가면 그는 나의 빛이 되십니다. 햇빛은 높은 빌딩에만 비추는 것이 아닙니다. 낮은 곳 멀리 땅끝까지 쫓아가 비춰줍니다. 빛 가운데서 소망중에 기뻐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영혼의 햇빛 예수님 가까이 비춰주시고 이세상 구름 일어나 가리지 않게 하소서...”


󰊲 빛의 열매를 맺으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9절) 빛은 열매를 맺습니다.  선, 의, 진실입니다. 그 나무에 그 열매이듯이 그 사람에게 그 열매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716-18)
  
도쿄의 고급 주택가에 “쉐 이구치”라는 식당이 있는데 코스요리로 저녁식사 한끼 값이 2만엔(우리돈으로 27만원)입니다. 그런데 6개월까지 예약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유는 사과스프 때문입니다.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기적의 사과”입니다. 주방장 기무라는 29세 때 사과 재배하는 농부였습니다. 800그루 사과나무에 벌레가 들끓었고 잎이 병들어 떨어졌습니다. 작황이 안 좋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울적한 마음으로 산에 올라가 숲속에 벌렁 누워있는데 농약을 치지 않아도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는 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사과밭을 산 속처럼 잡초가 자라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흙이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9년만에 수확하게 된 사과가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가 되었습니다. 
  
1991년 태풍 때 사과가 96%떨어졌으나 기무라의 사과는 80%이상 그대로 붙어 있었습니다. 다른 사과나무의 뿌리는 3-5m였지만 기무라의 사과나무 뿌리는 20m나 되었습니다. 순수한 햇빛과 순수한 땅에서 기적의 사과가 열린 것입니다. 그야 말로 빛의 열매를 얻은 것입니다. 
  
빛은 진실의 열매를 맺습니다. 어둠은 온갖 불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실 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로니...”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은 언제나 진실의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합당치 못한 모든 불의 탐욕 시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열매입니다(롬1:28-3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들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하려 함이라”(갈5:16-17)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의 별명을 지어 보세요. 하나님은 아브람을 열국의 아비로 만드시려고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나는 빛이다! 나의 열매는 선, 의, 진실이다!

  
󰊳 빛을 증언하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20절) 
  
빛 되신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빛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선지자를 보내시고 그 이름을 증거하기 하시려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요1:6-7)
  
증인과 증언, 증언하는 사람이 증인입니다. 기독교의 독특한 단어입니다. 증언하다가  핍박을 받고 순교를 당하면서 이어온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빛의 증언자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증언하다가 피를 흘렸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의 증인들의 피와 성도들의 피를 마시고 취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여자를 보면서 소름이 오싹 끼쳤습니다”(쉬운성경 계17:6)
  
여기서 말하는 여자는 교회의 핍박자 바벨론이나 로마를 상징하는 여자입니다. 사도요한이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를 마시고 취해 있는 것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증인(證人)이나 증언(證言)이나 증(證)자가 붙으면 피(血)와 연결됩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59-60) 스데반은 증거하다 피를 흘렸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로마제국에 의해 피를 흘리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 수가 얼마나인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빛 되신 예수를 증언하다가 피를 흘렸습니다. 
  
성도들이 전했던 예수는 또 누구입니까? 그분도 역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신 분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갈6:14).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빛을 전하는 사람은 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빛이십니다. 그 빛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불(火)이어야 합니다. 불 없는 사람이 빛을 전할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 부처를 불타(佛陀라고 하는데 불타듯이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증인으로 증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불이 빛을 증거한다는 말입니다. 
  
네델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성화를 많이 그렸는데 세례요한을 그리면서 세례요한의 손가락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그렸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빛 되신 예수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빛이 아니요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입니다.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는 빛 되신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의 사명을 끝내고 자기 인생도 끝냈습니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11절) 어둠을 책망할 수 있는 것은 빛뿐입니다. 빛은 어둠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이 세상이 자기를 바꾸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의 책망은 들을 줄 아는 사람의 귀에는 금고리요, 순금 목걸이이다”(잠2512) 어둠이 빛의 책망을 받아들이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어둠이 물러가면 빛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습니다. 어둠 속에 있어서 어둠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둠에서 나왔습니다. 이제는 주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처럼 사십시다. 
  
우리는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로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줄 책임이 있습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
  
“이와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우리가 빛을 전하는 길은 우리가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빛을 전하려면 성령의 불이 필요합니다.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빛입니다. 우리는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빛 가운데서 일어나 빛을 발하십시오 나는 빛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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