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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성육신을 선포하고 입증하신 예수님 (빌 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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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을 선포하고 입증하신 예수님 (빌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에 관한 것으로 대화의 주제를 삼을 때 세상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 번째 반응의 사람들은 ‘하나님은 너무 위대하시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피흘리는 이 세상에 관심을 갖거나 돌보실 것 같지 않은 분’ 으로 간주합니다. 두 번째 반응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 세상과 일치시켜서 ‘우리는 우리를 돌보는 대지를 예배하므로 곧 하나님을 예배한다’ 고 생각합니다. 

이런 주장 속에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예배를 받을 가치가 있는 신(神)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고 위대해야 하고, 또한 그 신은 이 세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우리를 돌보는 존재이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초월자이면서 동시에 내재하는 분이십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정확하게 보여주신 진리입니다. 2,000년 전 역사의 무대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왔다고 담대하게 선포하셨고, 강력한 증거들로 자신의 선언을 증명하셨습니다. 이 점에서 예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의 유일성’ 에 대하여 몇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예수님의 비할 수 없이 위대한 영향력, 주님의 비할 수 없이 심오한 가르침, 그리고 주님의 비할 수 없이 완전한 인격은 예수님을 인류 역사에 어느 누구도 그분의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존재가 되게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모셔온다고 선언하시는 예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본문과 함께 성경 전반에서 성육신을 선포하고 이를 입증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며 오직 예수 신앙을 더욱 돈독히 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 (= 성육신의 선포)

6-8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본문(6-11절)은 신약에서 가장 오래된 찬송시입니다. 아마도 예수님 승천 이후 20년도 되기 전에 지어져서 초대교회에 널리 애송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구주 예수님에 대한 초대교회의 찬송가 중 하나인 이 찬송시는 놀라운 선언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찬송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재(先在, pre-existent)하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동일 본체라는 사실, 자기 비하(卑下)로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 십자가 수난(受難)으로써 구속 사역을 이루셨다는 사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중에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이 모두 진술되어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와 그로 인한 승귀(exaltation)의 과정이 응축적으로 요약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참으로 놀랍고 엄청난 선언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3년 이상을 동고동락(同苦同樂)하셨던 바로 그분, 누가 보기에도 참 사람이셨던 바로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신 하나님이시다는 선언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분은 인류 역사 가운데 이 세상 안에 태어날 것을 스스로 선택하신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하나가 됨으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6-7절).

전능하신 하나님, 형언할 수 없이 광대하시고 존귀하신 주님이 자신을 한 처녀의 자궁 안에 수정알로 움츠리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주장이고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고백이고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외침입니다. 

여러분은 이 외침이 믿을만한 것인지, 가감없이 선포할 수 있는 것인지 주의 깊게 평가해야 하고 분명히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그분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우리의 인성(人性)에 참여하고자 자발적으로 자신을 낮추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심을 ‘성육신’(incarnation)이라 부릅니다. 바로 이 성육신에서 우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광대하신 하나님과 우리 가운데 오셔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주보다 커서 주위의 경멸과 조롱, 심지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죽음인 십자가 형벌을 견디게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은 예수님과 가까웠던 제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의 성육신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증언을 들어보십시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이란 분이 누구신가를 알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을 충분히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우리 눈 앞에 ‘독생하신 하나님’ 이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인 베드로는 예수님의 ‘신적 권능’ 에 대해 말하고 있고, 주님의 육신의 동생인 유다는 예수님을 가리켜서 ‘홀로 하나이신 주재(主宰)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구속 사역에 관한 많은 글을 남긴 사도 바울은 ‘예수님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골 2:9) 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매우 담대하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릅니다.

히 1:2-3=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분을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주저없이 인정하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친히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매우 단순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단순한 교사로 오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가르침과 주장은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람어로 ‘사랑하는 아빠’ 라는 의미인 ‘아바’(Abba) 라 불렀습니다. 역사상 누구도 하나님을 이렇게 불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보다 2,000년 앞서 이스라엘 민족을 창설했던 아브라함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 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본 사람은 사실상 아버지를 보았다고 주장하셨습니다(요 14:9). 그분은 죽어 무덤에 장사 된지 삼일 만에 육신으로 부활하셨고, 자신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준다고 주장하셨습니다(요 11:25).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모든 민족을 자기 앞으로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를 가르며 인류를 심판하는 권세가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주장하셨습니다(마 7:24ff, 25:31-46).

성도 여러분! 이런 중대한 선언들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보십시오. 정신이 온전한 자라면 자신이 정말 하나님의 속성을 공유하지 않았는데 공유하고 있다고 담대히 주장할 수 있을까요? 
인류의 스승인 공자나 석가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에 관하여는 언급할 수도 없었고 오직 윤리적 행동 강령들을 가르쳤을 뿐입니다. 모하메드는 자신이 하나님의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할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런 주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모하메드는 신성모독죄를 적용해서 그를 돌로 쳐죽이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주님은 지상에서 겸손하고 긍휼이 많으신 인류의 한 사람으로 있었음과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거침없이 주장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나시고 수 십 년이 지난 후에도 목숨을 걸고 이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다른 종교들 안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우리 모두 포스트모던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이때에 오직 예수 신앙으로 철저하게 무장하기 바랍니다.


2. 유대인의 편견을 깨뜨려 믿게 하신 예수님 (= 성육신의 입증)

성육신의 진리는 지난 2,000년 동안 수억,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 믿음과 영감을 주어온 기독교 교리의 핵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속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사실을 믿었고, 이 믿음 때문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성육신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이 첫 번째일 것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셨다는 제안을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슬림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일신교를 믿습니다. 

그런데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에서 개종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로 인정하려면 그 당시 일반화 된 비관론과 편견을 극복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우리가 목격한 대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성육신 주장을 받아들인 후 예수님의 특별한 면들을 계속해서 주장했습니다. 

왜 그들은 설득되었습니까? 예수님은 어떻게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들의 편견이 깨어지고 그 엄청난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어떤 면이 그들의 마음을 열게 했을까요?

1)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심오한 가르침에 설득되어 마음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귀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심오하고 도전적이고 마음을 사로잡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십시오. 

매우 힘 있고 흥미 있는 비유들, 당시 실세였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거침 없는 도전들, 그러면서도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향한 뜨거운 관심, 두려워 하는 자들을 향한 따뜻한 격려, 인간의 미래와 운명에 관한 가르침 등등.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분이야말로 전무후무한 가장 역동적인 교사임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의 종교계에 직선적이고 도전적이어서 종교지도자들의 맹렬한 증오심을 일으켰고, 결국 십자가에 달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은 자신의 것이 아니며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께 속한 것이라고 거듭 주장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듣는 자들은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2) 그들은 예수님의 삶과 인격에 감동되어 마음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인격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삶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삶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사랑과 정직, 용기와 자기 희생, 그리고 완전한 경건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가까이 지낸 자들에게도, 심지어 그분과 3년여 동안 침식을 함께 나눈 제자들에게도 주님은 삶을 통해 큰 충격을 주었고 그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유대교의 편견에 찌들어 있던 그들은 예수님의 삶과 인격에 매료되어 주님의 성육신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3) 그들은 예수님이 행한 기적들을 보고 믿게 되었습니다. 
역사상 그 누구도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치유의 기적들을 보십시오. 주님은 날 때부터 소경 된 자, 38년 동안 중풍으로 누워 있던 자, 흉악하게 귀신들린 자를 말씀 한마디로 고쳐주셨고, 심지어 죽은지 나흘이나 된 시신을 일으키셨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기적을 직접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은 자연을 다스리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굶주린 것을 보시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셨고, 결혼식장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보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며, 갈릴리 바다 위를 걸어오시기도 했고, 바다의 폭풍과 파도를 일시에 잔잔케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 자신이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기적이 있습니다. 이런 기적들은 그리스도인의 문서에서만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의 문서에서도 증언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과시하거나 이기적인 목적으로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기적을 행하는 곳에는 언제나 인간의 고난과 눈물이 있고 주님의 긍휼이 그 눈물을 닦아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기적은 오랫동안 기다렸던 하나님의 나라가 마침내 역사 속에 뚫고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그분이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보여주는 분명한 표적들입니다. 오병이어로 군중을 먹였던 주님은 굶주린 영혼을 먹일 수 있습니다. 소경의 눈을 열어준 주님은 교만과 편견으로 눈먼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죽은 자를 일으킨 주님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들 안에 새생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설득시키는데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이 주제는 매우 커서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을 때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믿었다’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요 2:11). 기적은 예수님이 사람 이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키는 강력한 요소였습니다. 

4) 사람들은 예수님의 예언의 성취에 의해 설득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간섭하는 때에 관한 예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후일에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이 있고, 다윗의 줄기에서 나와 영원히 통치할 왕에 관한 예언이 있습니다. 격렬한 고통을 받고 마침내 피흘려 죽음으로 인류의 죄를 감당할 하나님의 종에 관한 예언도 있습니다. 

오시는 그분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역할을 영원히 성취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다윗의 계보를 따라 가난하고 비천한 가정에서 태어날 것입니다. 그분의 탄생지는 베들레헴일 것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이 예언들이 성취된 것을 보았습니다.

구약의 예언은 계속됩니다. 오시는 그분은 사람들에게 거절당하고 악인들과 함께 죽을 것이고 부자가 제공한 무덤에 묻힐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간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회복될 것이고, 하나님의 영은 백성들 안에 거처를 정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예언들은 성취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예언의 성취가 예수님이야말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정통 유대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세상에서 예언에 관한 어떤 책 안에서도 예수님의 경우와 같은 예언의 성취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5) 그리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설득시킨 것은 주님이 주장한 선언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기묘합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겸손하고 이타적이며, 병든 자를 고치고 사람들을 가르치며 소외된 자의 친구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황당한 선언들을 거침없이 하고 있는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돌려야 할 경배를 자신도 받을 자격이 있음을 당연하게 여기셨습니다. 

부활 후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발 앞에 제자 도마가 무릎을 꿇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라 외쳤을 때 주님은 도마의 경배를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습니다. 양심이 있고 선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선한 사람 이상의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간음의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향해서나 자신에게 데려온 중풍병자를 향하여 ‘네 죄가 용서받았다’ 라고 선언하셨고, 중풍병자는 일어나 걸어감으로 주님의 선포를 입증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죄 용서를 공개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엄청난 주장을 거침없이 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선언하셨고, 이 떡이 없이는 사람들은 주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하나님께 가는 유일한 길이요 하나님에 관해 말하는 진리 자체요 하나님의 생명 그 자체라고 선언하셨습니다(요 6:48, 14:6). 또한 예수님은 부활이요, 영생에 이르는 길이요,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고 하나님을 우리에게 증명하는 유일한 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요 11:25).

성도 여러분!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황당해 보이는 주장에 대해 처음에 어려워하고 떠나기까지 했지만(요 6:60, 66), 결국 주님의 가르침과 완전한 인격, 그리고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과 그를 통해 구약의 예언들이 성취된 것을 보고 마음을 열었고 믿음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인격적인 삶, 그분의 기적들과 예언의 성취에 관하여 더 깊이 살펴보고, 주님의 성육신의 주장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확실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서 중 하나를 선택해서 단숨에 읽어보십시오.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수많은 예수님의 선언을 접하게 될 것입니다. 읽은 후 여러분에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중 하나는 예수라는 나사렛 목수 출신 젊은이는 미쳤고 과대망상증 환자라는 것과, 아니면 그는 매우 천재적인 두뇌로 세상 모두를 속이고 있다는 것, 그도 아니면 그의 선언은 모두가 사실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처럼 탁월한 삶의 행동 양식을 갖고 있었고 그토록 심오한 가르침을 주었던 그분이 미쳤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토록 진리를 강조했고 진리를 위해 자원하여 갈보리로 올라가 인류를 위해 피흘리신 그분을 어떻게 거짓말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만에 하나 그가 고급 두뇌로 주위 사람들을 현혹했다 하더라도 그가 떠나고 수십 년이 지난 후까지 그의 제자들이 어떻게 그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다가 순교의 제물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결론은 하나입니다. 바로 이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분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소개하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바로 이분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무신론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돌아선 루이스(C. S. Lewis) 교수는 이렇게 당당히 말했습니다.

“당신은 선심을 쓰듯 ‘예수님은 위대한 인류의 교사’ 라는 무의미한 말로 예수님을 호도하지 말라. 예수님은 당신에게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렇게 할 의도도 없었다.
타협점은 있을 수 없다. 다른 종교들과 비교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소크라테스에게 가서 ‘선생은 제우스신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는 손을 내저으며 당신을 비웃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모하메드에게 가서 ‘당신은 알라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는 우선 자신의 옷을 찢고 다음에 당신의 목을 벨 것이다.”
예수님은 성육신의 진리를 당당하게 선포하셨고, 이를 여러 가지 면에서 입증하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오직 예수 신앙으로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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