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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개가 되도 좋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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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되도 좋사오니
마태복음 15 : 21~28

우리 주변에는 쓰레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 많은 쓰레기에 미련을 갖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서 애착을 갖지는 않습니다. 부스러기, 혹은 버려진 돌 같은 것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결코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쓰레기 같은 것, 가치 없는 돌멩이, 아무런 행할 능력이 없는 사람, 버림받은 것, 버려진 것들을 통해서 놀라운 생명력이 역사되어지고 아름답고도 고귀한 삶의 열매가 맺어지며, 놀라운 새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는 경우가 성경 안에는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생명력이 역사되고, 새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며 고귀한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의 길만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요청하고 부르짖고 간구하여 자신의 딸의 병 고침을 받은 가나안 여인은 우리에게 기도의 능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그녀의 기도는 오직 절규로 가득 찬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이라고 하는 처지, 그리고 여인의 위치, 또한 딸아이마저 흉악한 귀신에 들렸다고 하는 상황이 세상 속에선 한낱 부스러기로 여겨지는 조건들이었습니다. 그녀는 절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고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하나님의 관심을,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부르짖음에 제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빨리 돌려보내 버리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아니하고 그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떡이라도 주워먹겠으니, 그 부스러기 은혜라도 얻어야 하겠다고, 절규하고 소리를 질러 외쳤습니다. 절규로 가득 찬 기도 소리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주님은 들으십니다. 우린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주님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때 새 생명이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2. 그녀의 기도는 ‘다윗의 자손’을 찾는 기도였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의 절규와 부르짖음은, 그리고 외침의 소리는 다윗의 자손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희망이자 곧 가나안인, 즉 이방인들의 희망이기도 했습니다. 그러기에 가나안 여인은 흉악한 귀신들린 딸에게도 오직 다윗의 자손만이 그 귀신에게서 자유함을 얻게 하여 주실 줄로 믿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다던 메시야를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9:27을 보면, 예수께서 여리고를 나가실 때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을 향하여 부르짖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눈을 떠, 보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도, 누가복음 1장에도 예수님의 족보상에 예수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사야 42:1~3에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오셔서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 빠져 미천한 존재로 타락해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고 온 인류는 그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사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가나안 여인은 다윗의 자손을 향하여 기도하고 부르짖고 절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다윗의 자손 예수를 향해야 합니다. 거기에 응답이 있습니다.
 
3. 그녀의 기도는 불쌍히 여김을 받고자 하는 기도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를 사모하고 받아도 우린 남다른 은혜를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더 가치 있고, 더 능력이 있고, 귀한 사람인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나안 여인은 개가 되는 것을 그래서 개로서 주인의 밥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기다리는 것에 대해서 개의치 아니했습니다. 개가 되어서라도, 오직 다윗의 자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불쌍히 여겨주시는 은혜 받기를 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이 믿음을 통해서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 즉시로 이 가나안 여인의 딸에게서 흉악한 귀신 나갔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큰 믿음이란, 놀랍고도 신령한 큰 은사를 받는 믿음이 아닙니다. 오직 불쌍히 여김을 받고자 하는 이 믿음이 큰 믿음인 것을 우린 깨달아야 합니다. 가나안 여인은 개가 먹을 수밖에 없는 오직 부스러기 은혜라도 좋으니, 개가 되도 좋사오니 자신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러한 은혜라도 받기를 사모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큰 믿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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